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134화 (134/416)

내 안에 마교있다 134

아직까지는 궁술의 경지가 일천하다보니 곡사보다는 직사가 훨씬 더 자신 있는 상태다.

직사는 조준선 정렬이 쉽기 때문이다.

한데 은룡삭을 시위로 써서 천섬무까지 운용하여 날리니, 직사로도 어마어마한 사거리가 나오고 있다.

이러면 지금의 내 수준에서도 추격전에서 궁술을 쓰는 게 가능해진다.

즉시 화살 하나를 시위에 메기며 덤불을 벗어났다.

뒤에서 추격해오고 있는 아군 쪽으로 이동하며, 도망치는 적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아까 연습 삼아 천섬무를 중 단계로 운용하여 나무에 대고 쐈던 느낌을 살렸다. 그때도 직사였기 때문이다.

쉬익- 푹!

무서운 속도로 날아간 화살이 내가 노렸던 놈의 등짝에 강하게 박혔다.

“크억!”

놈이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고꾸라졌다.

노렸던 지점에 정확히 박힌 건 아니나, 인간의 등판 정도면 아주 넓은 과녁이다. 조준점에서 약간 벗어난다고 해도 어차피 꽂힌다는 거다.

무림맹 측 무인들과 보조를 맞추어 달리며 도주하는 적들을 쫓았다.

가까운 적들에게는 무림맹의 무인들이 알아서 달라붙고 있었기에, 나는 비교적 거리가 멀어져 있는 적들을 노려 계속 화살을 날렸다.

화살이 적도들의 등짝에 푹푹 박히고 있다.

제갈수광처럼 빠르게 연사하고 싶지만 내 수준에서 그런 게 될 리 없다. 연사 속도는 좀 느려도 한 발, 한 발을 정확하게 꽂아 넣는 일에만 집중했다.

멀리에 있는 놈들을 이렇게 쉽게 죽일 수 있다니.

재미있다.

사람 죽이는 게 재미있는 게 아니라 내 어설픈 궁술이 억지로라도 통하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화살이 내가 노린 놈들을 쓰러트릴 때마다 쾌감이 올라온다.

제갈수광이 이 맛에 활을 쏘는구나 싶다.

등에 메고 있는 전통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애초에 전장에서 주웠던 전통들이라 화살이 꽉 차 있는 게 거의 없었다. 그걸 정리해서 화살을 몰아넣었더니 세 통밖에 되지 않았다. 그 세 통 중에서 두 통을 벌써 다 쓴 것이다.

제갈수광 그 인간이 이래서 내게 화살자루를 짊어지게 했던 것이군.

마지막 전통에 들어 있는 화살을 꺼내어 쏘면서도 계속 주변의 바닥을 주시했다. 떨어져 있는 전통이 있는지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내 경로상에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봐! 젊은 궁사!”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측면 후방 쪽에서 전통 하나가 내게로 날아오고 있었다.

아하하, 궁사라니. 쑥스럽게.

내가 전통을 받아들자, 전통을 날린 것으로 추정되는 무인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활 좀 쏘네? 열심히 쏴!”

아하하, 활 좀 쏜다니. 궁술 초보인 내가 저런 소리를 다 들어보네.

물론 적중률이 매우 좋긴 했다.

그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이후에도 계속 화살을 날리는데, 화살이 부족해질 무렵이 되면 여기저기에서 무인들이 다가오며 내게 전통을 한두 개씩 챙겨주곤 했다.

그 와중에 활 좀 쏜다는 소리도 여러 차례 들었다.

지금의 내 궁술은 단지 은룡삭과 천섬무 덕분에 요행으로 뻥튀기된 실력에 불과하다.

실상은 궁술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초보일 뿐인데, 부끄러워서 이거야 원.

이후에도 추격전을 계속하며 활 쏘는 재미에 몰입해 있는데 갑자기 전음이 들려왔다.

[유, 유겸이 아니냐?]

노인 원을태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가 내 쪽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다가오고 있는 방향의 먼 곳으로 기동타격조원들의 모습도 보였다. 내게서는 제법 떨어져 있는 위치다.

[엇! 원 어르신!]

원을태는 상의에 흰 천을 둘둘 감고 있었다.

그는 아까 덩치 놈을 상대했었다. 놈을 상대하다가 부상을 당했던 게 아닐까 싶다. 이렇듯 추격전에도 참여한 것으로 보아 치명적인 상처는 아닌 모양이다.

[너······, 너, 아까 크게 다쳤던 것으로 아는데······, 괜찮은 게냐?]

[예. 보시다시피 괜찮습니다.]

[아까 네가 그렇게 되는 걸 보고 큰일이 난 것 같아서 가슴이 철렁했었다. 다들 많이 걱정했다. 물론 제갈 교관이 믿고 기다리자고 하긴 했었다. 최악의 상황은 아닌 것 같다면서.]

미소를 보인 후에 곧바로 원을태에게 물었다.

[그보다도 어르신은 괜찮으십니까? 작은 부상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요.]

[아까 그 곰 같은 놈한테 당한 부상이다. 움직일 만은 해서, 뭐라도 도움을 주려고 추격전에도 따라나섰던 게다. 대도를 휘두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이렇듯 여기저기 살피며 허드렛일이나 돕고 있는 게지. 그러다가 너를 발견한 것이고. 일단 가자. 다들 기다린다.]

역시나 덩치 놈에게 당했던 부상인 거다.

참고로 어르신이 당한 복수는 제가 했습니다요.

곧 기동타격조에 합류할 수 있었다.

이들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된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다.

모두가 놀람과 염려를 담아 안부를 물어왔다.

괜찮다고 대꾸해주었다.

“일단 추격전을 계속한다.”

제갈수광의 지시에 따라 모두가 다시금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역시나 제갈수광은 활을 들고 있었고, 남군호가 화살자루를 멘 채로 제갈수광을 따르고 있었다.

[송유겸 너 이 자식, 정말 괜찮은 건가?]

부지런히 화살을 날리는 와중에도 제갈수광이 전음을 보내왔다.

[예, 괜찮습니다.]

그렇게 대꾸해주며 나도 직사로 화살 한 발을 날렸다.

직사임에도 화살이 멀리까지 날아가서 적의 등에 박히자, 제갈수광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너 이 자식, 그 활······.]

활대를 바라보던 제갈수광의 시선이 활시위로 이동해서 멈췄다.

잠시 후 그가 납득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다시금 활을 쏘기 시작했다.

장강에서 배 아래로 떨어지던 그를 낚아 올렸던 게 바로 은룡삭이다. 당시에 나는 은룡삭을 작살 줄로 대체해서 쓰기도 했었다. 그때의 그 끈임을 알아보고 저러는 것이다.

[너 인마, 활 그만 쏴.]

제갈수광의 전음이었다.

즉시 항변했다.

[아니, 이건 주워서 쓰고 있는 활과 화살들입니다. 무림맹의 물자를 낭비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게다가 잘 적중시키고 있기도 하고······.]

[지금 내가 화살 낭비 문제나 적중률 문제 때문에 이 소리를 하는 것 같나? 너 아까 가슴에서 등 뒤쪽까지 관통상 입었잖아. 그런 상처를 입고도 계속 활 쏘면 상처에 안 좋단 말이다. 지금은 전투 중이라 통증이 잘 안 느껴져도, 전투 끝난 후에는 다르단 말이다.]

[응급처치로 금창약도 잘 발랐고 상처도 꽁꽁 동여맸······.]

[스읍. 이 자식, 말 안 들어?]

저렇게까지 나오면 항거할 수가 없다.

게다가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절정에 오르던 순간 회회심공이 특별작용을 일으켜 회복력이 상승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상처가 아물었을 리는 없다. 제갈수광의 말마따나 무리해서 좋을 게 없는 것이다.

[활 줘봐. 어차피 네가 그 활을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니 지금은 잠시 내가 써보겠다.]

들고 있던 활을 순순히 제갈수광에게 건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갈수광이다.

내가 당장 못 쓰는 상황이라면 그가 쓰는 게 낫다.

내 활을 건네받은 제갈수광이 한 발을 날렸다.

퉁! 쉬이이익-

화살은 적에게 박히지 않았다.

제갈수광이 화살을 적중시키지 못한 모습을 본 건, 적어도 내 경험상으로는 처음이다.

제갈수광의 표정이 복잡하다. 놀람과 당황스러움 등이 뒤섞여 있다.

곡사로 조준할 때부터 저럴 줄 알았다.

[푸히히히히!]

내가 전음으로 웃어주자 제갈수광이 윗니로 아랫입술을 깨물며 나를 째려봤다.

나는 곧바로 표정을 바르게 했다.

제갈수광이 즉시 직사로 조준하더니 화살을 날렸다.

퉁! 쉬익! 푹!

화살이 한 놈의 뒤통수 한가운데에 꽂혔다.

와! 안 그래도 정확한 궁술을 구사하는 사람이 이렇듯 직사로 쏘니까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구나.

제갈수광은 이번에도 눈이 휘둥그레진 모습이었다.

[이 자식은 어디에서 이런 엄청난 걸 구한 거야?]

궁술의 권위자가 저렇게나 놀랄 정도이니 시위로서의 은룡삭의 성능은 검증이 끝난 거다.

이후에도 제갈수광은 계속해서 빠르게 화살들을 날렸다.

그는 직사로 몇 차례 쏘며 활의 성능을 금세 파악하더니 점점 곡사의 각도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매우 먼 곳에 있는 놈들의 등짝에도 화살을 꽂아 넣고 있다.

명궁수가 성능 좋은 활까지 잡으면 이렇게까지 대단해질 수 있는 거구나.

기동타격조의 추격 속도는 매우 빨랐다.

나는 주변에 있는 적들에게 이따금씩 쇠구슬을 날리는 정도로만 지원했다.

해안가에 다다라보니 해적선들은 완전히 떠나지 않은 채, 해안가에서 살짝 멀어진 상태로 정박해 있었다.

헤엄쳐서 다가갈 수도 없는 일이니 추격전도 여기까지다.

결국 모두가 임해현 주둔지 쪽을 향해 복귀하기 시작했다.

제갈수광이 내게 활을 다시 건네주었다.

가는 길에 제갈수광이 나 혼자 이탈한 후의 상황들에 대해 전음으로 이것저것 물었다.

사실 반, 지어낸 것 반을 섞어서 적당히 대꾸해줬다.

다행히 제갈수광도 대강 납득한 분위기였다.

덩치 놈을 죽인 일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나 혼자서 놈을 죽였다는 소리는 굳이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임해현 주둔지로 복귀하여 우리가 배정받은 독립된 거주 구역으로 돌아왔다.

우리 인원들 중에서 부상이 큰 사람은 나와 원을태 두 명이었다. 경상자들도 제법 많아서 그들도 치료가 필요해 보였다.

황보충과 함께 잠시 퇴각해 있었던 관도들은 거의 다치지 않은 모습이었다.

기동타격조에는 의원 한 명이 배정되었다.

우리 외에도 수많은 무인들이 다친 상태라, 의원들의 일손이 부족하다는 모양이다.

제갈수광이 그 의원을 원을태에게 붙여주더니 내게 말했다.

“송유겸 네 상처는 내가 봐주겠다. 거처에 돌아가서 잠시 기다리고 있도록.”

나는 제갈수광의 의술 실력이 웬만한 의원들 못지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내 입장에서는 그의 치료를 받는 쪽이 더 편하기도 하다.

“알겠습니다.”

천막 형태의 거주 막사에 돌아온 후 봇짐을 풀었다.

영거현 주둔지에서 모든 짐을 챙겨온 게 아니라서, 행장이라고 해봐야 별 것도 없다. 영거현 주둔지에 놔두고 온 짐들은 이곳으로 이송되는 중이라고 들었다.

봇짐에서 갈아입을 옷과 속옷 등을 꺼내어 한쪽에 두었다.

잠시 후, 내 거처의 바깥으로 세 사람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나가보니 제갈수광이 양손에 보따리를 들고 있었고, 강하령과 악미조가 물이 든 대야와 바가지 등을 내려놓고 있었다.

저렇듯 다치지 않은 인원들이 이리저리 나뉘어 부상자 치료를 돕고 있는 모양이다.

제갈수광이 내 거처 안으로 들어오더니 봇짐을 풀며 밖에 있는 두 여인에게 말했다.

“아까 끓인 물에 담갔던 천들, 하나만 짜서 내게 건네도록. 꽉 짜지 말고 물기가 흐르지 않을 정도로만 짠다.”

“네.”

“송유겸 너는 상의 혼자 벗을 수 있나?”

“예.”

상의를 탈의하자 제갈수광이 다가오더니 내가 응급처치 때 동여매뒀던 천을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 내의를 길게 잘라서 만들었던 천이다.

가슴과 등, 옆구리의 상처를 유심히 살핀 제갈수광이 말했다.

“하여튼 응급처치 하나는 잘 하는군.”

“하핫······.”

이윽고 제갈수광이 물에 적신 천을 받아서 내 상체를 닦기 시작했다.

[검기가 관통되었던 상처의 상태가 이렇게나 빨리 좋아지다니······. 너, 뭐야?]

[하하. 금창약을 최고로 좋은 걸로 썼거든요.]

되지도 않는 대답임을 알 텐데도, 제갈수광은 그 이상 따지거나 묻지 않았다.

이후에도 제갈수광은 적당히 짠 수건과 꽉 짠 수건과 마른 수건을 이용하여 내 몸을 세 차례 더 닦았다.

그러고는 상처들에 금창약을 꼼꼼히 바르더니 마른 천으로 상처 부위를 돌돌 감쌌다.

[송유겸 너, 왠지 기도가 좀 변한 것 같은데.]

하여간 귀신이다. 나와 친하다보니 기도의 변화도 금세 알아챈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절정에 올랐다는 사실까지는 모르고 있겠지만.

[이탈해 있는 사이에 깨달음이 좀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제갈수광은 더 이상 따져 묻지 않았다.

치료가 끝난 후, 나는 물에 적신 천들을 받아들고 천막의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하체를 닦았다.

여벌의 옷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섰다.

“교관님 감사합니다. 강 소저와 악 소저께서도 고생 많으셨소. 사용한 천들은 내가 빨아서 저쪽 큰 천막 안에 널어놓겠소.”

쟤들도 검각과 산동악가에서 귀하게 자란 애들이다. 허드렛일을 시키기에는 미안해서 한 말이다.

강하령이 곧바로 대꾸했다.

“그렇게 다쳤으면서 뭘 이런 것까지 하려고 그래요? 그냥 쉬고 있어요. 이 정도는 우리가 할 테니까.”

“쉬면서 조금만 기다리고 계세요. 제가 식사 챙겨다 드릴 게요.”

악미조도 말을 보탰다.

그렇지 않아도 예쁜 애들이 말도 저런 식으로 해주니 더 예뻐 보인다.

“······고맙소.”

두 여인에게 대꾸해준 후 제갈수광에게 말했다.

“교관님도 잔 상처들이 좀 있으시던데, 치료 잘 하십시오.”

“알았으니까 쉬기나 하도록. 아 참, 그리고······.”

“예.”

“아까 덩치 놈의 공격에서 길초량을 막아준 일은 정말 잘했다. 너 아니었으면 아무리 길초량이라 해도 크게 위험했을 것이다.”

말을 마친 제갈수광이 바로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저 인간한테서 오랜만에 들은 칭찬이다.

기분 좋다.

하늘을 보니 어느새 새벽이 오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