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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201화 (201/416)

내 안에 마교있다 201

사부님은 천하제일인이셨으며, 당시에 맹주 운천흠은 천하제이인이었다.

천하 고수 서열로만 따지면 일 위와 이 위의 관계이니 격차가 그다지 나지 않는 것 같지만, 실제 격차는 상당했다는 게 당시 천마신교 장로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사부님 쪽이 그냥 일 위가 아니라 압도적인 차이로 일 위였다는 건데, 두 사람을 직접 가까이에서 본 사람으로서 나 또한 그 의견에 적극 공감하는 입장이다.

이번에 무공 창안 작업을 직접 해보고 나니 사부님의 경지가 어떻게 그렇듯 압도적으로 앞설 수 있었는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부님은 천섬무와 회회심공을 창안하신 분이다.

이 대단한 무공들을 창안할 정도로 높은 이론적 경지에 이르러 계셨던 것이다.

하면 얼마나 많은 깨달음들을 통해 그 경지까지 가셨겠는가.

결국, 지독한 무학 연구가이자 무학 이론가셨던 게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나 또한 앞으로도 무공 창안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비록 짜깁기 형태의 창안 작업이라도, 그게 얼마나 많은 이해도와 지식을 요구하는지를, 이번 경험을 통해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이 일이 내 성취 상승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물론 이번처럼 그 일에만 몰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시간을 조금씩 할애해서 틈틈이 해나갈 생각이다.

이 다음 목표는 심법 창안이다.

아무리 봐도 명호운과 왕철양에게는 새로운 심법이 필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간 천마신교와 백도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심법서들을 접해 왔으며, 고급 심법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원리들에 대해서도 대강은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에 내가 대강 이해하고 있었던 원리들을 명확하게 정리한 후, 제일서고에 있는 여러 심법서들을 참고하여 신중하게 틀을 짤 생각이다.

내가 창안했던 이른바 ‘쾌류’ 무공들에는 쾌의 묘리가 많이 담겨 있다. 그런 만큼 앞으로 창안할 심법도 쾌의 묘리를 잘 뒷받침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 계획이다.

내가 또 ‘쾌’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니까.

송유하가 익히고 있는 고천비룡결과 풍우비룡무에 대해서도 제대로 한차례 점검을 해볼 생각이다.

심법인 고천비룡결은 손대지 않았지만 풍우비룡무 같은 경우에는 이미 사소한 부분들 정도는 자체적으로 조정해서 송유하에게 전수하고 있었다.

한데 이번 일을 겪고 보니 아예 전체적으로 손을 한번 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고천비룡결과 풍우비룡무에 대한 이해도 또한 매우 높은 수준에 있다. 송유하에게 가르치기 위해 머릿속에서 수도 없이 고민하며 분석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그 빼어난 무공들에도 시대에 뒤처지는 원리들이 여러 부분 존재한다는 사실도 이미 파악한 상태다. 그런 부분들은 현대의 무공에 맞춰 개선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무공이라도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부분을 발전시키면 그 또한 재탄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승휴에 대한 경의를 담아, 섣불리 접근하기보다는 차분하고 신중하게 접근할 생각이다.

* * *

여태까지의 모든 무공 창안 작업에는 꼬박 한 달 반가량이 소모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내게 가장 큰 도움을 줬던 사람들은 다섯 명이었다.

그중에 두 명은 송유하와 단목지다.

그녀들은 틈날 때마다 제일서고에 와서 내가 필요한 자료들을 부지런히 찾아다 줬는데, 마치 자신들의 일인 것처럼 열심히 임했다. 그녀들은 내 끼니를 잊지 않고 챙겨주기도 했다.

다른 세 사람은 단목강, 장우혜, 유은무다.

세 사람은 내가 초식의 동작을 만들 때마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부족한 부분을 점검해줬다.

검을 든 채로 나를 직접 맞상대하며, 본인들이라면 어떻게 빈틈을 파고들지를 직접 시도하며 알려줬다. 특히 장우혜와 유은무는 전방과 후방에서 합공하는 경우까지 상정한 채로 초식들을 점검해주기도 했다.

그 세 사람 덕분에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할 수 있었고, 더 안정적인 무공을 창안할 수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무공 창안 작업이 완전히 마무리된 후부터는 그간 나를 도와줬던 이들에게 더 신경을 써줬다.

송유하의 수련을 돕는 시간을 늘렸고, 단목지와 같이 단목세가의 검술을 정식 여인용으로 정리해가는 시간도 늘렸다.

단목강과도 비무하는 시간을 가졌다.

앞으로도 최소한 일주일에 한 차례씩은 계속 이어나갈 작정인데, 당연하게도 단목강은 그 일을 매우 반겼다.

실은 대가성 비무다.

한 번씩이라도 나를 대신하여 계반삼조의 아이들을 지도하게 하기 위해서다.

단목강은 나와 길초량을 제외하면 우리 잠룡관에서 무공 경지도 가장 높고 실전 경험도 가장 많은 관도다.

자격은 충분하고도 남는 사람이라, 아이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유은무, 장우혜와도 자주 어울리며 실전을 염두에 둔 수련을 도와줬다.

두 소녀는 길초량한테서 따로 철비정술을 배우고 있기에, 나는 길초량의 지도를 보조하는 형태로 암기술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기도 했다.

예전처럼, 섣달 그믐날의 인원들과도 한 달에 한 번씩은 만나서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를 가졌다.

원래의 인원에서 한 명 더 추가되었는데, 다름 아닌 단목홍신이다.

해적과의 전쟁으로 잠룡일대에 차출되었을 당시 소충광, 우문직과 매우 가까워진 덕분이다. 참고로 우문직과 단목홍신은 잠룡관 복귀 후에 무난하게 승반하여 갑반이 되었다.

그렇듯, 무공 창안 작업이 끝난 후에도 내 바쁜 생활은 계속 이어졌다.

* * *

바쁘게 살다 보니 확실히 시간도 빠르게 흐르는 느낌이다.

잠룡관으로 복귀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오월이 끝나가는 시점이다.

날도 길어졌다.

그 덕분에 송유하와 함께 저녁 구보를 마쳤음에도 여전히 해가 제법 남아 있다.

송유하와 헤어져서 내 거처의 사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는데, 처마 아래의 의자에 앉아 있는 제갈수광의 모습이 보였다.

이번 봄에는 내내 바빴기에 제갈수광을 보는 것도 실로 오랜만이다.

매우 반가웠지만, 나는 일부러 그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돌아서서 다시금 사립문의 문고리를 잡았다.

피하려는 척 장난을 친 것이다.

뒤쪽에서 제갈수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 제자라는 놈이 저거, 선생 쌩까는 것 좀 보라지.”

어차피 저런 반응을 듣기 위해 장난을 친 것뿐이니 곧바로 그를 향해 신형을 돌렸다.

“하하, 오셨습니까, 교관님. 그나저나 쌩깐다니요. 우리 동부지맹 잠룡관 최고의 교관으로 통하는 분께서 그 무슨 상스러운 언사십니까.”

“평소에는 일절 안 쓰는 표현이니 괜찮아. 선생의 존재를 확인하고도 일부러 피하는 싸가지 없는 제자한테만 쓰는 표현이거든.”

“하하. 오해가 있으신 듯한데,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두려워서 저도 모르게 피한 것뿐입니다.”

그러자 제갈수광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풋! 누가 누구를 두려워한다고? 송유겸 네가? 나를?”

“정말입니다. 교관님이 저 없는 제 거처에 미리 오셔서 그렇게 기다리고 계실 때마다 항상 뭔가 간단치 않은 하명들을 하셨잖습니까.”

그 말에 제갈수광이 살짝 흠칫하더니 잠시 기억을 더듬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생각해 보니 그건 그렇군.”

그렇지. 양심이 있으시다면 부정은 못 하시겠지.

그가 바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오! 웬일이시래?

제갈수광이 턱짓으로 본인 옆의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앉아. 오랜만에 그냥 대화나 좀 나누려고 온 것뿐이니까.”

내가 옆 의자에 앉자 제갈수광이 말했다.

“거처 구했다.”

이건 신혼집 얘기다.

“오! 축하드립니다. 한데 어디로 구하셨습니까? 그전에 말씀하시기로는······.”

“어. 그 정가장 근처다. 그러니 네 집 근처이기도 하지.”

“와! 근처라니! 어떻게, 잘 구하신 모양입니다?”

“어. 그동안 틈날 때마다 그쪽에 가서 발품을 좀 팔았거든.”

내가 정가장 옆에 거처를 구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제갈수광도 서둘러 알아보겠다고 했었다. 그러더니 결국은 구한 모양이다.

“정확히 어디쯤입니까?”

내 물음에 제갈수광이 들고 있던 작은 작대기를 이용해서 땅바닥에 간단한 약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여기가 정가장이잖아. 그리고 그 옆의 여기가 네가 구했다는 집터고. 내 거처는 이렇게 내려와서, 이쪽이다.”

설명을 들어보니 내가 집터로 얻은 넓은 밭의 옆옆옆 집이었다. 딱 붙은 이웃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가까운 이웃인 것이다.

“오! 가깝네요!”

어떤 집인지 기억하고 있다.

마당이 제법 넓은 집이다.

“충분히 가깝지. 참고로 그 집 담장 옆의 텃밭도 그 집 주인 소유라고 하기에, 자금도 넉넉한 김에 그 밭도 같이 구했다. 그러니까, 약도상으로는 이쪽 텃밭이지.”

자금이 넉넉하긴 할 것이다.

작년에 내가 우승한 덕분에 딴 돈도 많고, 이번에 받은 포상금도 많을 테니까.

“오오.”

“집 건물은 개보수 공사가 많이 필요한 수준이더군. 어차피 공사를 하는 김에 담장도 그 밭까지 감싸는 식으로 넓게 두를 생각이다. 일단은 밭으로 쓰다가 나중에는 다른 용도로 쓰게 될 수도 있으니.”

그렇게 되면 제갈수광의 집터도 상당히 넓어질 것이다.

“아, 그리고······.”

말을 줄이며 약도를 길게 이어 그리던 제갈수광이 말했다.

“마을 중앙 삼거리를 기준으로 이쪽 두 번째 집을 촉 노선배님이 구하셨고, 그 대각선 앞에 있는 집을 원 노선배님이 구하셨다고 하더군.”

“헛!”

촉홍결과 원을태 얘기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갈수광이 말해준 위치를 알고 있는데, 정가장에서는 약간 떨어져 있으나 우리 같은 무인의 입장에서는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나 다름없다. 같은 마을이기 때문이다.

“혹여 네가 분가해서 살 동네가 정해지면 전서로 알려달라고 하셨거든. 이왕이면 같은 동네에서 지내면 좋지 않겠냐면서. 그래서 단목세가에 있을 때 너한테서 정가장 얘기를 듣고는 바로 연락을 드렸던 거다. 두 분 모두 댁에 도착하자마자 내 전서를 확인하고는 곧바로 집을 알아보러 움직이셨던 모양이야.”

“아.”

“두 분 모두 올겨울이 오기 전에 이사를 완료한다는 계획이시고.”

두 노인마저도 같은 동네 주민이 된다니, 너무도 든든하다.

“네가 얻었다는 집터에도 종종 들러봤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수많은 인부들이 동원되어 빠르게 지반 공사를 진행하는 모습이었다. 보아하니 네 부친께서 아주, 제대로 지어주실 모양이더군. 자랑스러운 둘째 아들을 위해서.”

“아하하······.”

그쪽 동네 얘기가 대강 마무리된 후 제갈수광이 물었다.

“삼 조 아이들 가르치는 건 어떤가? 가르칠 만한가?”

내가 계반삼조의 아이들과 첫 대면을 했던 게 삼월 아흐렛날의 일이었다.

지금은 오월이 끝나가는 시점이니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도 벌써 두 달 하고도 스무 날이나 지났다.

“하하, 할 수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그만두고 싶습니다.”

“훗! 그런 놈이 잠을 줄여가며 무공까지 만들어서 전수해줘?”

“아하하, 그건 만든 게 아니고 그럴싸한 동작들을 짜깁기해서 이어붙인 것에 불과합니다.”

내가 대꾸하자 제갈수광이 뜻 모를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그 아이들을 너한테 보내기 전에, 나도 교관으로서 그 아이들의 수준을 일일이 다 점검했었다. 그것도 세밀하게.”

그가 바로 말을 이었다.

“심산화야 원래부터 검술 같은 건 못했으니 전후 비교가 힘들지만, 명호운의 창술은 처음에 내가 봤던 창술과 확실하게 비교가 되더군. 얼핏 비슷하게 느껴지는 건 흐름 정도일 뿐, 그 안에 담겨 있는 기세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던데.”

“아하하. 제가 또 눈치와 눈썰미는 좋잖습니까. 눈치껏 맹렬하게 짜깁기를 했습지요.”

그러자 제갈수광이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짜깁기를 했다는 무공치고는 일관되면서도 드높은 기상까지 느껴지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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