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233화 (233/416)

내 안에 마교있다 233

뱁새눈이와 뚱뚱이를 처치한 후에는 백송학과 함께 걸어서 일행들 쪽으로 향했다.

추격자들을 막는 내내 나는 스스로의 위기에 맞서는 와중에도 일행들까지 염려하느라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으며, 백송학은 부리부리와의 싸움에 참전한 후로 육체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 둘에게 있어 지금과 같이 심신이 동시에 여유로운 시간은 실로 오랜만이다.

걸음을 옮기며 백송학에게 물었다.

“보셔서 잘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아까 백 선배님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무사하지 못했을 겁니다. 한데 백 선배님께서는 어떻게 그곳에 딱 그 시점에 나타나셨던 겁니까?”

그에 대해 궁금한 것들이 많은데 그게 가장 궁금했었다.

백송학이 대꾸했다.

“동부지맹에 가야 할 일이 있었소. 보아하니 사매가 방학 기간 동안 머물고 있다는 장원이 마침 경로상에서 그리 멀지 않더구려. 그래서 오랜만에 사매의 얼굴이나 보고 갈 겸 해서 그곳에 들렀던 참이었소. 한데 막상 장원에 도착하고 보니 웬걸, 사매와 그 친우들이 있어야 할 장원에 시체가 즐비하고 혈향이 진동하는 게 아니겠소?”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하다는 표정이었다.

“심지어는 불온한 기운을 풍기는 자들이 장원을 조사하고 다니고 있었소. 그래서 조용히 숨어서 살펴봤는데 시체들은 모두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더구려. 그 와중에 조사하고 다니는 자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 있었소. 장원에 머물던 인원들이 얼마 전에 북쪽 방향으로 도주했다는 사실과, 대단한 고수들이 추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백송학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곧장 그 방향으로 달렸소. 그러던 중에 상당히 강력한 기운들 두 개가 맞붙고 있음을 파악하고는 접근했던 것이오. 딱 느끼기에도 둘 중에서 불순한 기운 쪽이 너무도 강력하여 그와 맞서고 있는 기운이 감당하기가 어려워 보였소. 그래서 바로 개입했던 것이오.”

그 두 사람이 바로 부리부리와 나였다는 뜻이다.

“아······.”

“참고로 처음 개입했을 때는 그자에게 당하고 있었던 인물이 송 공자인지도 몰랐소. 아시다시피 송 공자가 쓰러진 후에도 그쪽을 살필 겨를조차 없었고. 나중에 합공을 펼칠 때에야 알아볼 수 있었소. 빠른 속도와 무서울 정도로 정확한 소비도술, 그리고 그 빼어난 용모를 확인한 후에야.”

“그렇게 된 것이군요.”

상황을 대강은 알 것 같았다.

백송학이 의외라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송 공자가 은신술까지 그렇게 대단할 줄은 몰랐소. 아까는 정말이지 같은 편인 나조차도 깜짝 놀랐었소. 근처에 낙뢰가 번쩍하고 내리친 순간, 그의 등 뒤에 있던 송 공자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으니까.”

민망함을 담아 미소만 지어 보였다.

이렇게 내 또 하나의 장기인 은잠술마저 밝혀졌다.

다행스러운 점은 내 은잠술을 겪어 본 적들은 모두 죽었다는 사실이며, 그 외의 유일한 목격자인 백송학은 믿음이 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문득 떠오른 것이 있어서 백송학에게 말했다.

“아, 참. 아까 보니 연월이가 그 두 고수들을 상대로 같이 싸우고 있더군요. 얼핏 보니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만, 백 선배님의 입장에서는 그 모습을 보고 많이 놀라셨겠습니다. 제 친우들이 연월이를 일부러 그 전투에 포함시켰을 것 같지는 않은데······,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나도 아까 이곳에 도착해서 사매가 그들과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소. 그러나 굳이 따로 알아보고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소. 사매의 성격은 내가 잘 알고 있소. 아마 사매가 멋대로 나섰을 것이오.”

안 봐도 빤하다는 투였다.

말 자체는 포연월 탓을 하는 것 같지만 표정은 매우 기분 좋아 보이는 표정이다. 오랜만에 포연월과 만난 것만으로도 저렇게나 좋은 모양이다.

하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어린 사매가 재기발랄한 미소녀이기까지 하니 평소에도 얼마나 귀여워했을까.

“하하. 연월이가 그런 성격입니까? 참고로 제가 연월이의 무공 조교를 맡고 있는데, 그러면서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아주 똑똑하고 재기가 넘치던데요. 성격도 무리 없이 원만하고, 무재도 뛰어난 듯하고요.”

분위기상 이런 때는 무조건 칭찬해 주는 게 좋기에 꺼낸 말이긴 한데, 틀린 말도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겪으면서 봐 온 포연월이 딱 저랬다.

한마디로 대단한 애다.

“뭘 그렇게까지나······. 하하하. 사매가 그런 칭찬을 듣기에는 아직 여러모로 부족한 면이 많소. 하하하하.”

입으로 내뱉는 말과 달리 입이 귀에 걸리고 있다.

거의 아빠 미소 내지는 삼촌 미소 비슷한 느낌이다.

이 사람의 특성을 약간은 알 것 같다.

백송학이 바로 말을 이었다.

“아, 송 공자가 사매가 속한 조의 조교라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소. 사매가 전서를 통해 그 내용에 대해 알려줬던지라.”

“아하.”

백송학의 기분이 매우 좋아진 김에 툭 한마디를 꺼냈다.

“연월이가 사문을 밝히지 않더군요. 물론 밝히지 않겠다는 걸 억지로 캐묻지는 않았습니다만, 무인의 입장에서 매우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무공이 워낙 신비로운 느낌이었던지라······.”

그를 향해 바로 말을 이었다.

“그랬는데 아까 백 선배님께서 그 무공을 매우 높은 경지에서 펼쳐내는 모습까지 접하니 호기심이 더 커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종류의 무공인 만큼 대체 어디의 무공일까 하고······.”

“아, 어린 사매가 홀로 강호에 나온 상황이다 보니 일단은 사문을 밝히지 말고 지내라는 사부님의 당부가 있으셨소. 밝혔다가 괜히 주목을 과하게 받으면 잠룡관 생활에도 지장이 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셨소. 어차피 계반이니 굳이 그런 걸 밝히지 않아도 상관없는 환경이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발언이 섞여 있다.

백송학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송 공자에게는 밝히는 게 옳을 것 같구려. 사매가 신뢰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나 또한 짧은 순간 함께한 것뿐인데도 송 공자에게 신뢰가 가니까.

같은 편이 되어 목숨을 걸고 함께 싸워 보면 굳이 말을 통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잖소.”

맞는 말이다.

같이 합공을 펼치는 와중에 나 또한 백송학의 여러 모습들을 봤다. 그가 보여준 면모들이 매우 마음에 들었었다.

게다가 그는 위기에 빠져 있던 나를 대신하여 목숨을 걸고 부리부리에게 맞섰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은인이라고 표현했던 것이고.

내가 무슨 뜻인지 이해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백송학이 짧게 말했다.

“우리는 소요곡 사람들이오.”

그 말에는 놀라며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백송학도 멈춰 서고 있다.

천하에 소요곡이라는 지명은 여러 곳 존재하지만 백도에서 말하는 소요곡은 단 하나다.

선도(仙道)를 추구하는 도가 계열의 신비 문파.

방금 백송학이 말한 소요곡도 바로 그 소요곡이다.

문파라고는 하나 문원이 많지는 않다고 알려져 있다.

소요곡에서 제자를 들이는 기준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소요곡은 기재들 중에서 고르고 골라 천재들을 선별하고, 그 천재들 중에서도 성품, 잠재력, 용모까지 두루 갖춘 이들만을 제자로 들인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소요곡 출신들은 비단 무공이 강할 뿐만 아니라 인물도 빼어나고 성품도 좋다고 한다.

적어도 강호상에는 그렇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소요곡의 인물들은 강호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시작했다.

그 세월이 길어지고 또 길어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소요곡의 명맥이 끊겼다는 게 정설이 되었다.

천재들만을 제자로 들였기에 구성원들의 역량이 다들 대단했던 게 사실이나, 역설적이게도 제자를 들이는 기준이 너무 까다로웠기에 명맥이 끊겼다는 게 중론이었다.

내가 천마신교에서 읽은 자료에도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한데 백송학이 지금, 본인이 그 대단한 소요곡의 제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 분위기를 확인했는지 백송학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이해하오. 잘 믿어지지 않을 것이오.”

“너무 놀라서 그렇습니다. 백 선배님께서 알고 계신지는 모르겠으나, 현재의 강호에는 소요곡의 명맥이 오래전에 끊겼다는 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소요곡 출신이라고 말씀하시니 너무 의외라서······.”

물론 백송학과 포연월의 신묘한 무공을 생각하면 납득은 충분히 된다.

그러자 백송학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 명맥, 실제로 끊겼었소.”

내가 놀라며 고개를 갸웃해 보이자 그가 말을 이었다.

“끊겼던 명맥을 다시 이은 분은 사조셨소. 그분께서 우연히 옛 소요곡이 안배해둔 유적을 발견하셨고, 그 시점부터 소요곡의 명맥이 다시 이어지게 된 것이오.”

“아······.”

“이후에 사조님에게서 사부님과 사숙에게로 명맥이 이어졌소. 그분들께서는 옛 소요곡의 무학을 비롯한 제반 분야를 제대로 복원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오셨고 지금 이 순간에도 불철주야 노력 중이시오. 물론 앞으로는 우리 대에서 그 소임을 이어받아야 할 테고.”

이제야 많은 부분들이 이해가 되었다.

백송학과 포연월의 무공은 분명히 신묘하고 대단하나, 보통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있는 소요곡을 생각하면 압도적인 느낌까지는 아니었다.

명맥이 다시 이어진 지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백송학에게 말했다.

“그 유명한 소요곡의 후예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의 말을 믿는다는 의미로 한 말이다.

백송학이 미소 띤 표정으로 대꾸했다.

“옛 명성을 되찾으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오.”

“소요곡은 용모와 성품이 두루 빼어난 천재들만 제자로 삼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적어도 제자를 들이는 기준만큼은 이미 옛 명성을 되찾은 듯하군요.”

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며 그렇게 말하자 백송학이 웃었다.

“하하하! 민망하구려.”

빙그레 미소를 보인 후에 그에게 물었다.

“아까 제게 주셨던 응급 내상약 말입니다만, 그것도 소요곡의 연단술로 만든 것입니까?”

“그렇소. 내가 만들었던 것이오. 연단술 분야도 열심히 연구하고는 있는데, 지금은 그 정도가 내 한계구려.”

“하! 그 정도만으로도 제 눈에는 백 선배님이 얼마나 대단해 보이는지 모르실 겁니다.”

백송학이 민망하다는 듯 미소를 보였다.

“듣자 하니 연월이는 침술이 상당히 빼어난 모양이던데, 하면 그것도 소요곡의 비전 침술입니까?”

“사매의 침술 경지가 비전이라고 할 만한 수준의 경지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소요곡의 침술인 건 맞소.”

내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쯤, 멀리에서 길초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 형! 얼른 오시오! 앞서간 일행들을 서둘러 쫓아가야 하잖소!”

길초량의 말이 맞다.

포연월과 백송학의 출신이 소요곡이라는 얘기를 갑작스럽게 접했던 터라, 너무 그 얘기에 빠져 있었다.

매우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일단 가시죠.”

내 말에 백송학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둘러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전음으로 내게 말했다.

[사매 혼자였을 때는 친우들이 굳이 사문을 캐묻지 않았겠으나, 나와 사매가 사형제 간이라는 걸 알게 되면 그때는 다들 우리의 사문을 궁금해할 것이오. 그런 상황에서마저 사문명을 숨기는 건 매우 이상해 보일 테니 가상의 명칭을 댈까 하오. 장춘곡이라는 이름을 쓸 것이오.]

아직은 소요곡이라는 걸 완전히 드러내기가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내막을 들은 입장이다 보니 이해가 갔다.

장춘.

말 그대로 하면 봄이 길다는 뜻이다.

소요곡이 추구하는 선도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

[그리 알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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