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42
처음 듣는 얘기라 살짝 당황스럽긴 하다.
물론 처음 듣는 얘기일 수밖에 없기는 하다.
나와 단목강이 매우 친밀하긴 하나, 서로가 이런 식의 졸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단목강이라면 당연히 육 년 차를 모두 마치고 졸업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어차피 그가 나보다 늦게 졸업하게 될 테니 딱히 그의 졸업을 언급할 일도 없었고, 단목세가의 소가주인 그를 상대로 졸업 후의 진로 등을 궁금해할 필요도 없었다.
어쨌든, 갑작스럽기는 해도 내 입장에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단목강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마다하기는커녕 환영할 일이다.
단목강처럼 실전 경험을 두루 갖춘 절정고수를 구해서 내 집에 두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단목강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무인으로서의 내게는 송 공자의 존재가 너무도 크오. 실은 내가 너무 과하게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여러 차례 돌아보기도 했었소. 한데 아무리 생각을 정리해 봐도, 무인으로서의 내 인생은 송 공자를 만나기 전과 만난 후로 나뉜다는 사실만 재차 확인할 수 있었소.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소.”
그가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러한 확신은 최근 들어 더 깊어졌소.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근래 성취에 있어 큰 진전을 보았소. 이미 여러 사람들에게 밝힌 바 있는데, 내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송 공자의 영향이 가장 컸소. 그래서 앞으로도 송 공자 옆에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을 계획을 세운 것이오. 이미 가족들과의 상의도 끝냈소.”
그 단목진과 교문혜라면 단목강이 나와 함께 지내는 걸 반대할 리가 없긴 하다.
“갑작스럽게 이런 말 해서 미안하오, 송 공자. 민폐 끼치지 않도록 잘 처신할 터이니 좋게 봐 주시오. 하하.”
“민폐라니요. 무슨 그런 말씀을. 그리고 하숙 같은 말씀일랑 마시고, 몸만 오셔서 편하게 머무십시오.”
내가 단목강에게 그렇게 대꾸하자 길초량이 말했다.
“좋구려. 송 형의 거처에 가면 조장님도 볼 수 있을 테니. 게다가 때때로 여기에 있는 다른 분들과 마주칠 가능성도 높고. 송 형의 거처가 모종의 거점 같은 느낌이오. 참고로 나도 여건이 될 때마다 놀러 가겠소.”
“물론이오.”
길초량은 내게 꼭 필요한 존재다.
놈을 한 번씩 놀려 먹어 줘야 내 정신 상태를 계속 건강하게 유지할 수가 있다.
우문직이 술 한 잔을 들이켜더니 나를 향해 물었다.
“송 공자, 이왕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온 김에 하나 더 물어봅시다. 통합 잠룡대전, 출전할 생각이시오?”
내가 출전하지 않으리라는 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질문하는 느낌이다.
우문직도 내 성향을 잘 알고 있는 친우다. 저런 정도의 예상을 하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합숙 당시에 우문직과 더불어 통합 잠룡대전에 대해 나눴던 대화들을 돌이켜 보면, 그는 진즉부터 저렇게 예상하고 있었던 듯하다.
통합 잠룡대전을 위한 지역 예선은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어차피 한 달 뒤에는 다들 알게 될 테니, 친우들에게는 미리 밝혀도 상관없을 것이다.
“참가하지 않을 생각이오.”
역시나 이번에도 계반삼조의 아이들만 놀란 기색을 보일 뿐, 그 외의 인원들은 예상했다는 반응이었다. 친한 만큼 다들 내 성향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우문직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송 공자라면 왠지 그럴 것 같아서 물어봤던 것인데, 이 또한 다른 분들도 비슷한 예상들을 하고 계셨나 보구려.”
그러자 장우혜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송 오라버니는 그 빼어난 실력을 갖고도 작년에 동부지맹 지역 예선에조차 출전하지 않았던 분이에요. 통합 잠룡대전에 관심조차 없었는데, 약 좀 얻겠다고 청선곡의 소규모 비무 대회에 참가했다가 잘못 엮여서 예비 명단이 된 거죠. 작년 동부지맹 잠룡대전 당시에 같이 돌아다녔기에 잘 알아요.”
장우혜가 말을 이었다.
“가뜩이나 지금의 송 오라버니는 잠룡관도의 수준을 한참 벗어난 실력인데, 저 실력으로 다른 관도들과 비무 대회에서 겨루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내가 송 오라버니라도 의미 없을 것 같아요. 그 시간에 차라리 운기조식을 한 번 더 하고 말지.”
다들 비슷한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우문직의 고개가 길초량 쪽으로 돌았다.
의미를 알아들은 길초량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나야 뭐, 참가하고 싶었다면 진즉에 참가하지 않았겠소? 굳이 육 년 차가 되어서야 참가할 일이 아니라.”
신룡대원이 통합 잠룡대전에 참가할 리는 없다.
그즈음 옆에서 단목강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나도 이번 통합 잠룡대전에 불참할 계획이오.”
그 말에 모두가 또다시 눈을 크게 뜨며 단목강을 바라보았다.
단목강은 오늘 얘기하는 사안마다 모두를 놀라게 하고 있다.
나도 놀랐다.
단목강은 절정에 오른 만큼 우승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승하면 세가의 위상에도 도움이 될 수 있으니 한 번쯤은 노려보지 않을까 예상했었다.
그런데 저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문직이 즉시 물었다.
“정말이시오?”
“그렇소. 원래는 나도 참가할 계획이었소. 한데 근래 성취가 크게 상승하고 난 후부터는 생각이 바뀌었소. 통합 잠룡대전에서 성적을 내는 일이 지금의 내게 정말로 중요한 일일까 싶은 생각이 들더구려.”
단목강이 말을 이었다.
“중요하지 않다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소. 어차피 나는 작년에 통합 잠룡대전을 충분히 경험해 보기도 했고,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유의미한 성적을 거두기도 했소. 그런 만큼, 이제는 그냥 스스로 내실을 기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오.”
친우들은 여전히 놀란 표정들이었다.
“아, 오해들은 없으셨으면 좋겠소. 나는 지금의 내 상황에서 통합 잠룡대전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지, 통합 잠룡대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뜻이 결코 아니오.”
나는 저 말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내가 이 실력으로 통합 잠룡대전에 출전하여 애들과 겨루는 게 의미가 없듯, 절정에 오른 단목강에게도 그 일이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소충광이 말했다.
“허어, 이건 좀 충격이구려. 설령 송 공자가 불참한다고 해도 단목 공자가 있다는 생각에 든든했는데.”
단목강이 바로 대꾸했다.
“아, 그래도 두 분의 수련을 돕는 일에는 계속해서 열심히 임할 것이오. 나는 진심으로 두 분이 통합 잠룡대전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를 바라고 있소.”
“마찬가지요.”
나도 한마디를 보태자 소충광과 우문직이 고마워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명호운이 우리에게 물었다.
“그런데 선배님들, 상황이 이러한데 통합 잠룡대전이 열리기는 하겠습니까? 혈교의 공격으로 무림맹의 각 지부들에 난리가 났고, 무림맹의 전 관할 권역에 비상 경계령마저 내려진 상황인데······.”
소충광이 대꾸했다.
“하긴, 생각해 보니 그것도 그렇구려.”
그러자 길초량이 말했다.
“사대지맹이나 본맹이 직접 타격을 입을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이 아닌 한은, 어떻게든 통합 잠룡대전을 개최한다는 것이 무림맹의 방침이라고 알고 있소.”
“아, 그렇소?”
우문직의 물음에 길초량이 바로 대꾸했다.
“과거에도 이런 식의 환란은 몇 차례 있었는데, 그 시기에도 통합 잠룡대전만큼은 개최해 온 것으로 아오. 환란 중에도 통합 잠룡대전을 개최하여 자연스럽게 백도의 결속을 도모했던 것이오. 물론 그 와중에도 수뇌부에게는 다른 여러 계산들이 있었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이 그런 면까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하면 이번에도 개최될 공산이 크겠구려.”
우문직의 말에 길초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문직이 바로 물었다.
“한데 그렇다 해도 참가자들의 안전이 확보가 되겠소? 이동하는 과정에서 매우 위험해질 것 같은데.”
“과거에도 이런 경우에는 본맹 주도하에 호위에 만전을 기했다고 알고 있소. 이번에는 더 극도로 신경을 쓰겠지요. 작년의 장강 사건으로 인해 경각심을 갖게 되기도 했고, 현재의 위험 요소는 그 유명한 혈교이기도 하니까.”
신룡대원이 근거도 없이 저런 말을 할 리는 없다.
길초량이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위험성은 분명히 존재하니, 그 위험에 노출되고 싶지 않다면 이번 통합 잠룡대전은 거르는 게 현명할 수 있소. 애초에 지역 예선에 참가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고.”
말을 마친 길초량이 소충광과 우문직을 한 차례씩 바라보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전히 출전할 생각인지를 묻는 시선이다.
소충광이 씩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참가할 것이오. 말씀드렸듯 나는 졸업 후에 동부지맹에 들어가려는 사람이오. 무림맹에서 일하겠다는 사람이 무림맹을 믿지 못하고 이런 상황을 피한다는 게 말이 되겠소?”
듣고 보니 그건 그렇다.
소충광이 말을 이었다.
“이 혈기왕성한 나이에 이 정도의 실전 경험과 실력을 가지고도 위험을 피하려고만 한다면, 나이를 먹고 고수가 된다 해도 나는 안전만 추구하고 있을 것이오. 그런 볼품없는 무인이 될 생각도 없고, 사문에서 그런 식으로 배우지도 않았소. 이는 내가 지금의 내 실력을 과신해서 하는 말이 아님을 알아주시리라 믿소.”
다부진 각오가 느껴지고 있다.
소충광의 말을 들은 우문직이 한 차례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소 공자의 말씀을 듣고 나니 부끄러워지는구려. 솔직히 나는 방금 전에 잠시, 올해 통합 잠룡대전은 거르고 육 년 차인 내년을 노릴까 생각했었소. 물론 두려워서였소.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내가 담대함이 좀 부족한 편이오.”
우문직이 그렇게 말하더니 천천히 본인의 술잔을 비웠다.
술잔을 내려놓으며 그가 말을 이었다.
“소 공자의 말씀이 백번 지당하시오. 위험할 것 같다며 피할 생각부터 하는 한심한 정신 상태로 통합 잠룡대전은 무슨 놈의 통합 잠룡대전이겠소.”
우문직이 호흡을 한 차례 정리하더니 각오가 깃든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올해 통합 잠룡대전에 반드시 참가할 것이오. 며칠 전의 그 고수들과 싸울 때처럼 죽을 각오로 임할 것이오. 그러니 모두들 지켜봐 주시구려.”
드높은 의기가 느껴진다.
길초량이 소충광과 우문직을 향해 잔을 들어 올리자, 모두가 잔을 들었다.
“두 분의 건투를 빌며.”
그 말과 함께 길초량이 잔을 비우자 다들 잔을 비웠다.
소충광도, 우문직도, 저런 자세들이 앞으로의 발전에도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통합 잠룡대전에 다녀오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무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잠시 측간에 다녀오는데, 뒷마당에 서서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장우혜의 모습이 보였다.
어제가 보름이었던 만큼 오늘도 달이 둥글고 밝은 밤이다.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그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마주친 김에 그녀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술 깨는 중이야?”
“아뇨. 애초에 취하지도 않았어요. 그냥 잠시 시원한 공기 좀 마시는 중이에요.”
“보니까 역시나 엄청나게 달리시더구만?”
술 얘기다.
“이런 땐 달려 줘야죠. 항상 팽팽하게 당겨진 채로 살 수만은 없잖아요. 한 번씩은 이완도 필요하니까 이런 기회에 쭉쭉 달리는 거예요.”
“그럼, 그럼. 어련하시겠어.”
내가 놀리듯 말하자 장우혜가 살며시 눈을 흘기며 대꾸했다.
“은근히 사람 놀리는 거 좋아하신다니까.”
그러더니 다시금 미소를 머금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나도 옆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송 오라버니.”
매우 조용한 목소리로 부르기에 나도 조용히 대꾸해줬다.
“응.”
“나, 송 오라버니한테 부탁이 있어요.”
“뭔데.”
“앞으로 한 달 정도만, 내 수련 좀 집중적으로 도와주세요. 다소 귀찮을지라도 한 달 정도만.”
“그야 뭐 어려울 것도 없는데 갑자기 왜······.”
무심코 그렇게 대꾸하던 나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리며 장우혜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장 매, 통합 잠룡대전 출전하려고?]
목소리가 커질 수 있을 것 같기에 전음으로 물은 것이다.
장우혜도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전음으로 대꾸했다.
[네.]
[위험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 못 들었어?]
[못 들었겠어요?]
[그런데도 굳이 참가하겠다고?]
[네.]
나는 계속해서 놀란 투로 묻고 있는데, 장우혜는 차분하면서도 간결한 투로 대꾸하고 있다.
어린 것이 뭐 이렇게 겁대가리를 상실했어?
속으로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장우혜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뭐예요, 그 미친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은.]
[무, 무스은? 아니야아.]
하여튼 여시 같은 게 눈치는 빨라 가지고.
잠시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던 장우혜가 다시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 위험할 일 없을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내가 간다는데 큰 오라버니가 가만히 계실까요?]
하긴, 얘가 움직이면 남궁찬이 자동으로 개입될 것이다.
내가 남궁찬의 입장이라도 무조건 호위대에 함께할 것이다.
[아버지도 가만히 계시지 않을 거예요. 세가의 정예들을 이끌고 은밀하게 움직이며 우리 이동 경로의 전후방을 샅샅이 확인하시겠죠. 그러면 나뿐만 아니라 동부지맹 잠룡관의 참가자들도 더 안전해질 수 있어요.]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요는 이 년 차인 내가 선배들 사이에서 통합 잠룡대전 진출 자격을 따낼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인데······, 솔직히 그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수긍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줬다.
내가 지금껏 봐 온 장우혜는 어마어마한 애다. 이 년 차라도 충분히 진출권을 노려봄직하다.
참고로 북부지맹의 모용리는 삼 년 차에 통합 잠룡대전에 진출했었다. 장우혜가 일 년 일찍 진출권을 따낸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왕 가는 통합 잠룡대전인 만큼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어요. 내년 같은 거 생각 안 하고,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임할 거예요. 그래서 송 오라버니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