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23
도는 길초량의 오른쪽 다리를 베어 갔고 검은 길초량의 왼쪽 옆구리를 찔러 갔다.
길초량이 좌측을 향해 왼손을 살짝 털어냈다.
핏!
철비정 하나가 검을 쓰는 절정고수의 심장을 향해 쾌속하게 날아들었다.
견제 목적의 철비정이었는데, 철비정술 실력이 빼어난 데다가 거리도 가까운 만큼 견제도 통했다. 좌측에 있는 절정고수가 검을 들어 철비정을 막아 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우측에 있는 절정고수의 도와 길초량이 오른손에 들린 곤이 부딪쳐 갔다.
절정고수의 도에는 특유의 그 강맹한 기운이, 길초량의 곤에는 매우 정순한 기운이 가득 담겨 있음이 느껴진다.
“조심!”
원추엽은 짧게나마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절정고수의 도에 담긴 위력이 매우 강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방금 전에 한 차례 왕철양으로 인해 낭패를 보긴 했으나 그건 예외적인 경우라고 봐야 한다. 왕철양이 믿을 수 없는 힘으로 찍어 누른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윽고 두 개의 무기가 격돌했다.
카아아앙!
“크윽!”
새어 나온 신음은 절정고수의 신음이었다.
절정고수의 팔은 뒤로 확 젖혀지고 있었는데, 그는 결국 쥐고 있던 도를 또다시 놓치는 모습이었다.
반면, 곤을 쥐고 있는 길초량의 팔은 뒤쪽으로 어느 정도 젖혀지는 선에서 멈추고 있는 게 아닌가.
놀랄 일이다.
격돌에서 길초량이 훨씬 불리할 것이라 여겼는데 오히려 압승을 거두다니.
‘저런 무시무시한 반탄력이라니······.’
두 개의 무기가 격돌하던 순간, 길초량의 곤에 담겨 있던 정순한 기운이 한 점에 집약되는 느낌을 받긴 했었다. 그 지점에 절정고수의 도가 부딪쳤던 것이다.
그 집약된 기운이 저 엄청난 반탄력을 만들어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참고로 저 절정고수는 방금 전에 왕철양의 도끼와 격돌하며 손아귀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었다. 그 영향도 일정 이상은 작용했을 것이다.
그즈음에는 이미 자신의 대도도 그 절정고수를 향해 짓쳐 들고 있는 중이다.
실은 길초량이 위험해질 일에 대비하여 절정고수를 향해 미리 뻗었던 대도였다.
길초량이 병장기 간의 격돌에서 질 것으로 예상하고 절정고수를 견제할 목적으로 대도를 뻗었던 것이다.
한데 오히려 길초량이 격돌에서 이기며 절정고수의 무게중심이 살짝 무너진 상태다. 그렇다 보니 운 좋게도 자신의 견제가 시의적절한 공격으로 변해버렸다.
이윽고 대도의 칼날 부분이 도를 놓친 절정고수의 허벅다리 옆쪽을 베었다.
서걱-
“크윽!”
그 순간에 길초량과 시선이 마주쳤다.
길초량이 장하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다.
쑥스럽다.
이건 약간의 운이 따라줬기에 가능했던 성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하나의 검이 그 절정고수의 등 뒤에 닿는 모습이 보였다.
푹-
결국 그 검이 절정고수의 등을 깊게 쑤시고 들어갔다.
“크악!”
절정고수의 입에서 비명이 새어 나왔다.
그의 등 뒤에 깊숙이 박혀 있는 건 송유하의 검이었다.
등을 찌르자마자 송유하가 급격하게 자세를 낮추며 검을 뽑아냈다. 그러면서 몸을 비틀며 땅바닥을 박찼다.
탓!
송유하가 몸을 튕기자마자 그녀가 있던 자리를 향해 날카롭고 예리한 검기가 날아들었다.
또 다른 절정고수, 즉, 이 층의 객실 복도 쪽에서 나왔던 절정고수가 날린 검기였다.
푸욱-
검기는 결국 송유하를 찌르지 못하고 마룻바닥에만 깊은 흔적을 남겼다.
절정고수를 찌르자마자 송유하가 즉시 움직이며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면, 찔린 건 마룻바닥이 아니라 그녀의 몸이었을 것이다.
‘저런 송유하 선배가 실전 초보라고? 대체 조교님이 어떻게 단련을 시켰기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검기를 날렸던 절정고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즉시 간격을 좁히며 왕철양이 있는 쪽으로 짓쳐 들었기 때문이다.
송유하가 자리를 피했기에 왕철양의 위치가 그 절정고수에게서는 가까웠다. 그다음으로 가까운 게 자신이다.
왕철양이 아까 도를 쓰는 절정고수를 상대로 한 차례 훌륭한 모습을 보였다고는 하나, 아직은 무공 경지가 낮은 만큼 항상 그런 모습을 기대할 수는 없다.
자신이 어떻게든 보호해줘야 한다.
즉시 왕철양의 앞으로 나서며 대도를 내밀었다.
절정고수의 접근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견제를 통해 절정고수의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주춤하게 만들어 주면, 뒷일은 길초량이 알아서 해줄 것이다.
길초량도 다른 절정고수 한 명을 상대하고 있는 상황이긴 하나, 그에게는 철비정이 있다. 철비정을 날려서 엄호 정도는 충분히 해줄 수 있는 실력자가 바로 길초량이다.
과연 절정고수가 자신이 내민 대도를 피해 옆으로 살짝 방향을 틀고 있다. 자신의 견제로 약간이나마 그의 접근을 늦춘 것이다.
한데 이 시점이면 당연히 날아와야 할 철비정이 날아오지 않고 있다.
당황스럽다.
자신의 수준에서 멀쩡한 절정고수를 상대로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이런 견제 정도가 최선이다.
왕철양을 보호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길초량의 지원이 이어질 것을 믿고 견제를 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원이 없으면 오히려 자신이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절정고수가 자신을 향해 곧장 검을 뻗고 있다.
어떻게든 대도를 휘두르며 대응해갔다.
그러나 저 공격을 제대로 막아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원추엽이 손아귀를 꽉 쥐며 이를 악물 때였다.
파박!
검을 뻗어오고 있던 절정고수 쪽에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된 순간.
“크아악!”
절정고수가 갑자기 괴로운 비명을 내지르는가 싶더니, 검을 찔러오던 그 자세 그대로 철퍼덕 엎어졌다.
그는 엎어지자마자 옆으로 누우며 새우등을 했다.
그러더니 들고 있던 검마저도 내팽개친 채, 괴로운 비명을 계속 지르면서 양손으로 본인의 양 무릎을 감싸고 있다.
의아하다.
저 절정고수의 뒤쪽에서 뭔가가 날아와서 그의 양 무릎을 타격한 모양인데,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전혀 모르겠다.
그 순간, 눈앞으로 검은 바람이 스쳐 지나가나 싶더니 옆쪽에서 가죽 북 터지는 소리가 났다.
퍼어억!
서둘러 고개를 돌려보니 길초량을 상대하던 절정고수의 몸이 모종의 강력한 힘에 의해 튕겨 나가는 중이었다.
옆구리가 접히며 튕겨 나가고 있다.
튕겨 나간 절정고수의 몸이 거실의 한쪽 벽면에 세게 부딪쳤다.
퍼벅!
벽에 부딪쳤던 그 절정고수의 몸이 바닥으로 힘없이 철퍼덕 떨어져 내렸다.
튕겨나간 절정고수가 있던 위치에는 다른 인영이 서 있는 상태다.
조교 송유겸이다.
송유겸이 고개를 뒤로 돌려 자신과 송유하, 왕철양을 바라보더니 물었다.
“다들 괜찮아?”
원추엽은 묻는 말에 대꾸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놀란 표정으로 송유겸을 바라보기만 했다.
결국 자신을 공격하던 절정고수의 양 무릎을 타격하여 전투 불능으로 만든 이도, 그 직후 자신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던 검은 바람도, 길초량이 상대하고 있던 절정고수를 튕겨낸 이도 모두 송유겸이었던 것이다.
머릿속이 멍하다.
‘조교님이 절정고수 두 명을 차치하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못 봤다니······.’
심지어는 송유겸이 눈앞을 지나쳤는데도 그의 모습을 눈으로 전혀 확인하지 못했었다.
‘말도 안 되는 빠르기······.’
조부가 빠르다고 하기에 누가 봐도 대단하다고 여길 정도로 빠른가 보다 했었다.
한데 이건 대단한 수준을 넘어 완전히 차원 자체가 다른 빠르기가 아닌가.
자신의 머릿속에 있던 속도의 개념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속도가 아닐 수 없다.
아울러 송유하가 어떻게 절정고수들의 속도에 반응을 보일 수 있었던 건지도 대강은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렇게 빠른 존재로부터 꾸준한 지도를 받아 왔다면, 배우는 사람의 속도감이라는 것도 남달라질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 * *
병실의 벽면을 밟고 이동하는 와중에 쇠구슬 두 개를 꺼냈고, 그 두 개를 양손에 나눠 쥐며 병실의 문을 벗어났다.
복도를 통해 이 층 거실로 나오자마자 내가 목격한 건, 절정고수 한 놈이 왕철양과 원추엽 쪽으로 매섭게 파고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왕철양을 막아주기 위해 원추엽이 대도를 뻗는 중이었다.
짧게 끊어서 휘두르는 것이, 딱 절정고수를 견제하려는 모양새로 보였다.
그즈음 길초량은 본인의 앞에 절정고수를 두고도 원추엽 쪽을 보며 철비정을 날릴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철비정으로 원추엽을 엄호해 주려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길초량은 결국 철비정을 날리지 않았다.
그 순간에 내 모습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내가 나타난 만큼, 본인의 앞에 있는 절정고수에게 집중하겠다는 선택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상대가 절정고수인 만큼, 까딱 방심하다가는 본인이 당할 수도 있는 거니까.
그래서 양손에 준비했던 쇠구슬을 원추엽 앞의 절정고수에게 튕겨냈던 것이다.
나는 두 개의 쇠구슬이 모두 놈의 양 무릎 뒤에 작렬하는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길초량이 상대하고 있는 절정고수 쪽으로 이동했다. 그러고는 그 절정고수 놈의 옆구리에 내 발바닥을 꽂아 넣었던 것이다.
“괘, 괜찮습니다.”
왕철양이 대꾸하자 송유하도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 괜찮아요.”
원추엽에게서는 대꾸가 없기에 봤더니, 녀석은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왜 저러는지는 대강 알 것 같다.
어쨌거나 세 명의 절정고수에게 공격받았던 것치고는 다들 멀쩡한 모습이다.
이들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역시나 길초량 덕분일 수밖에 없다.
길초량은 신룡대원인 만큼 실전 경험도 많고 전투 시야도 넓다.
애초에 그걸 계산하고 이곳에 원추엽과 왕철양 정도만 남겼던 건데, 역시나 앞뜰에서 싸우던 와중에도 이곳이 위험해진 것을 파악하고는 개입했던 모양이다.
처음에 원추엽에게 이곳을 지키라고 지시하긴 했었지만, 사실 내가 더 믿었던 건 녀석이 아니라 송유하였다.
나는 송유하가 빨라졌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이번 합숙이 시작된 후부터 나는 쾌의 묘리에 중점을 두고 송유하를 지도했다. 고천비룡결과 풍우비룡무의 성취가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하여, 쾌에 중점을 둘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빠르기만 해도 웬만한 위험에는 대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다. 조건마저 충족된 상황인 만큼 미룰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애초에 고천비룡결과 풍우비룡무 자체가 쾌를 중시하는 무공이기도 하다. 덕분에 송유하의 움직임은 그전에도 충분히 날렵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게 쾌의 묘리를 지도받기 시작했던 것이다.
합숙 기간 동안에도 제법 빨라진 만큼, 적들에게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한데 막상 절정고수들을 상대로도 저렇듯 무사한 모습을 보니 그런 식으로 지도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이곳에서 벌어졌던 전투에 대해 소상히 물어본 후, 송유하가 어떤 식으로 움직였는지도 자세히 알아봐야겠다.
무릎에 쇠구슬을 맞았던 절정고수 놈이 어느 시점부터 괴로운 비명을 내뱉지 않고 있다.
돌아보니 그의 고개가 축 처진 모습이었는데, 입술 사이로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독단을 깨물고 죽은 것이다.
그 모습을 보던 길초량이 내게 물었다.
“송 형, 적측에 절정고수들이 더 있소?”
보아하니 길초량도 새로 부상을 입은 곳은 없는 것 같다.
내가 대답 대신 고개를 저어 보이자 길초량이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물었다.
“뒤뜰 쪽의 상황은 괜찮소?”
“괜찮을 것이오. 이 인원들이 가서 도와주면 더 괜찮아지겠지.”
어차피 앞뜰 쪽의 전투는 곧 정리될 것이다.
적측에 일류고수들밖에 남지 않았는데, 단목강조의 세 사람과 소충광, 우문직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내 말에 길초량이 또다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더니 송유하, 원추엽, 왕철양을 향해 말했다.
“갑시다.”
나한테서 적측에 절정고수가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까지 한 마당이라, 이왕이면 저 세 사람이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것이다.
네 사람이 바로 뒤뜰로 향했다.
나는 곧바로 본채의 지붕 위에 올라 기운을 넓게 퍼트리며 정신을 집중했다.
위협 요소라 할 수 있는 절정고수들을 모두 제거하기는 했으나, 적의 증원이 없을 거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일행 모두가 안전하게 이곳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섣불리 경계심을 풀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