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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170화 (170/416)

내 안에 마교있다 170

선우훤이 씩 웃으며 말했다.

“증운생 그 작자가 너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있다 보니, 내 입장에서도 관련된 조사를 해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천무삼조, 천무사조, 황룡조, 백룡조의 여러 인원들을 따로따로 불렀지. 우리가 도착하기 전까지의 전투 상황에 대해 들어봤더니, 네가 그야말로 엄청난 활약을 펼쳤더구나.”

미소를 띤 와중에도 선우훤의 눈은 살짝 커져 있었다.

나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들을 다시 떠올려 봐도 놀랍다는 의미다.

어쨌거나 집법당주가 탐문 조사까지 마친 마당이니, 둘러대는 것도 적당히 할 필요가 있다. 그와 나 사이의 각별한 관계라는 것도 있으니까.

“실은 싸우는 내내 저조차도 속으로 계속 놀랐습니다. 다른 때보다 몸이 너무 가볍게 잘 움직여줘서······. 계속된 실전 덕분에 성취가 빠르게 상승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네 성취가 빠르게 상승한 덕분인지, 원래 네가 그런 실력이었는지는 나로서도 알 방법이 없지. 다만, 네가 보여줬던 활약들이 심할 정도로 대단했다는 것만큼은 안다. 그러니 송 소협 소리가 나오는 것이고.”

나는 민망함 가득한 미소를 보이며 대꾸를 대신했다.

아······ 그놈의 송 소협.

남궁찬도 처음에 만났을 때 저 호칭을 쓴 적이 있는데, 역시나 저 호칭에는 적응이 잘 안 된다.

전생에 마두 출신이었기 때문인지 작은 협객이라는 의미의 저 말을 들을 때마다 닭살이 돋는 것 같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슬슬 저 호칭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거야 원.

나를 잠시 바라보던 선우훤이 순간적으로 공력을 일으켜 막사의 음파를 차단했다. 그러더니 입을 열었다.

“통합 잠룡대전에서의 우승이라는 업적이 대단하기는 하나, 사실상 어른들의 세계에서 보면 우승자도 아직 어린 관도일 뿐이라는 느낌이다. 대견스러운 건 분명한데, 현실 강호에서 본인 몫을 해낼 수 있는 한 사람의 당당한 무인으로 인식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왜 갑자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눈동자가 진지해져 있다는 점은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도 일단은 진지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여줬다.

“아무리 뛰어난 후기지수라 해도 계속해서 쭉쭉 성장해나간다는 보장이 없는 데다가, 어느 정도 성장했다고 해도 실전에 적응하며 한 명의 정예 역할을 할 수 있기까지는 또다시 오랜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당한 얘기이기에 또다시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 와중에도 의아하다. 이 어르신이 무슨 중요한 얘기를 해주려고 음파를 차단한 걸까.

선우훤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한데 네 경우는 다르다. 어린 잠룡관도인데도 이미 실전 실력 또한 정예를 넘어 최정예지. 네가 합류하는 것만으로도 해당 단체나 조직에서는 엄청난 전력 상승을 기대할 수 있을 정도다. 이번 일로 그게 드러난 게지.”

선우훤이 말을 이었다.

“네가 그런 가치를 지녔다는 소문이 슬슬 퍼져 나가기 시작할 거라는 얘기다. 무림맹의 수뇌부가 천무대나 신룡대의 입단속은 가능해도, 비맹주 세력 쪽 인간들의 입까지 단속할 수는 없기 때문이지.”

“아······.”

이제야 선우훤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후발대가 진입하기 직전까지 비맹주 세력의 무인들은 매우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인원이 스무 명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안다.

선우훤의 말마따나 무림맹에서 비맹주 세력 무인들의 입까지 단속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결국은 이번에 내가 펼친 활약에 대한 소문이 점점 퍼져나갈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이다.

“말했듯 너는 최정예 즉시 전력감인 데다가 나이도 어리다. 누구나 탐낼 만한 가치를 지녔지. 미안한 얘기지만 너는 배경마저 약하니 더더욱 탐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소문이 더 널리 퍼져 나갈수록, 별의별 인간들이 네게 접촉해오기 시작할 것이다. 너뿐만 아니라 네 가문의 인물들과도 접촉할 것이고.”

선우훤이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재력이 있는 중소 문파나 세가, 전장, 상단, 표국 같은 곳들이 가장 적극적이겠지. 한데 의외로 대단한 문파나 세가 쪽에서 접촉해올 수도 있느니라. 무림맹이라는 같은 테두리 안에 있다 해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개별 세력끼리의 경쟁은 치열하기 때문이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선우훤이 다시 입을 열었다.

“꼭 영입 목적이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너와 인연을 맺어놓겠다는 목적으로 다가오는 이들도 매우 많을 것이다. 너를 위해 뭔가를 투자하겠다는 자들도 많을 것이고, 합심하여 뭔가를 추진해 보자는 자들도 많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너나 네 가문 사람들 앞에서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듯 대하며 혹하게 만들 테지.”

선우훤이 말을 이었다.

“무림맹에 속한 자들이 많을 텐데, 너도 알다시피 무림맹에 소속되어 있다고 해서 다들 믿을 만한 자들인 건 아니다. 무림맹 소속이 아닌 자들도 있을 것이고, 그 외에도 별의별 이상한 군상들이 많을 것이다. 심지어는 여기저기에서 매파들이 찾아올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너나 네 가족들이 조금만 잘못 대처해도 너와 네 가문에 대한 왜곡된 소문들이 순식간에 퍼져 나갈 수밖에 없겠지.”

“음······.”

“네 배경이 강하다면 많은 부분이 알아서 사전 차단이 될 텐데, 배경이 약하니 그러기도 어렵겠지. 그러니 너뿐만 아니라 너의 가문 차원에서도 방금 내가 말한 부분들에 대해서 대책을 세워두는 편이 좋을 게야.”

그 얘기까지 듣고 나니 약간이나마 염려가 되기는 된다.

나도 모르는 자들이 가문 사람들과 접촉하는 건 통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가문 사람들의 면면을 생각하니 특히나 더 염려가 된다.

일단 가장인 송천광부터가 문제다.

천박한 인맥 지상주의의 화신인 만큼, 그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휘둘릴지는 안 봐도 훤하다.

송천광도 문제지만 동난향, 송유백, 송유상으로 연결되는 세 모자 쪽은 더더욱 문제다. 답이 없는 이들인 만큼, 그쪽은 송천광으로 하여금 통제시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 세 명은 그나마도 송천광한테는 약하니까.

에휴. 가문 사람들 중에서 믿을 만한 건 이청오, 진양옥, 송유하뿐이구나.

얼른 독립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일단 독립을 해놔야 송가장과도 언제든 선을 그을 수 있을 테니까.

선우훤이 말했다.

“혼자 해결하기 어려울 것 같으면 내가 도와주랴?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해결책을 모색해 보겠다.”

“하하,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당주님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제 주변이 요란스러워지기야 하겠습니까? 제가 뭐라고······.”

“허허. 네 녀석이 아직 어려서 그런지 이 사태의 심각성이 체감되지 않나 보구나. 그렇다면 알아듣기 쉽게끔 단적으로 말해주마. 증운생의 이야기가 사실임을 확인하고 났을 때, 나조차도 네가 매우 탐날 정도였다. 너 같은 실력자를 일단 우리 세가 사람으로 만들어놓기만 하면 앞으로 수십 년 동안은 가세가 기울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거든. 솔직히 밝히는 것이다.”

내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자 선우훤이 말을 이었다.

“나만 욕심이 났을 것 같으냐? 그 사실을 확인한 모든 명숙들이 나와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내로라하는 세력 출신들도 그런 마음이 들진대, 어떻게든 우리를 따라잡고 싶어 하는 세력들은 얼마나 간절하겠느냐? 또 그 아래 세력들은?”

“아······.”

“수많은 이들이 너를 쫓아다닐 것이다. 네가 예를 갖춰서 거절을 해도,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서라도 계속 들러붙겠지. 말했듯, 네 녀석은 배경이 약하니까.”

전생에는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다.

그때는 내가 일반 마인 시절에 두각을 보이자 흑풍대에서 차출해갔고, 흑풍대에서 두각을 보이자 사부님이 제자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흑풍대라는 강력한 울타리를 벗어나자마자 천마가 내 배경이 되었는데 누가 감히 나를 귀찮게 할 수 있었겠는가.

한데 백도에서의 내 배경은 송가장이다. 항상 느끼지만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배경이다.

나는 곧바로 선우훤을 향해 절도 있게 포권하며 말했다.

“도움을 청합니다.”

“푸허허허!”

내 태세가 빠르게 전환된 게 재미있는 모양이다.

선우훤이 대꾸했다.

“알았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사적으로 도와도 되나, 일단은 무림맹 차원에서 도와줄 수 있는 방안을 먼저 강구해 보마. 의외로 일 처리가 쉬울 수도 있을 것 같고.”

“감사합니다. 한데 쉬울 수도 있다는 말씀은······.”

“그 부분은 아직 내 추측일 뿐이니 말할 계제는 아니다.”

“예.”

그 후, 선우훤이 한동안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안쓰러움이 담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너에게 미안하구나. 무림맹의 준비가 부족했던 탓에 네가 많은 걸 드러낼 수밖에 없었잖느냐. 평소의 너는 실력을 최대한 감춘 채로 조용히 살고 싶어 하는 녀석인데······.”

선우훤이 한 차례 허공을 바라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실은 너에게 미안한 것뿐만 아니라, 선발대로 투입되었던 모두에게 너무도 미안한 마음이다. 애초에 더 강력한 전력을 구성해서 투입시켰어야 했던 일인데.”

“사정에 대해서는 저희들도 들었습니다. 시간이 촉박하여 충분한 전력을 구성하기가 어려웠다고······. 저희 기동타격조가 호출된 이유도 즉각 동원 가능한 정예 전력이 부족했던 탓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무림맹 측의 시간이 촉박했던 이유는 비맹주 세력 쪽에서도 이곳 동갑도에 대해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비맹주 세력 쪽에서 이곳을 어설프게 건드리면 사파의 수뇌부가 도주하여 더 깊숙이 숨어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무림맹은 일이 그렇게 되는 걸 최대한 막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촌각을 다투는 일이었기에 다소 부족한 전력이나마 일단은 급파하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서두른다고 서두르긴 했다만, 더 서두르지 못한 점에 대해서도 마음이 너무 무겁구나. 우리가 조금만 더 빨리 도착했다면 선발대가 입은 피해도 훨씬 덜했을 터인데······.”

말을 줄인 선우훤이 눈을 감으며 코로 숨을 길게 내쉬었다.

사실, 이번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무림맹의 정예 무인들도 많이 희생되었다. 최정예라 할 수 있는 천무대와 신룡대에서도 적잖은 전사자들이 나온 상태다.

결과론적으로는 후발대가 약간 늦은 셈이 되었지만, 후발대의 그 인원들이 늑장을 부리다가 늦었을 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우훤은 무림맹의 수뇌부로서, 또한 백도의 어른으로서 심적인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나도 잠시 조용히 있어 주었다.

눈을 뜬 선우훤에게 물었다.

“이곳에도 민간인 포로들이 있던데, 횡산도와 남횡도 쪽에는 더 많은 포로들이 있었습니다. 정혼대의 일부가 그쪽에서 포로들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쪽은 무사한지요?”

“그렇다는 보고를 받았다.”

“다행입니다.”

“아마도 오늘부터 군함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포로들을 먼저 육지로 실어 나를 것이다.”

크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또다시 선우훤에게 말했다.

“당주님께서도 기억하실 텐데, 증운생이 불리해진 순간에 빠르게 도주한 두 개의 기척이 있었습니다. 증운생이 무상님과 동부지맹주님한테서 동시에 공격을 받던 때쯤입니다.”

복면 남녀의 기척을 말하는 것이다.

그중에서 특히 사내에게는 내가 여러모로 관심이 많다.

기형거검의 덩치 놈, 마차를 휘두르던 키 큰 놈, 박도를 휘두르던 왜소한 놈 등과 궤가 같은 기운이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그들의 행방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당시에 후발대의 명숙들도 그 둘이 사라지는 걸 눈치챈 기색이었다.

그렇다면 모종의 후속 조치를 취했거나 조사를 했을 테니, 그 결과를 물은 것이다.

내 질문에 선우훤이 어이없다는 듯 웃더니 말했다.

“허······! 허허! 네가 말한 그 두 개의 기운은 극도로 은밀하면서도 빨랐다. 한데 네 녀석도 그 찰나에 그 둘의 기운을 파악했었다는 것이구나. 허헛! 아직 약관의 잠룡관도에 불과한 네가 그런 기운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경지라니······.”

놀란 투로 말을 줄인 선우훤이 곧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하긴, 그렇지. 그 정도 경지였으니 그런 활약들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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