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00
제갈수광이 가르치는 조가 계반일조, 길초량이 가르치는 조가 계반이조, 내가 가르치는 조가 계반삼조라고 한다.
관도들끼리는 편하게 그냥 일 조, 이 조, 삼 조로 부르는 모양이다.
나한테 교육받고 있는 계반삼조의 조원들에게는 구보 경로를 정해주고 매일 새벽과 늦은 오후에 두 바퀴씩, 알아서 돌게끔 지시했다.
송유하와 내가 이용하는 구보 경로와는 겹치지 않게 했으며, 구보 거리 자체는 비슷하게 설정했다.
체력 단련 용도이기에 경공술을 펼치지 않는 게 원칙이었고, 날씨가 어떻든 예외 없이, 무조건 돌게 했다.
조원들에게 다른 구보 경로를 정해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일단 나는 새벽과 저녁에 송유하와 함께 고즈넉하게 구보하는 시간마저 방해받고 싶지 않다.
게다가 그 경로는 새벽에 단목지와 단목홍신을 마주치는 경로다. 그 두 사람의 평화로운 수련도 방해하고 싶지 않다.
결정적으로 내 구보 경로는 연승휴의 동굴로 통하는 경로이기도 하다. 그 경로를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아서 좋을 게 없다.
어차피 이곳은 삼청산 자락이라 구보 경로는 많고도 많다.
굳이 내가 이용하는 경로를 공유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틈틈이 명호운에게 확인해 보니 아이들도 꾀부리지 않고 다들 부지런히 구보에 임하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주된 목적은 뭐니 뭐니 해도 실전에 대비시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실전에서 암기술이라는 또 하나의 패가 있으면 얼마나 유용한지를 나는 매우 잘 알고 있다. 기동타격조원들 또한 그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꼈기에 임무 기간에도 어떻게든 암기술을 익히려 했던 것이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계반삼조원 다섯 명 중에서 원추엽을 제외한 네 명은 암기술 초보들이다.
그렇기에 포연월과 명호운에게는 각각 익히고 싶은 암기를 하나씩 고르게 했고, 왕철양과 심산화의 경우에는 그냥 내가 정해줬다.
왕철양은 덩치가 있는 만큼 유엽비도가 가장 무난하고 적절한 선택이다.
양손에 하나씩의 도끼를 쥐고 싸워야 하는 마당에 암기가 굳이 필요할까 싶겠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암기는 뒤쫓아 오는 적을 견제하는 용도로 쓸 수도 있으며, 달아나는 적을 처치하거나 그들의 발을 늦추는 용도로도 쓸 수 있다. 원거리의 아군을 지원하는 용도로 쓸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실전 중에 원거리에 대처해야 하는 상황은 많다. 그래서 암기가 유용한 것이다.
원추엽이 유엽비도술에 능한 만큼, 왕철양의 입장에서는 틈틈이 조언을 구하기도 쉽다. 그래서 왕철양에게 유엽비도술을 권한 것이다.
심산화는 몸집이 작은 만큼 철비정을 익히게 하고 싶다.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들의 영향 때문인지 비도에 대한 애착이 상당했다.
철비정 얘기를 했더니 시무룩해지기에, 적당히 타협하여 소비도로 정해줬다.
소비도는 표준형의 비도보다 훨씬 많은 수를 지니고 다닐 수 있으며, 내가 가르쳐주기에도 편하다. 그러한 장점들을 얘기해 줬더니 아이처럼 좋아하며 수긍했다.
그러자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던 포연월과 명호운도 그냥 소비도로 정해버렸다.
차라리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비도를 배우는 세 명이 서로 경쟁도 하고 조언도 공유하면서 알아서 수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암기를 정한 후에는 조원들을 모두 불러서 유엽비도술과 소비도술의 기초를 가르쳤다.
각자가 개인 수련을 할 수 있을 정도까지는 일단 가르쳐줄 필요가 있었다.
* * *
본격적인 실전 교육을 진행함에 있어 포연월과 원추엽을 지도하는 일은 어려울 게 없었다.
두 아이들과는 한 번씩 실전 형식의 비무를 해준 후, 차분히 함께 복기하는 시간만 가져도 충분할 정도였다. 수준이 있는 아이들인 만큼 그 정도만으로도 알아서 깨닫고, 부족한 점들도 알아서 보완해갔다.
내 입장에서는 비무의 강도를 단계별로 조금씩만 강화시켜주면 되니 편했다.
종종 그 둘끼리 일대일 비무를 시켜놓고 관찰만 하며 시간을 때우기도 했다. 나중에 비무가 끝나면 한두 가지의 조언만 해주는 식이었다.
차후에는 그 둘을 나 혼자서 상대하는 이 대 일 비무도 진행할 계획이다. 동료와 손발을 맞춰줄 수 있는 기본적인 역량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세 아이들에 대한 교육이 문제였다.
일단 세 아이들에게는 무공 수련을 일제히 금지시켰다.
창과 소검, 도끼 자체를 아예 들지도 못하게 했으며, 보법 수련마저도 금지시켰다.
셋 다 무공을 바꿔줄 계획이라, 이 시점에서 그전의 무공들을 수련하고 있어 봐야 일절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그 아이들은 체력 단련과 신체 단련, 암기술 수련만 하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그 아이들의 암기술 실력은 예상보다 더 빨리 상승하는 중이다.
* * *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간을 제외하면 나는 대부분의 일과 시간 동안 제일서고에서 살다시피 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정이 없는 날에는 제일서고 개방 시간에 들어갔다가 폐쇄 시간에 나오곤 했다. 그런 날에는 점심도 벽곡단으로 때울 정도였다.
참고로 내가 제일서고를 출입하는 데는 아무런 제한도 없었다. 임시직이라고는 해도 잠룡관주가 임명한 조교 신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애초에 규정을 따지고 드는 사람도 없었지만.
내가 가장 먼저 창안 작업에 착수한 건 보법이었다.
무공을 직접 만들겠다고 달려든 건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가장의 무공과 단목지의 무공을 수정해준 경험이 있다 보니 자신도 있었다.
현재의 내 무학 지식과 이해도 수준이라면, 기존에 있던 무공들을 정리하고 조합하여 쓸 만한 무공을 만들어내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는 자신감이었다.
질적으로 최소한 일류 무공 이상은 될 것, 실전 활용도가 높을 것, 범용성이 높을 것.
창안 작업 과정에서 나는 그 세 가지에 주안점을 두었다.
이를 위해, 제일서고에 있는 모든 보법 서적들을 참고했고, 전생부터 내 머릿속에 있던 수많은 보법의 묘리들을 종합했다.
내가 직접 창안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기본적으로 재미가 있었다.
재미가 있다 보니 더 신나게 조사하고 연구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잠자는 시간마저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그런 식으로 여러 날을 완전히 몰두한 결과, 기어이 하나의 보법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만들어 놓고 보니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내가 애초에 목표했던 것보다 무공이 훨씬 잘 빠졌던 것이다.
수많은 보법들을 조합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무학 지식도 약간이나마 넓어지고, 그 많은 보법들의 묘리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무학에 대한 이해도 또한 조금이나마 높아졌던 모양이다.
그게 자연스럽게 무공에 적용된 게 아닌가 싶다.
시간만 많으면 훨씬 더 잘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중에 시간 많을 때, 이번에 만든 걸 보완해서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무공으로 재탄생시켜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계반삼조의 조원들 중에 새로운 보법이 필요한 조원들은 세 명이다. 심산화, 명호운, 왕철양이다.
한데 그 세 명에게 맞춰서 보법을 하나씩 만들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들 수밖에 없다.
내가 보법의 범용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일단 범용성 높은 보법을 만든 후, 그걸 기준으로 각자의 무공 특성과 보폭 등에 맞추어 조금씩 변화시킬 생각을 한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무공을 가지고 당사자의 특성에 맞춰서 변화시키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쾌의 묘리를 많이 살린 보법이라, 일단은 쾌속하게 흐른다는 의미의 쾌류보(快流步)로 명명해뒀다.
애들이 물어보면 대충이나마 무공명 정도는 알려줘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쾌류보를 심산화, 명호운, 왕철양에게 맞춰서 세 가지의 형태로 변형시켰고, 각각 쾌류보의 일형(一形), 이형(二形), 삼형(三形)으로 명명했다.
변형된 형태들을 세 아이들에게 각각 가르친 후 집중적으로 수련하게 했다.
어떤 무공을 익히든 초반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초반에는 매일 잠깐씩이라도 세 아이들의 보법 수련을 꼼꼼히 점검해줬다.
* * *
보법을 창안한 후에는 명호운이 익혔던 이류 창술을 손보는 작업에 착수했다.
정가장의 청풍창뢰식을 수정할 때처럼 일단 쓸데없는 부분을 과감하게 삭제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창술의 삼분지 이 가까이 쳐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이류 창술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이후에는 초반, 중반, 종반의 흐름을 구상한 후, 내가 알고 있던 창술 지식과 묘리들을 총동원하여 빈 부분들을 자연스럽게 이어 붙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제일서고에 있는 창법서들을 모조리 훑어가며 참고할 건 모두 참고했다.
그리하여 오래지 않아 하나의 창법을 완성시킬 수 있었는데, 간단하게 쾌류창법(快流槍法)이라 명명했다.
명호운은 몇 차례 초식을 시연하며 적응하는 듯하더니, 그 후로는 아주 신이 나서 창법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심산화가 익힐 소검법을 창안했다.
검술에는 나부터가 조예가 깊은 편이다. 게다가 검법의 경우에는 참고할 자료들도 매우 많다. 그렇기에 창법을 창안할 때처럼 그리 어려울 건 없었다.
심산화는 은잠술이 뛰어난 만큼 기습 형태의 전투에 특화될 수 있다.
한데 기습 공격은 짧은 틈에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하면 곧바로 본인이 위험해질 수 있다.
그래서 그녀가 익힐 검법에는 쾌의 묘리를 꽉꽉 눌러 담아줬다.
쾌검술인 셈이다.
무공명은 대충 쾌류소검예(快流小劍藝)라고 지어, 곧바로 심산화로 하여금 익히게 했다.
심산화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이후에는 왕철양을 위한 부법(斧法) 즉, 쌍부술 창안에 들어갔다.
사실, 부법은 참고자료가 흔치 않은 만큼 시간도 매우 오래 걸릴 게 자명했다. 그래서 작업 순서도 일부러 맨 마지막으로 미뤘던 것이다.
제일서고의 몇 권 안 되는 부법서를 이 잡듯이 파고 또 팠다.
수련용 도끼도 똑같은 것으로 두 자루 준비하여, 내가 섭렵한 부법서들에 맞추어 초식을 펼쳐보기도 했다.
더 까다로운 건, 왕철양이 어마어마한 거구라는 점이었다.
즉, 왕철양의 경우에는 움직임의 크기와 반경도 내 예상 범주와는 매우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초식의 부분 동작들을 만들어도 섣불리 다음 동작을 이어 붙이며 진행할 수가 없었다.
동작을 만들면 일단 왕철양에게 십여 차례씩 반복시켜서, 그 동작들이 녀석에게는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일일이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겨우겨우 하나의 쌍부술을 창안해낼 수 있었는데, 쾌류선풍쌍부법(快流旋風雙斧法)이라 명명했다.
왕철양도 신나게 쌍부술을 익히기 시작했다.
이게, 심혈을 기울여서 무공을 창안하고 나니까 무공명을 고민하는 행위 자체가 굉장히 귀찮았다.
그래서 쾌류, 쾌류, 또 쾌류인 거다.
사부님께서도 생전에 무공 이름 같은 건 구분만 되면 된다면서 대충 지으셨는데, 이제야 그 심정을 알 것 같다.
참고로 사부님께서는 천섬, 천섬, 또 천섬이셨다.
무공들을 완성시킨 후에도 나는 명호운과 심산화, 왕철양이 수련하는 모습들을 매우 세심하게 살피며 지냈다.
아이들은 내가 창안한 무공을 매우 열심히 익혔다.
그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억지로라도 보람을 느끼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오랜 기간 내 수련은 뒷전으로 하고 뻘짓만 한 것 같은 자괴감에 빠져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나도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장인정신을 발견하고는 놀라기도 했다.
무공에 혹시 모를 오류는 없는지, 미비한 부분은 없는지, 현재보다 더 개선시킬 부분은 없는지 등을 꾸준히 점검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류는 딱히 보이지 않았으나 개선시킬 부분들은 간혹 있어, 그런 부분들을 한 차례씩 보완해주곤 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내 수련도 했다.
한데 잠시 수련을 진행하다 보니 왠지 모르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예전과 똑같은 천섬무 수련임에도 불구하고,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이 약간 낯설어진 기분이 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느낌의 정체를 알고 있다.
지금껏 익숙했던 것들이 다르게 다가온다는 건, 성취가 상승했다는 뜻이다.
시험 삼아 천섬무를 최하단계, 중단계, 최상단계로 한 차례씩 펼쳐봤다.
확실하다.
몸이 더 가벼워졌고 속도도 더 빨라졌다.
“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동안 수련도 못 했는데 성취 상승이라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후, 가만히 이유를 생각해 보던 중에 또다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
아무리 봐도 이유는 하나뿐이다.
한동안 정신없이 무공 창안에만 몰두했던 일이, 내 무학에 대한 이해도를 제법 큰 폭으로 상승시켰던 모양이다.
애들 좋은 일만 해준 게 아닌가 하고 약간의 자괴감마저 느끼고 있었는데, 이게 갑자기 웬 횡재란 말인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납득이 된다.
나는 상승의 경지에 있는 무인이다.
상승의 경지는 수련도 중요하지만 깨달음이 더 중요해지는 경지인 만큼, 지금의 이러한 현상도 충분히 설명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