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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250화 (250/416)

내 안에 마교있다 250

그날 오후, 우문직은 결국 패자전에서 기정산을 상대로 승리하며 최종 진출전에 올랐다.

최종 진출전은 십육강 패자전에서 승리를 거둔 관도들 네 명과, 팔강에서 패배했던 관도들 네 명 간의 대결이다.

이 최종 진출전을 통해 남아 있는 통합 잠룡대전 진출권 넉 장의 주인이 가려지게 된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었다.

동부지맹 잠룡대전의 구 일 차다.

구 일 차의 오전에는 최종 진출전이 펼쳐지고, 오후에는 순위 결정전이 펼쳐진다.

오후에 펼쳐지는 순위 결정전은 진출이 확정된 관도들 중에서 하위권인 오 위부터 팔 위까지의 순위를 가리는 시합이다. 일 위부터 사 위까지의 순위 결정전은 내일 오전에 펼쳐진다.

순위 결정전은 어차피 진출이 확정된 관도들끼리 순위만 정하는 대결이기에 그다지 중요한 시합들은 아니다.

중요한 시합은 역시 오늘 오전에 펼쳐지는 최종 진출전이다.

최종 진출전에 올라 있는 이들 중 최강자는 사옥연인데, 대진 구성상 우문직과 단목홍신, 장우혜 모두 사옥연과 만날 일은 없다. 애초에 십육강 대진에서부터 구역이 아예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친우들 세 명 모두 충분히 진출을 기대해볼 만하다.

친우들에게 중요한 시합인 만큼 나도 최종 진출전은 직접 관전하기 위해 나섰다.

단, 혼자서 조용히 관전할 생각이라 경기장에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았다.

대신 경기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나무 위에 자리 잡았다.

첫 시합은 단목홍신의 시합이었다.

단목홍신은 단목강보다 키도 더 크고 체격도 더 좋다.

단목홍신은 그러한 신체 조건을 살리기 위해 일반적인 규격의 장검보다 더 큰 검을 쓴다. 그의 검은 검신의 길이도 더 길고 두께도 더 두껍다.

그래서인지 같은 단목세가의 검술임에도 불구하고 단목강의 검술에 비해 선이 더 굵고 힘찬 느낌이다.

대결의 초반은 얼추 팽팽하게 진행되는 듯했으나, 반 각 이후부터는 승부의 추가 단목홍신 쪽으로 점점 기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결이 일각에 가까워질수록 상대는 급격하게 지쳐갔다.

단목홍신도 호흡은 어느 정도 가빠져 있으나 움직임은 여전히 힘찼다. 초반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일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승부는 더욱 급속도로 기울었다.

실력도 단목홍신 쪽이 약간 더 뛰어났는데, 체력마저 우위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양상이 된 것이다.

잠룡관에 무공 수련을 열심히 하는 관도들은 많지만, 그러는 와중에 체력 단련과 신체 단련까지 열심히 하는 관도들은 흔치 않다. 내공 만능주의 때문이다.

단목홍신은 그 흔치 않은 관도들 중 한 명이었다.

그 성과가 이런 식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단목홍신이 일각 남짓에 승부를 결정짓고 통합 잠룡대전 진출권을 확보했다.

최종 진출전의 두 번째 시합은 사옥연의 시합이었는데, 그녀는 채 반의반 각도 지나기 전에 간단하게 승부를 결정지었다.

세 번째 시합은 우문직의 시합이었다.

그는 어제 점심때 봤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움직임 하나하나, 펼치는 초식 하나하나에서 각오가 느껴졌다.

지금의 저 기세야말로 이번 대회에 임하는 우문직의 원래 기세이기도 했다.

어제의 상대는 어려서부터 특수한 관계에 있었기에 사전에 다소 흔들렸던 것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문직의 상대 또한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합숙 때부터 꾸준히 수련을 도왔던 입장에서 판단하기에 우문직이 못 이길 상대는 아니었다.

박빙의 양상으로 흘러가던 그 시합은 결국 이각(30분) 가까이 계속되다가 우문직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시합은 장우혜의 시합이었다.

상대는 도를 쓰는 남관도로, 체격이 당당했다. 장우혜가 꼬마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번 대결도 역시나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팽팽한 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일 뿐, 이건 실제로는 장우혜가 질 수가 없는 시합이다.

내 눈에는 처음부터 그게 보였다.

상대 남관도는 도법의 성취도 빼어난 편이고 도세에 담긴 힘도 강력했지만, 결정적으로 속도가 너무 평범했기 때문이다.

다른 웬만한 관도들을 상대로는 충분히 통할 속도다.

그러나 상대가 장우혜인 이상, 저 속도로는 아무리 강력한 공격을 펼쳐도 그녀를 궁지로 몰 수가 없다.

그럼에도 팽팽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장우혜가 실력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일 다경 남짓이 흘렀을 무렵, 장우혜는 상대의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며 승부를 결정지었다.

일대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환호성을 뒤로한 채 거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소충광, 우문직, 장우혜는 통합 잠룡대전을 목표로 하고 있었던 만큼, 근래에는 그들의 수련을 집중적으로 도왔었다. 그러느라 시간도 많이 쓰고 신경도 많이 썼는데, 결과적으로 세 사람 모두 진출권을 따낸 것이다.

기분 좋다.

나름의 보람도 느껴진다.

이제는 통합 잠룡대전에 가서 후회 없이 싸우고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 * *

그날 늦은 오후 무렵, 나는 고천비룡결과 풍우비룡무의 수정 보완 작업을 완료할 수 있었다.

이번 동부지맹 잠룡대전 기간에 어떻게든 마무리 짓고자 잠도 줄여가며 작업했는데, 그 노력이 빛을 본 것이다.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던 만큼 성취감이 해일처럼 몰려왔다.

이제는 이걸 송유하에게 전수하는 일만 남았다.

무공을 수정하는 일에 비하면 전수하는 일은 쉽다.

가뜩이나 송유하도 이제는 고천비룡결과 풍우비룡무에 대한 이해도가 어느 정도는 올라와 있는 상태다. 수정된 부분들에 대해 이해하고 실제로 교정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저녁 구보를 마치고 와서 씻은 후에 저녁 먹을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사립문을 열고 마당 안으로 들어서는 두 개의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유은무와 장우혜다.

참고로 동부지맹 잠룡대전이 진행되던 구 일간, 두 소녀는 한 번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었다.

장우혜는 지역 예선에 집중했을 것이고, 유은무는 그런 장우혜를 옆에서 부지런히 챙겨야 했을 것이다.

지금은 다 끝난 마당이라 이렇듯 찾아온 모양이다.

“송 오라버니, 우리 왔어요.”

마당에서 유은무의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곧장 방문을 열고는 마루로 나갔다.

“어서들 와.”

보니까 둘 다 양손에 큼지막한 보따리를 들고 있다.

뭘까 싶어서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데 유은무가 내게 물었다.

“아직 식사 전이죠? 지금쯤 구보 끝내고 씻었을 시간이니까.”

“그렇기야 한데······.”

“같이 저녁 먹어요.”

음식을 챙겨온 모양이다.

유은무가 본인이 들고 있던 보따리들을 마루에 내려놓더니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소반이랑 식기 챙겨올게요.”

서탁이 놓여 있던 자리에 둥근 소반이 놓였고, 두 소녀가 보자기에 싸 온 음식들을 소반 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보니까 잠룡관의 식당에서 챙겨온 음식들이 아니었다.

고급스러운 요리들이었다.

“이게 다 뭐야?”

내가 놀라며 묻자 유은무가 대꾸했다.

“아, 조금 전에 우혜랑 같이 밖에 나가서 사 온 거예요. 우혜가 통합 잠룡대전 진출권 따낸 날이잖아요. 송 오라버니랑 같이 맛있는 거 먹으면서 기념하고 싶었거든요.”

그러자 장우혜가 유독 커다란 마지막 보따리를 풀며 말했다.

“소소하게 기념주도 한잔하구요.”

그 순간에 마지막 보자기 안의 내용물이 드러났는데, 여러 개의 술병이 보였다. 세어 보니 아홉 병이나 되었다.

“아무리 봐도 그 정도가 소소한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소소하죠. 이 정도면 입가심만 하는 수준일 텐데.”

아, 그러셔?

“하긴 뭐, 내가 아는 누이들의 주량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매우 자제한 편이지.”

“아, 걱정하지 마세요. 거처에 더 있거든요. 이따가 측간 갈 때 후딱 갔다 오면 돼요.”

“허! 장 매도 거처에 술 쟁여놓고 살아?”

“아, 청 언니한테서 미리 사 놓은 것들이에요. 이런 날에 한 잔씩 마실 생각으로.”

그렇게 말하며 소반 위에 술잔 세 개를 올려놓는데 입이 귀에 걸리고 있다.

하여튼 이것들도 술깨나 좋아한다니까.

사실 내 입장에서도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다.

심혈을 기울였던 고천비룡결과 풍우비룡무의 수정 작업을 마친 날이기도 하고, 내가 수련을 도왔던 친우들이 모두 통합 잠룡대전의 진출권을 따낸 날이기도 하다.

술맛이 좋을 것 같다.

장우혜가 술병의 마개를 따며 말했다.

“아시죠? 저랑 은무가 평소에는 잘 안 마셔도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끝까지 마신다는 거.”

눈동자에 각오들이 단단하다.

쪼끄만 것들이 커서 뭐가 되려고 이러는지, 원.

첫잔은 장우혜를 축하하며 마셨다.

“우혜야, 통합 잠룡대전 진출 축하해!”

“축하해, 장 매.”

“고마워요.”

셋이 잔을 부딪친 후에 술을 들이켰다.

장우혜가 잔을 내려놓더니 나와 유은무의 잔을 차례로 채워주며 말했다.

“송 오라버니가 집중적으로 수련을 도와준 덕분이고, 은무가 옆에서 세심하게 챙겨준 덕분이에요. 고마워하고 있어요. 통합 잠룡대전에 가서도 최선을 다할게요.”

내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주자 이번에는 유은무가 말했다.

“송 오라버니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혜의 인기가 장난이 아니에요.”

“알아. 아까 봤거든.”

그러자 장우혜가 살짝 놀라며 내게 물었다.

“어? 시합 보러 왔었어요?”

“어. 오전에. 그래도 장 매, 우문 공자, 단목홍신 공자의 진출이 걸린 시합들이었잖아. 그 정도는 직접 봐두고 싶었거든. 어쨌거나 보니까 장 매는 여유롭던데?”

“봤으니 아시겠지만, 상대가 도법의 위력은 강력한데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아서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장우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난 한 달간 송 오라버니를 상대로 치열한 수련을 해서 그런지, 이번 대회 내내 상대방의 움직임들이 눈에 훤히 보이더라구요. 송 오라버니의 속도에 익숙해져 있던 마당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거기도 하구요.”

지난 한 달간 장우혜는 나와의 수련 시간에 하루의 모든 힘을 다 쏟아붓는 느낌이었다. 약간의 부상 정도는 개의치 않겠다는 각오였는데, 실제로 몇 차례 잔부상을 당하기도 했었다.

“지역 예선에서의 개인적인 목표는 관중들에게 제 무공 연원을 들키지 않는 일이었어요. 정체가 밝혀진다 해도 통합 잠룡대전에서 밝혀지는 편이 낫잖아요. 지금부터 정체가 알려져 버리면 당장 첫 시합 상대부터 저를 지나치게 경계할 테니까요. 일단은 삼십이강을 통과하는 게 중요할 텐데, 그 시합만이라도 상대가 저를 남궁설이 아닌, 이 년 차의 무명 여관도쯤으로 인식해주면 좋은 거잖아요.”

통합 잠룡대전의 수준은 지역 예선의 수준과는 천지 차이다.

아무리 장우혜라 해도 남궁세가의 무공을 쓰지 않고는 성적을 낼 수가 없다. 그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기에 저런 말을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무공 연원을 들키지 않고 진출권을 따내기는 했는데, 팔강에서 주경명 공자를 만났을 때는 약간 위험했어요. 객관적으로 아직은 제가 이기기 어려운 상대라는 걸 알면서도 진심으로 상대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들더라구요. 호승심이라고 하기보다 주 공자 같은 실력자를 상대로는 내가 어디까지 통할지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고 할까······. 다행히 그 충동을 참아내긴 했지만요.”

장우혜의 눈빛에서 정제된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실력을 시험해 보고 싶다는 식으로 말하긴 했으나, 실제로는 주경명을 상대하는 와중에 모종의 각이 보였던 모양이다. 본인이 전력을 다하면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고 여긴 것이다.

장우혜는 자존심은 세도 본인의 실력을 과신하며 자만하는 성격은 결코 아니다.

즉, 근거가 있기에 저러는 것이다.

장우혜는 단목강이 절정에 오르던 순간의 모습을 직접 보고는 큰 자극을 받았었다.

당시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절정에 오르고 싶은 강렬한 열망을 느낀다는 말도 했었다.

애가 그때 이후로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졌다.

장우혜는 남들처럼 앞길이라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막연히 걸어가는 게 아니라, 본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또렷하게 직시하며 당당한 발걸음으로 전진하는 느낌이다.

유은무에게 물었다.

“올해도 통합 잠룡대전에 귀빈으로 초청받았겠지?”

“네.”

“올해도 가겠지? 가뜩이나 장 매가 출전자로 참가하게 된 마당이기도 하니까.”

“아뇨. 할아버지가 올해는 그냥 잠룡관에 머물라고 하시네요. 강호가 어수선한데 괜히 위험을 자초할 필요가 있겠냐고 하셔서, 할아버지 말씀을 따르기로 했어요.”

“아.”

“그래서 이번 동부지맹 잠룡대전 기간에 우혜를 더 열심히 챙겼던 것이기도 해요. 통합 잠룡대전에 같이 가서 챙겨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게 됐으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여주자 유은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혜 없는 동안에는 연월이랑 원무뚝이랑 수련하면서 지낼까 해요.”

다들 계반이니 수련 시간 맞추기도 편할 것이다.

그러자 장우혜가 내게 말했다.

“저 없는 동안 은무 좀 잘 좀 부탁드려요. 바쁘신 건 알지만 성취도 틈틈이 한 번씩은 봐주셨으면 해요.”

내가 수긍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유은무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대꾸했다.

“하지만 송 오라버니랑 단둘이서 수련하면 음······ 음······ 너무 설레서 오히려 수련이 안 될 것 같기도······. 헤헤.”

그 모습을 본 장우혜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더니 술을 들이켰다.

이후에도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계속 술을 마셨다.

중간에 장우혜는 측간에 다녀오겠다며 양손에 묵직한 보자기들을 들고 왔다. 예고했던 대로 모두 술이었다.

두 소녀가 알아서 잘 재잘거려 주니 술을 마시는 내내 즐거웠다.

두 소녀와 이러고 있는 시간이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함께 있을 때 조금도 불편하지 않은, 서로가 어느새 이런 사이가 된 것이다.

자정 남짓 되었을까.

취해서 흐느적거리던 장우혜가 방바닥에 쓰러지자 유은무가 손가락질하며 깔깔거렸다.

“푸히히! 약해 빠져선······.”

얘야, 보니까 너도 지금 혓바닥 상태가 거의 맛이 갔단다.

“자, 자, 누이들, 취한 것 같으니까 다들 이제 거처로 돌아가자.”

애들 상태가 저 모양이니 내가 부축해서 바래다주든지 해야 할 것 같다. 참고로 나는 진즉부터 그만 마시자고 했는데 두 소녀가 끝까지 마셔야 한다며 고집을 부려서 이 지경이 된 것이다.

유은무가 반쯤 감긴 눈으로 대꾸했다.

“가야져······. 근데······, 저도······, 졸려여······.”

그러자마자 유은무의 상체도 옆으로 허물어졌다.

“잠깐! 잠깐, 누이들! 일어나! 일어나라고! 누이들 거처에 가서 자야지!”

“우웅······.”

황급히 장우혜와 유은무의 어깨를 흔들며 깨워 봤지만 두 소녀는 어깨를 비틀며 방바닥에 계속 들러붙을 뿐이었다.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하아······.”

술을 못 이기고 너덜너덜 쓰러져서 잠든 모습들이라 그다지 예쁘거나 귀여워 보이지도 않는다.

그나저나 이 일을 어쩐다?

데려다줘야 할 텐데, 몸도 못 가누는 애들이라 한꺼번에 업거나 안아 들 수가 없다. 이건 한 명씩 업어서 데려다줘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나도 상당히 마셔서 그런지 순간적으로 귀찮음이 몰려왔다.

결국, 벽장에서 여분의 침구를 꺼내어 방 윗목에 깔았다. 참고로 아랫목에는 술상도 있고 술병도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다.

베개까지 갖춰 놓은 후에 장우혜를 먼저 안아 들고는 펼쳐 둔 침구 쪽으로 옮겼다.

“우웅······.”

내가 안아 들자 장우혜는 본인의 상체를 말며 고개를 내 어깨 쪽에 밀착시켰다.

슬쩍 내려다보니 그 모습이 귀엽기는 하다. 물론 술 냄새는 풀풀 나고 있지만.

장우혜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후에는 유은무를 안아 들었다. 안아 들자마자 유은무는 양팔로 내 목덜미를 감싸며 달라붙었다.

“헤헤······.”

맨정신이 아닌 상태에서도 특유의 성격이 잘 드러나고 있다.

역시나 이 모습도 귀엽기는 하다. 물론 얘도 술 냄새는 풀풀 나고 있지만.

유은무도 장우혜 옆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는 덮는 이불을 가져와서 적당히 덮어줬다.

이후에 아랫목의 술판을 보니 심란했다.

치울까 하다가 그냥 포기하고는 내가 평소에 쓰던 침구를 챙겨서 마루로 나갔다.

요즘은 야외 취침하기에도 좋은 날씨라, 나도 금세 잠들었다.

다음 날 새벽 구보를 위해 내 거처에 들른 송유하는 내 방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난리 상황을 목격하고 기겁했다. 윗목에 널어져 있는 두 소녀의 모습 때문에 더 기겁했을 것이다.

송유하는 구보 전에는 내 방을 빠르게 정리해 주더니, 구보 후에는 식당에서 우리 세 명이 해장할 만한 음식들을 챙겨다 주기까지 했다.

관대한 송유하의 배려 덕에 두 소녀는 내 방에서 해장까지 완료하고는 각자의 거처로 복귀했다.

* * *

동부지맹 잠룡대전이 마무리된 날로부터 사흘 후, 통합 잠룡대전의 참가자들이 본맹을 향해 떠났다.

예고되었던 대로 호위대의 구성은 매우 탄탄했다.

동부지맹의 전력과 본맹의 전력이 합해진 호위대였다.

본맹 측에서는 최정예인 천무대 한 조와 정예인 지협대 한 조씩을 호위 전력으로 보내왔다. 동부지맹뿐만 아니라 다른 지맹에도 같은 전력을 지원했다고 들었다.

동부지맹 측에서는 남궁찬과 백송학이 호위대에 포함되었고, 정예인 동검대의 무인들 중에서도 최고 실력자들 스무 명이 차출되어 동행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통합 잠룡대전의 참가자들과 직접 관련이 있는 세가와 문파들에서도 알아서 정예 무인들을 파견했다.

이를테면 단목세가, 검각, 합비주가, 우문세가 같은 곳들인데, 후손 또는 제자가 위험해질지도 모르는 만큼 적극적으로 정예 무인들을 파견한 것이다.

물론 남궁세가에서도 무인들을 파견했는데, 실제로는 장우혜 때문에 파견되었겠지만, 대외적으로는 남궁찬의 요청에 따라 파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전력들은 호위대의 전후방에서 첩보와 지원 역할을 한다는 모양이다.

호위를 받는 관도들 또한 약자들이 아니라 통합 잠룡대전에 출전할 정도로 실력이 있는 관도들이다.

즉, 구성원 모두가 최정예 내지는 정예들이다.

만에 하나 이런 전력이 공격을 받아서 궤멸당한다면, 그건 이 강호에 더는 안전한 곳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렇듯 온 강호의 이목이 네 지맹의 호위대에 쏠려 있는 상황에서, 평범한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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