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171화 (171/416)

내 안에 마교있다 171

선우훤이 혼자서 계속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뭔가를 확실하게 납득했다는 표정이다.

이윽고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네 녀석은 확실히 절정 이상인 게로구나.”

“아······ 그, 그게······.”

아,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라 둘러댈 수도 없다.

이런 때 어설프게 둘러대 봐야 신뢰만 깎인다. 다른 사람도 아닌 선우훤인 만큼, 신뢰가 깎여봐야 앞으로 길보다는 흉이 더 많아질 뿐이다.

속으로 한숨을 삼키고 있는데 선우훤이 말을 이었다.

“네 대단한 활약상에 대한 증운생의 언급과 우리 무인들의 증언들을 들으면서도 설마 했었다. 들어보니 절정고수급의 활약을 펼친 것 같기는 한데, 아무리 그래도 겨우 그 나이에 절정의 경지라는 걸 심정적으로 납득하기는 어려웠었다. 가뜩이나 너는 경지를 짐작하기 힘든 종류의 내공을 익히기도 했고. 한데 방금 전의 네 말 덕분에 이제는 확실히 납득할 수 있게 되었구나.”

아이고, 이게 또 이렇게 연결될 줄은 몰랐네.

선우훤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헛! 허허헛! 그 나이에 절정고수라니······! 이는 강호사를 통틀어 봐도 매우 드문 경우일 것이다. 단순히 공력만 많다고 절정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놀라움, 감탄, 대견함 등등이 어조에서 그대로 묻어 나오고 있다.

선우훤의 말마따나 공력만 많다고 해서 누구나 절정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절정에 오르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깨달음이 받쳐줘야 한다.

대부분은 일 갑자 즈음에서 절정에 진입하는데, 무학에 대한 깨달음이 부족한 경우에는 일 갑자가 넘는 공력을 갖고도 절정에 못 오르는 경우도 왕왕 있다.

당장 나만 해도 절정에 오르기까지의 필요 공력 면에서 전생과 현생이 달랐는데, 그 또한 깨달음의 차이 때문이었던 것이다.

“네가 비범한 녀석이라는 걸 일찍부터 알아보긴 했으나, 실제로 이렇게 대단한 녀석일 줄은 몰랐구나.”

속으로 또다시 한숨을 삼켰다.

잠시 후에 선우훤이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무상께서 비호대의 정예들로 하여금 그 두 개의 기운을 추적하라고 지시했었다. 검풍대와 육의대가 추적을 도왔지.”

이번에 후발대로 온 무력 조직은 네 개다.

비호대, 해천대, 검풍대, 육의대다.

비호대는 무상부 직속의 정예 무력 조직이며, 해천대는 검각의 정예, 검풍대는 단목세가의 정예, 육의대는 항주육가의 정예다. 참고로 항주육가는 관주 육남춘의 세가다.

당시에 천무대와 신룡대, 기동타격조는 모두 지쳐 있었고, 해천대는 우리 쪽의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 세 조직만 추적에 투입되었던 모양이다.

“그 두 고수의 종적은 좁은 통로를 통해 아래로 내려가다가 천연 동굴로 이어졌다. 그 천연 동굴도 아래로 내려가다가 수중 동굴로 이어졌다고 하더구나. 한데 마침 바닷물이 차오르고 있는 시간이라 더 이상은 추적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무인들이 주변을 지키고 있다가 한참 후에 간조가 되고 나서 다시 살펴봤지만, 사실상 그 시점에서 추적이 계속 이어지기는 무리지.”

처음에 무인들의 추적이 시작된 시점은 복면 남녀가 도주한 시점으로부터 따져도 한참 후였을 것이다.

가뜩이나 추적은 도주자의 흔적을 면밀히 살피면서 이뤄지는 만큼, 같은 길을 가도 도주에 걸린 시간보다 훨씬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한번 차오르기 시작하면 금방 차오르는 게 바닷물이라, 도주자들은 물이 다 차지 않았을 때 수중 동굴을 통과했겠지만, 추적자들은 그럴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선우훤이 말을 이었다.

“그 두 고수에 대해 우리 쪽에서 아는 사실은, 은밀하고도 빠른 기척 두 개였다는 것뿐이다. 아, 무인들이 추적하면서 밝혀낸 건데, 적어도 둘 중 한 명은 여인일 것 같다더구나. 그 외에 우리가 그들에 대해 아는 바는 하나도 없다. 외모를 비롯한 신체적 특징 같은 것도 전혀 모르지.”

안 그래도 한 명은 여인이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추적하는 와중에 흔적들을 통해 밝혀낸 모양이다.

“이쯤이면 단서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이 정도만 갖고 추적을 이어가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직 이 섬이나 근처의 섬들에 숨어 있을 가능성도 있고, 포로나 해군, 또는 아군으로 위장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미 어느 배에든 숨어 타고 이곳을 빠져나갔을 가능성도 있지. 해상이 봉쇄되어 있었다고는 해도, 그 정도의 은신술을 지닌 고수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살길을 찾아내니까.”

육지에서 펼치는 천라지망에도 구멍이 생기는 법이다. 그런 마당에 급조하여 펼친 해상 봉쇄가 대단해 봐야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가뜩이나 이제는 시간도 상당히 지난 마당이라, 사실상 추적은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이후에는 다른 걸 물었다.

“당주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이번에 증운생이 이끌던 사파 세력들 중에는 십 대 내지는 이십 대 초반의 고수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절정의 경지에 육박한 실력자들이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선우훤을 향해 바로 말을 이었다.

“전투 시에 많이 처치했는데도 불구하고 이후의 전투에도 적지 않은 수가 계속해서 등장하곤 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어딘가에 존재할 수도 있다는 뜻일 텐데, 증운생과 대화를 나눌 때 혹여 그 부분에 대한 질문은 없었는지요?”

관련된 질문을 남궁찬에게 부탁했었기에 얘기를 꺼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남궁 부당주가 증운생에게 그 질문을 하더구나. 증운생도 그 질문에 대해 답을 했지. 한데 그에 대한 대답은 기밀 사항이다.”

“아······.”

“심정 같아서는 네게도 얘기해주고 싶다. 이번 작전에서 큰 활약을 펼친 만큼, 개인적으로 너 정도면 들을 자격이 충분히 된다고 생각하거든. 그러나 보안 규정은 규정이며, 내가 그 규정을 어길 수는 없다. 이해해주면 좋겠구나.”

“알겠습니다. 마음 쓰지 마십시오. 그들은 제 또래 나이인지라 약간의 흥미가 있었던 것뿐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대강 둘러대자 선우훤이 천천히 두어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사파의 십 대들에 대한 사안을 기밀로 걸었다고 하니 여러 추측들이 든다.

이후에 차분히 생각을 한번 정리해 볼 문제다.

잠시 후에 선우훤이 말했다.

“어쨌거나 이번 작전을 성공시키고 증운생까지 처치한 건 그야말로 크나큰 쾌거다. 해적들뿐만 아니라 사파인들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혔으니, 이제부터는 관부의 해군들도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을 것이다. 그간 고생이 많았던 무림맹도 이제는 한숨 돌릴 수 있겠지. 특히 동부지맹은 더더욱.”

동부지맹은 정말 많은 고생을 했다.

동부 해안가가 어느 정도 정리되었으니 이제는 동부지맹의 무인들도 복귀할 테고, 그러면 동부지맹 잠룡관의 비상 대비 체제도 슬슬 끝날 것이다.

내가 바라마지않는, 아주 편안한 잠룡관 생활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선우훤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너는 이렇듯 큰 사안에서 엄청난 공을 세웠다. 아마도 전공 서열의 최상위 쪽을 차지하게 될 게다.”

“하하······, 그건 너무 후한 평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후하다니? 네가 대단한 활약을 펼쳤으니 소문이 난 것이고, 그렇기에 방금 전에 우리가 소문 퍼질 걱정을 했던 것 아니냐. 게다가 아까도 얘기했듯, 나는 많은 이들에게서 여러 전투 상황들에 대해 보고받았느니라. 그 정도 살펴본 것만으로도 네 전공 서열은 충분히 최상위로 평가받을 만했다.”

어쨌거나 전공 서열이라는 게 높을수록 여러모로 좋긴 하니, 기분도 나쁘지는 않다.

선우훤이 말을 이었다.

“아직 보상이 정해지지 않았으나 사안이 사안이었던 만큼 보상도 상당하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기동타격조는 절강의 해안가에서도 많은 전투에 투입되어 큰 공을 세웠으니 그 공로에 대한 보상까지 더해지겠지.”

무림맹의 집법당주씩이나 되는 분이 상당한 보상이라고 하니 나름 기대되기는 한다.

이후에도 나는 선우훤과 더불어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참모 막사를 벗어났다.

* * *

동갑도에서의 하루하루가 지나가며 이쪽의 상황들도 빠르게 정리되어갔다.

해적들에게 붙잡혀 있던 포로들이 가장 먼저 육지로 수송되었고, 이후에는 해적들이 노략질해 두었던 창고 안의 물자들이 수송되었다.

그 수송이 끝나자 작전에 투입되었던 전력들도 차례로 수송되기 시작했다.

증운생이 죽은 날로부터 나흘 째 되는 날 아침에는 기동타격조의 인원들도 배에 올랐다.

제갈수광과 길초량의 상태가 어느 정도는 안정기로 접어들었기에 우리도 떠나기로 한 것이다.

우리가 오른 배는 중형 범선으로, 단목세가 소유다.

기동타격조 인원들의 목적지가 바로 단목세가이기도 하다.

동부지맹과 북부지맹의 인원들이 섞여서 오랜 기간 동안 고생한 만큼, 조원들끼리 뒤풀이는 제대로 하고 헤어지자는 의미에서 단목세가행이 결정되었다.

조장인 단목강이 부친인 단목진에게서 재빨리 허락을 구한 후 조원들에게 제안했고, 교관들이 수긍한 것이다.

기동타격조의 입장에서 단목세가가 있는 절강의 천목산은 마침 위치도 좋다. 북부지맹으로 향하기도 좋고 동부지맹으로 향하기도 좋은 위치다.

단목세가의 인원들과 기동타격조의 인원들이 모두 승선을 마친 후, 두 사람이 추가로 배에 올랐다.

바로 남궁찬과 남궁묵 형제였다.

천하제일세가의 두 형제가 같이 승선했다 보니 모두가 놀란 표정이었다.

제갈수광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그 또한 놀란 기색이었다.

“어? 아우들이 이 배에는 어인 일로······?”

남궁묵이 먼저 대꾸했다.

“아, 천무대의 저희 조는 당분간 휴가입니다. 세가로 돌아갈 생각인데, 마침 단목세가가 있는 천목산은 안휘와도 가깝잖습니까. 뱃길 닿는 데까지는 신세 좀 지려고 합니다.”

“아, 휴가. 묵 아우네 조는 그럴 만도 하지. 오랜 기간 이쪽에서 고생했으니.”

“예. 이게 얼마만의 휴가인지 모르겠습니다. 세가에 가서 부모님 뵐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다 벅찰 지경입니다.”

남궁묵이 대꾸를 마치자 이번에는 남궁찬이 입을 열었다.

“아, 저는 지맹주께서 무림맹 항주지부를 시찰한 후에 동부지맹으로 복귀하라고 하시더군요. 마침 이 배도 항주로 가잖습니까. 그래서 단목세가주님에게 미리 허락을 구했죠. 배에 있는 동안에는 우리 후배들의 호위역이기도 하고요.”

그러자 제갈수광이 웃으며 대꾸했다.

“이 시점에 그런 시찰 명령을 내리셨다면, 지맹주님께서도 나름 배려해주셨다는 거겠군.”

“예, 그렇죠.”

이렇게 된 김에 친동생인 남궁묵과 어느 정도 회포를 풀라는 의미의 배려였던 모양이다.

이윽고 배가 출발했다.

* * *

이레 후.

동이 트고 나서 약간 지났을 무렵, 우리 배가 항주 남부의 항구로 들어섰다.

“아아! 드디어!”

황보충이 감격에 가득 찬 표정으로 그렇게 외치자, 모용리도 양손을 가슴께에 모아 쥔 채로 말했다.

“이제야 육지를 밟을 수 있겠네요······.”

간절함 가득한 표정이다.

다른 조원들의 표정도 두 사람과 비슷했다.

며칠간의 선상 생활이 고단했던 탓에 저러는 것이다.

지난 며칠간, 대부분의 기간 동안 파도가 상당히 거셌었다.

그로 인해 배가 제법 심하게 너울거렸었고, 그 탓에 다들 적잖은 고생을 했던 것이다.

참고로 나는 그럭저럭 지낼 만했다.

곧 배가 멈추자마자 관도들이 가장 먼저 땅으로 내려섰는데, 몇 명은 땅을 밟고 양발을 콩콩 구르기까지 할 정도였다. 저 정도로 육지가 그리웠던 모양이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기에 나중에야 천천히 배에서 내렸다.

우리가 하선한 곳으로부터 단목세가까지는 일류고수들의 경신술 속도를 기준으로 한나절쯤 걸리는 거리라고 한다.

그러나 제갈수광과 길초량은 아직 경신술을 펼칠 정도의 공력을 쓰면 안 되는 상태라, 두 사람은 마차를 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모두가 두 사람이 탄 마차의 속도에 맞춰서 경신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어떤 곳일지 기대가 된다.

단목세가는 단목강과 단목지와 단목홍신이 자란 곳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남궁세가의 형제들도 여전히 함께하는 중이다.

남궁묵이야 항주에서 안휘로 넘어가는 경로에 단목세가가 있으니 동행할 수 있다 쳐도, 무림맹 항주지부에 시찰을 간다던 남궁찬마저도 동행하고 있다.

배에서 단목진이 남궁찬과 남궁묵을 초대했기 때문이다.

사실, 단목진의 입장에서는 그 두 형제를 초대하는 게 당연한 일이긴 했다.

무려 천하제일세가와 친분을 쌓을 수 있는 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되었는데, 어느 누가 그런 기회를 그냥 날리겠는가.

남궁찬과 남궁묵도 단목진의 초대에 흔쾌히 응한 터라 일이 이렇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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