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73
가장 먼저 동굴을 벗어난 이들은 청룡을 앞세운 특수삼조원들이었다.
무사한지 확인하기 위해 자세히 살펴봤는데, 일부 인원에게서 잔부상 정도가 보일 뿐 다들 사지는 멀쩡한 모습들이었다.
특수삼조에 이어 동굴에서 나온 인원들은 우리 특수사조가 아닌 다른 이들이었다.
총 일곱 명인데,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우벽희가 반색하는 게 보인다. 특수이조의 조원들인 것이다.
그 일곱 명 중에서 네 명의 체형과 기척은 내게도 익숙했다. 그 네 명은 삼남일녀로, 황룡 태무엽을 비롯한 현직 황룡조원들이다. 사유 증운생 제거 작전 당시에 같이 움직였기에 이렇듯 알아볼 수 있는 것인데, 다들 그때와는 생김새가 달라진 모습이다. 용모를 바꾼 것이다.
참고로 우벽희는 사유 증운생 제거 작전에서 열외였던 모양이다. 당시에 다른 임무를 수행 중이었거나 휴가 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아까 처음 마주쳤을 때 그녀의 기척이 낯설었던 것이다.
현직 황룡조원들 외에 나머지 세 명은 처음 접하는 이들이었다.
각각 사십 대 후반의 여인, 사십 대 중후반의 사내, 사십 대 중반의 사내다.
특수삼조가 전·현직 청룡조원들로 구성된 점을 토대로 유추해 볼 때, 특수이조 또한 전·현직 황룡조원들로 구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저 세 사람은 전직 황룡조원들일 것이다.
특수이조원들 중에는 부상자가 보였다.
두 사람인데, 한 명은 황룡 태무엽이고 다른 한 명은 사십 대 후반의 여인이다.
태무엽은 왼쪽 어깨 쪽에 치료용 천을 둘둘 감고 있고, 사십 대 후반의 여인은 우측 골반을 압박하는 형태로 천을 둘둘 감고 있다.
사십 대 후반의 여인도 상당한 고수로 보이고, 황룡조장인 태무엽은 당연히 고수다. 즉, 두 사람이야말로 특수이조에서 최고 고수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두 사람이 나란히 부상을 입었다면, 거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을 것이다.
걸어 나오던 태무엽이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그와 우벽희가 짧게 전음을 주고받는 듯하더니, 곧 우벽희가 남궁설과 나를 향해 말했다.
“저희 조장님께서 찾으시니 가 봐야 할 듯합니다.”
“네. 어서 가 보세요.”
남궁설이 그렇게 대꾸했고 나도 고개를 끄덕여줬다.
우벽희가 특수이조 쪽으로 향할 때쯤, 태무엽의 시선은 내게 향해 있었다.
태무엽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내게 시선을 두었다가 잠시 후에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었다.
왜 그러시오, 아저씨? 오랜만이라 반갑소?
물론 나도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표정 없이 그를 빤히 바라봐주는 걸 잊지 않았다.
이윽고 특수사조원들이 동굴을 나서기 시작했다.
선두에서 나온 건 남궁찬이었다.
나오자마자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그가 남궁설과 나를 발견하더니 곧장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뒤이어 동굴을 나온 제갈수광과 도예주도 우리 쪽으로 다가왔고 자연스럽게 다른 조원들도 우리에게 다가왔다.
제갈수광이 가까이 다가오자마자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근처에서 피비린내가 좀 나는 것 같은데. 밖에서도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별일은 아니었습니다. 잠깐의 사소한 소란 정도였습니다.”
내가 대꾸하자 제갈수광이 두어 차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뭐, 보아하니 다들 다친 데도 없는 것 같군.”
무슨 일이 있었든 일단 무사하다면 괜찮다는 의미다.
“예.”
내가 대꾸하자 제갈수광이 나를 향해 눈매를 찡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송유겸이는 꼬락서니가 그게 뭐야? 어디 멀리 가서 혼자 비라도 맞고 왔나?”
“아하하, 그게……, 딱히 별일은 아닙니다.”
“별일 아니라고? 보아하니 온몸이 물에 빠졌던 것 같은데?”
제갈수광은 의심 가득한 눈초리였다.
그러자 남궁설이 대꾸했다.
“너무 빠른 속도로 경공을 펼치다가 발을 헛디뎠답니다.”
약간 빈정대는 듯한 어조다.
“뭐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 송유겸이가, 다른 짓도 아니고 경공을 펼치다가 발을 헛디뎌? 푸허!”
제갈수광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반응하자 남궁설이 곧바로 한마디를 보탰다.
“제 말이요.”
아, 저 얄미운 것.
“어떻게 된 일인지 짧게 얘기해 봐.”
제갈수광이 남궁설에게 그렇게 말하자 남궁설이 고자질하는 어조로 대꾸했다.
“셋이 같이 동굴 입구 위의 비탈에 은신해 있던 중에, 일단의 무리가 인근을 지나쳐갔습니다. 열 명 남짓 되었을 겁니다. 송 오라버니는 그중에 신경 쓰이는 기척이 있다면서, 그들을 추적하고 돌아오겠다며 이곳을 벗어났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벗어나 있다가 방금 복귀했는데 저 모양이었던 겁니다.”
야! ‘저 모양’이라니! 쪼끄만 게 진짜!
그때쯤 도예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경 쓰이는 기척? 혹시 뭐라도 알아냈어?”
급격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녀는 내 역량에 대해 제법 잘 알고 있는 만큼, 내가 까닭 없이 그런 식의 추적을 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도예주에게 대꾸했다.
“결과적으로 아쉽게도 제 착각이었습니다, 조장님. 계속 추적할 만한 가치가 없어 보였기에 도중에 그냥 돌아온 겁니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누나라고 부르지만, 공적인 자리이니 제대로 조장님이라고 불러줄 필요가 있다. 가뜩이나 이곳에는 전·현직 신룡대원들뿐만 아니라 현직 청룡과 황룡까지 있다.
“아, 그랬구나.”
순순히 저런 식으로 대꾸하기는 하는데, 의심을 거두지 않은 눈빛이다. 나중에 따로 몰래 물어볼 것 같다.
제갈수광이 내게 물었다.
“등 뒤의 그 검은 뭐지?”
그러자 이번에도 남궁설이 대꾸했다.
“추적하고 돌아오는 길에 적들이 죽어 있었는데 저 검이 눈에 띄더랍니다. 쓸만해 보여서 가져왔답니다.”
이에 나는 곧장 남궁찬에게 물었다.
“아, 혹시 이런 경우에도 전리품 획득 규정이 적용됩니까?”
“아군의 분실품이나 유품이 아닌 이상, 전투 상황에서 입수한 물품이면 일반적으로는 최초 획득자의 소유권이 인정돼. 다만 규정대로라면 일단 맹에 제출하고 나서 정밀 검사를 거친 후에 다시 받아야 하지.”
“아.”
“그런데 이런 대규모 전투 상황에서 그런 규정이 무슨 소용이겠어? 그냥 먼저 주운 사람이 임자지. 중요한 자료가 되는 서류나 물품 따위만 아니면, 병장기 같은 건 맹에서도 대충 넘어간다고 보면 돼. 물론 나도 네가 주운 그 검에 관여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고.”
그 말에 또 다른 무림맹의 고위 인사인 도예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쯤 황룡 태무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후의 작전에 대해 다 같이 상의할 필요가 있을 듯하니 전원, 잠시 저쪽으로 모여주십시오.”
모두가 동굴 입구에서 약간 떨어진 작은 숲속에 모였다. 다음 동굴 입구로 가기 위한 경로에 있는 숲이다.
다들 가까이 모인 상태에서 태무엽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특수이조가 발견한 이 일대의 인공 동굴은 총 여섯 개였습니다. 물론 더 멀리 가면 또 다른 동굴이 존재할지도 모르나, 적어도 이 일대에는 여섯 개뿐입니다. 앞서 우리 조가 간단히 조사해 보니, 옆 골짜기에 있는 동굴 세 곳은 창고로 쓰이는 시설들이었습니다. 그다음에 조사하러 들어갔던 동굴이 바로, 앞선 동굴이었던 겁니다.”
태무엽의 어조가 매우 공손한 이유는 아무래도 신룡대의 선배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말을 이었다.
“같은 골짜기에 있는 동굴인 만큼, 우측 위에 있는 저 두 곳의 동굴도 이전의 동굴처럼 심상치 않은 시설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동굴 자체의 구조나 함정 배치 따위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테니, 내부로 진입하여 시설을 파괴하는 작전도 이전에 비해 수월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태무엽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왕 이렇게 세 조가 합류하게 된 상황이니 저 동굴들을 모두 조사할 때까지는 같이 움직이는 게 좋겠습니다. 세 조가 함께라면 더 신속하게 저 동굴의 시설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하시죠.”
“저도 동의합니다.”
청룡과 도예주가 곧바로 수긍하며 그렇게 대꾸했다.
저 신룡대의 조장 세 명 중에서는 태무엽이 선임이다. 무공 경지는 청룡 쪽이 약간 높은 것 같지만.
태무엽이 청룡과 도예주를 향해 말했다.
“우리 조는 두 명을 열외시켜야 할 것 같다. 선배님이 안에서 좀 다치셨거든. 다친 선배님과, 이전에도 외부에서 대기했던 조원이 열외다.”
“그리고 선배님도 부상이 적지 않잖습니까. 선배님도 밖에서 잠시 쉬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청룡이 태무엽에게 묻자 태무엽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왼쪽 어깨를 다친 것뿐이라 같이 다니면서 보조하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다. 같이 움직이겠다.”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청룡이 대꾸하자 태무엽이 다시금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즉시 다음 동굴로 이동하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특수이조, 특수삼조, 특수사조의 순서로 이동을 시작했다.
두 번째 동굴의 입구로 들어서서 기관 장치를 풀고 석문을 여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관 작동법이 이전 동굴 석문과 똑같지는 않았지만, 유형은 비슷했기에 금세 기관 장치를 풀 수 있었던 것이다.
세 조의 조원들이 순서대로 석문 안으로 들어섰고, 외부 대기조 네 명만 석문 밖에 남았다.
아까의 외부 대기조 세 명에 사십 대 후반의 여인까지 추가되어 네 명이다.
가까이서 사십 대 후반의 여인을 살펴보니 면구를 끼지 않은 본래의 얼굴이었다.
중년 여인은 통통한 몸매의 소유자이며, 순해 보이는 인상이다. 얼굴이 기본적으로 웃는 상인데, 특히 눈매 쪽이 더 그렇다.
겉모습만 봐서는 딱 인심 좋은 동네 아줌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겉모습일 뿐이다.
저 눈 속의 눈동자는 날카롭게 빛나고 있다.
그런데도 눈매 자체가 워낙 웃는 상이라서 상대적으로 눈동자의 날카로움이 태가 잘 안 나는 것이다.
내가 볼 때 이 아줌마는 경지가 절정의 중후반 정도는 충분히 되는, 그야말로 제대로 된 고수다.
어차피 한동안 함께 있어야 하는 사이인 만큼, 그녀를 향해 먼저 포권하며 인사를 건넸다.
“선배님께 인사드립니다. 저는 동부지맹 잠룡관의 관도인 송유겸이라 합니다.”
그러자 여인이 미소 띤 얼굴로 대꾸했다.
“정말 반가워요. 송 공자. 음……, 내가 과하게 반가워하는 이유는, 공자는 나를 처음 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공자와 구면이라서 그러는 거예요. 작년에 공자가 통합 잠룡대전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직접 봤거든요.”
“앗……! 그러셨군요.”
“그래요. 팔강전부터 결승전까지 모두 봤죠. 그랬던 공자를 이렇듯 가까이서 보니 더 반가운 거고요.”
“아하하…….”
내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자 이번에는 남궁설이 여인을 향해 포권하며 인사했다.
“강호의 말학이 선배님께 인사드립니다. 남궁설이라 합니다.”
“강호의 말학한테서 인사를 받는데 이렇듯 부담이 되면서 긴장하게 되기는 처음이로군요. 반가워요, 남궁 소저.”
약간의 농담을 섞어서 인사를 받은 그녀가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면구를 쓰고 있어서 처음에는 못 알아봤는데, 아까 전음으로 소저의 정체를 듣고 나니 바로 알아보겠더군요. 아, 내가 얼마 전에 남궁 소저의 통합 잠룡대전 시합도 직접 관전했거든요.”
“아……! 그, 그러셨군요.”
“내가 호북에 살아요. 그래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거의 매년 통합 잠룡대전을 구경하러 가죠.”
“아하…….”
나와 남궁설이 고개를 끄덕이자 중년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이제 내 소개를 해야겠군요. 나는 임려현이라는 사람이에요. 과거에 신룡대에서 부조장직을 수행했었죠.”
이름은 실명인 것 같다.
어떤 조였는지까지 말하지는 않았지만 황룡조였을 것이고.
여인이 조장이 되기가 극도로 어려운 조직이 바로 신룡대나 흑풍대 같은 조직이다. 오죽하면 도예주가 삼십 년 만에 배출된 신룡대의 여조장일까.
조장이 되려면 부조장직을 거쳐야 하는데, 애초에 부조장 자리까지 오르는 여성 대원 자체가 극히 드물다. 그러니 여성 조장이 잘 안 나오는 것이다.
그 점을 상기하면 임려현이 얼마나 대단한 여성 요원이었을지도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임려현이 말했다.
“나는 통합 잠룡대전을 관전하러 본맹에 갔다가 갑작스럽게 후배들의 요청을 받고 얼떨결에 이 작전에 합류하게 됐어요. 그런데 이렇게 되고 보니 합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렇듯 송 공자, 남궁 소저 같은 빼어난 후기지수들을 직접 만나게 됐잖아요? 물론 오랜만의 실전에 제대로 적응을 못 하고 창피하게 부상을 당하기는 했지만.”
그러자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우벽희가 남궁설과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 선배들한테서 들었는데, 우리 조는 이전의 동굴 안에서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에 부닥쳤었다고 합니다. 그때 임 선배님과 조장님께서 신속하게 움직이며 수습해 주신 덕분에 조원들이 무사할 수 있었답니다. 임 선배님과 조장님은 그 과정에서 부상을 당하셨던 겁니다.”
최고 고수들이 부상을 당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여겼는데, 역시나 예상대로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임려현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예전 같았으면 아까와 같은 상황에서도 안 다쳤을 거예요. 같이 움직인 조장도 안 다치게끔 충분히 엄호했을 테고요. 오랜만의 실전이라서 그런지, 순간적인 상황 판단이 조금씩 늦지 뭐예요? 한심하게도.”
이 와중에도 반성하고 있다. 대단하다.
그녀에게 물었다.
“상처는 좀 괜찮으십니까?”
“엉덩이 쪽을 좀 깊게 찔렸는데 치명상은 아니에요. 그래도 상처가 제법 깊은 만큼 격렬한 움직임은 자제해야겠죠.”
쾌유를 빈다고 말하려는데 임려현이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대강의 소개는 끝났으니 이제 우리도 가죠. 들어보니 외부 대기조의 책임자는 송 공자라고 하더군요. 나도 송 공자의 지시에 따르겠어요.”
“헛! 그건 저희들 세 명만 있을 때의 얘기였습니다. 임 선배님 같은 분이 계시는데 왜 제가…….”
“다친 몸이라 그냥 편하게 있고 싶군요. 그러니 내 말대로 해요. 은신할 장소도 송 공자가 알아서 정하고.”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그리고 은신할 장소라면 오는 길에 이미 봐 둔 데가 있으니 그쪽으로 가시지요.”
“후훗, 이미 봐 뒀다니, 든든하군요. 그럼 가죠.”
우리 네 사람은 곧장 동굴 입구를 벗어났다.
나는 동굴 입구에서 거리가 제법 떨어진 삼림 쪽으로 세 사람을 이끌었다. 키 큰 나무들이 몇 그루 있어, 그 나무 위로 올라가면 동굴 입구를 감시할 수 있는 위치다.
아까처럼 동굴 입구 위의 비탈을 은신 지점으로 삼지 않은 이유는 적들에게 들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전 동굴의 입구 위에는 적의 시체들이 있으니, 다른 적들이 근처에 오면 피비린내 때문에라도 그곳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 적들이 이쪽 동굴도 확인하러 온다면 동굴 입구의 위쪽부터 수색할 테고, 이후에는 동굴 입구의 근처도 한 차례 둘러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번에는 동굴 입구에서 제법 떨어진 삼림의 나무 위를 은신 지점으로 삼은 것이다.
가장 높은 나무에 우벽희와 남궁설을 올려보낸 후, 나는 임려현과 함께 그 옆의 나무 위로 올랐다.
임려현은 부상자이니, 혹시 모를 상황에서는 내가 엄호할 마음으로 같은 나무 위에 배치한 것이다.
상단의 가지에 나뉘어 자리를 잡고 나자 임려현의 전음이 들려왔다.
[동굴 입구 위쪽의 비탈을 피한 것부터, 거리가 약간 떨어진 이곳을 은신 지점으로 삼은 것까지, 정말이지 칭찬을 안 할 수가 없게 만드는 장소 선정이로군요.]
내가 이런 식의 장소 선정을 하게 된 이유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다. 역시 신룡대의 부조장 출신이다.
[아하하, 그냥 지나치다 보니 이곳이 숨기에 좋을 것 같아서 눈여겨 봐 놨던 것뿐입니다. 그보다도…….]
내가 말을 줄이자 임려현이 바로 대꾸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편하게 해도 돼요. 요즘의 강호에서 가장 유명한 후기지수와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 내 입장에서도 최대한 누리고 싶으니까.]
[아하하, 과찬에 민망할 따름입니다. 사실 제가 궁금한 건 동굴 안쪽의 시설에 관한 내용입니다. 아까 이조장님께서 심상치 않은 시설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안쪽을 못 본 터라 궁금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