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57
윤단영의 말을 들은 제갈수광이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윤단영이 합류한 게 현실이니 굳이 더 티격태격할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스스로 정리한 것이다. 고급 전력으로서의 윤단영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대강의 분위기가 정리되자 도예주가 말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을 테니 일단은 들어가셔서 짐들을 풀고 휴식을······.”
도예주가 말을 끝맺지 못한 이유는 현관문 밖에서 또다시 인기척이 일었기 때문이다.
그 직후, 현관문이 열리더니 또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여인이었다.
이 여인 또한 면사가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나는 그녀가 들어서자마자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장우혜, 아니 남궁설이었기 때문이다.
얘, 뭐야?
얘가 지금 제정신인가?
여기가 어디라고 쫓아왔단 말인가.
놀란 와중에도 자연스럽게 남궁찬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남궁찬이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당신, 지금 제정신이오?
어떤 임무인지 모르지 않을 텐데 어찌하여 어린 누이를 데려온단 말이오?
곁눈질로 슬쩍 눈치를 보니 제갈수광도 남궁찬을 바라보고 있다. 그도 면사를 쓰고 있는 남궁설의 정체를 알아챈 것이다.
제갈수광도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다.
물론 남궁설이 실력 면에서 이번 토벌대에 못 낄 실력은 아니다.
일류고수라도 남궁세가의 검술을 익힌 만큼 단단한 피부를 상대로도 어느 정도는 검이 통할 것이다. 게다가 남궁설은 기본적으로 속도도 빨라서 쉽게 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본대 쪽에 참여하는 것과 이 특수작전조에 참여하는 것은 얘기가 아주 다르다.
특수작전조는 적진을 종횡무진 누빌 테니, 위험성도 그만큼 높다. 사소한 실수만으로도 큰일 날 수가 있다.
그 사실을 남궁찬도 당연히 알 텐데 왜 남궁설을 이쪽으로 데려왔단 말인가.
남궁설이 면사가 달린 모자를 벗자 차갑고 고고한 미소녀의 용모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년 통합 잠룡대전 당시에도 봤지만, 다시 봐도 눈이 번쩍 뜨일 수밖에 없는 용모다.
남궁설이 미소를 보이며 제갈수광에게 예를 취했다.
“교관님, 안녕하셨어요.”
“그래. 어서 오너라.”
제갈수광이 대꾸하자 남궁설이 나와 길초량, 도예주에게도 차례로 눈인사를 건넸다.
그즈음 제갈수광의 시선은 다시금 남궁찬 쪽으로 향한 상태였다. 남궁설을 반갑게 맞아준 것과는 별개로, 남궁찬에게는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다.
나도 동감이다.
그 의미를 알아챘는지 남궁설이 제갈수광에게 말했다.
“제가 자원한 거예요.”
그 말에 제갈수광이 남궁설을 일별하더니 또다시 남궁찬을 바라봤다.
아무리 애가 자원했기로서니 그걸 왜 허락했느냐는 의미의 시선이다.
그러자 남궁설이 제갈수광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당연히 우려가 크실 수밖에 없다는 거,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교관님, 믿어주세요. 위치 잘 잡고, 주변 잘 살피며, 결코 조직력에 누가 되는 일이 없게 할게요. 최선을 다할게요.”
목소리에 간절함이 담겨 있다.
제갈수광이 시선을 돌려 남궁설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네가 이곳에 왔다는 건 가문의 허락이 있었다는 뜻이고 윗선에서도 승인이 났다는 뜻이겠지. 내게는 네 합류를 허가하고 말고 할 권한이 없으니, 네가 내 앞에서 그런 식으로 사정할 필요도 없다. 나는 그저 교관의 입장에서, 지금의 네가 감당하기에는 이 사안이 다소 위험하지 않을까 싶어 염려할 뿐이다.”
제갈수광이 호흡을 한 차례 정리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동료로서 함께 잘해 나갈 생각을 해야겠지. 참고로 나는 네 역량과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교관으로서 계속 지켜봐 왔기에 네 탁월함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너라면 잘 해낼 것이라 믿는다.”
제갈수광의 의도를 알 것 같다.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이왕이면 애가 부담감을 털고 긍정적인 심정으로 임할 수 있게끔 어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남궁설이 환한 표정을 짓더니 제갈수광을 향해 곧바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도예주가 정리하듯 남궁찬에게 물었다.
“혹여 아직 안 들어온 조원이 더 있나요?”
“아니오. 설아로 끝이오.”
“그렇다면 우리 조원은 총 아홉 명인 거군요. 대강의 인사는 끝난 것 같으니 이제 짐들 풀까요?”
방금 도착한 인원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도예주가 길초량에게 말했다.
“여자분들은 내가 안내할 테니 남자분들은 초량이가 안내하도록 해.”
“예.”
도예주와 길초량이 방금 도착한 인원들을 이끌고 안쪽으로 향했는데, 그중에서 남궁찬만이 올라가지 않고 남았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갈수광과 나, 남궁찬만 현관 쪽에 남게 되었다.
그 상태에서 남궁찬이 조용히 말했다.
“염려 끼쳐서 죄송합니다, 형님.”
“죄송할 일도 많다.”
제갈수광이 신경 쓰지 말라는 표정으로 대꾸하자 남궁찬이 한 차례 호흡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본맹에 있을 때 몇 차례 좋은 말로 만류했는데도 고집을 피우더군요. 그래서 혼을 냈어요. 제가 지금껏 설아를 혼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크게 혼쭐을 내면서까지 말리려 했던 거죠. 그런데도 받아들이지 않더라고요.”
남궁찬이 바로 말을 이었다.
“계속 그러다가는 손찌검이라도 하게 될까 봐, 일단은 참은 후에 바로 아버지한테 가서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가셔서 따로 설아랑 대화를 나누시더군요. 그러더니 허락해 버리신 겁니다.”
남궁세가주인 남궁벽이 그의 늦둥이 딸을 얼마나 아끼는지는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런 남궁벽이 이 일을 허락했다니 매우 의외다.
우리가 의아해하자 남궁찬이 말했다.
“남궁세가의 핏줄이 죽음을 각오한 결기를 보일 때는 막는 게 아니라고 하시더군요. 아버지의 조부님, 그러니까 제 증조부님께서 생전에 종종 하신 말씀이라는데, 설아의 결기를 보니 딱 그 말씀이 떠오르더랍니다. 그래서 허락하셨답니다.”
“음······.”
제갈수광이 침음을 삼키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찬의 증조부는 당대의 천하제일인이었던 검황 남궁성이다.
검황 남궁성은 남궁벽의 조부인 만큼, 현 남궁세가의 일원들에게는 심정적으로 매우 가까운 영웅이자,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선조일 수밖에 없다.
남궁벽이 그런 남궁성까지 거론하며 결정을 내렸다면 그걸로 얘기는 끝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갈수광도 저런 반응인 것이다.
참고로 검황 남궁성의 뒤를 이어 천하제일인으로 등극한 분이 바로 사부님이다.
제갈수광이 남궁찬에게 말했다.
“아까도 비슷한 얘기를 했지만, 그 아이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네. 교관 일을 하며 오랜 기간 수많은 재능을 봐왔는데, 그 아이는 그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재능이야. 잘 해낼 거야.”
“세 손가락에 꼽는다고 하시니 갑자기 궁금해서 그러는데, 첫손가락이 혹시······.”
남궁찬이 흥미로워하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며 내게 시선을 뒀다.
제갈수광이 눈매를 찌푸린 채로 나를 일별하더니 대꾸했다.
“굳이 답하고 싶지 않군.”
의미를 모를 리 없는 남궁찬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밀히 말해서 지금의 나는 재능 덕분에 이렇게 된 게 아니기에, 저런 얘기를 들으면 어색한 기분이 든다.
제갈수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임무 수행 중에 우리가 조금씩만 신경 써 주면 웬만한 상황에서는 그 아이도 별 탈 없을 거야. 물론 우리마저도 안위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은 논외로 쳐야겠지. 뭐, 혹여 그런 상황이 된다 해도 우리에게는 하나의 추가 안전장치가 더 있기도 하고.”
제갈수광이 내게로 시선을 주며 말을 마쳤다.
내가 추가 안전장치라는 의미이며, 혹여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알아서 남궁설의 안위를 우선으로 여기라는 일종의 지시이기도 하다.
남궁찬이 빙그레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주 믿음직스러운 안전장치인데요?”
시선은 나를 보고 있지만 제갈수광에게 말한 것이다.
제갈수광이 대꾸했다.
“싸울 때 보면 설렁설렁 노는 것 같긴 해도, 급박한 상황에서는 또 가장 믿음직한 녀석이기도 하거든. 뭐, 같이 싸우다 보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금방 알게 될 거야.”
이보쇼! 설렁설렁 논다니요! 싸울 때 내가 얼마나 열심히 전체를 살피며 지원하는데!
“아하하, 그런 식으로 제 역량을 너무 신뢰하시는 건 곤란할 수도······.”
내가 민망함 가득한 미소를 보이며 그렇게 대꾸하자 남궁찬이 말했다.
“잘 부탁한다, 유겸아. 아니, 동천비룡.”
“컥······!”
별호로 불리는 게 여전히 어색하여, 이런 식으로 훅 들어오면 참으로 당황스럽다.
제갈수광이 씩 웃는 표정으로 우리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아하. 그러고 보니 동천쌍룡이라 불리는 동천뇌룡과 동천비룡이 한 조에 포함된 것이군. 이 생각을 하고 보니 든든한데?”
놀리는 느낌으로 일부러 과하게 추켜세우는 어조라, 나와 남궁찬은 민망한 미소를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남궁찬이 말했다.
“저도 이제 가서 짐 정리해야겠네요.”
“그래. 어서 가 봐.”
“특수작전조도 어차피 토벌대의 본대가 움직이는 속도에 어느 정도 맞춰야 해서, 우리의 출발은 이삼일 후일 거예요. 그렇다면 오늘 저녁에는······?”
남궁찬이 마지막에 손으로 술잔 꺾는 동작을 취하며 말을 마쳤다. 제갈수광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고 있다. 당연히 술 마시자는 의미다.
하여튼 틈만 나면 술타령들이다.
제갈수광이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지은 채로 대꾸했다.
“내, 온 강호를 통틀어 나만큼이나 올바른 애주심을 견지한 이는 아우 말고는 본 적이 없네.”
올바른 애주심이라니. 별말을 다 들어 본다.
“형님 따라가려면 우제가 많이 부족하죠. 꾸준히 정진하겠습니다.”
“역시 아우는 자세부터가 남다른 사람이라니까.”
이 인간들 쿵짝 잘 맞는 것 보소.
남궁찬이 말했다.
“아, 지내 보니 송학이도 애주심이 상당합니다. 이따가 함께하시죠.”
백송학과 붙어 다니더니 호칭도 편하게 하는 사이가 된 모양이다.
제갈수광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남궁찬이 행랑을 들고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단목강의 방으로 향하자 그가 짐 정리를 하다가 나를 맞았다.
“어서 오시오, 송 공자.”
“아까는 경황 중이라 우승 축하 말씀도 못 드렸습니다. 그래서 축하한다는 말씀 드리러 왔습니다.”
“하하,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한테서 축하를 들으면 왠지 민망한 기분이 드는구려. 어쨌든 축하해줘서 고맙소.”
결과적으로 통합 잠룡대전에 참가한 이들 중에서 단목강만 절정고수였다. 그래서 저런 얘기를 하는 것이다.
“조장님이 공짜로 절정고수가 된 것도 아닌데, 민망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하하, 알았소.”
웃으며 대꾸하는 단목강을 향해 궁금했던 걸 물었다.
“아, 참. 소무상단이라고 했던가요? 복용하셨을 텐데, 효능은 어땠습니까?”
작년에 나는 우승자 부상으로 영약인 소성심단을 받았었는데, 올해의 우승자 부상도 영약이었다.
그게 바로 소무상단이다.
소요곡에서 이번 통합 잠룡대전의 부상으로 지원한 영약으로, 무상단이라는 영약의 작은 형태라서 소무상단이다.
백송학의 말에 따르면 소요곡은 앞으로도 백도 무림과 능동적으로 교류할 계획이라고 했는데, 그러한 마음을 보이는 차원에서 통합 잠룡대전의 우승 보상으로 소무상단을 지원한 것 같다.
길초량한테서 들은 얘기에 의하면 이번 통합 잠룡대전의 폐회사에서 맹주 운천흠이 소요곡을 언급했다고 한다.
신비 문파인 소요곡이 강호에 다시 등장했고, 앞으로도 꾸준히 무림맹과 협조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로 인해 요즘 강호인들이 혈교 얘기 다음으로 많이 하는 얘기가 소요곡 얘기라고 한다.
참고로 소요곡주는 통합 잠룡대전 당시에 세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모양이다.
단목강이 대꾸했다.
“아, 오륙 년 정도의 공력을 얻을 수 있다고 들었는데, 내 경우에는 육 년 가까운 공력을 확보할 수 있었소.”
“오호. 축하드립니다.”
“고맙소. 참고로 백송학 선배님한테서 소요곡에 대한 얘기를 들었소. 송 공자에게는 이미 얘기했다고 하시더구려.”
“아.”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단목강이 다시 입을 열었다.
“백 선배님은 이번에 같이 온 조원들 모두에게 밝히셨소. 나머지 조원들에게도 밝힐 생각이라고 하시더구려. 같이 목숨 걸고 싸울 인원들이니, 그 정도는 밝히는 게 옳다며.”
어차피 백송학과 포연월 모두 절박한 이유로 정체를 감추고 있는 게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백도 무림과 교류하는 게 목적인 만큼, 상황에 따라 이런 식으로 정체를 밝혀가려는 모양이다.
어차피 지금은 맹주 운천흠에 의해 소요곡의 존재가 널리 알려진 마당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