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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135화 (135/416)

내 안에 마교있다 135

악미조가 챙겨다 준 식사는 해산물이 들어간 죽이었다.

임해현 주둔지에서 환자들을 위해 쑨 죽이라고 한다.

맛이 제법 괜찮았다.

큰 그릇에 담긴 죽을 둘이서 덜어 먹었는데, 악미조는 환자도 아닌 주제에 나보다 더 많이 먹었다. 전에 교자를 먹을 때도 그러더니 하여간 식성이 좋다.

식사를 마치자 악미조가 소반을 들고 내 거주 막사를 벗어났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자 그녀가 생긋 웃었는데, 평소보다 미소가 더 환해 보였다. 배불리 잘 먹은 만족감 때문인가 보다.

이후에는 거주 막사에 누워서 휴식을 취했다.

상처가 욱신거린다.

쯧. 나중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 송유하와 장우혜와 유은무한테 한 소리 듣겠다. 나를 다치게 했던 덩치 놈을 죽이긴 했지만 그걸 걔들한테 밝힐 수도 없는 거고.

생각하니까 괜히 걔들이 보고 싶기도 하다.

오랜 시간 전투를 치른 탓에 몸이 피곤하다.

원래 이쯤이면 정신도 피곤해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다.

절정에 오른 희열 때문이다.

한 달 후면 스무 살이 되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아직 열아홉 살이다.

열아홉이라는,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나이에 절정에 오른 것이다.

내가 세밀하게 조사해 본 것은 아니지만, 이 나이에 절정에 오른 무인은 강호사를 뒤져봐도 극히 드물 것이다. 물론 몸을 망가트려가며 억지로 절정에 올라간 그 사파의 아이들을 제외할 경우다.

전생이었던 서무욱 시절에 나는 오십육 년 공력의 후반부에서 절정에 올랐었다.

한데 송유겸으로서 지금의 공력은 오십사 년의 후반부다. 우승 보상인 소성심단과, 남궁벽이 줬던 청심단 한 알의 공력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전생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이 년가량의 공력이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절정에 오른 셈이다.

똑같은 회회심공을 익혔는데 왜 이번 생에는 더 빠르게 절정에 올랐을까.

절정에 오른 직후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그 이유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크게 두 가지 정도가 아닐까 싶다.

처음에 이 몸으로 깨어났을 때는 체내의 공력이 매우 보잘것없었다. 그런 몸을 갖고 초창기부터 회회심공을 통해 공력을 쌓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서무욱 시절에는 일류의 중반쯤부터 회회심공으로 공력을 쌓았었는데, 송유겸의 몸으로는 무공 초보라 할 수 있는 이삼류 시절부터 회회심공으로 공력을 쌓았다.

그렇기에 무공과 공력에 관련된 내 안의 체계들이, 더 이른 시점에 회회심공에 적합한 형태로 개선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게 서무욱 시절과 다른 점 중에서 첫 번째다.

두 번째는 무학에 대한 이해도의 차이다.

송유겸의 몸으로 깨어난 후 무공의 경지 자체는 밑바닥이었으나, 무학에 대한 이해도는 온전히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같은 이류를 겪고 일류를 겪었어도, 이 생에는 모든 과정들을 이해하며 지나왔다. 게다가 그러는 와중에도 내 무학에 대한 이해도는 전생에 비해 계속 높아지기까지 했다.

그러한 이해도의 차이 내지는 깨달음의 차이가 크게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

절정에 올랐다는 사실은 절정고수라는 상징성을 차치하더라도, 무인에게 있어 분기점의 개념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상승의 영역에 첫 발을 들여 놓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상승의 영역에 들어선 후의 성취는 단순히 수련만 열심히 해서 높아지는 게 아니다.

본인이 익히고 있는 무공의 묘리에 대한 더 깊은 깨달음, 무학 전반에 대한 이해도 등도 성취 속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먼저 절정에 올랐다고 해도, 이후의 성취가 무조건 상대적으로 앞서 나간다는 보장이 없다.

초반을 넘어 중반으로,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후반을 넘어 최절정으로 가는 도중에, 언제든 벽에 막힐 수가 있다. 절정에서의 성취에는 깨달음과 이해도가 작용하는 탓이다.

위지광의 예를 들자면, 놈은 시기적으로 나보다 일찍 절정에 올랐었다. 나는 놈이 절정에 오르고 나서 일 년 남짓 후에야 절정에 진입했었다.

놈의 경우에는 절정에 오른 후에도 신교의 지원을 집중적으로 받으며 성취를 늘려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성취가 워낙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기에, 놈도 추월당할 것을 알고 나를 제거했던 거다.

평소 사부님과의 편안한 대화를 통해, 무학 전반에 대한 내 이해도가 빠르게 상승했던 결과다.

그래서 나는 절정 이후의 성취 속도에도 자신이 있다.

어차피 절정의 중반 너머까지는 한 번 갔던 길이기도 하다.

게다가 지금은 전생에 비해 무학에 대한 이해도마저 더 높아진 상태다.

참고로 절정의 초반부에는 공력이 더 빠르게 모인다.

내면의 세계와 공력에 관련된 체계 등이 크게 변화되었기 때문에, 그 변화에 맞추고자 무의식이 자연스럽게 그런 작용을 일으킨다.

나는 어차피 다친 몸이라 제갈수광은 한동안 궁술 수련조차도 금지시킬 것이다. 그러니 그 기간 동안에는 운기조식이나 실컷 취해야겠다.

이후에는 덩치 놈을 고문해서 얻어낸 정보들을 떠올렸다.

덥석 믿을 건 아니지만, 당시의 분위기로는 덩치 놈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어차피 본인이 곧 죽을 운명이라는 걸 놈 또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놈이 말했던 지역 명은 두 개다.

서장의 임지현과 복건 포전현의 동부 도서.

놈의 말이 사실이라고 전제했을 경우, 서장의 임지현 쪽이 사파 세력의 본거지일 것이며, 복건 포전현의 동부 도서는 해적들의 지휘부일 것이다.

서장의 임지현은 서장 땅의 동부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사천과, 동남쪽으로는 운남과, 북쪽으로는 청해와 가깝다.

북서쪽 멀리로 천마신교의 영역인 신강과 닿는다.

즉, 백도에 접근하기는 가깝고, 천마신교의 영역과는 먼 곳이 바로 임지현이다.

사파 세력의 본거지로서는 나름 타당성이 있는 입지조건이다.

사파 놈들이 백도보다 천마신교를 훨씬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백도는 영역이 넓으며, 무림맹은 수많은 세력이 모여서 이룬 연맹이다. 그러나 천마신교는 영역이 제한되어 있으며 강호 최대의 단일 무력 집단이다.

그렇다보니 사파 놈들의 입장에서 깔짝대며 먹잇감을 탐하기에 적합한 쪽은 당연히 백도인 것이다.

놈이 다음으로 말한 지역은 복건의 포전현이다.

복건의 포전현은 해안에 인접해 있으며, 그쪽 바다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매우 많다.

해적들과 연합한 사파 놈들이 이쪽의 본거지로 삼기에 나름 적합한 곳이다.

사유 증운생.

덩치 놈이 말했던 사파의 구심점이다.

맹주 운천흠이 사파 세력과 그 구심점에 대해 언급을 했던 이후, 나 또한 어떤 자가 구심점일지에 대해 추측을 해봤었다. 대여섯 명까지 추렸었는데, 그 안에 들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사유라는 별호에서 ‘사(邪)’는 간사하다는 뜻이고 ‘유(儒)’는 선비라는 뜻이다. 별호에서 알 수 있듯 사파를 대표하는 인물들 중에서도 두뇌가 뛰어난 놈이다.

무공 또한 고수다.

천마신교에서 봤던 정보에 의하면 최소한 최절정이다. 사파의 무공은 온갖 사이한 방법을 동원해서 더 빠르게 증진시킬 수가 있으니, 실제로는 내 예상 범위 이상일 수도 있다.

인상 좋은 문사풍의 외모에 똑똑하기까지 하니, 다른 사파인들을 끌어들이기에도 유리한 점이 많다. 과거에 납치했던 아이들을 꼬드겨서 세뇌시키기에도 편리한 요소들을 갖췄다.

지금 사파가 벌이고 있는 일들은 오래 전부터 차곡차곡 준비한 일들로 보이는데, 사유 증운생이라면 그럴만한 역량도 충분히 된다.

여러 모로 충분히 구심점 노릇을 할 만한 놈이긴 하다.

본인이 직접 그 세력을 만든 것인지, 암중의 사주를 받아서 구심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앞으로 확인해봐야 할 문제겠지만.

덩치 놈이 발설한 모든 정보들은 무림맹 차원의 은밀한 조사를 통해 제대로 검증해야 할 문제들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봤을 때, 놈이 밝힌 정보들도 충분히 그럴싸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후에도 이런저런 생각들을 이어가고 있는데 밖에서 길초량의 목소리가 들렸다.

“송 형, 깨어 있소?”

“아, 길 형, 들어오시오.”

곧 길초량이 천막의 문을 젖히며 안으로 들어오더니 내 맞은편에 앉았다.

“송 형에 대해 제갈 교관님께 여쭤보니 치료는 잘 끝났다고 하시더구려. 완쾌되기까지는 좀 오래 걸릴 것 같다는 말씀도 하셨소. 그래, 몸은 좀 괜찮으시오?”

놈의 얼굴에 염려가 가득 묻어 있다.

“많이 괜찮아졌소. 교관님이 워낙 잘 치료를 해주셔서.”

“다행이오.”

“길 형도 좀 다친 것 같던데, 치료는 잘 받으셨소?”

“나야 뭐, 간단한 상처들이라서.”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길초량이 표정에 미안함을 가득 담아 말했다.

“······송 형, 고맙소.”

덩치 놈에게서 구해줬던 일에 대한 감사 인사다.

“동료 간에, 그리고 친우 사이에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오.”

내가 대꾸하자 길초량이 천장을 바라보며 코로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천장을 바라보던 그가 이윽고 고개를 내리며 말했다.

“방심했던 건 아니었소.”

“알고 있소. 오히려 길 형은 잘 싸우고 있었소.”

“하지만 내 힘만으로는 그 곰 같은 놈의 공격을 피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소. 이를 악물고 반응하는 와중에도, 속으로는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었소. 그때의 상황에 대해서는 송 형이 더 잘 알겠지만.”

내가 엷은 미소를 보이자 길초량이 말을 이었다.

“물론 동료 사이에, 친우 사이에 보호해주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요. 그러나 아까와 같은 보호는 의지만 갖고 해줄 수 있는 보호가 아니었잖소.”

잠시라도 덩치 놈을 막아설만한 실력과 속도가 있어야만 가능했던 보호라는 뜻이다.

“가뜩이나 나를 보호하다가 나 대신 그렇게 다치기까지 하시고······.”

놈의 목소리가 일렁이고 있다.

미안하지만 얘야, 사실은 네가 노려졌던 이유도 나 때문이었단다. 덩치 놈이 애초에 나를 더 불리하게 만들고 시작하기 위해서 너를 노렸던 거거든.

하지만 굳이 이걸 알려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고마워하고 있으니 계속 고마워하게끔 그냥 놔두자.

신룡대 놈이니 그 일로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질 일도 없다.

“송 형이 곰 같은 놈에게 당하던 마지막 순간, 정말로 가슴이 철렁했었소. 멀리서 봤을 때는 분명 심장을 찔린 것처럼 보였던지라······.”

멀리서는 당연히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덩치 놈의 검기는 실제로 내 심장을 노리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 상체를 미세하게 비틀었기에 그 검기를 피할 수 있었는데, 공력을 쥐어 짜내어 천섬무를 운용하지 않았다면 결코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멍했소. 믿어지지가 않았소. 제갈 교관님의 지시에 따라 몸을 움직이긴 했지만, 한동안은 싸울 수가 없었소. 나 때문에 송 형이 죽었다는 생각에······.”

평소 쾌활한 놈이 이런 분위기라는 건, 당시의 충격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던 중에 제갈 교관님의 전음을 듣고 나서야 제대로 움직일 수 있었소. 심장은 피했다며, 본인이 아는 송 형이라면 분명히 살아서 돌아올 거라고 말씀해 주셔서.”

마지막 순간에 제갈수광은 멀지 않은 곳에서 내 모습을 봤다. 그는 경지가 높은 만큼 내가 심장은 피했다는 사실도 확인했을 것이다. 가뜩이나 제갈수광은 마지막 순간에 내 전음도 들었다.

“길 형, 앞으로는 그러지 마시오. 친우인 내가 죽었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는 건 이해할 수 있소. 그러나 그 충격 때문에 전장에서 멍해져 있거나 하진 마시오. 슬퍼하는 건 일단 길 형이 살아남고 해도 되오.”

길초량이 살짝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를 향해 씩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안 죽소. 그러니 어떤 순간에도, 내 시신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길초량이 엷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송 형, 그 속도는 대체 뭐요? 일전의 전투에서도 빠르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오늘 보니 정말로 장난이 아니더구려.”

화제를 전환한 길초량이 바로 말을 이어갔다.

“그냥 바람 그 자체시더구려. 독침술로 놈들 다수를 한꺼번에 정리할 때도 그렇고, 덩치 놈한테서 나를 보호할 때도 그렇고,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는 속도더구려. 같은 편이 이렇게 놀랄 정도인데, 적들은 오죽했겠소.”

“하하. 내가 쾌자결에만 특화된 무공을 익혀서 그렇소.”

“아니, 아무리 쾌자결에만 특화된 무공이라 해도 그렇지, 그건 빨라도 너무 빠르잖소. 기억 잃고 나서 일 년하고도 이삼 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사람이 그렇듯 소름 돋는 빠르기라니요? 대체 무슨 기연을 얻었기에.”

길초량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아무튼 내가 오늘 송 형 귀한 줄을 확실히 알았소. 앞으로도 잘 보필해 드리리다.”

“이왕이면 확실하게 보필하시오. 싸울 때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하······! 오늘 목숨 빚을 진 입장에서 저 말에 대놓고 싫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것 참.”

길초량이 졌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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