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151
모두가 빠르게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 안쪽에 제법 널찍한 공간이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분위기가 오감을 자극했다.
전생의 흑풍대 시절에도 작전을 치르면서 이런 비슷한 공간들에 들어가 본 경험이 몇 차례 있다.
「뭔가 악의 소굴에 들어온 것 같네.」
「그런데 남들은 우리 신교를 악이라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의 소굴인 것처럼 편하게 가자고.」
작전을 펼치면서 동료들과 그런 농담들을 주고받곤 했었다.
당시에 했던 농담이 떠오를 정도로, 뭔가 악의 소굴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다.
쓱 둘러봤다.
적어도 지금의 널찍한 공간에는 기관 장치 따위가 설치되어 있는 것 같지 않다.
우리가 들어선 입구의 반대편으로 통로가 보였는데, 다가가서 보니 위쪽으로 경사를 이루며 곧게 뻗은 계단형의 통로였다. 암반지대를 뚫어서 통로를 파 놓은 건데, 두 명 정도가 나란히 걸어도 넉넉할 정도의 넓이였다.
횃불 같은 게 없어서 통로 안쪽은 매우 어두웠지만, 지금의 인원들은 다들 고수들이다. 어둠 속에서도 어느 정도는 사위를 분간할 수 있는 실력들이다.
태무엽을 포함한 황룡조원 몇 명이 먼저 통로 안으로 들어섰다.
기관 장치들이 존재할 수 있기에, 몇 명이 먼저 진입하여 조사하려는 것이다. 대규모의 인원들이 한꺼번에 저 좁은 통로에 들어서면 혹시라도 기관이 발동했을 때 대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황룡조의 선발대는 속도는 약간 느려도 무리 없이 전진하고 있는 듯했다.
전생에 내가 속해 있었던 흑풍대가 그랬듯, 신룡대도 이런 방면에서는 충분히 전문가들이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기관 장치가 아니라면, 알아서 어느 정도는 대처할 것이다.
통로 안쪽에서 기관을 해체하는 느낌의 소리가 처음으로 들려왔을 때였다.
쿠구구구구구궁!
“헙!”
“헛!”
입구 쪽의 공간에서 대기하고 있던 많은 이들이 순간적으로 헛바람을 들이켰다.
우리가 들어섰던 입구의 바깥쪽이 갑자기 와르르 무너졌기 때문이다.
원래 우리가 들어온 동굴의 입구 쪽은 절벽의 아랫면이 움푹 패어 있는 형태였었다. 보아하니 움푹 팬 곳의 위쪽 절벽 면이 완전히 내려앉은 것 같다.
아마도 황룡조의 선발대가 방금 전에 해체했던 기관 장치와 연계되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기관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해졌다.
고개를 돌려 보니 어둠 속에서도 다들 염려가 담긴 표정들이었다.
딱 보기에도 입구 쪽이 완전히 막혀버린 상태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고수들이라 파내려면 파낼 수야 있겠지만, 그러려면 몇 시진은 걸릴 것이다. 추가 붕괴의 위험성까지 고려하면서 파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지금 당장은 퇴로가 완전히 막혀버린 상황이다.
더더욱 악의 소굴에 들어선 느낌이다.
황룡조원들 몇 명이 통로 안으로 들어선 상태에서, 나머지 인원들은 입구 쪽의 흙더미와 돌무더기들을 치웠다.
당장 다 치울 수 있는 상황은 아니나, 멍하니 대기하고 있느니 조금이라도 치워놓겠다는 생각들이다.
나는 그 작업을 돕지 않은 채 기척을 죽이며 뒤쪽으로 빠졌다. 입구가 막혀서 완전히 어두워진 상황이니, 적당히 눈에 띄지 않게 빠질 수 있었다.
입구에서 뒤쪽으로 빠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통로 쪽에 가까워졌다.
작업하기 싫다는 얍삽한 마음으로 빠진 게 아니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빠진 것이다.
이쪽의 입구가 무너졌을 정도면 당연히 적들도 우리의 침입을 알아챘을 텐데, 내가 적의 입장이라도 이런 호기를 놓치기는 싫을 것 같아서다.
잠시 후, 통로 안으로 들어섰던 몇 명의 신룡대원들 쪽에서 짧은 외침이 들려왔다.
“탄!”
“헛!”
주변에서 당황한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지금은 퇴로가 완전히 막혀서 갇혀 있는 상황이다.
이번 사파 놈들이 주로 쓰는 건 독탄인데, 이런 상황에서는 독탄도 큰 위력을 발할 것이다.
독무가 허공으로 확산할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들 화들짝 놀란 것이고.
그즈음의 나는 이미 천섬무를 운용하며 통로 안으로 진입한 상태였다. 그전부터 품속에서 만지작거리고 있던 피독주를 즉시 입에 넣은 채였다.
애초에 지금의 환경은 이런 종류의 공격에 매우 취약한 환경이었다.
흑풍대 시절의 경험이 있으니 이런 상황을 미리 염두에 두고 있었고, 그래서 작업에 참여하지 않은 채 통로 쪽으로 이동하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퍼벙!
통로의 앞쪽에서 독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두 개가 터진 것 같다.
참고로 사파 놈들이 쓰는 독탄은 구체 자체에 일정 이상의 충격이 가해져야 터지는 구조다.
통로를 빠르게 이동하는 중이기에 시야에 잡혔는데, 태무엽이 뒤로 물러나며 쌍장을 뻗고 있다.
독무가 피어오르기 시작한 전방을 향해서였다.
장력을 넓은 범위로 발출하여 독무를 앞쪽으로 밀어내려는 것이다.
태무엽의 뒤에 있는 두 명의 조원들도 그 방향을 향해 쌍장을 내미는 모습이었다.
선두 쪽에 있는 조원들은 실력이 좋은 만큼 나름의 대처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독탄이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독탄 세 개가 황룡조원의 머리 위쪽을 지나쳐 통로를 가르며 날아오는 중이다.
우리 인원들이 모여 있는 공간을 향해서였다.
내가 천섬무를 운용하며 움직이고 있는 이유도, 처음부터 독탄이 다섯 개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관을 해체하기 위해 투입된 몇 명으로 저 숫자의 독탄에 모두 대응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아무리 대단한 신룡대원들이라도 본인들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본능적으로 피하게 되는 법이다. 그러면 독탄 중에서 일부는 뒤쪽으로 날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현재 천섬무를 상 단계로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절정에 오른 상태에서의 상 단계라, 날아오는 세 개의 독탄들이 충분히 느리게 보이고 있다.
세 개 중에서 하나의 독탄은 통로의 왼쪽 벽면의 하단 쪽에 닿으려 하고 있다. 부딪치면 터질 테니, 이 순간에는 저 독탄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그쪽으로 가는 경로 상에서 다른 하나의 독탄도 낚아챌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나머지 하나의 독탄이다.
통로의 우측 천장 쪽을 빠르게 가르며 날아가고 있는데, 저 경로라면 계속 날아가서 우리 인원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 터질 수밖에 없다.
내가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운용한다 해도, 시간상으로 저것만큼은 낚아챌 수가 없다.
그 순간, 뒤쪽에서 두 개의 쾌속한 기척이 느껴졌다.
백룡, 그리고 남궁묵이다.
다행이다.
저 두 사람의 실력이라면 저 독탄 하나쯤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저 두 사람을 믿는 수밖에 없다.
전방의 왼쪽 벽면으로 이동하는 와중에 오른손으로 하나의 독탄을 낚아챘다.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잡는 순간에 오른손을 부드럽게 뒤로 빼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일전에도 사파의 절정고수가 던지는 독탄을 낚아채 본 경험이 있었다. 그때 나는 일류였는데 지금은 절정이다. 그래서인지 당시에 비해서는 수월한 느낌이다.
이어서 잔걸음으로 네 걸음을 빠르게 이동하며 급격하게 상체를 숙였다.
독탄이 왼쪽 벽면의 하단에 거의 닿기 직전이다.
왼손을 뻗어, 건져 올리듯 독탄을 낚아챌 수 있었다. 그 순간에도 신형을 부드럽게 회전시켰다. 이 역시 독탄이 받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회전하며 자연스럽게 뒤쪽을 바라본 내 시야에 백룡과 남궁묵의 모습이 보였다.
펄럭!
어둠 속에서 백룡의 피풍의가 활짝 펼쳐졌고, 펼쳐진 피풍의의 가운데쯤에 독탄이 닿았다.
훌륭한 대처다.
역시 신룡대의 조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직후, 남궁묵이 살짝 도약하더니 피풍의에 의해 관성을 잃은 그 독탄을 부드럽게 낚아챘다.
참고로 남궁묵 또한 한 손에는 본인의 피풍의를 들고 있는 상태다.
백룡이 피풍의를 펼치며 대처하지 않았다면 남궁묵 본인이 같은 방식으로 대처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역시 천하제일세가의 핏줄이다.
통로의 아래쪽에 있는 백룡과 남궁묵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시선을 외면하며 다시금 전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태무엽을 비롯한 두세 명이 장력을 제대로 발출한 덕분인지, 검붉은 독무는 통로의 전방으로 쭉 밀려나고 있는 모습이었다.
황룡조의 선두에 있던 이들이 고수들이라서 저런 식의 대처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후에도 태무엽을 포함한 네 명의 황룡조원들이 교대로 계속해서 장력을 발출했다.
독무를 더 멀리, 확실하게 밀어내기 위함이다.
그즈음 두 사람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가더니 통로 위쪽의 더 먼 곳을 향해 장력을 발출해냈다.
방금까지 내 아래에 있었던 백룡과 남궁묵이었다.
특히 남궁묵이 쌍장을 통해 발출한 장력은 강력한 데다가 범위도 더 넓었다.
장남인 남궁찬만큼은 아니어도, 남궁묵 또한 어려서부터 영약깨나 섭취했을 것이다.
그러니 장력에서도 저렇듯 강맹한 위력이 나오는 것일 테지.
어느새 내가 서 있는 계단의 옆쪽에는 제갈수광이 다가와 있었다.
[잘했다.]
방금 독탄을 낚아챈 일에 대한 칭찬이다.
나는 통로 전방에 시선을 둔 채로 살며시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안력을 돋운 채로 자세히 살펴보니, 저 먼 쪽으로 밀려난 독무의 농도가 급격하게 옅어지는 모양새였다. 그쪽의 공간이 상당히 넓다는 뜻이기도 하다.
보아하니 통로의 앞쪽에 있는 태무엽과 그 주변의 조원들도 그 사실을 알아챈 모양이다. 태무엽의 옆에 있는 조원이 신호탄을 꺼내 들고 있다.
어차피 적들도 우리의 침입을 눈치채고 대응하기 시작했으니, 신호탄을 이용해서 통로의 앞쪽을 제대로 확인해보려는 것이다.
황룡조원이 왼손으로 신호탄을 쥐고 방향을 잡더니, 오른손 주먹으로 신호탄의 밑동을 강하게 쳤다.
탁!
피이이이이이이-
붉은 빛줄기가 통로를 밝히며 날아가기 시작한 순간, 나는 안법을 최대한으로 가동하며 온 정신을 집중했다.
통로의 계단과 측면과 천장의 모양.
검붉은 독무가 밀려 올라가고 있는 형태.
그 모든 정보들이 붉은 빛줄기를 따라 순식간에 뇌리에 담겼다.
빠르게 날아간 붉은 빛줄기는 이윽고 통로 경사면 위쪽의 더 넓은 공간을 잠시 비추었다.
이 위치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은, 그 공간이 통로보다 훨씬 높은 천장의, 널찍한 공간이라는 정도였다.
보아하니 예상했던 것보다는 통로의 출구 부분도 멀지 않았다.
여러 고수들이 계속 장력을 발출한 덕분인지, 통로 앞쪽의 검붉은 독무는 거의 희미해진 상태였다.
빛이 사라지던 마지막 순간, 나는 눈매를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통로의 출구 부분 연장선의 허공으로 몇 개의 인영이 도약해 오르는 게 보였던 것이다.
통로의 출구 뒤쪽, 즉 저 넓은 공간이 시작되는 부분에는 이곳에서 밀려 나간 독무가 어느 정도 남아 있는 상태다.
놈들도 그 독무 때문에 통로의 출구 부분에 붙지는 못하고, 뒤쪽의 넓은 공간에서 도약하여 이곳을 향해 독탄을 던지려는 거다.
내 앞에 있는 태무엽, 백룡, 남궁묵 등의 뒷모습이 움찔하는 게 보인다.
그들도 나와 같은 광경을 확인한 것이다.
나는 바로 앞의 황룡조원이 들고 있던 피풍의를 빼앗아 듦과 동시에, 최대한으로 천섬무를 펼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