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164화 (164/416)

내 안에 마교있다 164

이 강호에서 검후란 검각의 주인을 뜻하는 말이다.

현재의 검후인 문숙경은 강하령의 스승이기도 하다.

백도의 주요 인사인 만큼, 천마신교의 정보에도 당연히 문숙경의 용모파기가 있었다. 그렇기에 초면임에도 곧바로 그녀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외모만으로는 삼십 대 중후반 정도로 보인다.

보이기에는 그렇게 보이나, 실상 문숙경의 나이는 사십 대 초중반이다. 고강한 무공 덕분에 저렇듯 젊어 보이는 것이다.

미모가 상당하며, 현숙한 느낌을 주는 미모다.

문숙경은 현재 날렵한 움직임으로 간결하면서 정교한 검술을 구사하고 있다.

역시 검후라는 별호에 걸맞은 실력이 아닐 수 없다.

문숙경과 비슷한 시점에 이곳으로 진입한 사내는 사십 대 초중반 즈음으로 보이는 인물이었다.

사내 또한 천마신교의 정보에 용모파기가 나와 있는 인물이다. 그 또한 백도의 주요 인사이기 때문이다.

청수한 외모가 인상적인데, 내가 아는 누군가와 많이 닮은 얼굴이기도 하다.

사내의 이름은 단목진으로, 현 단목세가의 가주이며 단목강과 단목지의 부친이다.

단목진 또한 무공이 고강하여 사십 대 초중반으로 보일 뿐이지, 실제 나이는 사십 대 극후반이다.

단목진도 빠르고 간결한 움직임으로 사파 놈들을 상대하고 있는데, 잠깐 본 것만으로도 단목세가 검법 특유의 웅장함이 잘 드러나고 있었다.

단목세가와 검각 모두 절강을 대표하는 백도 세력들이다.

절강의 해안에 출몰했던 해적들을 상대로 누구보다 앞장서서 싸웠던 세력들이기도 하다. 두 곳 외에 육남춘의 항주육가도 크게 공헌했다고 들었다.

아마도 그 활약을 인정받아 이곳의 지원 전력으로 차출된 게 아닐까 싶다.

단목진, 문숙경, 남궁찬 등이 활약하고, 그들과 함께 투입된 정예 무인들이 지원하니, 전선에 있는 사파 놈들의 숫자도 빠르게 줄어가는 중이다.

증운생을 상대하고 있는 인물은 역시나 무상 백리결이었다.

백리결의 검에서는 한 차례씩 작고 날카로운 검기들이 다발로 쏟아지곤 했는데, 그 모습이 영락없는 은색의 비 같았다.

그에게 은우사라는 별호가 왜 붙은 건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전체적인 무공 실력 또한 대단했다.

백리결이 운이 좋아서 무림맹의 무상 자리를 꿰찬 게 아님을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백리결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백도의 십대고수에 포함됐었다.

사실, 백도의 십대고수라는 범주는 사파의 십대고수라는 범주와는 차원이 다르다.

백도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구성원의 수 자체가 사파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으며, 문파와 무가 등의 강호 세력도 엄청나게 많다.

백도는 그런 커다란 틀 안에서 수많은 인재들이 자연스럽게 육성되어 고수들이 수급되는 체계다.

게다가 백도에는 유서 깊은 명문파와 명문가도 많다. 그런 세력에서 배출되는 최절정고수들의 숫자도 많다. 심지어는 이름이나 별호 정도만 슬쩍 알려진 은거고수들의 수도 제법 된다.

때문에 백도의 경우에는 최상위권의 고수들이라 해도 경쟁이 치열하며, 그렇기에 십대고수로 꼽히기도 쉽지가 않은 것이다.

오죽하면 천하제일세가의 가주인 남궁벽조차 간발의 차이로나마 그 범주 안에 못 들겠는가.

그런 백도에서 제법 오래전부터 십대고수에 포함되어 있었던 인물이 바로 백리결이다.

한데 오늘 백리결이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보니,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던 정보보다 훨씬 더 대단한 실력이다.

저 정도면 백도의 십대고수가 아니라 오대고수에 꼽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내가 백리결에 대한 정보를 마지막으로 접했던 시점 이후에도 그의 성취가 많이 발전한 게 아닐까 싶다.

실력이 실력인 만큼, 백리결은 사파의 수괴인 증운생을 상대로도 조금씩이나마 계속해서 우위를 점해가는 중이다.

백리결은 증운생을 상대할 자신이 있기에 그 먼 본맹에서부터 이곳까지 달려왔을 것이다. 맹의 수뇌부로서 증운생에 대한 정보도 많이 알고 있었을 테고, 증운생의 무공 실력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알고 있었을 테니까.

어쨌거나 든든하기 이를 데 없다.

백리결뿐만 아니라, 관필만, 선우훤, 문숙경, 단목진, 남궁찬 등, 모두의 존재가 든든하다.

아까 우리 쪽의 전력을 확인한 증운생은 맹주 운천흠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식으로 말했었다.

물론 농을 건네는 느낌으로 말한 것이긴 했으나, 이쯤 되면 증운생도 더 이상 그런 불만은 없을 것 같다.

“크윽!”

유령사왕 저심홍의 비명이었다.

동부지맹주 관필만의 검이 유령사왕의 복부에 박혀 있다.

유령사왕의 입장에서 관필만은 멀쩡한 상태에서 붙어도 약간은 버거운 상대다.

한데 유령사왕은 내 소비도로 인해 적지 않은 부상까지 입은 상태였다. 그렇다 보니 매우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유령사왕의 비명을 들은 증운생의 시선이 잠시 그 방향으로 향했으나, 증운생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 또한 백리결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인 탓이다.

그 상태에서 관필만은 유령사왕에게 좌장을 뻗으며 장력까지 발출해냈다.

유령사왕도 장력으로 맞서오긴 했으나, 복부에 검이 박힌 상태에서의 어쩔 수 없는 대응일 뿐이다. 대응이 시원찮을 수밖에 없다.

퍼어엉!

두 고수의 장력이 맞부딪치며 근처의 대기가 진동했다.

“커헉! 컥! 컥······!”

유령사왕의 입에서 아까보다 더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복부에 검이 꽂힌 상태에서 무리하며 장력을 발출하다 보니, 깊은 내상까지 입은 것이다.

초고수들 간의 대결인 만큼 이쯤이면 승부는 난 것이나 다름없다.

샤각-

관필만의 검이 유령사왕의 목을 갈랐다.

그 시점으로부터 반의반 각이 지났을 무렵, 망산겸노의 비명이 들려왔다.

“쿠엑! 크엑······!”

비명도 참, 고막을 짜증 나게 하는 비명이다.

망산겸노의 오른쪽 어깨와 왼쪽 엉덩이 부분에 검이 박혀 있었다.

오른쪽 어깨에 박힌 검은 선우훤의 검이었고, 그 직후 왼쪽 엉덩이 부분에 박힌 검은 단목진의 검이었다.

그러자마자 문숙경의 검이 망산겸노의 심장에 박혔다.

푹!

“크에엑!”

망산겸노가 낫을 쥔 채 그대로 무릎을 꿇더니, 이윽고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증운생은 두 사람의 합공을 받고 있는 중이다.

원래는 백리결이 혼자서 증운생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유령사왕을 처치한 관필만이 합류한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증운생은 완전히 수세에 몰린 상황이다. 상대가 어설픈 고수들도 아니고 무림맹의 무상과 동부지맹주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이제 남아 있는 사파 놈들도 별로 없다.

증운생 쪽의 대결을 구경하고 있던 나는 한순간 급격하게 눈매를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사파 놈들의 후방, 즉 출구 쪽 통로에 있던 두 개의 은밀한 기척이 빠르게 멀어져가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내가 인지하고 있던 복면 남녀의 기척이다.

공력만 충분했어도 즉시 추격했을 텐데, 이 상황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보아하니 백도의 고수들 몇 명도 눈매를 좁히는 모습이다.

두 개의 기척이 사라졌다는 사실 자체는 인지했으나, 지금 쫓기에는 늦었음을 아는 것이다.

은신해 있던 두 사람이 내공을 사용하여 경신술로 사라진 탓에, 그나마 그 내공의 성질들은 파악할 수 있었다.

파악을 마치자마자 나는 더더욱 눈매를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사내 쪽의 기운 때문이다.

감각을 매우 불쾌하게 만드는 기운.

사파 놈들의 기운처럼 성질은 탁하지만, 사파 놈들과 달리 흐름 자체는 상당히 잘 정돈된 기운.

아득한 피의 광기가 느껴지는 기운.

그렇다.

방금 멀어져간 사내의 기운은, 기형거검을 쓰던 덩치, 마차를 들고 있던 키 큰 놈, 박도를 들고 있던 왜소한 놈이 풍겼던 기운들과 궤가 같은 기운이다. 확실하다.

게다가 죽은 그 세 놈보다 방금 사라진 사내가 더 고수인 것 같다.

놈들의 정체는 대체 뭘까.

지금으로서는 짐작되는 부분조차 없다.

사내와 함께 사라진 여인의 기운도 특이한 면이 있었다.

일단 그 사내와는 궤가 다른 종류의 내공인데, 내공의 성질 자체는 정사중간인 느낌이다.

지금으로서는 그 이상 파악할 수 있는 게 없기에, 나는 여인의 내공이 풍기는 느낌을 확실하게 뇌리에 각인시켰다.

약간의 시간이 더 흘렀다.

이쯤 되니 남아 있는 사파인은 달랑 증운생뿐이었다.

어느새 백리결과 관필만 외에도 한 사람이 더 가세하여 증운생을 몰아붙이는 중이었다. 선우훤이다.

증운생은 몸의 이곳저곳에 상처를 입은 상태다.

그리고 상처는 이 순간에도 계속 늘어가는 중이다.

백도의 확실한 고수들 세 사람이 합공을 펼치고 있으니, 아무리 증운생이라 해도 버텨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크윽!”

결국 증운생의 입에서도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의 왼쪽 허벅다리 하부에 한 자루의 검이 꽂혀 있었다.

백리결의 검이었다.

푹!

그러자마자 선우훤의 검이 증운생의 오른쪽 무릎을 찔렀다.

“크악!”

증운생의 입에서 더 큰 비명이 새어 나왔다.

양쪽 다리가 그 모양이 되자, 결국 증운생의 신형이 기우뚱하며 바닥으로 무너졌다.

증운생은 그 와중에도 품속에서 재빨리 단도를 꺼내며 칼끝을 본인의 심장에 겨누는 모습이었다.

그를 향해 쇄도하던 백리결, 관필만, 선우훤이 급격하게 신형을 멈추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본인이 죽는 시점을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의도임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크으윽······. 아프군······, 끄윽······.”

증운생이 그렇게 말하며 품속을 뒤졌다.

그 모습에 백도 고수들의 표정이 긴장감으로 물들었다.

증운생이 품속에서 독침이나 독탄, 내지는 벽력탄을 꺼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 표정들을 확인한 증운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위험한 물건이 아니니 그렇게까지 경계할 필요들 없네. 술을 꺼내려는 것뿐일세.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잔은 해야지. 상처의 아픔을 참기에도 좋을 거고.”

아니나 다를까, 품속에서 나온 증운생의 손에는 작은 호리병이 들려 있었다.

증운생이 입으로 마개를 열더니 호리병의 주둥이를 입에 대고는 내용물을 꼴깍꼴깍 마시기 시작했다.

“크으으으······!”

단번에 호리병을 비운 증운생이 기분 좋다는 듯 그 소리를 냈다.

하지만 곧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호리병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작은 호리병이라 양이 적어서 아쉬운 것이다.

“쯧! 이런 순간에 마시는 술맛이 이렇게 기가 막힐 줄 알았다면 두세 병쯤 더 챙겨왔을 텐데.”

증운생이 말을 마치자마자 백리결이 뒤돌아보며 정예 무인들 쪽으로 전음을 보냈다.

그러자 정예 무인들 중 한 명이 서둘러 백리결 쪽으로 다가오더니 큼지막한 호리병을 건넸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술이 들어 있는 호리병인 모양이다.

백리결이 그 호리병을 증운생 쪽으로 던졌다.

증운생이 한 손으로 호리병을 낚아채자 백리결이 말했다.

“술이오. 드시구려.”

백리결의 말에 증운생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대꾸했다.

“허허허! 비호대는 무림맹 무상 직속의 정예 조직일 텐데, 임무 수행 중에 술을 지니고 다니는 모양이군? 그런 모습, 그냥 보여줘도 괜찮겠나? 옆에서 집법당주가 눈 훤히 뜨고 보고 있는데.”

이번에도 농담조의 말이었다.

증운생의 말마따나 비호대는 무림맹 무상부에 소속된 정예 무력 조직이다.

백리결이 대꾸했다.

“나야 뭐, 우리 집법당주께서 감찰을 하시겠다면 언제든 기꺼이 조사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오.”

농담조로 그렇게 대꾸한 백리결이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건 맹주께서 하사하신 술이오. 혹여 이런 상황이 되면 귀하에게 건네라고 하시더구려. 귀하에게 위로주가 필요할 거라면서.”

그 말을 들은 증운생이 인상을 찡그렸다.

호리병을 든 채로 손을 살짝 떠는 것이, 약간의 분노감도 느껴지고 있다.

“운천흠이가 주는 위로주라······. 그 고얀 놈이 아주, 가는 마당에까지 내 자존심을 완전히 뭉개겠다는 생각이구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