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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150화 (150/416)

내 안에 마교있다 150

동은 텄는데 날씨가 흐려서 해는 뜨지 않았다.

백룡조와 헤어진 기동타격조는 아군을 지원하기 위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왼손 손가락들의 사이에 독침을 끼워 둔 상태다.

제갈수광이 독침이 든 목갑 세 개를 건네줬었다.

백룡조원들한테서 받아온 목갑으로, 이세옥에게는 두 갑을 건넸는데 내게는 몰래 세 갑을 건넸다. 독침술은 내가 이세옥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동타격조는 이후에도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는 아군을 몇 차례 더 지원했다.

나는 오른손으로는 강탄술을 펼치다가도 이따금씩 왼손에 있는 독침들을 한두 개씩 옮겨 쥐고는 적들에게 날렸다.

절정에 오른 직후에도 시험해 봤지만, 독침으로 적을 처치하기가 더 쉬워졌다.

돌아다니면서 보니 전황은 무림맹 쪽으로 확실하게 기울어가는 형세였다.

횡산도와 남횡도에 들렀던 전력이 합류한 덕분인데, 그 전력에 최정예인 신룡대와 기동타격조가 포함되어 있는 이유가 더 컸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먼 바다에 함선들이 더 늘어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군의 군함들이다.

혼란을 틈타 바다로 도주하는 적도들이 존재할 수 있으니, 그들을 상대하기 위한 병력이 아닌가 싶다. 무림맹과 미리 약조가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기동타격조가 한 곳의 전투를 더 지원했을 무렵, 신룡대의 백룡조가 빠르게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백룡이 제갈수광에게 전음으로 한동안 뭔가를 전하자, 다 듣고 난 제갈수광이 조원들을 향해 말했다.

“백룡조를 따라 조용히 이동한다.”

이동을 시작하자마자 제갈수광이 활대에서 은룡삭을 풀더니 활대는 남군호에게 건네고 은룡삭은 내게 건넸다.

지금껏 궁술로 어마어마한 수의 적도들을 처치했던 제갈수광이다.

우리 조의 전위가 탄탄하기에 제갈수광은 그야말로 마음껏 궁술을 펼쳤었다. 가뜩이나 시위가 은룡삭이다 보니 그의 궁술도 더욱 빛나는 느낌이었다.

한데 이런 시점에서 내게 은룡삭을 분리하여 건넨 것이다.

활만 쏘는 게 질려서 저럴 리는 없다.

앞으로 우리가 이동할 곳에서는 활 쏠 상황이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앞서서 이동하던 백룡조가 작은 수풀들 사이에서 멈췄다.

“이곳에서 잠시 대기합니다. 편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고 있어도 되지만 운기조식은 안 됩니다. 잡담은 금지이며, 하고 싶은 말은 각자 전음으로 해주십시오.”

백룡의 지시였다.

지시에 따라 조용히 대기하고 있기를 반 각쯤 지났을 무렵, 일단의 무리가 합류했다.

신룡대의 황룡조였다.

쓱 훑어봤는데 작은 상처들을 입은 조원들은 있어도 크게 다친 조원들은 없어 보였다.

황룡조를 기다리기 위해 대기한 건가 싶었는데, 일행은 이후에도 출발하지 않았다.

대기하기 시작한 후로 일각 가까이 지났을 때쯤 또 다른 무리가 합류했다.

서른다섯 명쯤 되는 인원들이었는데, 그중에 반가운 얼굴이 끼어 있었다.

남궁묵이었다.

남궁묵 외의 인물들도 모두 천무대의 인원들이었다. 이미 마을에서 봤기에 알고 있다.

이번 작전에 투입된 천무대는 삼 조, 사 조, 오 조로, 그 세 조의 총원은 오십 명 남짓이다. 보아하니 그중에서 삼 조와 사 조만 이곳으로 합류한 모양이다.

천무대의 두 개 조까지 합류하자마자 태무엽이 각 조장들을 멀찍한 곳으로 불러 모았다. 제갈수광도 그쪽으로 불려갔다.

천무대의 삼 조와 사 조 또한 적당한 곳에 앉아 조용히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유겸이, 다친 덴 없지?]

문득 들려온 전음은 남궁묵의 목소리였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남궁묵이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 예, 선배님. 다행히 아직까지는 다친 데 없이 멀쩡합니다. 선배님도 다친 데 없으시죠?]

[어. 나도 아직까지는 멀쩡해. 그나저나 어때? 얼핏 보니 그다지 지쳐 보이지는 않는데, 그래도 싸우느라 고생이 많지?]

[하핫. 제 고생이야 뭐, 선배님을 비롯한 여러 무사님들의 고생에 비할 게 되겠습니까? 저는 제 한 몸 건사하는 것도 버거운 수준입니다.]

남궁묵과는 아직 친분이 깊지 않으니 적당히 겸손한 척을 해줬다.

[그래. 잘하고 있네. 이런 살벌한 전장에서 자기 한 몸 잘 지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야. 너야 뭐 통합 잠룡대전의 우승자니 알아서 잘할 거라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앞으로도 조심하고.]

[예, 선배님. 명심하겠습니다.]

그래도 특별히 걱정해서 해주는 말이니 고마워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남궁묵도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잠시 후에 남궁묵의 전음이 다시금 들려왔다.

[궁금한 게 있는데, 유겸이는 통합 잠룡대전에서 우승할 실력으로 왜 계반에 있었어?]

많이 받아 본 질문이다.

사실, 나를 만나면 다들 저 부분을 궁금해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아. 계반은 일과 시간에도 자유로워서 혼자 집중하며 수련하기가 편합니다. 방해받을 일도 별로 없고요.]

[그건 그렇겠구나. 그래도 계반 쪽은 시설이 좀 안 좋다고 하던데, 생활 면에서 불편하지는 않아?]

[생활은 제가 조금만 부지런하면 크게 불편함을 느낄 정도는 아니어서요.]

남궁묵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저 표정을 보니 그가 왜 계반의 생활면에 대해 묻고 있는지 알 것 같다.

본인의 어린 누이가 현재 동부지맹 잠룡관의 계반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이겠지.

금이야 옥이야 자란 어린 누이가 계반이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지 염려도 될 것이다.

그립기도 할 것이다.

바로 위의 오라비로서 늦둥이 누이를 얼마나 예뻐했겠는가.

남궁묵의 경우에는 동부 해안에 오래 파견되어 있었으니, 자신의 어린 누이를 마지막으로 본지도 오래되었을 테고.

남궁묵의 전음이 다시금 들려왔다.

[음······, 계반 관도들끼리는 서로 친한가?]

역시나 저 질문이 나올 것 같았다.

같은 동부지맹 잠룡관에서 나도 계반이고 본인의 어린 누이도 계반이니, 혹시 아는 사이인지를 묻고 싶은 거다.

[계반 관도들 간에는 교류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당장 저만 해도 계반 관도는 모든 연차를 통틀어 몇 명밖에 모릅니다.]

[아, 그래? 그럼 혹시 유겸이 네가 아는 계반 관도들 중에 작년······. 음, 으음, 아니다.]

푸흐흐!

상황을 다 아는 입장에서 남궁묵의 저런 모습을 보니 나름 재미가 있다.

그가 중간에 말을 멈춘 이유는 빤하다.

섣불리 언급했다가는 어린 누이의 정체가 까발려질 수도 있으니 알아서 조심하려는 것이다.

까딱 잘못하면 누이의 조용한 잠룡관 생활을 제대로 방해하는 꼴이 될 테니까.

남궁세가의 직계임이 밝혀졌을 경우에 잠룡관 생활이 얼마나 피곤해지는지는 본인이 더 잘 알 테니까.

여러모로 참 애쓴다.

마침 둘이서만 전음을 주고받는 상황이니, 이쯤에서 그냥 내가 먼저 밝히는 게 나을 것 같다.

[동부지맹의 계반에 있는 선배님의 누이동생은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와도 친한 사이고요.]

내 말에 남궁묵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장우혜, 유은무와 알게 된 과정, 친해진 과정, 같이 어울렸던 일들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줬다.

내가 전음을 보내는 동안, 남궁묵은 한마디도 안 놓치겠다는 듯 열심히 들었다.

듣는 내내 남궁묵은 흐뭇한 표정이었다.

어린 누이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저렇게나 좋은 모양이다.

[하하, 걔가 좀······, 말투가 직설적이야. 버릇없는 정도까지는 아닌데, 애가 자존심도 강하고 승부욕도 강해서 그래. 유겸이 네가 이해해라.]

그런 식으로 대신 변명을 해주기도 했다.

이후에는 통합 잠룡대전 당시에 그의 부친인 남궁벽을 봤던 얘기도 해줬다.

내기에 관한 이야기까지 전해 듣더니 남궁묵이 말했다.

[아휴우우, 진짜. 아버지랑 형은 진짜, 창피하게 진짜.]

이쯤 되니 확실해졌다.

이런 경우에 ‘진짜’라는 말을 남발하는 건 이 집안 사람들의 공통적인 말버릇이다.

[유겸이한테서 설아에 관한 이야기들을 듣고 나니까 그리움이 조금은 해소되는 것 같다. 아버지와 형에 대한 이야기들도 그렇고. 네가 우리 가족과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니 친근감도 더 많이 들고.]

내가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을 때쯤, 태무엽과 함께 모였던 조장들이 각각의 조원들 쪽으로 복귀했다.

남궁묵이 마무리하듯 빠르게 전음을 보냈다.

[이 작전 잘 끝내고 나서 술 한잔하자. 아까 네가 해줬던 얘기들, 더 자세하게 들어보고 싶거든. 그러니까 그 전까지 안 다치게 조심하고.]

[알겠습니다. 선배님도 무탈하시길 빌겠습니다.]

남궁묵이 고개를 끄덕였다.

복귀한 제갈수광이 조용히 말했다.

“지금부터 우리는 매우 중요한 작전에 돌입하게 된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이곳에는 무림맹의 최정예 전투 조직인 천무대와 신룡대가 와 있다. 그런 무인들이 투입되어야 할 만큼 위험도가 큰 작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신룡대 두 개 조에 천무대 두 개 조까지 합류한 만큼, 조원들도 이미 각오를 하고 있었던 눈치다.

조원들이 진지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된 전투는 천무대와 신룡대가 수행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원 전력이자 예비 전력이다. 우리가 전면에 나서서 싸우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나, 다들 겪어봤다시피 전장의 상황이라는 건 시시각각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언제든 지시에 즉각 반응할 수 있게끔 항상 집중한다.”

조원들이 또다시 진지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룡대와 천무대가 움직이면 우리도 조용히 그 뒤를 따른다.”

곧 신룡대와 천무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봉에 선 건 신룡대의 황룡조였고, 그 뒤를 천무대의 삼 조와 사 조가, 그 뒤를 신룡대의 백룡조가 따랐다.

우리 기동타격조는 최후방이었다.

은밀하게 신법을 펼친 우리는 고지대 절벽 뒤편의 해안으로 진입했다.

이쪽 해안가는 모래사장이 거의 없이 온통 바위 지대였다.

기이한 형태의 바위들이 곳곳에 불쑥불쑥 솟아 있는데, 오랜 세월 파도로 인해 형성된 것들이다. 상황이 이렇지만 않았다면 차분히 감상하고 싶을 정도로 멋진 형태들도 많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앞쪽으로부터 은밀하게 움직이라는 수신호가 전달되었고, 우리는 더욱 조심스럽게 백룡조의 뒤를 따랐다.

해안가의 바위 지대는 계속 이어졌는데, 선두에서 나아가던 황룡조가 은폐할 만한 바위 뒤에서 일순간 이동을 멈췄다.

다른 조들도 차례로 그 근처까지 다가가서 이동을 멈추고 몸을 낮췄다.

얼핏 보이는 전방의 우측으로 절벽이 이어져 있는데, 절벽의 측면 하단 부분이 전체적으로 띠를 이루며 움푹 패어 있었다. 역시나 파도가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낸 지형이다.

모두가 이곳에서 멈춘 것으로 보아, 저 부분에 동굴 따위가 있는 모양이다.

움푹 팬 하단 부분의 모양새도 울퉁불퉁하여, 얼핏 보기에도 교묘하게 입구를 가릴 만한 위치들이 많다. 진법 같은 것이라도 설치했다면 더더욱 교묘할 테고.

선두에 있는 태무엽이 황룡조원들 몇 명에게 수신호를 보내더니, 이윽고 뒤쪽을 바라보며 왼손을 들어 올렸다.

주먹을 쥔 채다.

곧 태무엽의 손가락이 하나씩 차례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다섯 개의 손가락이 모두 펼쳐진 순간, 태무엽이 팔을 앞쪽으로 뻗었다.

그러자마자 태무엽이 먼저 튀어나갔고, 황룡조가 즉시 자리를 박차며 그 뒤를 쫓았다. 나머지 조의 인원들도 일제히 튀어나가며 매우 빠른 속도로 신법을 펼쳤다.

절벽 하단부의 움푹 팬 지형을 따라 달리던 황룡조가 한 부분 앞에서 멈춰 섰다.

최후방에서 멈춰 선 우리 조의 몇몇 관도들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한 눈에도 안쪽이 다 보이는 얕은 자연 동굴 앞에서 멈췄기에 의아한 것이다. 깊은 동굴을 찾아 들어갈 것이라 예상했을 테니 당연한 반응들이긴 하다.

그러나 나는 황룡조가 왜 저곳에서 멈췄는지 알고 있다.

황룡조가 멈춰 선 곳의 바로 앞에서 미약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동되고 있는 진법이 발하는 특유의 기운이다.

태무엽을 포함한 황룡조원 여덟 명이 동시에 검기를 발출했다. 얕은 자연 동굴 입구 주변의 여러 방향을 향해서였다.

발출된 모든 검기들은 입구 주변을 감싸고 있는 바위의 불룩 튀어나온 부분들에 박혔다.

콰과과곽!

크고 작은 불룩한 부분들이 파괴된 순간, 고개를 갸웃했던 우리 조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스으으으으-

지금껏 보고 있었던 얕은 자연 동굴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흩어지며, 그 안으로 어두운 공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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