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246화 (246/416)

내 안에 마교있다 246

청선곡은 작년에 내가 참가했던 소규모 비무 대회의 주최 측이었다.

우승 보상이 청심단이라서 대회에 참가했었다.

청심단은 다른 이들에게는 양생단일 뿐이지만 무속성의 회회심공을 익힌 내게는 영약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사부님의 과거 발언을 통해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당시에 장우혜와 유은무가 하나라도 더 보태주겠다며 대회에 같이 참가해 주기도 했었다.

청심단은 내가 절정에 오르는 데 있어 숨은 조력자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영약도 아닌 양생단이 몇 년 공력을 더해준 덕에 더 빨리 절정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통합 잠룡대전 당시에 남궁벽이 내게 따로 청심단 하나를 챙겨줬던 기억도 난다.

그 청심단을 만드는 곳이 바로 청선곡인데, 이 노인이 전대 청선곡주란다.

현 청선곡주도 아니고 전대 청선곡주라면 내가 정체를 추측하기에도 쉽지 않은 면이 있다.

무공 경지는 최절정인 듯하다.

천마신교 시절에 수많은 고수들과 뒤섞여 살았던 내 감각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허죽신이라는 이 노인이 상당한 고령임을 감안하면 경지가 최절정인 것도 그리 이상할 건 없다.

사부님은 고령이었던 말년에 매병으로 고생하셨는데, 허죽신은 생기와 정기가 충분해 보인다.

저런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풍모가 좋은 걸 보면 저게 바로 약발이라는 건가 싶다.

하긴, 청선곡주였으니 평생 청선곡에서 좋은 약들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 잡수셨을까.

나도 나중에 한가해지면 약학과 연단술을 배워야 할까 보다.

송유하는 차를 내오겠다고 말하고는 부엌으로 갔고, 나는 노인 허죽신을 방 안으로 안내했다.

허죽신이 내 방 안을 한 차례 훑더니 말했다.

“누추하구나.”

이보쇼, 노인장. 실례잖소.

주인한테 대놓고 그런 말씀이라니요.

허죽신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네가 더 남달라 보이는구나. 별호까지 얻을 정도로 유명해진 청년이 여전히 계반의 이런 곳에 머물고 있다니.”

“아하하, 이미 이곳이 너무 익숙해져서 굳이 옮길 필요성을 못 느꼈습니다. 그건 그렇고, 일단 앉으시지요.”

그를 상석에 앉힌 후 서탁의 반대편에 앉으며 말했다.

“청선곡의 전 곡주님을 이런 식으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헐헐. 그래, 네 입장에서는 갑작스럽겠지.”

“저는 작년에 청선곡 주최의 소규모 비무 대회에 참가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 기억에 청선곡과의 인연은 그것뿐인데, 혹여 곡주님께서 저를 찾아오신 용무가 그 일과 연관이 있는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참고삼아 여쭙는 건데 청선곡에서 올해에도 소규모 비무 대회를 개최하는 건 아니지요?”

소규모 비무 대회를 매년 개최하는 이들은 주로 유명한 상단, 전장, 표국들이다.

문파나 세가 같은 경우에는 돌아가면서 개최하는데, 청선곡도 이쪽 분류에 속한다. 즉, 올해 청선곡은 소규모 비무 대회를 개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올해는 아니지.”

청선곡이 비무 대회를 개최하는 것도 아닌데 전대 곡주씩이나 되는 인물이 왜 잠룡관을 찾은 것이며, 나아가서는 왜 나를 찾아온 걸까.

허죽신이 입을 열었다.

“그냥 네가 누군지 무척 궁금했다. 한 번쯤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마침 동부지맹에 들른 참에 이렇듯 잠룡관에 와본 것이다.”

“아하. 그러셨군요.”

“너는 작년에 통합 잠룡대전에서 우승을 차지했지. 그런데 그전에 동부지맹 잠룡대전 당시에는 본 곡 주최의 소규모 비무 대회에 참가했다. 그 실력이면 보상이 훨씬 좋은 다른 소규모 비무 대회들을 노려도 됐을 텐데, 굳이 본 곡에서 주최한 비무 대회에 참가했던 것이다. 별로 인기도 없는 대회였는데.”

허죽신이 바로 말을 이었다.

“그게 신기했다. 그리고 이유가 궁금했다. 물론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지. 아마도 본 곡에서 보상으로 내건 청심단이 필요하기 때문이었을 테니까. 맞느냐?”

“예.”

“너는 혈기왕성한 나이이며 신체도 매우 건강해 보인다. 일 년 전에도 당연히 건강했을 것이다. 밥만 잘 먹어도 그게 약이 되는 나이이기에 딱히 양생단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도 아니다. 한데 왜 청심단이 필요했느냐? 혹여 선물할 일이라도 있었더냐?”

“아, 제가 복용할 목적이었습니다. 양생단들 중에서는 최고로 꼽히는 게 바로 청심단이라고 들었는데 평소에는 접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한데 마침 비무 대회의 우승 보상에 있기에, 호기심에 복용해 보고자 참가했던 겁니다.”

“호오. 그래? 그래서, 복용해 보니 좋은 것 같더냐?”

좋았다 뿐이겠습니까?

영약도 아니고 양생단을 가지고 개당 반년씩의 공력을 쪽쪽 빨았는데.

물론 그대로 대꾸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대충 둘러대자.

“다른 양생단을 복용해 본 경험이 없어서 직접 비교는 불가능한데, 느낌상으로는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한동안 머리도 맑고 몸도 상쾌하고 기운도 솟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좋은 약이라고 생각하고 복용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하.”

허죽신이 뜻 모를 미소를 지은 채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왜 저런 표정으로 보는 걸까.

노강호들이 말없이 저런 시선으로 보고 있으면 왠지 내 속내를 읽히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가뜩이나 허죽신은 풍모가 신선 같은 느낌이다 보니 더 그런 기분이다.

허죽신이 말했다.

“통합 잠룡대전 이후에도 너는 해적들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며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지. 네가 본 곡 주최의 비무 대회에 참가했던 인연 때문인지, 관련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흥미도 더 생기더구나. 그러다 보니 너에 대해 더 많이 알아보게 되었고, 여러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었다.”

“아하하······ 그렇다면 제 실력에 대한 과장된 소문들을 많이 접하셨겠군요.”

“물론 과장된 소문들도 있었겠지. 그러나 노부가 알고 싶었던 건 네 무공 실력이 아니었다. 네 무공이 띠는 성질이었지. 들어 보니 네 무공에는 백도의 무공이 띠는 특유의 정기가 거의 없는 모양이더구나.”

허죽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대강 감이 온다.

천섬무와 회회심공의 성질은, 내가 무공을 펼치는 걸 가까이서 접한 이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내 주변 사람들도 그 점에 대해 대부분은 인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네가 사마(邪魔) 계열의 무공을 익힌 것도 아니니, 결국 네가 익힌 무공은 무속성에 가까울 가능성이 매우 높지. 맞느냐?”

“그러합니다.”

내가 대꾸하자 허죽신이 몇 차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그가 흥미 가득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혹여 너는 청심단 복용으로 공력 증진의 효과를 보았느냐?”

충분히 놀랄 만한 질문이지만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덕에 표정 관리를 할 수 있었다.

사부님이 생전에 말씀하시길 도가의 유파는 수도 없이 많으며, 그중에서도 청선곡의 뿌리는 과거에 무위의 도를 추구하던 도사들의 맥과 깊게 닿아 있다고 하셨다.

그렇기에 현재의 청선곡이 어떤 성향의 도를 추구하고 있건 간에, 그들의 연단술 자체는 과거의 영향으로 인해 무속성에 가깝다는 말씀도 하셨다.

청심단의 무속성과 회회심공의 무속성이 만나면 특별한 상승 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도 하셨기에, 당시에 내가 직접 청심단을 복용하여 실험을 해봤던 것이다.

저렇게 묻는 것을 보니 허죽신도 그러한 가설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하긴, 허죽신은 전대 청선곡주다.

청선곡에서 만들어지는 약의 성질이나 효능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일 수밖에 없으며, 관련 지식에도 가장 해박한 인물일 수밖에 없다.

이렇듯 상대가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만큼, 그 앞에서 어설프게 대충 둘러대며 답을 회피해 봐야 큰 의미가 없는 상황이다. 그랬다가는 괜히 불신만 안겨줄 것이다.

하여간 이래서 노강호들을 상대하는 일은 만만치가 않다.

“그러합니다.”

“호오. 역시 그랬던가.”

내 대답을 들은 허죽신이 그렇게 대꾸하더니, 시선을 먼 곳에 두고는 혼자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잠시 그러고 있던 허죽신이 내게 물었다.

“청심단 하나를 기준으로 공력 상승은 어느 정도나 이뤄졌는지도 말해줄 수 있느냐?”

왠지 공력 상승 효율에 관한 수치는 많이 낮출 필요가 있어 보인다. 느낌상 그렇다.

약효를 높이는 회회심공 특유의 성질을 감안할 필요도 있다.

“대충 네 개에 일 년 공력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원래는 하나에 반년 공력이었으니 두 개에 일 년 공력이다. 그걸 반으로 깎아서 얘기한 것이다.

그 말에 허죽신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헛! 그렇게나······!”

역시나 반으로 깎아서 얘기하기를 잘했다.

잠시 후 허죽신이 다시 입을 열었다.

“놀랍구나. 네 심법이 추구하는 무위의 도가 그 정도로 높은 수준이라니. 이렇게 되니 네가 어디에서, 내지는 어떤 분에게서 사사했는지도 궁금해지는구나.”

“송구합니다만 그것까지 말씀드리기는 어렵겠습니다. 사부님께서 밝히는 걸 금하셔서······.”

허죽신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일인전승이냐?”

“예.”

사형제들은 많았지만 사부님한테서 그 무공을 배운 사람은 나뿐이다.

그게 일인전승이지 뭐.

송유하가 다구를 들고 방으로 들어섰다.

허죽신이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송유하를 칭찬하며 말했다.

“오오! 향도 맛도 참으로 좋구나. 평소에도 이 농도와 이 온도로 내오느냐?”

“예. 되도록 그리하려고 노력합니다.”

“훌륭하구나.”

나도 마셔 봤는데 이 차가 저렇게까지 칭찬받을 정돈가 싶다.

그냥 맛과 향이 평소와 비슷하다는 정도는 알겠다.

참고로 나는 다도에는 문외한이라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허죽신의 경우에는 약초나 약재 분야에 매우 밝을 수밖에 없을 테니 금방 저런 걸 느끼는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 차 내는 법은 어디에서 배웠는고?”

“어머니한테서 배웠습니다.”

“훌륭한 모친이시구나.”

뭔가 대단한 기술이 있나 본데 역시나 나는 모르겠다.

차를 내온 송유하가 곧 허죽신에게 묵례하더니 내 거처를 벗어났다. 우리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서둘러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

한동안 차를 음미하던 허죽신이 차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게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 실은 그래서 오늘 너를 찾아온 것이다.”

“예? 갑자기 제안이라고 하시면······.”

너무 갑작스럽기에 살짝 놀랍긴 한데, 어쨌거나 이제부터가 본론이라는 거겠지.

“내 제안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사전 설명이 필요하다. 잠시만 들어줬으면 한다.”

“그리하겠습니다.”

허죽신이 차 한 모금을 마시더니 고개를 들어 먼 공간을 바라보았다. 그가 그 상태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본 곡의 일대제자 두 명이 죽었다.”

“헛.”

당황스럽다.

갑자기 이렇게 심각한 이야기라니.

“현 곡주인 내 제자의 애제자들이었지. 내게는 사손들이고. 그중 한 녀석은 다음 대 곡주 자리를 물려받을 장문제자였고, 다른 녀석도 장문제자 못지않게 뛰어난 아이였다. 우리 일대제자들 중에서는 그 둘이 가장 빼어났다. 둘 다 성실한 성격에 성품도 좋았고.”

그런 사람들이 죽었다니, 대체 무슨 일이었을까.

“아, 내가 아이라는 말을 쓰니 오해할 수 있을 듯한데, 그 둘은 올해 나이가 각각 서른아홉, 서른여섯이었다. 녀석들이 어렸을 때부터 봤기에 내 눈에는 여전히 아이들이었던 게지.”

“한데 어쩌다가 그런 불상사가······.”

“그 두 명은 제 사부의 심부름으로 무림맹 합비지부에 가 있었다. 한데 하필 그때 혈교의 침공이 있었던 것이다. 무림맹의 수많은 지부들이 일시에 공격당했던 바로 그날이다.”

“헛! 그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위로의 말을 덧붙였다.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허죽신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조사해 보니 그 두 녀석은 사태가 벌어진 초반에 퇴각하다가 혈교 측 인원들 몇 명에게 포위되었다고 하더구나. 목격담과 증언을 들어 보니 당시에 그 두 녀석을 포위했던 적들은 일곱 명으로, 절정의 초반으로 추측되는 자들 네 명에 일류의 후반으로 추측되는 자들 세 명이었다고 한다.”

절정의 초반 넷에 일류의 후반 셋.

내 입장에서는 쉬우나, 일반적으로는 만만치 않은 구성이다.

무공이 고강하지 않은 이상 두 명이 상대하기에는 버거운 전력일 수 있다.

가뜩이나 기습을 당한 입장이니 전체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평소의 실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참고로 그 두 녀석은 경지가 절정의 중반이었다.”

“아, 절정의 중반······, 예에?”

무심코 맞장구를 쳐주던 나는 순간적으로 눈매를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둘 다 절정의 중반쯤이었다면 아까 포위했다던 혈교의 전력들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게 돌파할 수 있어야 정상이다.

모두를 처치하거나 제압하는 것도 아니고, 순간적으로 틈을 만들어 돌파하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경지가 경지인 만큼, 아무리 실전 경험이 없다 해도 평소에 수련만 꾸준히 해 왔다면 웬만해서는 가능했을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상식선에서는 그렇다.

즉시 허죽신에게 되물었다.

“포위했었다는 혈교 놈들이 혹여 비열한 술수라도 썼습니까? 경황 중에는 생각지도 못한 암습 등에 당할 가능성도 높은지라······.”

그러자 허죽신이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아니. 그런 건 없었다. 두 녀석은 그냥 너무 당황해서 제대로 대처도 못 해 보고 어버버하다가 죽은 것이다. 조사를 통해 소상히 밝혀진 바이며, 많은 이들의 증언도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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