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136화 (136/416)

내 안에 마교있다 136

“아까 보니 길 형의 곤술도 대단하더구려.”

수준 높은 곤술이라,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소림 무학의 묘리와 닮은 듯하면서도 약간은 달랐다.

즉, 길초량이 익힌 무공은 소림 무학에서 파생된 무공일 가능성이 높다. 뿌리가 튼튼한 무공이라는 뜻이다.

길초량이 민망한 듯 미소를 보이며 대꾸했다.

“아직 많이 부족한 실력이오.”

겸손의 말이다.

부족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넘쳐 보였다.

기본기가 탄탄하고 응용력도 좋으니, 길초량의 무공은 경지가 상승할수록 더 무서워질 것이다.

“반탄력이 상당해 보이던데, 곤의 재질 때문이오? 아니면 그런 무공을 익힌 거요?”

“둘 다요. 곤의 재질도 재질인데, 내가 탄자결 쪽에 능하기 때문이기도 하오.”

“아하.”

탄자결 쪽의 무공들은 반탄력과 연관되기에 방어와 되치기에 매우 유리하다. 어떤 상황에서든 충분히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길초량이 다른 얘기를 했다.

“아, 참. 아까 밖에서 들었는데, 송 형을 그렇게 만들었던 그 곰 같은 놈의 시체가 발견되었다고 하더구려.”

“오! 그렇소?”

실은 내가 죽인 거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

“그러다는구려. 사실, 송 형이 이탈해 있을 때 놈을 상대하고 있던 분은 제갈 교관님이었소. 전체적으로는 교관님 쪽이 밀리는 형국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놈이 좀 이상해졌소. 신경이 다른 데 팔려 있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러다가 주변에 모종의 전음을 남기는 것 같더니, 한 순간 후방으로 사라졌던 것이오. 그랬던 놈이 시체로 발견된 것이고.”

얘야, 놈의 신경이 분산된 것도 나 때문이란다. 내가 뒤에서 놈을 유인했던 거거든.

“결정적 사인은 심장의 검상이라고 들었소. 한데 그 전에 이미 양쪽 손목과 한쪽 발목이 잘렸고, 다른 쪽 무릎에도 치명적인 검상을 입었던 것 같소. 그 모든 게 한 사람의 솜씨인데, 그가 놈을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어 놓은 후, 처형하는 식으로 죽인 것이오. 게다가 신체의 이곳저곳에 점혈당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놈은 죽기 전에 고신을 당한 것 같다는 모양이오.”

응. 나야, 나.

“허어!”

다 알면서도 내가 놀란 척하자 길초량이 말했다.

“송 형이 겪어봐서 더 잘 알겠지만 놈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잖소. 한데 그런 놈을 누군가가 완벽하게 제압하고는 고신까지 한 후에 처형한 것이오. 그 정도면 우리 쪽의 초고수가 개입했다는 뜻인데, 아직까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소. 본인이 죽였다는 사람도 없고.”

얘야, 초고수 따위는 개입하지 않았단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덩치 놈을 죽였다는 사람은 나오지 않을 거야.

길초량에게 말했다.

“아무튼 놈이 죽었다니 그나마도 다행이구려.”

“왜 아니겠소.”

이후에도 길초량은 내 거처에서 일다경 남짓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어섰다.

나도 슬슬 운기조식이나 취하다가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또 한 사람이 찾아왔다.

허락도 안 받고 천막의 입구를 불쑥 젖히며 들어선 인물은 제갈수광이었다.

말끔하게 씻은 모습이다. 치료도 마친 모양이다.

한 손에 술병을 쥐고 있다.

대충 앉은 제갈수광이 술병의 주둥이를 입으로 가져가며 한 모금을 마셨다.

“해적들이 완전히 떠난 게 아닙니다. 아직 전투가 종료된 게 아님에도 지휘 교관이라는 분께서 그렇게 술을······.”

“시끄러.”

“예.”

딴죽을 걸려던 내가 곧바로 그렇게 대꾸하자 제갈수광이 나를 흘겨보았다.

“잠이 안 와서 마시는 거야, 인마.”

“걱정거리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하면 왜······.”

“자려고 누웠는데 아까 네 녀석이 덩치 놈의 검기에 당하던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잠이 안 오더군.”

술 마시는 핑계를 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아까 덩치 놈에게서 길 형을 잘 막아줬다고 칭찬까지 하시고는 이제 와서 웬 뒷북이십니까?”

“뒷북이든 뭐든 알 게 뭐야, 인마. 계속 그 광경이 떠오르는데.”

제갈수광이 그렇게 대꾸하더니 또다시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대상일수록, 아까 같은 광경에 대한 잔상은 강렬하게 남는 법이다. 제갈수광도 그때의 가슴 철렁한 잔상이 쉽게 가시지 않고 있는 거다. 보호해줘야 할 대상의 시체를 볼 뻔했던 광경이었으니까.

한동안 우리 사이에서는 침묵만 흘렀다. 이따금씩 제갈수광이 술 마시는 소리만이 들렸을 뿐이다.

그러던 중에 제갈수광에게 전음을 보냈다.

[조에서 이탈해 있을 때 제가 정보 비슷한 것들을 알게 됐는데, 출처 물으실 겁니까?]

정보의 진위를 검증하는 건 다음 문제다.

일단 믿을 만한 사람에게는 알려서, 진위를 알아보게 해야 한다. 정보의 유통 기한은 의외로 짧아서, 정보에 따라 조금만 지나면 쓸모가 없어지는 것들도 많다.

참고로 길초량에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놈이 신룡대이기 때문이다. 출처를 물으면 귀찮아질 수가 있다. 꼭 길초량이 아니더라도 다른 윗선이 와서 출처를 물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더 귀찮아진다.

제갈수광은 나를 믿고 있으니, 내가 출처를 밝히기 않겠다고 하면 굳이 캐묻지 않을 것이다.

정보를 접한 이후에는 그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가뜩이나 제갈수광은 현재의 내 직속상관이기도 하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제갈수광이 대꾸했다.

[아니.]

역시나 내가 예상했던 반응이다.

[완전히 믿을만한 정보는 아닙니다만, 조사해 볼 가치는 있다고 판단됩니다. 교관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던 정보들을 수도 있고요.]

[일단 말해봐.]

이에 나는 덩치 놈에게서 알아낸 정보들을 풀어 놓았다.

모든 정보를 들은 제갈수광이 말없이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정보를 말해주면서 제갈수광의 기색을 살폈는데, 내내 특유의 사무적인 표정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그 정보를 알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는지도 눈치 챌 여지가 없었다.

사무적인 표정 쪽으로는 아마도 제갈수광이 천하제일인일 것이다.

궁금해서 물었다.

[말씀드렸던 것들 중에 이미 알고 계셨던 사항이 있었습니까?]

[그건 네가 알 것 없고.]

내가 입술을 삐쭉거리자 제갈수광이 코웃음을 쳤다.

그가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그래서 출처는?]

[그건 교관님이 알 것 없습니다.]

받은 대로 돌려주자 제갈수광이 인상을 찌푸렸다.

[으휴, 웬수 같은 놈. 그걸 또 복수하고 앉았네.]

[애초에 안 물어보기로 하셨잖습니까.]

[어린놈이 이런 쪽으로는 칼이지, 아주. 으휴, 정나미 떨어져.]

내가 씨익 웃어 보이자 제갈수광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갈수광이 육성으로 말했다.

“너를 그 꼴로 만들었던 덩치 놈, 죽었다더군.”

“저도 들었습니다. 길 형이 자세히 알려주더군요.”

“대단한 고수일 테고 우리 쪽의 고수일 텐데, 아직도 누가 처치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대단한 공을 세운 건데 했다는 사람이 없어.”

저 머리 좋고 감 좋은 제갈수광조차도 내가 처치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느낌이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접니다, 저.

하지만 이건 당신한테도 밝히지 않을 겁니다.

이윽고 제갈수광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쉬도록. 그리고 당분간 궁술 수련은 꿈도 꾸지 말고.”

저럴 줄 알았지, 내가.

“알겠습니다. 교관님도 편히 쉬십시오.”

제갈수광이 떠난 후, 나는 운기조식을 통해 쌓여 있던 잠력을 모두 흡수하고 나서야 잠들었다.

* * *

잠에서 깨어나 밖으로 나와 보니 날씨가 흐렸다. 흐리긴 한데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은 하늘이다.

대충 신시초(오후3시) 무렵인 듯했다.

평소에 나는 수면 시간이 짧은 편인데 오늘은 많이 잤다.

중간에 한 번 살짝 깨긴 했었는데, 부상을 입은 몸이기도 하니 그냥 더 잤다.

기동타격조의 거주구역에서 인기척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다들 이미 일어나서 나간 모양이다.

배가 고팠기에 식당으로 쓰는 큰 막사 쪽으로 향하는데, 그 앞에 노인 원을태가 앉아 있었다. 그도 나처럼 큰 부상을 입은 몸이다.

“안녕하십니까, 원 어르신. 다친 덴 좀 괜찮으신지요?”

“유겸이 일어났구나. 나는 괜찮다. 너도 괜찮으냐?”

“예.”

“다들 여기저기로 나갔다. 이쪽 주둔지에는 우리 말고도 잠룡일대의 일반 대원들이 있으니, 오랜만에 지인들 만난답시고 가더구나. 몸이 성한 몇 명은 가볍게나마 수련 좀 하겠다며 노인네들을 따라 나섰고.”

“아.”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하자 원을태가 말했다.

“나는 깬지 얼마 되지 않았다. 너 일어나면 같이 식사하려고 잠시 기다리고 있었던 거고.”

“아이고, 뭘 기다리기까지 하십니까. 출출하실 텐데 먼저 드시지.”

“다쳤을 때 혼자 밥 먹으면 괜히 우울한 기분 든다. 그러니 다친 사람들끼리라도 같이 먹어야지.”

원을태와 더불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는데 식당 막사의 문이 열렸다.

모습을 드러낸 이는 제갈수광이었다.

“선배님, 기침하셨습니까.”

“아, 마침 유겸이와 만나서 같이 식사하는 중이었네. 제갈 교관은 식사 했는가?”

“얘기할 게 있어서 이쪽 주둔지의 지휘 막사에 다녀온 길입니다. 식사는 아직입니다.”

“어서 챙겨 오게. 함께하지.”

곧 제갈수광이 음식을 챙겨 와서 우리와 같은 탁자에 앉았다.

빠르게 음식을 입 속으로 집어넣던 제갈수광이 말했다.

“지휘 막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마침 전령이 와서 황심평 단주에게 꼬깃꼬깃한 서신을 전하더군요. 황 단주한테서 그 내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원을태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수광이 말했다.

“본맹에서 보낸 소식이었습니다. 어젯밤, 본맹의 토벌대가 사파 세력의 본진으로 추정되는 곳을 급습했다고 합니다. 동시에 장강 수로채 쪽에 있는 놈들의 지부도 급습한 모양입니다.”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던 원을태가 큰 관심을 보이며 수저를 다시 그릇에 내려놓았다. 당연히 나로서도 흥미가 동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그래, 어떻게 되었다던가? 성공은 했다던가?”

“약간의 피해는 있었지만 두 곳에서 모두 승리했다고 합니다. 양쪽 합해서 천 명에 가까운 적도들을 처치한 모양입니다.”

“오! 잘 됐군! 수로채와 연관된 놈들의 지부는 어디였고, 본진은 또 어디였다던가? 토벌대에는 여러 세력의 고수들이 참여했으니 이쯤이면 딱히 기밀도 아니지 않은가.”

“일단 수로채와 연관된 지부는 호북과 중경의 경계 쪽인 파통현 인근이었다고 합니다.”

“교묘한 위치군. 같은 호북이라도 무림맹에서는 멀고, 무당파, 제갈세가, 형문파의 영역권도 아니지. 하면 본거지는?”

그 말에 제갈수광이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원을태를 향해 대꾸했다.

“서장의 임지현 인근이었다는 모양입니다.”

말을 마친 제갈수광이 또 다시 나를 한 차례 바라봤다.

이러면 내가 오늘 새벽에 알려줬던 다른 정보들이 사실일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나를 바라본 것이다.

원을태가 입을 열었다.

“서장의 임지현이라······. 백도의 영역권에서 멀지 않은 곳이지. 하면, 놈들의 우두머리는 누구였던 건가? 이쯤이면 이 또한 기밀은 아닐 테니 묻는 걸세.”

“······그건 아직도 기밀로 취급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제갈수광의 대꾸에 원을태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말은······.”

“예. 맹에서 특정했던 우두머리와 수뇌부는 본진에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파통현 쪽의 지부에도 없었고요. 그래서 지금은 그 두 곳의 인근을 샅샅이 수색하며 종적을 추적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임지현 쪽이 본진이라는 점은 확실한 건가? 그쪽도 놈들의 지부 같은 게 아니고?”

“예. 시설 및 모든 면에서 본진인 건 확실한 모양입니다.”

원을태가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깝군. 맹에서도 치밀하게 준비했을 텐데 하필 급습한 시점에 우두머리가 없었다니. 둘 중 하나겠지. 맹에서 급습한 시기가 나빴거나, 놈들이 맹의 움직임을 미리 알아챘거나.”

제갈수광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원을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놈들은 강서 태화지부 쪽의 산적들과도, 장강의 수적들과도 연합한 움직임을 보였었네. 그리고 이쪽의 해적들과도 연합해서 움직이고 있지. 결국 놈들에게도 여러 지부들이 있을 텐데, 이전까지 맹에서 파악한 건 임지현의 본진과 파통현의 지부뿐이었던 모양이군.”

원을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본진과 지부 하나를 정리한 것도 큰 성과이긴 하네. 놈들도 일정 부분 타격을 입었을 테고. 그러나 놈들의 우두머리와 수뇌부를 처단하지는 못했으니 이 사단이 더 오래 지속될 가능성도 커졌네. 만약 수뇌부가 해적들 쪽의 지부에 숨는다면 찾기가 더 어려워질 테고.”

그 말에 제갈수광이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에게 해적들의 근거지에 대한 정보도 알려줬기 때문이다.

원을태의 분석은 충분히 타당하지만, 만약 내가 알아낸 곳이 해적들의 본거지라면, 일이 급진전될 수도 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