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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258화 (258/416)

내 안에 마교있다 258

단목강은 이후에도 통합 잠룡대전에서 겪고 느꼈던 여러 이야기를 내게 들려줬다.

짐 정리를 하면서 얘기해 주기에 나도 그의 짐 정리를 약간씩 도와주며 들었다.

작년에 통합 잠룡대전을 겪어 본 덕분에, 단목강의 얘기만 들어도 마치 직접 본 것처럼 느낌이 생생했다.

대강의 이야기를 들려준 단목강이 말했다.

“다른 지맹의 관도들이 송 공자의 안부를 많이들 묻더구려. 작년에 출전했던 관도들은 대부분 송 공자의 안부를 물어 왔소. 우리와 친한 황보충 공자, 악미조 소저, 모용리 소저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서부지맹의 선의림 공자와 제갈건 공자도 송 공자에게 특별히 안부 전해 달라며 내게 부탁하더구려.”

“하하, 그렇습니까.”

“우승한 덕에 이번 대회에 새로 출전한 관도들과도 이야기를 나눌 일이 많았소. 그들도 내게 송 공자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어보더구려. 기동타격조 당시에 송 공자가 펼쳤던 활약상이 다른 지맹 쪽에도 많이 퍼진 모양이오. 참고로, 그들은 송 공자를 ‘송유겸 공자’라고 부르지 않고 다들 ‘동천비룡 소협’이라고 불렀소. 동천비룡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고 할까.”

“컥······!”

별호만으로도 민망한데 거기에 소협이라는 호칭까지 붙었다니.

나는 체념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고, 단목강은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단목강과 나눌 이야기는 모두 나눴기에 저녁때 보자는 말을 남기고는 그의 방을 나섰다.

내 방으로 돌아와서 잠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남궁설의 목소리가 들렸다.

“송 오라버니, 안에 있어요?”

“어? 어, 들어와.”

곧 문이 열리더니 남궁설이 안으로 들어섰다.

“아까 제대로 인사도 못 나눠서요.”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며 자리를 권했고, 우리는 창가에 있는 작은 탁자를 마주하고 앉았다.

면구를 벗은 남궁설의 본래 용모가 아직은 적응이 잘 안 된다.

장우혜의 얼굴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갑자기 과하게 아름다운 용모로 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잠룡관에서 선우린이 면구를 벗었을 때도 초반에는 이런 느낌이었었다.

미소를 보이며 남궁설에게 말했다.

“처음 출전한 통합 잠룡대전에서 팔강이라니. 축하해, 장 매. 아니지, 참. 이제는 남궁 매라고 해야지.”

“고마워요.”

“이 년 차가 통합 잠룡대전의 팔강에 진출한 건 매우 드문 일이라지?”

“들어보니 큰 오라버니도 이 년 차에 팔강까지 진출했었대요. 그럼에도 여기저기에서 여관도로서는 제가 최초라는 둥, 여관도가 이룬 결과라서 더 대단하다는 둥 추켜세우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던데, 개인적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는 않아요. 아시다시피 대진운이 좋았던 덕에 가능했던 결과라서.”

남들의 보기에는 충분히 대단한 결과를 만들었음에도 정작 본인은 만족스러워하는 느낌이 없다.

얘답다는 생각이 든다.

내 느낌이지만 얘는 설령 우승한다 해도 크게 기뻐할 것 같지 않다. 나와 단목강이 그랬듯.

“송 오라버니에게는 특별히 더 감사하고 있어요. 송 오라버니와의 집중 수련이 없었다면 애초에 통합 잠룡대전에 진출하는 것조차 빠듯했겠죠. 그리고 막상 통합 잠룡대전에 가서 보니까, 송 오라버니와의 치열했던 수련에 비하면 상대 관도들의 움직임이 그다지 대단치는 않더라구요. 제가 통합 잠룡대전에 가서 이런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건 모두 송 오라버니 덕분이었다는 뜻이에요.”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

내가 대꾸하자 남궁설이 잠시 내 눈치를 살피더니 말했다.

“······그리고 호칭 말인데, 성으로 남궁 매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그냥 설 매라고 불러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에 내가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로 남궁설을 가만히 바라보자 그녀가 내 시선을 살며시 피하며 입을 열었다.

“기, 길잖아요. 저······, 성이 두 글자라서.”

서둘러 핑계를 대는 듯한 분위기다.

볼에 홍조도 살짝 피어 있다.

남궁설에게 말했다

“확실히 친구는 닮나 보네. 린 매랑 똑같은 요구를 하는 걸 보니.”

“아, 린아도······.”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궁설이 곧장 물었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린아는 잘 지내고 있어요? 당연히 린아도 정체가 드러났을 텐데.”

“뭐, 인기 폭발이지. 여관도들은 어떻게든 친해지고자 여기저기에서 말을 걸고, 남관도들은 린 매 얼굴 한번 보려고 주변을 기웃거리고. 그나마 남관도들은 특별한 용무 없이 여관도들의 거주 구역에 드나들 수 없다는 점이 다행이라고 할까.”

상황이 빤히 그려진다는 듯 남궁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룡삼화도 곧장 잠룡오화로 바뀌었어. 린 매도 린 매지만 통합 잠룡대전에서 드러난 설 매의 미모에 대한 소문도 이미 퍼질 대로 퍼진 상황이라.”

동부지맹의 남관도들의 미(美)에 대한 기준은 결코 타협이 없었다. 때문에 동부지맹 잠룡관의 남관도들은 작년부터 올해까지 강하령, 단목지, 송유하로 대표되는 소위 ‘잠룡삼화 체제’를 계속 고수해 왔었다.

그랬던 게 선우린과 남궁설의 등장으로 즉시 잠룡오화가 된 것이다.

숨겨진 미소녀 포연월이 본래의 용모를 드러내면 그때는 잠룡육화가 될 테지만, 그 시점이 언제일지는 알 수 없다.

잠시 후에 남궁설이 말했다.

“뒤풀이 자리에서 조장님과 하령 언니의 소개로 황보충 공자, 악미조 소저, 모용리 소저 등과도 친분을 쌓았어요. 세 사람 모두 좋은 사람들 같았어요. 다들 송 오라버니의 안부를 매우 궁금해했어요.”

“응. 그 얘기는 조장님한테도 들었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하자 남궁설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악 소저와 모용 소저 말인데······, 북부지맹 잠룡관 최고의 미인들이라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정말 예쁘더라구요.”

“악 소저와 모용 소저도 설 매를 보고 똑같은 생각을 했을 거야.”

내 말에 남궁설이 부끄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표정이 없을 때는 차갑고 고고한 인상인데 저렇듯 미소를 지으면 더없이 싱그러운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게 신기하다.

남궁설이 말했다.

“그 외에도 많은 관도들과 인사를 나눴어요. 아무래도 제가 남궁세가의 직계다 보니, 저는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알아서 다가와서 인사를 건네더라구요. 그 와중에도 제가 계반이라는 걸 알고는 다들 ‘동천비룡 송 소협’과도 친분이 있느냐고 묻더군요.”

“아하하······.”

그놈의 동천비룡 얘기와 소협 얘기가 또 나오는군.

내가 어색하게 웃어 보이자 남궁설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고 답해줬죠. 그랬더니 다들 부러워하면서 송 오라버니의 평소 잠룡관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많이 묻더라구요. 적당한 선에서 답해 줬는데, 다들 사소한 것까지 귀담아듣는 걸 보고 많이 놀랐어요. 송 오라버니의 위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할까······.”

“하하, 무슨 위엄씩이나.”

“진짜라니까요? 송 오라버니가 없는데도 마치 송 오라버니가 같이 있는 것처럼 얘기가 많이 나왔어요.”

“하하, 그, 그래······?”

“네.”

사실, 관도들의 입장에서 나라는 존재는 상당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백도 전체에서 통용되는 공인 별호가 붙는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설령 별호가 붙는다고 해도 화제성이 있어야 그 별호가 백도 전체로 퍼져 나가기 때문이다.

한데 나는 일개 잠룡관도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별호가 붙었고 그게 널리 퍼져 나가기까지 했다. 그러니 같은 잠룡관도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관심이 깊을 수밖에 없다.

남궁설은 이후에도 한동안 통합 잠룡대전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이어갔다.

나는 적절하게 호응해주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통합 잠룡대전에 대한 이야기가 대강 마무리된 후에 남궁설에게 말했다.

“설 매, 음, 이건 약간 불편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남궁설이 대꾸했다.

“매우 위험할 수도 있는 이 특수작전조에 왜 굳이 지원했느냐, 그거죠?”

하여튼 눈치는 빨라서, 분위기만으로도 내가 말할 내용을 이미 알아챈 모양이다.

“맞아. 그 얘기야. 아까 찬 형님한테서 잠깐 들었어. 형님이 어떻게든 말렸는데도 설 매가 한사코 고집을 피웠다고······.”

내 말에 남궁설이 고개를 돌리더니 한동안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나는 조용히 기다려줬다.

잠시 후 남궁설의 고개가 다시금 내 쪽으로 돌아왔다.

이윽고 그녀의 입이 열렸다.

“나는 남궁세가 무학의 궁극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무인으로 남고 싶어요. 검황이라 불렸던 증조부를 넘어서.”

그말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추호의 흔들림도 없는, 또렷하고 당당한 눈빛.

얘는 지금 진심이다.

“남들은 이런 내 목표가 허황하다 여길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내게는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요. 합숙 당시 혈교 무리와 싸웠던 날로부터 최근에 통합 잠룡대전까지 겪으며, 나는 내가 가진 가능성이 무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내가 굳건한 마음을 갖고 노력할 때 내 내면의 잠재력이 열렬히 호응해 준다는 걸, 그 호응도가 남들보다 훨씬 높다는 걸, 나는 이번에 확실히 느낄 수 있었어요.”

남궁설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절정고수가 되고 싶다고 했었다.

이후에 그녀가 갑자기 통합 잠룡대전에 참가할 마음을 먹은 것 또한, 절정이라는 그 목표에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다가가고자 하는 방편으로서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지역 예선에서든 통합 잠룡대회에서든, 여러 실력자를 상대하다 보면 경험을 쌓기가 좋다. 뿐만 아니라 단기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위해 집중적으로 노력하다 보면 수련 효율도 자연스럽게 커진다.

즉, 통합 잠룡대전에 참가하는 게 본인의 발전을 위해 훨씬 유리하다는 판단에서 그런 결정을 한 것이다.

그리고 또렷한 목표를 세운 남궁설이 얼마나 대단한 발전 속도를 보였는지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수련을 돕는 과정에서 그 무시무시한 성장 속도를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괜히 그녀가 무신의 편애를 받는 게 아닌지를 의심했겠는가.

남궁설이 말을 이었다.

“게다가 내 주변에는 송 오라버니, 조장님, 길초량 선배님과 같은 좋은 본보기들이 있어요. 세 분은 매우 어린 나이에 절정고수가 된 역대급 후기지수들임에도 불구하고, 나태해지거나 자만하기는커녕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죠. 나는 세 분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내 옆에는 그런 분들이 있어요. 내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내면의 자극을 느낄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천혜의 환경이죠.”

남궁설이 내 시선을 응시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요즘 나는 내 모든 감각이 서서히 열려가는 신비한 기분을 느끼고 있어요. 내 내면의 세계가 큰 변화를 갈망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요. 그렇기에,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지금이 무인으로서의 나라는 존재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어요. 이런 귀한 시기를 어찌 그냥 허투루 흘려보낼 수 있겠어요.”

한 차례 호흡을 고른 뒤 남궁설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내 한계와 싸울 거예요. 내 한계를 넘을 거예요. 그러나 한계와 싸우려면 먼저 한계선을 인지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정해진 길로만 가고 안전한 길로만 가서 어떻게 그 한계선을 인지해요. 목숨 걸고 도전하려는 마음 없이 어찌 감히 검황의 성취를 넘어설 생각을 해요.”

남궁설이 말을 마친 듯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겁대가리가 없는 애라서 저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얘는 그릇이 다른 거다.

천하제일세가라는 배경에, 천부적인 재능에, 강인한 의지에, 커다란 그릇까지.

참으로 무시무시한 애가 아닐 수 없다.

남궁설에게 물었다.

“부친과 둘이서 면담했었다던데, 부친께도 그렇게 말씀드린 거야?”

“네.”

“가주께서 허락하실 만했네.”

내가 미소를 보이며 그렇게 말하자 남궁설이 약간 미안해하는 듯한 미소를 보이며 대꾸했다.

“이건 송 오라버니한테만 말하는 건데, 지금 우리 조의 구성 말이에요. 아버지가 중간에 나서서 따로 조율하신 거예요.”

“응······?”

“제갈 교관님, 백룡조장님, 송 오라버니, 길초량 선배님의 네 분이 속한 조와, 큰 오라버니, 백송학 선배님, 단목 조장님의 세 분이 속한 조가 원래는 달랐다는 뜻이에요. 제가 끼는 바람에 아버지가 중간에 조율하여 같은 조로 합쳐진 거죠.”

“아, 그래?”

“네.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저를 보호하는 게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저를 큰 오라버니와 같은 조에 넣는 게 가장 안심이 될 수밖에 없죠. 혹여 제가 위험해질 경우, 큰 오라버니가 가만히 있을 리 없으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궁설이 바로 말을 이었다.

“아버지는 거기에 안전망을 하나 더 추가해 두고 싶으셨던 거예요. 그래서 아버지가 찾은 게 바로 송 오라버니가 속한 조였어요. 송 오라버니에 대한 아버지의 믿음이 워낙 두터우시다 보니······.”

“아하하, 그, 그랬던 거였어······?”

“네. 거기에 제갈 교관님과 같은 조에 넣어 달라는 윤 교관님의 요청도 받아들여진 거구요.”

천하제일세가의 가주가 나서서 조율했다면, 무림맹의 수뇌부로서도 안 들어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위험한 임무에서 자녀들을 빼달라는 부탁도 아니고, 오히려 위험한 임무에 자녀들을 파견할 테니 조를 조금만 조정해 달라는 취지의 부탁 정도니까.

남궁설이 말했다.

“아버지가 스스로 안심하고 싶어서 그런 조치들을 취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뿐이에요. 저 개인적으로는 큰 오라버니에게도, 송 오라버니에게도 결코 민폐 끼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각오를 하고 있어요. 나는 조에 짐덩이가 되기 위해 이번 작전에 참여한 게 아니니까. 그러니까 송 오라버니······.”

남궁설이 말을 줄이며 나를 바라봤다.

내가 편하게 말하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그녀가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혹여 내가 큰 위기에 처할 경우, 송 오라버니에게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면 나를 돕되, 송 오라버니의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상황 같으면 과감하게 나를 버려요.”

이에 나는 가만히 남궁설을 바라보다가 엷은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여줬다.

“응.”

남궁설도 빙그레 웃으며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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