내 안에 마교있다 121
노인들의 뒤를 따라 달리는 와중에 제갈수광의 전음이 들렸다.
[송유겸, 너는 초반에만 선봉을 지원하면 된다. 이후에는 알아서 움직이도록.]
나름 급박한 상황이 되니 역시나 저 지시가 나온다.
이런 상황일수록 내 위치를 고정하여 역할을 제한하기보다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끔 놔두는 편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대꾸하면서 보니 제갈수광은 화살 세 대를 동시에 시위에 메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활을 수평으로 들고 시위를 잔뜩 잡아당긴 상태에서, 세 대의 화살에 내공이 담기고 있었다.
이윽고 적들과의 거리가 급격하게 가까워지자, 노인들 세 명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낮게 도약하며 적들을 향해 짓쳐들었다.
그리고 노인들이 낮게 도약한 그 순간, 제갈수광의 활시위가 화살 세 대를 토해냈다.
투웅!
슈슈슉-
세 대의 화살이 노인들의 발아래를 스쳐가더니 경로상의 적들을 관통하며 날아갔다.
이정도면 미리 약속된 연계일 것이다.
세 발의 화살로 인해 어떤 자들은 치명상을 입었고, 어떤 자들은 그대로 쓰러졌다.
사상자를 다 셀 수는 없지만 화살 세 대에 적어도 예닐곱 명은 죽거나 치명상을 입었다. 경상자는 더 많다.
적들의 전체적인 수준이 높다는 걸 생각하면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 와중에도 제갈수광은 또다시 화살 세 대를 시위에 메기고 있다.
노인들은 거침없이 적들을 쓰러트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노익장들이 대단하다.
길초량은 노인들의 사이로 철비정을 날리고 있다.
나 또한 이곳저곳에 열심히 쇠구슬을 날렸다.
마침 각이 좋아서 원을태의 어깨 옆으로 쇠구슬을 튕겨낸 순간, 앞 열에 있던 촉홍결의 검기가 먼저 내 대상의 가슴을 관통했다.
쩝, 쇠구슬 하나 공쳤네.
단체로 싸우다 보면 흔히 있는 일이긴 하다. 누가 마무리를 지었든, 그 대상을 처치했다는 게 중요하다.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려는데, 날아가던 쇠구슬의 앞으로 갑자기 뭔가가 불쑥 나타났다.
원을태가 대도를 쭉 뻗은 것이다.
탱! 퍽!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날린 쇠구슬이 대도의 옆면에 의해 비스듬하게 튕겨지더니, 곧바로 방향을 바꾸어 다른 적도의 볼에 작렬한 것이다.
오호? 이 노인네 좀 보게?
내가 날린 쇠구슬이 헛되이 소모될 걸 알고 원을태가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한 것이다.
그 적도의 고개가 옆으로 젖혀진 순간, 그쪽에 있던 탕유심의 도가 곧바로 그 적도의 가슴을 베었다. 탕유심 또한 대단한 반응 속도였다.
노인들 모두가 기본적으로 단체전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뛰어나다는 반증이다.
역시 신룡대 출신이라는 거지.
그렇다 보니 나와 길초량의 암기술도 더 잘 통하고 있다.
손발을 맞춰본 게 아닌데도 기본적으로 합이 딱딱 맞는다.
싸우기가 참 편하다.
기동 타격조는 적진의 정면을 그리 어렵지 않게 돌파하며 순식간에 삼사십 명 가량을 처치했다.
노인들을 지원하는 와중에도 나는 우리를 막아선 무리들에 섞여 있는 절정고수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중이다.
내가 파악하기로는 여섯 명이다.
그 절정고수들은 섣불리 개입하지 않은 채, 적진 외곽의 군데군데에서 어슬렁거리는 중이었다.
저건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뜻일 텐데.
그 생각이 든 순간, 나는 슬며시 중진 쪽으로 빠졌다.
어차피 선봉 쪽은 돌파를 위해 강력한 전력을 배치한 상태다. 내가 빠져도 세 노인과 제갈수광, 길초량이 있다. 만약의 상황이 발생해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다.
후미의 구성원은 차우기와 추소륵과 단목강이다. 그쪽 또한 웬만한 상황에는 대처가 될 것이다.
그런 면들을 따져봤을 때 중진이 살짝 취약한 편이다.
돌파 진형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장호산과 이세옥이 배치되어 있긴 하나, 그 둘만으로는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기가 버거울 수도 있다.
그래서 중진으로 내려 온 것이다.
중진에서도 정중앙에 포진한 채로 좌우 측면을 향해 쇠구슬을 날리며 지원했다.
선봉 쪽이 적진의 중심부 근처까지 길을 뚫었을 즈음, 내가 줄곧 주의를 기울이고 있던 절정고수들의 기척이 갑자기 빠르게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전방에 두 명, 좌우 후방 쪽에 두 명씩이다.
신속하게 훑어보니, 적측 절정고수들이 적들의 뒤편에서 거의 동시에 도약해 올랐음을 알 수 있었다.
놈들은 도약하는 와중에도 하나같이 양팔을 가슴께로 끌어 모은 상태다.
뭘 하려는 건지 알 것 같았기에 즉시 외쳤다.
“허공! 암기 조심! 절정고수!”
순간적으로 우리 인원들의 시선이 허공을 좇을 때쯤, 나는 천섬무를 운용하기 시작하며 중진에 포진한 우리 관도들의 위치를 신속하게 훑었다. 동시에 비룡검도 뽑았다.
적측 절정고수들은 세 방향의 허공에서 사선으로 암기를 쏘아내려 하고 있다.
즉, 현재의 우리로서는 모두가 저 암기의 살상 범위에 들어 있는 셈이다.
게다가 절정고수들이 날리는 암기인 만큼 당연히 빠를 테고 위력도 강할 것이다. 아무리 우리 관도들이 우수하다 해도 완벽하게 대처하기는 어렵다. 가뜩이나 밤중이니까.
더 큰 문제는 암기들에 극독이 묻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적들도 우리의 전력이 강하다는 걸 알고 있다. 단순히 암기를 날리는 것만으로는 유의미한 타격을 입히기가 어렵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고로 독을 발랐을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스치기만 해도 위험할 수 있는 극독일 것이다.
관도들의 위치를 훑은 후 다시금 허공을 보았다.
적측 절정고수들이 동시에 양손을 털어내는 중이었다.
피비비비비비빗-
수십 개의 침이 삼면의 허공에서 사선으로 우리를 향해 쏟아지고 있다.
침은 단거리에서 대량으로 쏟아내기에 매우 적절한 암기이며, 독까지 묻히면 더욱 효율적이다.
나는 적당한 속도로 천섬무를 펼치며 미리 봐 뒀던 지점으로 이동했다.
악미조가 있는 방향이다.
그녀의 무기는 창인데, 애초에 장병으로는 이런 식의 공격을 막기가 어렵다. 일정 수준 이상의 고수라면 모를까, 적어도 현재의 악미조에게는 버거울 수밖에 없다. 암기를 발출한 적들이 절정고수들이기 때문이다.
티딩!
악미조가 양손으로 창의 중간쯤을 잡고 침들을 튕겨내기 시작할 때쯤, 나도 그녀의 옆으로 접근하며 비룡검을 휘둘렀다.
티디디디디딩!
악미조 쪽으로 날아오던 모든 침들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녀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감사해······.”
그러나 악미조는 고맙다는 인사를 끝맺지 못했다.
우리의 앞쪽에 있던 적도들 세 명이 갑자기 신음을 흘리며 풀썩 쓰러진 탓이다.
“크윽······!”
악미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앞에서 쓰러진 적도들 세 명의 피부가 검게 변색되어 가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그 즈음, 내 바로 뒤쪽에서 제갈수광의 외침이 들렸다.
“독침이다! 다들 주의해!”
제갈수광은 적측 절정고수들이 허공에서 독침을 뿌리기 직전에 중진으로 이동했었다. 촉홍결과 함께였다. 두 사람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고 즉시 중진을 지원하러 왔던 것이다.
덕분에 독침에 당한 인원은 없는 모양이다.
악미조가 놀란 표정 그대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 앞에 있던 적들이 쓰러진 이유가 나 때문임을 알아 챈 것이다.
한 놈은 허벅지 앞쪽에, 한 놈은 우측 흉부 위쪽에, 다른 한 놈은 복부 쪽에 독침이 박혀 있다.
모두가 정면에서 날아온 독침에 맞은 셈인데, 이 위치에 있는 건 그녀와 나 둘뿐이다. 악미조 본인이 저렇게 만든 게 아니기에 자연스럽게 내가 한 일임을 알게 된 것이다.
맞다.
사실 나는 독침들을 튕겨내는 와중에도 다수의 침들을 우리의 정면으로 쳐냈었다. 천섬무를 운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악미조를 보호하는 게 우선이라, 정확하게 적들 하나하나를 노리고 튕겨낼 수 있는 상황까지는 아니었다.
그래서 정면을 향해 마구잡이로 튕겨냈는데, 그 중 세 개가 적들에게 박힌 것이다.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로 대꾸했다.
“그 창, 분리하는 게 좋겠소.”
악미조의 창은 중간이 분리되며 단창과 단봉으로 변한다. 그 사실을 알기에 해준 말이다.
“아.”
악미조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창을 분리했다.
이제는 장병이 아니라 단병을 양손에 하나씩 쥐게 되었으니, 비슷한 공격에는 그녀 혼자서도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직후, 또다시 적측 절정고수들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나는 비룡검을 왼손으로 옮겨 쥐며 오른손에는 소비도 두 자루를 꺼내 쥐었다.
그러면서 빠르게 훑어보니 이번에도 여섯 놈이 거의 동시에 외곽에서 도약하고 있었다.
“또 옵니다!”
내가 즉시 외치자 모두가 허공을 경계했다.
방금 전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다들 철저하게 대비하는 모습이다.
허공으로 도약해 오르는 한 놈의 머리 위쪽을 향해 즉시 소비도 두 자루를 신속하게 발출했다. 발출하자마자 또다시 한 자루의 소비도를 바로 빼들었다.
놈이 도약하던 중에 움찔하는 게 느껴진다.
푸훗! 이 새끼야, 양손에 그렇게 독침을 잔뜩 쥐고 있으니까 막을 게 없지.
놈은 결국 더 빨리 양손을 털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야만 어떻게든 내 소비도를 피하거나 막을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놈이 양손을 털어내는 순간에 천섬무를 운용하여 지금 들고 있는 소비도를 날릴 작정이다.
놈이 가장 곤란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 노림감 놈이 어쩔 수 없이 다른 놈들보다 먼저 양손을 털어냈다.
막 소비도를 날리려던 나는 눈을 크게 뜨지 않을 수 없었다.
놈이 뿌려낸 게 아까와 같은 대량의 침이 아니라, 조막만한 구체 두 개였던 탓이다.
마침 두 개의 구체 중 하나가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오고 있었기에, 나도 즉시 그 구체를 향해 소비도를 날렸다. 천섬무를 운용해서, 최대한의 속도로.
소비도를 날림과 동시에 짧게 외쳤다.
“탄! 조심!”
“산개!”
내가 외친 직후에 산개를 외친 사람은 제갈수광이었다.
나는 그 외침을 들었음에도 곧바로 또 한 자루의 소비도를 발출해 냈다. 다른 하나의 구체를 향해서다.
기동타격조의 모든 인원이 맹렬하게 진기를 돌리며 보법을 시전하기 시작할 때쯤, 적측의 나머지 절정고수 놈들도 서둘러 양손을 털어냈다.
그들의 양손을 벗어난 구체들이 우리가 있는 지점을 향해 날아들었다.
방금 내가 외쳤던 ‘탄’이라는 말은 폭발물을 뜻한다.
이런 식의 전투에서 사파놈들이 쓰는 폭발물은 벽력탄 내지 독탄인데, 일단 터지기 전에는 종류를 특정할 수가 없다.
한데 폭발물이 날아오는 상황이면 급박한 상황이다.
그렇기에 무인들은 그 상황에서 ‘탄’이라고 짧게 외쳐, 아군이 어떤 종류의 폭발물에든 즉시 대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 짧은 순간동안, 주변에 있던 우리 조의 인원들이 산개하며 속속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자리를 뜨지 않은 채로 또 한 자루의 소비도를 뽑아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처음에 날렸던 소비도를 주시했다.
내가 처음에 날린 소비도에 의해 저 구체가 터진다 해도, 저건 어차피 내게서는 먼 허공에서 터진다.
저 구체가 벽력탄이라면 즉시 천섬무를 운용하며 이탈해야겠지만, 독탄이라면 이탈하기까지의 여유가 조금 더 생긴다.
흑풍대 시절에도 사파놈들과의 전투 중에 벽력탄과 독탄을 몇 차례 경험한 바 있다. 그때의 경험이 있기에 이런 대처도 가능한 것이다.
곧, 첫 소비도가 구체에 적중하며 폭발했다.
펑!
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다.
고막을 울리는 벽력 소리가 아니다.
즉, 독탄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허공에서 폭발한 구체에서 검붉은 운무가 강하게 터져 나왔다. 확실히 독탄이다.
펑!
그 직후에 내가 두 번째로 날렸던 소비도가 적중하며 또 하나의 독탄이 허공에서 터졌다.
참고로 두 개의 독탄 모두 적도들의 머리 위쪽에서 터졌다.
당연히 적도들 다수가 검붉은 운무의 영향을 받았다.
“끄으윽!”
“크아아악!”
괴로움에 가득 찬 신음과 비명이 난무하고 있다.
그 즈음의 나는 이미 소비도 한 자루를 더 날린 상태였다.
날아들고 있는 다른 구체를 향해서였다. 정확도가 중요하기에 집중해서 던진 소비도다.
나는 저 독탄들을 최대한 적도들의 머리 위에서 터트릴 작정이다.
이후에 즉시 또 하나의 소비도를 뽑아들었을 때였다.
허공에서 날아오고 있는 구체들 쪽으로 또 하나의 뭔가가 날아드는 게 보였다.
유엽비도다.
그 유엽비도도 다른 구체를 향해 정확하게 날아들고 있었다.
내가 연속해서 소비도를 털어낼 때마다, 유엽비도도 다른 구체들을 향해 하나씩 날아들었다.
빠르게 고개를 돌려 보니 역시나 제갈수광이었다.
비어 있는 이 공간에 그와 나뿐이었다.
그도 벽력탄이 아닌 걸 확인하고는 끝까지 남아서 유엽비도를 날렸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