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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261화 (261/416)

내 안에 마교있다 261

집중적으로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남궁설의 초반 은잠술 성취는 영 신통치 않았다.

성취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더디다 보니 그녀가 이쪽으로는 그다지 재능이 없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 무공은 잘해도 은잠술에는 소질이 없는 경우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은잠술은 다른 무공들과는 궤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무공들을 펼치려면 기운을 발산해야 하는 데 반해, 은잠술을 펼치려면 기운을 최대한 안으로 갈무리해야 한다. 나아가서는 주변과 자연스럽게 동화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서는 상대방이 자신을 무생물처럼 인식되게 만들어야 한다.

참고로 남궁세가의 무공은 후반 성취에 이르기 전까지는 강맹함과 쾌속함이 주를 이룬다. 워낙 강렬하기에 비슷한 경지의 상대를 만나도 어렵지 않게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있을 정도다.

가전 무공의 성취가 한창 올라가고 있는 남궁설의 입장에서는 그 강렬함을 내면으로 갈무리하기가 여러모로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은잠술 성취가 더딘 것일 수도 있다.

그렇듯 큰 기대 없이 은잠술을 교육을 이어갔는데 사흘째였던 어제부터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감을 잡았는지, 이전까지의 모습이 마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진도가 쭉쭉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진도가 쭉쭉 나가다 보니 가르치는 나로서도 더 신나게 가르칠 수 있었다.

그리고 나흘째인 오늘은 어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도가 나갔다. 오늘까지의 성취를 놓고 보면 기초 은잠술을 떼었다고 인정할 만한 수준은 충분히 되는 듯하다.

남궁설이 제갈수광을 통해 은잠술을 배우기 시작한 건 열흘 남짓 전부터의 일이었다. 게다가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건 겨우 나흘 전부터였다.

그런데도 범재들이 한 달은 배워야 이룰 수 있는 정도의 성취를 이룬 것이다.

놀라운 성취 속도가 아닐 수 없다.

어느덧 해가 서산에 닿고 있을 무렵, 경계를 맡고 있던 단목강의 낮은 외침이 들려왔다.

“모두 북동쪽을 봐 주십시오······!”

심상치 않은 기색의 목소리였다.

남궁설의 은잠술 수련을 도와주고 있던 나는 단목강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곧장 북동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단목강이 저렇게 말한 이유를 단박에 알 것 같았다.

산 너머 먼 곳에서 붉은색과 푸른색이 섞인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도예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본대 쪽의 신호입니다. 전원, 각자의 자리를 정리하고 신속하게 전투 준비를 완료합니다. 해가 서산에 걸쳐 있으니 그 음영을 따라 은밀하게 이동하겠습니다.”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모든 조원이 각자 머물던 자리를 정리하며 무장을 갖췄다.

잠시 후, 우리는 모두가 죽립을 착용한 채 도예주의 뒤를 따라 조용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전원이 이동 진형을 유지한 채 빽빽한 산림 사이로 신법을 펼쳤다.

이동 경로상에 있던 혈교의 경계 전력 몇 명은 우리 특수사조의 선봉과 중진 선에서 신속하게 정리되었다.

나는 이동 진형의 최후방이라 나설 틈조차 없었다.

대단한 고수들과 함께하니 이런 면이 참 편하다.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상황인 만큼, 나는 기척 감지를 우선시하며 이동했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혈교의 거점에 도달하기까지 우리는 두 개의 능선을 넘어야 한다.

그중에서 첫 번째 능선을 오르는 동안에도 날은 제법 어둑어둑해졌다.

어두워진 와중에도 틈틈이 안력을 돋워 확인해 보니, 능선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적측 경계조가 배치되어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잠시 후, 도예주가 조원들을 멈춰 세우더니 모두를 가까이 모이게 했다. 그러더니 조용히 말했다.

“경로상의 첫 번째 능선인 저 능선은 혈교 거점의 경계선이며, 두 번째 능선은 방어선입니다. 방어선을 넘으면 혈교의 거점입니다.”

조원들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도예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경계선인 저 능선의 정상부에서는 혈교의 경계조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아래쪽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한데 보다시피 능선의 고지 쪽은 바위 지형입니다. 풀이나 나무 등이 별로 없기에 이제부터는 우리의 존재가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침투 사실은 곧장 다음 능선인 방어선에도 전달될 겁니다.”

도예주가 말을 이었다.

“어차피 존재가 노출될 수밖에 없다면 첫 번째 능선을 신속하게 돌파한 후 최대한 빠르게 두 번째 능선으로 향해야 합니다. 우리로서는 적 방어선의 전열이 조금이라도 덜 갖춰졌을 때 타격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그 점을 유념하고 움직여주십시오.”

조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예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는 이전에 정했던 전투 진형과 돌파 진형을 활용하겠습니다. 전투가 벌어지면 기본적으로 전투 진형을 유지하며 전진하되, 좁은 구역을 뚫고 지나갈 때는 즉시 돌파 진형으로 전환할 겁니다. 진형 전환 지시에 최대한 신속하게 반응해 주십시오.”

전투 진형은 기동타격조 당시에도 많이 썼던 진형이다.

전열과 후열의 가로 두 줄로 나누어, 전열에는 근접전에 뛰어난 인원을 배치하고 후열에는 원거리 지원이 가능한 인원을 배치하는 형태다.

특수사조의 전투 진형에서 전열은 다섯 명이며, 왼쪽부터 제갈수광, 단목강, 남궁찬, 도예주, 백송학이다.

남궁찬이 전열의 중심이다.

후열은 네 명이며, 왼쪽부터 길초량, 윤단영, 나, 남궁설이다.

돌파 진형은 세로로 두 줄이다.

선두의 남궁찬이 돌파 진형의 꼭짓점이 되고, 그다음 열부터는 두 명씩 사 열로 배치된다.

두 번째 열에는 제갈수광과 도예주, 세 번째 열에는 단목강과 백송학, 네 번째 열에는 길초량과 남궁설, 마지막 오 열에는 윤단영과 내가 위치하는 형태다.

이윽고 도예주가 지시를 내렸다.

“그럼 지금부터는 돌파 진형으로 이동합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남궁찬을 선두에 두고 그 뒤부터는 세로 두 줄을 이룬 형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삐익! 삐이이익! 삐익! 삐이이익!

우리 조의 모습이 바위 지형에 노출되자 능선 위에서 호각 소리가 들리더니, 비슷한 호각 소리가 능선을 타고 좌우로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돌파 지점으로 정한 곳을 향해 쾌속하게 나아갔다.

기척을 감지해 보니 우리가 다가가는 방향으로 적의 전력도 삼삼오오 모여드는 중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적잖은 수가 상당히 빠르게 모여들고 있는데, 우리가 목표 지점에 가까워졌을 즈음에는 스물여섯 명가량이나 모였다.

딱 보기에 우리 쪽의 머릿수가 적으니 본인들이 저지할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한데, 발산하는 기운들을 보니 일류고수 소수에 대부분은 이류무사 위주의 구성이었다. 외곽 경계조인 만큼 전력이 그리 강하지는 않다.

하긴 저런 수준들이기에 우리 조원들의 경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무모한 대응을 하는 것이겠지.

이윽고 능선의 정상 근처에 이르러 적들과의 거리가 서른 걸음 안으로 들어왔다.

그 시점에 도예주가 고개를 뒤로 돌리며 외쳤다.

“투진!”

전투 진형으로 전환하라는 의미다.

말이 끝나자마자 세로로 두 줄이었던 우리 조의 진형이 순간적으로 쫙 펴지며 가로 두 줄로 변했고, 진형 변환이 마무리된 직후에 적들과 맞닥뜨렸다.

전열에 있는 조원들의 검이 검광을 발하기 시작한 가운데, 후열의 조원들은 일제히 암기를 털어냈다.

나는 양손으로 하나씩의 쇠구슬을 튕겨냈는데, 거의 동시에 내 왼쪽 옆에서도 두 개의 쇠구슬이 발출되었다.

전투 진형이든 돌파 진형이든 내 왼쪽 옆은 윤단영이다.

길초량과 남궁설이 날린 철비정들은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적들에게로 향했고, 나와 윤단영이 날린 네 개의 쇠구슬들은 상대적으로 멀리에 있는 적들에게로 향했다.

빠박! 빠박!

내가 날린 쇠구슬 두 개가 두 놈의 머리통에 적중한 순간, 윤단영이 날린 쇠구슬 두 개도 다른 두 놈의 머리통에 적중했다.

그러자마자 윤단영의 양손에서 다시금 쇠구슬 두 개가 날아갔다. 빠른 연사 속도다.

나도 윤단영이 쇠구슬을 날린 궤적을 확인하자마자 다른 방향으로 쇠구슬 두 개를 튕겨냈다.

이번에도 우리가 날린 네 개의 쇠구슬은 적들 네 명의 머리통에 적중했다.

그쯤 되자 더는 쇠구슬을 날릴 필요가 없어졌다.

우리 앞을 막아섰던 적들 모두가 쓰러졌기 때문이다.

우리 조의 전력이 워낙 강력하다 보니 스치듯 마주친 그 짧은 순간에 적들이 정리된 것이다.

능선의 좌우에서 우리 쪽으로 달려오던 적들이 방향을 돌려 꽁지가 빠지게 도주하기 시작했다.

본인들이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상대임을 알아본 것이다.

곧 능선의 곳곳에서 전서구 몇 마리가 날아오를 때쯤, 도예주의 낮은 외침이 들려왔다.

“파진!”

돌파 진형으로 전환하라는 의미이며, 곧장 두 번째 능선으로 이동하겠다는 의미다.

조원들이 즉시 진형을 바꾸며 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발로는 부지런히 신법을 펼치며 눈으로는 옆에서 달리고 있는 윤단영을 바라보았다. 돌파 진형에서 우리는 맨 뒷줄이다.

윤단영이 나를 향해 미소를 보이더니 전음을 보내왔다.

[우리 유겸이, 내 강탄술 보고 놀란 거야?]

곧바로 그녀에게 대꾸해줬다.

[윤 교관님이 지법(指法)에도 능하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강탄술의 경지가 그 정도로 대단하신 줄은 몰랐습니다.]

강탄술은 탄지공의 형식으로 쇠구슬을 튕겨내는 기술이기에 암기술이면서 지법이기도 하다.

송유겸의 몸으로 깨어난 후 내가 만난 백도인들 중에서 강탄술을 익힌 무인은 윤단영이 처음이다. 게다가 어설픈 강탄술도 아니고 수준 높은 강탄술이었다. 제대로 익힌 강탄술인 것이다.

윤단영이 말했다.

[어렸을 때 내가 지법을 익히겠다고 하자 사부님께서 지법의 여러 기술을 직접 시연해서 보여주시더라구. 그런데 내 눈에는 그중에서 강탄술이 가장 매력적이었던 거야. 그래서 특히 열심히 익혔던 거지.]

[아하.]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하자 윤단영의 음성이 이어졌다.

[그나저나 유겸이의 강탄술 실력은 역시나 명불허전이네? 방금 보니 경지가 나보다도 더 높은 느낌이던데······.]

[하하,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내 대꾸를 들은 윤단영이 피식 웃어 보이는데, 내 말을 그다지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두 번째 능선도 첫 번째 능선처럼 고지 쪽이 바위 지형이었다.

우리가 바위 지형으로 진입하자 능선 위에서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첫 번째 능선에서 소란이 있었던 만큼, 이쪽 능선에서는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만, 화살의 정확도는 매우 떨어졌다.

우리를 견제할 의도로 수십 명가량이 화살을 날리고 있는 듯한데, 우리가 반응해야 하는 화살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이는 우리의 이동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적들의 궁술 실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돌파 진형으로 나아가던 우리는 무난하게 능선의 정상부 근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윽고 적들과의 간격이 좁혀지자 도예주의 낮은 외침이 들려왔다.

“투진!”

이에 조원들이 신법을 펼치는 중에도 신속하게 전투 진형으로 변경했다.

보아하니 이미 모여 있는 적의 수만 해도 육칠십 명은 되는 듯하다. 그런데 저들이 전부가 아니다. 이 순간에도 이곳저곳에서 적잖은 수의 적들이 이쪽으로 합류하는 중이다.

살펴보니 전력의 질도 아까와는 완전히 달랐다.

이전의 능선에서 마주쳤던 경계조는 이류무사 위주에 일류고수가 소수 끼어 있는 구성이었는데, 이곳의 방어조는 일류고수 위주에 절정고수가 섞여 있는 구성이다.

역시나 방어선은 방어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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