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88
남궁설의 위치는 아까 내가 호법 역할을 하며 앉아서 쉬던 자리다.
입구에서 가까운 쪽이다. 이 공간에서 뚫려 있는 곳은 입구뿐이니 호법을 선다면 저 위치가 적당하다.
기운을 최대한 빠르게 돌려 운기조식을 마친 후, 곧장 고개를 돌려 남궁설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무복 하의의 오른쪽을 무릎까지 걷어 올려, 하얀 종아리가 드러난 모습이었다.
무릎 바로 아랫부분을 끈으로 묶었으며, 종아리의 바깥쪽 측면에 구슬 같은 것을 대고 있다.
자세히 보니 구슬은 피독주다.
피독주가 값비싼 물건이기는 해도 남궁세가의 금지옥엽이면 하나쯤은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서둘러 다가가며 물었다.
“설 매! 무슨 일이야? 괜찮아?”
남궁설이 아미를 찡그린 채로 대꾸했다.
“그게…… 뱀이…….”
종아리에 피독주를 대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독사였던 모양이다.
“자세히 좀 보자.”
내 말에 남궁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피독주를 대고 있는 곳 근처를 유심히 보니, 과연 피부가 시퍼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그리고 피독주는 빠르게 어두운색으로 변해 가는 중이다. 독성이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다. 이 기세라면 저 피독주는 머지않아 완전한 암색이 될 것이다. 그러면 기능도 다한다.
“독이 체내로도 어느 정도는 퍼졌을 텐데……?”
내가 걱정하는 어조로 묻자 남궁설이 대꾸했다.
“네. 그래서 우리 세가에서 제조한 해독제도 복용했어요. 그런데도 독 기운이 만만치 않은 느낌이에요. 그 독사, 독이 바짝 올라 있었나 봐요.”
“몸은 어때? 안 아파? 어딘가 이상이 느껴진다거나…….”
“해독제 덕분인지 아직 큰 통증 같은 건 없어요.”
내가 보기에도 종아리의 환부 외에는 아직 별 이상이 없는 듯하다. 남궁설이 응급처치를 잘한 덕분일 것이다.
“다만 약간 서늘해진 듯한 느낌은 있어요.”
“추워?”
“추운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말했듯 약간 서늘한 정도예요. 독에 한기가 깃들어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남궁설의 얘기를 들으며 품 안에서 작고 둥근 목갑을 꺼냈다. 그 목갑 안에서 피독주를 꺼내어 남궁설에게 건넸다. 내가 지니고 다니던 피독주다.
“다 쓰고 나면 이걸 써.”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뭘 이런 거로 미안해해. 설 매한테 피독주 주는 거 하나도 안 아까워.”
“그거 말구요. 영과 기운 흡수하던 거, 나 때문에 방해받은 거잖아요. 내가 졸면서 호법 역할에 소홀했던 탓에…….”
자책하는 표정이다.
“아니, 설 매가 독사한테 물린 이 상황에서 그딴 게 뭐가 중요해? 그리고 설 매가 일부러 존 것도 아니잖아. 설 매가 얼마나 피곤한 상태였는지는 나도 잘 알고 있고.”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맙지만……, 그래도 내 잘못은 내 잘못이에요. 지금부터는 잘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영과 기운 더 빠져나가기 전에 어서 다시 운기조식해요. 나는 송 오라버니가 준 피독주도 있으니 괜찮을 것 같아요.”
“거의 끝나가는 중이었으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마. 한두 번이면 끝날 상황이었어.”
“한두 번이라도 어서 마무리해요.”
이에 나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알았어. 잠시 후에 할게. 그나저나 졸던 중에 뱀한테 물린 거지?”
“네……. 졸던 중에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눈을 떴는데, 제 다리 바로 옆에 흰색 끈 같은 게 보였어요. 졸다가 깬 몽롱한 상태라서 눈을 깜빡거렸는데, 그 순간에 그 천의 끝부분이 제 종아리를 쪼아버린 거예요. 빠르기도 엄청나게 빨랐고 애초에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미처 반응할 새도 없었어요. 그때 알았죠. 그게 흰 끈이 아니라 백사(白蛇)였다는 걸.”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궁설이 말을 이었다.
“이미 물린 상태였지만 다리를 빼면서 즉시 검을 뽑았어요. 또다시 공격할 수도 있으니 그 전에 죽이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내가 검을 뽑자마자 백사가 도망치기 시작했어요.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제가 검을 겨누는 사이에 벌써 입구 근처에 다다라 있더라구요. 서둘러 그 방향으로 검기를 발출했고, 내 시야에서 거의 벗어날 때쯤 검기가 백사에게 닿았어요. 검기에 맞으면서 돌 너머로 굴러떨어지는 것 같았는데 가서 확인하지는 않았어요. 몸에 독이 퍼지는 걸 막는 게 급선무여서…….”
들어보니 보통 뱀이 아닌 듯하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크기는 어땠어?”
“작고 가늘었어요. 전체 길이가 약 두 자쯤……?”
“다른 특징은 없었고?”
“머리에 혹 같은 게 보였어요. 몸하고 같은 흰색이었어요.”
고개를 끄덕인 후 조중렴의 검을 뽑아 들었다.
검집은 내려놓고 왼손에 검을 든 채 오른손에는 쇠구슬 하나를 꺼내 쥐었다.
남궁설이 말했다.
“혹시 모르니 조심해요.”
짧게 고개를 끄덕인 후 입구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입구를 살짝 벗어난 지점에서 가늘고 기다란 백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움직임 없이 축 늘어져 있는데 머리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몸통의 한 부분부터 꼬리까지만 있다.
남궁설이 날린 검기에 의해 몸이 동강 난 것이다.
잘린 몸체의 길이는 한 자 반 정도다.
사체인데도 보고 있으니 징그럽다.
어쨌거나 머리 쪽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잘린 후에도 기어서 도망쳤다는 뜻이다. 뱀은 몸통이 잘려도 쉬이 죽지 않는다.
백사의 원래 길이가 두 자 정도였다고 했으니 도망간 머리 쪽의 길이는 반 자쯤일 것이다.
어느 방향으로 도망갔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뱀의 핏자국이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자국을 따라 이동했다.
혹여 놈이 근처에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 발걸음을 최대한 가볍게 하고 발소리도 죽였다.
뱀의 핏자국은 작은 폭포에 거의 다다라서야 끝났다.
몇 걸음 떨어져서 자국이 끝난 지점 근처를 유심히 살폈다.
곧 큼지막한 돌무더기 사이의 작은 틈새에서 흰 빛깔의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백사다.
틈 사이에 놈의 목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살짝 드러나 있다.
바닥에 늘어져서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는데, 생기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저런 상태라고 해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인지 확인하려던 참이었으니 얼굴은 봐야겠다. 굳이 산 채로 잡아서 확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죽여서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놈의 목 부분을 향해 쇠구슬을 겨누었다.
한데 막 쇠구슬을 튕겨내려던 찰나 놈이 움직였고 그 덕분에 머리 부분을 볼 수 있었다. 머리의 옆 모습이다.
머리 부분을 확인하자 자연스럽게 눈매가 좁혀졌다.
남궁설의 말마따나 머리 위로 솟아오른 혹 같은 게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혹이 아니라 뿔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뿔이 두 개다.
소뿔처럼 뿔 두 개가 머리의 양옆으로 솟아 있는 형태는 아니고, 머리 위 한가운데와 그 바로 뒤에 차례로 솟아 있는 형태다. 앞에 있는 뿔이 크고 그 뒤에 있는 뿔은 조금 작다.
보통 뱀이 아닐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저렇듯 머리에 뿔이 달린 뱀이었을 줄이야.
이런 분야의 자료를 적잖이 봤는데도 저런 특징을 가진 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천마신교의 자료가 방대하다고 해도 모든 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혹은 저 뱀에 대한 자료가 있는데도 내가 못 찾아본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누가 봐도 예사롭지 않은 뱀이니 죽이기보다는 산 채로 잡아서 데려가는 게 나을 것 같다.
남궁설은 이쪽 방면에 나보다 해박하니, 머리 위로 솟아오른 게 혹이 아니라 뿔인 걸 안다면 이 뱀의 정체에 대해서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쇠구슬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오른손을 서서히 내밀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왼손의 검은 언제든 뻗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비룡수투를 착용하고 있으니 손으로 놈의 목을 잡되, 혹시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놈의 주둥이에 검을 쑤셔 넣을 계획이다.
철저하게 대비하고는 있지만 저 백사가 대단한 발악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몸의 반 이상이 잘렸고 출혈도 심했기 때문이다.
오른손이 어느 정도 가까워진 순간, 나는 대놓고 천섬무를 최상 단계로 끌어 올렸다.
놈이 즉시 반응하며 내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 직후 곧바로 입을 쫙 벌리며 내 손을 공격해 왔다.
쉬익-
과연 남궁설의 말마따나 움직임이 매우 빨랐다. 일반 뱀들과는 아예 수준이 다른 빠르기다.
그러나 나는 이미 천섬무를 최상 단계로 펼친 상태다.
손목을 부드럽게 꺾으며 놈의 목을 낚아챘다.
키이이익-
놈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몸통으로 내 손목을 감으려 했지만, 잘린 몸이라 제대로 감지도 못했고 그다지 위력도 없었다.
놈을 그대로 쥔 채 남궁설이 있는 공간으로 향했다.
내가 백사를 들고 나타나자 남궁설이 백사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산 채로 잡아 온 걸 보니 송 오라버니도 그것의 정체를 알아챈 모양이군요.”
“아냐. 나는 이 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 죽이려다 보니 워낙 신기하게 생겨서 산 채로 잡아 온 거야. 혹이 아니라 뿔이니, 설 매가 제대로 보면 이 녀석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대꾸해 준 후에 곧바로 말을 보탰다.
“그런데 보아하니 설 매는 이미 이 녀석의 정체를 추측하고 있었던 분위기네?”
“네.”
“돌이켜 보니 이게 혹이 아니고 뿔 같았어?”
“아뇨. 내가 아까 몸이 좀 서늘하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송 오라버니가 이곳을 떠난 직후부터 급속도로 오한이 느껴지는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심한 오한을 일으키는 백사에 대해 떠올려 봤죠. 금방 떠올릴 수 있었어요. 그런 독을 가진 뱀이 흔치는 않으니까.”
아닌 게 아니라 남궁설은 몸을 움츠린 채로 떨고 있는 모습이었다. 전체적으로 혈색이 창백하고 입술도 푸르스름하다.
“그거, 이각빙혼사(二角氷魂蛇)라는 뱀이에요. 아까는 내가 경황 중이라 머리 쪽에 연이어 나 있는 두 개의 뿔을 혹으로 봤던 거구요.”
“이각빙혼사…….”
역시나 낯선 이름이다.
“이각빙혼사의 독은 무시무시한 한기를 머금고 있고, 지속적인 오한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어요. 만약 제가 해독제와 피독주를 이용해 응급치료를 하지 않았다면 제 종아리는 이미 동상을 입었을 거예요. 결과적으로 환부에 동상 걸리는 건 면했지만, 지속적인 오한을 막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거죠.”
“아하.”
“그 오한을 몰아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간단한 방법이 바로 이각빙혼사의 내단을 복용하는 거예요. 이각빙혼사의 내단은 열기를 머금고 있거든요. 그 열기 덕에 이각빙혼사도 스스로의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거구요.”
“산 채로 잡아 오기를 잘했네.”
어떤 영물의 내단이든 그 동물이 죽은 순간부터는 내단 또한 급속도로 기운을 잃어간다. 즉, 내단을 섭취하려면 죽이고 나서 바로 섭취했을 때 효험이 가장 좋다.
남궁설이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녀를 향해 말을 이었다.
“내단이니 복용한 후에 운기를 취하면 공력 상승의 효과도 있겠고.”
“네. 아마 치료가 끝난 후에도 내단의 기운이 남을 거예요. 그걸 공력으로 전환할 수 있겠죠. 남는 기운이 얼마나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내단을 복용하고 누워 있다가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온 후에 운기조식을 취해야 한다고 알고 있어요.”
“그러면 내가 바로 내단 꺼내줄 테니까 설 매는 피풍의 펴고 누워. 빨리 복용해야지, 늦으면 감기 걸릴지도 몰라.”
“알았어요. 고마워요. 그런데 이따가 혹시라도…….”
말을 줄인 남궁설이 이각빙혼사에서 시선을 떼고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 머뭇거리는 느낌에, 눈동자도 다소 흔들리고 있다.
“응? 왜? 뭔가 부탁할 거라도 있어? 부작용 같은 게 걱정된다거나?”
“아, 아니에요. 어서 내단 빼 줘요. 누울 준비 할 테니까.”
“혹여 부작용 같은 걸 알고 있다면 미리 얘기해 줘. 그래야 나도 대비를 하지.”
“아무것도 아니에요. 잠깐 떠오른 게 있었는데 내가 착각한 거였어요.”
뭔가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저런 식으로 말하니 더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다.
“그래? 알았어, 그럼.”
남궁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일어서서 피풍의 쪽으로 향했다.
입구 근처의 물줄기로 다가가서 이각빙혼사의 목을 단칼에 자르고 그 안에서 내단을 꺼냈다.
색은 선홍색이었고 크기는 새끼손톱 크기였다. 이각빙혼사 자체가 작은 뱀이어서 내단도 작은 모양이다.
흐르는 물에 조심스럽게 핏기를 씻어내서 남궁설에게 가져갔다.
남궁설은 내가 깔고 앉았던 피풍의를 길게 펴고 그 위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마워요.”
그 말과 함께 내단을 받아든 그녀가 바로 그것을 삼켰다. 그러고는 내 피풍의 위에 눕더니 본인의 피풍의를 덮었다.
그녀의 머리맡에 앉아서 말했다.
“열 좀 확인할게.”
남궁설이 누워서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이마에 손바닥을 대보니 매우 차가웠다.
누워 있는 그녀에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 한 번씩 체온 확인해 볼 테니까 그렇게 알아.”
남궁설이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옆에서 그녀를 지켜봐 줬다.
중간에 한 번씩 이마에 손을 대 봤는데 상당히 빠른 속도로 체온이 회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어서 반 각쯤 되었을 무렵에 확인했더니 정상 체온이었다.
창백했던 피부도 원래의 혈색을 되찾았고, 파랬던 입술도 앵두 색으로 돌아왔다.
“내단의 효과가 확실하긴 확실하네?”
내 말에 남궁설이 눈을 뜨고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체온도 돌아왔으니 자리에서 일어날 줄 알았는데 남궁설은 계속 일어나지 않았다.
“잠시 상태를 조금 더 확인해야 해요.”
이미 정상인 것 같은데 뭘 더 확인한다는 건지 의아했다.
그러나 그녀가 괜히 저럴 리는 없으니 잠자코 지켜봤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더 지났을 때쯤, 조용히 남궁설을 내려다보고 있던 나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상적인 혈색을 되찾았던 남궁설의 피부가 더 붉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보니 호흡 소리도 약간 거칠다.
서둘러 남궁설의 이마에 손을 대 보니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설 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거……, 부작용이에요. 부작용이 일어날 확률이 낮아서 굳이 말 안 했던 건데 하필…….”
“아니, 아무리 확률이 낮아도 미리 말을 했어야지……! 그래서 어떤 부작용인데?”
“그게……, 이각빙혼사 중에서 번식기에 있는 수컷의 내단은 매우 강한…… 춘약 기운을 머금고 있어요. 아까 그 이각빙혼사가 하필이면 그 상태였던 거죠.”
“그, 그런…….”
남궁설이 부작용에 대해 왜 미리 얘기하지 않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애초에 부작용이 일어날 확률도 적은데, 가뜩이나 말하기 껄끄러운 부작용이다 보니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걸 해결할 방법은……, 제가 알기로는 두 가지뿐이에요. 하나는 이각빙혼사 암컷의 내단을 복용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잠시 말을 멈춘 남궁설이 살며시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며 말을 이었다.
“송 오라버니도 알고 있는 그 방법이에요.”
허어, 이것 참.
남궁설이 고개를 돌린 상태에서 다시 입을 열었다.
“어차피 한기를 치료하려면 내단을 복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내단을 복용하지 않고 한기를 치료하려면 송 오라버니가 며칠은 고생했을 거예요. 나 혼자 고생하는 건 상관없지만 송 오라버니를 그렇게 고생시키고 싶지는 않았어요. 게다가 만에 하나 낮은 확률로 부작용이 일어난다고 해도……, 같이 있는 사람이 송 오라버니니까…….”
그 말을 끝으로 남궁설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강력한 춘약의 기운은 상황에 따라 맹독보다 무섭다.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뇌에 타격이 가서 이지를 상실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나도, 남궁설도 잘 알고 있다.
우리 사이에서는 한동안 정적만 흘렀다.
남궁설은 여전히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린 모습인데, 몸이 부르르 떨리고 있다.
추워서 떨고 있는 게 아니다.
이를 악물며 춘약의 기운을 참아내고자 안간힘을 쓰느라 떨고 있는 것이다.
한동안 내가 조용히 있었던 이유는 해결책을 떠올리기 위함이었다.
남궁설은 모르겠지만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하나 더 있다.
머릿속으로 정리를 마친 후, 누워 있는 남궁설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일종의 신호를 보낸 셈인데, 역시나 상체를 빠르게 일으키며 내게 달라붙었다.
내가 손을 잡은 순간, 그녀가 끝까지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남궁설이 포옹하며 더 찰싹 달라붙고 있는데, 체온은 열기로 가득하고 눈동자에는 열망이 가득하다. 춘약의 기운으로 인해 성적 본능만이 지배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입을 맞추려는 건지 얼굴이 가까워지고 있다.
이에 나는 그녀를 자연스럽게 끌어안는 척하며 그녀의 수혈을 짚었다.
제대로 점혈을 했는데도 그녀의 눈은 바로 감기지 않았다.
춘약의 기운이 너무 강한 탓이다.
결국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쳤다.
아이고 부드러운 거.
나도 이대로 정신 줄을 놓고 싶은 욕망이 차올랐지만 꾹 참아냈다.
그리고 남궁설은 나를 포옹하고 내게 입을 맞춘 채로 잠들었다. 점혈의 효과가 이제야 작동한 것이다.
축 늘어진 그녀의 신형을 피풍의 위에 가지런히 눕혔다.
수혈을 짚어서 잠들게 만들었다 해도 달아오른 춘약의 기운이 사라지지는 것은 아니다.
춘약의 기운이 이미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상태이기에, 잠든 상태라 해도 저 욕망은 꿈의 형태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저대로 가만히 놔두면 당연히 위험하다.
나는 방금 기억해 낸 해결책을 떠올리며 남궁설의 혈도를 차분하게 짚어갔다.
춘약 기운이 지배하고 있는 정신을 멀쩡한 상태로 되돌릴 방법은 없다.
다만, 그 정신을 욕정 대신 다른 것으로 채울 수는 있다.
저 강력한 성욕을 꺾을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은 공포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수라강령이라는 고문법을 펼치는 중이다.
수라강령은 정신에 극한의 공포를 주입함과 동시에 신체에는 강한 고통을 가하는 최상급 고문법이다.
사부님한테서 배웠다. 백도인들은 이런 종류의 공포에 약하기에 특히 잘 통할 거라며 가르쳐주셨었다.
원래의 고문법에서 고통을 주는 요소는 최대한 제외한 채로 점혈을 이어나갔다.
참고로 고통 주는 부분을 완전히 배제할 방법은 없다.
그러니 최소화할 수밖에.
남궁설 정도 되는 무인이면 이 정도 고통은 어렵지 않게 참아낼 수 있을 것이다.
집중해서 점혈을 마친 후 허리를 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 냈을 즈음, 남궁설의 입에서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끅, 끄으……. 어으으! 으아아아아……!”
보아하니 내 시도는 성공적인 것 같다.
이후에도 남궁설의 신음은 계속 이어졌고,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저런 모습, 내가 지켜보는 걸 바라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