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45
동부지맹 잠룡대전이 시작되었다.
기간은 열흘가량이다.
그 기간 동안에는 내가 무공을 지도하고 있는 송유하와 청여홍, 계반삼조원들에게 개인 수련을 하라고 지시했다. 개인 수련들을 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는 경우에만 찾아오라 했다.
축제를 제대로 즐기라는 의미다.
여기저기에서 비무 대회가 많이 열리는 만큼, 이리저리 비무 구경하러 다니는 재미가 쏠쏠한 기간이다.
다양한 비무를 구경하는 것도 성취 상승에 도움이 된다.
안계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눈치껏 소규모 비무 대회에 직접 출전해 볼 수도 있는데, 그런 것들도 모두 경험이 된다.
특히 계반삼조원들에게는 첫 동부지맹 잠룡대전을 마음껏 즐기라고 얘기해줬다.
작년 신입생이었던 유은무와 장우혜도 동부지맹 잠룡대전을 재미있게 즐겼었기에, 올해 신입생인 계반삼조원들도 제대로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잠룡대전의 첫날도 여느 때처럼 송유하와 함께 아침 구보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씻고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후 서탁 앞에 앉았는데 마음이 너무도 편안했다.
실로 오랜만에 일정이 하나도 없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 정신적 여유로움이 적응이 안 될 정도다.
동부지맹 잠룡대전 기간 동안 나는 되도록 거처를 벗어나지 않은 채 조용히 지낼 생각이다.
비무 대회를 구경하러 다니지도 않을 생각이다. 나중에 소충광, 우문직, 장우혜에게 중요한 시합이 있다면 응원 차원에서 그런 시합 정도만 챙겨 볼까 한다.
잠룡대전 기간 동안에는 무공 지도를 할 일도 없기에 한동안은 이러한 여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나흘에 한 번씩, 그것도 한 시진 정도씩만 제갈수광과의 수련에 참여하면 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덤빌 테니 이 기간 동안에는 고천비룡결과 풍우비룡무의 수정 작업에 몰두할 계획이다.
수정하고 보완할 부분들에 대해 꾸준히 정리를 해둔 게 있는 만큼, 이번 기회를 통해 완료할 수 있을 것 같다.
약 한 시진가량 수정 작업을 지속하고 있을 때쯤 거처 밖에서 단목강의 목소리가 들렸다.
“송 공자, 안에 있소?”
마루로 나서며 그를 맞이했다.
“아, 조장님. 어서 오십시오.”
단목강이 다가오더니 마루의 한쪽에 앉았다.
나도 근처에 앉으며 물었다.
“개회식은 끝났습니까?”
지금쯤이면 끝났을 시간이라서 물은 것이다.
“그렇소. 이후에 동부 예선도 시작되었소. 대진표를 확인하고 오는 길이오.”
“그렇지 않아도 소식은 들었습니다. 제갈 교관님의 권유를 받고 결국은 통합 잠룡대전에 참가하기로 하셨다고.”
“하하, 그렇게 됐소. 다른 분도 아니고 제갈 교관님께서 권유하시는데 당연히 따라야지요. 참가하는 편이 내게 더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하셨기에 권유하신 것 아니겠소?”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교관님은 본인 편하자고 제자를 거래 대상으로 삼은 것뿐입니다. 조장님이 그 희생양이 된 거고요.
단목강에게 말했다.
“예선전이 시작됐으니 조장님도 슬슬 일회전 준비해야겠군요. 뭐, 가볍게 통과하시겠지만.”
“아, 내 첫 시합은 십육강부터요. 고로 나는 이레쯤 후에나 첫 시합을 하게 될 것이오.”
“응? 왜 그렇습니까?”
“이번부터 지역 예선의 방식이 바뀌었소.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분위기였다. 그에게 즉시 대꾸했다.
“패자들에게도 한 번씩의 기회가 더 주어지는 형태의 대전 방식이라지요? 그 방식에 대해서는 들었고 이해도 했습니다. 한데 조장님의 첫 시합이 십육강부터라는 건 무슨 이유인지······.”
“아, 바뀐 대전 방식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구려. 그거 말고도 달라진 게 하나 더 있는데, 전년도 통합 잠룡대전 출전자들에 대한 특전이오.”
“특전······?”
“전년도에 통합 잠룡대전에 출전했던 관도들의 경우에는 지역 예선에서는 십육강에 자동으로 진출하게 되오. 덕분에 나, 강하령 소저, 주경명 공자, 사옥연 소저의 경우에는 편하게 됐소. 물론 송 공자도 출전했다면 같은 특전이 적용되었을 것이고.”
“오, 그런 게 생겼습니까?”
내 물음에 단목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렇소. 그리고 특전이 적용된 관도들은 기본적으로 구역별로 떨어져서 배치되오. 십육강은 네 명씩 총 네 개의 구역으로 나뉘는데, 특전이 적용되는 관도들은 그 네 개의 구역에 최대한 분산되어 배치된다는 뜻이오.”
“아하.”
“우리는 네 명이니 깔끔하게 각 구역별로 한 명씩 배치되었소. 전년도 통합 잠룡대전에서의 성적이 높을수록 우선권이 부여되기에 내가 먼저 일 번을 골랐소. 십육강의 열여섯 자리를 일 번부터 십육 번까지 순서대로 배치했을 때 일 번이라는 뜻이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단목강이 바로 말을 이었다.
“이어서 강하령 소저가 나와 멀리 떨어지겠다며 사 구역을 골랐소. 즉, 강 소저는 십삼 번이오. 주경명 공자는 이 구역을 골라서 오 번, 사옥연 소저는 삼 구역에 있는 구 번이오. 만약 송 공자가 출전했다면 특전이 다섯 명이니 어딘가의 한 구역에는 두 명이 배치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작년 통합 잠룡대전에서 단목강은 사강에 진출했었고 강하령은 십육강에 진출했었다. 그래서 순서대로 두 사람에게 우선권이 주어진 모양이다.
“특전이 적용된 우리도 편해서 좋지만, 예선에 참가한 다른 관도들의 호응도 좋다고 들었소. 솔직히 전년도에 통합 잠룡대전에 참가했을 정도면 기본적으로 지역 예선 십육강에 들 실력은 충분하잖소. 실력 검증이 되어 있으니 일회전부터 시작하는 게 별 의미가 없기도 하고.”
“그렇지요.”
“그런 강자들을 일회전부터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예선 출전을 꺼리는 관도들도 많았소. 어느 정도 실력이 있어도 일회전부터 강자를 만나면 바로 탈락하는 것이고, 그러면 어찌 되었건 참가 성적 면에서는 창피할 수밖에 없잖소.”
“하지만 이런 방식이 되면 이름난 강자들과는 십육강에 올라가서야 만나게 되지요. 조금 더 운이 따라주면 십육강에서조차 마주치지 않을 가능성도 높고요. 확실히 여러 관도들의 도전 의식을 자극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십육강부터는 패자에게도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지는 만큼 더더욱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겠지요.”
“그렇소. 특전을 받은 우리는 우리대로 편해서 좋고, 다른 관도들은 그들대로 도전할 의욕이 생겨서 좋고. 대전 방식도 그렇고 특전도 그렇고, 여러모로 좋게 바뀐 것 같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단목강이 말했다.
“사전 설명이 길어졌구려. 송 공자가 궁금해할 대진에 대해서 알려드리리다.”
그렇지 않아도 그게 궁금하던 차였다.
비무 대회를 구경하러 다닐 생각은 없으나, 친우들이 다수 출전한 만큼 대진 자체는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대진표를 쭉 보니 소충광 공자, 우문직 공자, 장우혜 소저의 십육강 진출은 큰 무리가 없어 보이오. 삼십이강에서 맞붙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대들이 모두 그렇게까지 어려운 상대들은 아닌 것 같소. 물론 확신할 수는 없소. 우리가 모르는 빼어난 실력자들이 어디에서 갑자기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니.”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단목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문직 공자는 쭉 올라오게 되면 십육강에서는 이 번 자리로 들어오게 되오.”
“어? 그러면······.”
“그렇소. 일 번이 나니까 우문 공자는 십육강에 올라오면 나와 맞붙게 되는 것이오.”
“음.”
내가 침음을 삼키자 단목강이 떨떠름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우문 공자를 떨어트리는 게 됐을 것이오. 그나마 바뀐 대회 방식으로 인해 우문 공자에게도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지니 미안함도 좀 덜한 것 같소. 그렇다고 내가 우문 공자한테 져준 후에 패자전에서 다시 올라가거나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당연하지요.”
그쯤 되면 거의 승부 조작이다. 당연히 잠룡관 측의 조사가 들어올 것이고 결국은 둘 다 징계를 받을 것이다. 두 사람 다 행여나 그런 짓을 시도할 성품들이 아니기도 하다.
“패자전을 잘 헤치고 올라갈 수 있기를 응원하는 수밖에요.”
단목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우혜 소저는 십육강까지 올라가면 팔 번 자리로 들어가게 되오.”
그쪽 구역에서는 주경명이 오 번이라고 했으니, 장우혜는 일단 십육강에서 네 명의 강자와 붙지는 않는 셈이다.
단목강이 말을 이었다.
“칠 번과 붙게 될 텐데, 그게 누가 될지는 잘 모르겠소.”
“장 매가 십육강을 돌파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만약 돌파하면 팔강에서는 주 공자와 만나겠군요.”
내 말에 단목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경명은 올해 육 년 차가 됐다. 장우혜가 무서울 정도의 발전 속도를 보이고 있기는 하나, 당장 붙는다면 주경명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소충광 공자의 경우에는 십육강까지 올라가면 십 번 자리로 들어가게 되오.”
“어? 아까 구 번이······.”
“사옥연 소저요.”
사옥연도 올해 육 년 차가 됐다. 참고로 소충광도 육 년 차다.
단목강이 말을 이었다.
“소 공자가 실력이 부쩍 늘었다고는 하나, 사 소저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요.”
“그렇지요.”
“어쨌거나 십육강 시합들 중에서는 그 두 사람의 시합이 가장 치열할 것 같구려.”
나도 같은 생각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소충광은 작년에도 충분히 통합 잠룡대전에 갈 만한 실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작년 동부 예선 당시 삼십이강에서 탈락했는데, 그때의 상대가 바로 종금무였다. 작년에 동부지맹 잠룡관의 최강자로 알려졌던 바로 그 종금무다.
즉, 사옥연의 입장에서도 소충광은 만만치 않은 상대다.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은 시합이 될 것이다.
대강의 이야기를 마친 단목강은 더 이상 시간 빼앗지 않겠다며 곧 내 거처를 벗어났다.
점심 식사 후에도 서탁 앞에 앉아서 수정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사립문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곳입니다.”
송유하의 목소리였다.
“오호.”
누군가가 대꾸하는 소리가 이어졌는데, 사내의 목소리였다.
곧 사립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송유하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오라버니, 손님께서 찾아오셨어요.”
곧장 마루로 나서서 보니 송유하가 처음 보는 인물과 함께 사립문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딱 봐도 일흔 살을 훌쩍 넘긴 것 같은 노인이다. 여든 가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백발에 백미에 백염이며, 고령임에도 눈동자가 또렷하다.
지팡이를 짚고 있는데 허리는 굽지 않고 뻣뻣하다.
키는 평균보다 살짝 크다. 저 연령에 저 정도면 젊었을 때는 더 컸을 것이다.
저런 사람이 우화등선해서 신선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노인은 전체적인 풍모가 범상치 않았다.
낯선 용모는 아닌데, 저게 천마신교의 용모파기에서 접한 용모인지, 오다가다 신선도 등의 그림을 통해 접한 용모인지가 확실치 않다.
어쨌거나 상대가 고령의 노인인 만큼 얼른 마루를 내려와서 신발을 신었다.
그러자 노인이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 기가 막힌 미공자라더니 사실이었구먼. 헐헐헐! 소문 듣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미남이로다.”
나를 보는 눈동자가 아이처럼 빛나고 있다. 흥미가 가득하다.
아직 노인이 누구인지 떠올리지 못했으나 일단은 포권하며 인사부터 했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저는 송유겸이라 합니다.”
“헐헐! 오냐, 반갑구나.”
노인의 대꾸를 듣고는 포권을 풀었다.
이후에 송유하를 바라보자 그녀가 말했다.
“우연히 명 공자와 마주쳤는데 어르신께서 오라버니를 찾고 계신다고 하더라구요. 명 공자가 오라버니한테 모시고 가는 길이라고 하기에 제가 대신 모시고 온 거예요. 허 어르신이시고 그 이상은 아직 저도······.”
노인의 성이 허씨인 모양이다.
허씨 중에 저런 노인이 누가 있더라?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노인이 노안에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노부는 허죽신이라는 사람이다. 현 청선곡주의 사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