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322
전투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지휘관급의 인사들이 모두 모여 결과를 보고했는데, 차단선을 통과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으며, 경계선에 남아 있던 잔당들도 깔끔하게 정리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서구까지 모두 떨어트렸으니 그야말로 적의 경계선을 완벽하게 공략한 것이다.
물론 전투력만을 따져보면 우리가 무조건 승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긴 했다. 전체적인 전력의 수는 적이 더 많았지만, 전력의 질은 우리가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넓게 펼쳐진 경계선을 이렇듯 완벽하게 정리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래서인지 모두가 만족해하는 분위기였다.
특전반원들이 특무강습대원들을 보는 시선도 적잖이 달라져 있었다.
이전까지의 시선은 귀여운 후배들을 대하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의 시선에는 무인으로서의 신뢰감이 담겨 있었다.
다들 행낭을 챙기기 위해 후방으로 향했다.
행낭은 작전 전에 적당한 곳에 숨겨뒀다가 작전이 마무리된 후에 다시 챙기러 가야 한다.
후방을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을 무렵, 제갈수광이 옆으로 오더니 전음으로 말했다.
[묘 조장의 송유하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더군. 송유하가 묘 조장과 함께 움직이며 오른쪽 능선의 전서구를 담당했었거든.]
[그랬군요.]
날아간 화살을 보고 송유하가 오른쪽 능선에 있었다는 건 알았지만 묘청상과 함께 움직인 줄은 몰랐다.
[묘 조장의 조는 계획했던 것보다 약간 늦게 능선 위에 도착했다더군. 그때는 이미 전서구가 상당히 멀어져 있었던 모양이야. 그래서 송유하의 화살이 발사된 직후까지만 해도 별 기대가 없었대.]
나는 그 광경을 똑똑히 봤기에 잘 알고 있다.
당시에 전서구 두 마리가 거의 동시에 날아오르긴 했지만, 오른쪽 능선의 전서구가 조금 더 빨리 날아올랐었다. 그리고 화살이 더 늦게 발사된 쪽도 오른쪽 능선이었다.
새들은 짧은 순간에도 급격히 멀어진다. 결국 송유하가 제갈수광보다 훨씬 더 멀리에 있는 전서구를 쏜 것이다.
제갈수광의 전음이 이어졌다.
[한데 화살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가서 전서구를 정확히 꿰뚫는 모습을 보고는 소름이 끼쳤다고 하더군. 사실, 밤중에 그 먼 거리에서 움직이는 목표를 정확하게 떨어뜨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아무리 그 은룡삭인가 하는 그 줄을 시위로 썼다고 해도 말이야.]
송유하가 대견스러워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잠시 말없이 걷던 제갈수광이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그리고 나는 왕철양, 공은림, 하조혁을 데리고 다니면서 후열에 세웠었다. 네가 가르친 녀석들의 실전 감각과 역량이 얼마나 되는지, 내가 먼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거든. 황보충이 나와 함께 전열에 섰고.]
[아.]
[실전에 익숙하지 않을 테니, 굳이 매 상황에 암기 지원을 하려 하지 말고, 확실한 상황에서만 암기를 날리라고 주문했었다. 그리고 녀석들은 내 주문에 잘 따랐지.]
제갈수광이 말을 이었다.
[암기술이 빠르고 정확한 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종종 네 녀석이 후열에서 암기를 지원하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더군. 네 녀석이 오랜 기간 그 녀석들을 맡아서 가르쳤기 때문이겠지. 암기술을 펼칠 때뿐만 아니라 전투 시에 보이는 전체적인 움직임들도 전반적으로 네 녀석을 많이 닮았고.]
[하하, 그렇습니까.]
[녀석들 정도의 암기술이면 후열 자원으로는 부족함이 없다고 본다. 기동타격조 시절에 후열에 섰던 관도들의 암기술 수준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경쟁력이 있지.]
기동타격조 당시에 후열에서 제대로 된 암기술을 구사한 관도는 나와 길초량뿐이었다. 나머지 관도들의 암기술 실력은 현재의 왕철양, 심산화, 공은림, 하조혁 등에 미치지 못했었다. 제갈수광은 그 얘기를 한 것이다.
[녀석들은 이번에 계속 경험이 쌓일 테니 실전 역량도 쭉쭉 상승할 거야. 왕철양 같은 경우에는 나중에 전열에도 설 수 있을 것이고.]
왕철양은 청여홍의 장원 사건 당시에 실전을 한 차례 겪은 바 있지만 공은림과 하조혁에게는 첫 실전이었다.
첫 실전에서는 누구나 긴장하게 되어 있고, 때때로 너무 많이 긴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기에 실전 초보들이 이렇듯 간단한 전투부터 겪고 나면 실전 적응에도 도움이 된다.
이후에 한동안 조용히 걷던 제갈수광이 정리하듯 말했다.
[어쨌거나 정찰조가 역할을 잘해줬다. 덕분에 이번 작전을 완벽하게 성공시킬 수 있었지. 수고 많았다.]
[교관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제갈수광이 엷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에게 인사한 후 다른 이들에게로 향했다.
이후에는 왕철양, 공은림, 하조혁과 이야기를 나눴다.
첫 실전이다 보니 역시나 공은림과 하조혁은 적잖이 긴장했던 모양이고, 왕철양도 오랜만의 실전이라 어느 정도는 긴장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렇듯 긴장한 중에도 암기는 정확하게 적중시킬 수 있었다며, 세 녀석 모두 매우 기뻐했다.
다음 실전에서는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자신감을 북돋워 준 후, 녀석들과 헤어졌다.
송유하와도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멋진 솜씨였어. 전서구 떨어뜨린 거.]
참고로 떨어진 전서구들의 전서통에 담겨 있던 내용도 별 건 없었다. 우리의 습격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송유하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어? 보셨어요? 차단선에서는 좀 멀었을 텐데.]
[나는 전황을 파악하려고 경계선 근처에 있었거든.]
[아.]
송유하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엷은 미소로 보이지만 저건 많이 기뻐하는 표정이다.
자신의 활약상을 오라비인 내가 지켜봤다는 사실이 기분 좋은 모양이다.
송유하가 전음을 보내왔다.
[장원에서 은룡삭을 시위로 써서 훈련을 많이 해보긴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쏘는 거라 첫 발은 빗나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첫 발을 쏘자마자 바로 두 번째 화살을 준비했던 거구요. 은룡삭의 사거리라면 혹여 첫 발이 빗나가도 한 번 더 기회를 더 노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첫 발이 적중해서…….]
지금은 송유하도 은룡삭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내공을 이용해서 은룡삭을 활용하는 방법까지 알고 있다. 송유하가 은룡삭을 지니고 다닐 상황에 대비하여 내가 세세하게 가르쳐줬었기 때문이다.
잠시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후 송유하에게 말했다.
[생각해 봤는데, 이번 특무강습대의 활동이 끝날 때까지는 은룡삭을 누이의 활시위로 쓰는 게 나을 듯해.]
[네? 하지만 은룡삭은 오라버니가 훨씬 더 잘 활용하실 수 있잖아요.]
은룡삭 활용법을 가르쳐주면서 그간 내가 어떻게 은룡삭을 활용해왔는지도 얘기해줬었다. 그래서 저런 말을 하는 것이다.
[나는 전투 시에 은룡삭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편이야. 사용해도 아주 가끔 사용하는 정도지. 하지만 누이는 대부분의 전투 상황에서 은룡삭을 활시위로 사용할 수 있잖아. 전투에서 은룡삭을 그냥 놀리는 것보다는 십분 활용하는 편이 모두를 위해 훨씬 낫지 않겠어?]
우리는 머지않아 적도들과 본격적인 전투를 벌이게 될 것이다. 그 상황에서 송유하가 은룡삭을 시위로 쓰면 적들에게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게다가 화살도 충분하다. 많은 인원이 여분의 화살을 지닌 채로 전투에 임하고 있고, 특히 왕철양이 커다란 화살 자루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오라버니 말씀이 맞긴 하지만…….]
[그러니까 당분간은 누이가 쓰도록 해.]
그러자 송유하가 말없이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대꾸했다.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이후에는 송유하가 풍우비룡무의 다음 성취에 대해 질문하기에, 관련된 조언을 해준 후에 헤어졌다.
정찰조원들은 비룡장에서 같이 지내던 친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 쉬다가 다시금 길을 재촉했다.
제갈수광은 우리에게 좀 더 쉰 후에 출발하라고 권했지만, 그냥 출발했다. 딱히 힘겨운 전투가 아니었던 탓이다.
차단 작전을 제대로 완수한 영향인지 조원들의 발걸음은 매우 가벼웠다.
약 두 시진쯤 빠르게 이동하다 보니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날이 밝을 때는 이동을 자제하고 쉬어야 하지만, 우리는 산허리를 타고 계속 이동했다.
인근 산지에 삼림이 빡빡하여 은밀한 이동이 가능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거의 정오 무렵이 되어서야 전진을 멈추고 노숙 준비를 했다.
작은 폭포 근처였다.
주변 정찰까지 확실하게 마친 우리는 남자들과 여자들로 나누어 깔끔하게 씻은 후 잠자리에 들었다.
* * *
정찰조는 어둑해진 무렵부터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제 목적지인 무림맹 합산지부까지는 이틀 거리다.
광서를 침공한 적도들이 본거지로 삼고 있는 곳이 바로 무림맹 합산지부라고 알려져 있다.
지금쯤이면 합산지부의 적들도 육매령 경계선 쪽에 이상이 생겼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는 눈치챘을 것이다.
육매령 경계선에서는 적잖은 수의 전서구가 운용되고 있었다.
그러니 근무 상황을 보고하는 전서구가 정기적으로 본부로 날아다녔을 것이다. 최소한 하루에 한두 번은 날아갔을 것이다.
한데 정기적으로 날아와야 할 전서가 도착하지 않았을 테니, 적의 본거지에서도 당연히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결국, 적도들로서도 육매령 경계선이 무력화됐을 가능성을 상정하고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다. 아마도 육매령 경계선으로부터 합산지부로 이어지는 모든 경로의 경계 태세를 강화하고 있을 것이다.
이에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주변을 더욱 면밀하게 정찰해가며 서쪽으로 전진했다.
다음 날 인시 정(새벽 4시) 무렵, 계속해서 이어지던 산지가 끝나고 널찍한 평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안력을 돋워 멀리까지 확인해 보니 전방에 전답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민가들도 보였다.
인근의 지형을 살피며 지도와 대조하자 우리의 위치가 무선현 북부의 산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기 지점 근처에 제대로 도착한 것이다.
조원들을 가까이 불러 모은 후에 말했다.
“전방에 보이는 민가와 전답 너머로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강의 이름은 검강黔江입니다. 검강은 이 인근을 구불구불 흐르는데,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강변은 이십 리쯤입니다. 검강을 건너 서쪽으로 가면 내빈현이 나오고, 내빈현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가면 머지않아 합산현에 이르게 됩니다.”
검강은 북쪽에서 흘러온 류강柳江과 서쪽에서 흘러온 홍수하紅水河가 만나서 이뤄진 강이다. 이 지역에서는 남쪽으로 흐르다가 나중에는 남동쪽으로 흘러간다.
조원들을 향해 말을 이었다.
“무인 기준으로는 검강에서부터 합산지부까지 하루 거리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검강은 합산지부로 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건너야만 하는 강입니다. 그렇다 보니 적의 입장에서는 경계 인원들을 배치하기에 최적의 장소입니다. 아마도 검강의 건너편 강변을 따라 경계조가 길게 배치되어 도강을 감시하고 있을 겁니다. 이는 저뿐만 아니라 제갈 교관님과 남궁 반장님의 공통된 예측입니다.”
조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제가 혼자 가서 강줄기 쪽의 분위기를 확인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근처에 은신한 채로 대기해주십시오. 한 시진 후면 강습대와 특전반이 도착할 겁니다. 만약 그 전에 적이 나타나면 은신을 풀지 말고 그냥 가게 두십시오. 혹여 은신을 들킨 경우에는 임 선배님의 판단에 따라 대응해 주십시오. 낌새가 이상하다 싶으면 저도 서둘러 복귀하겠습니다.”
조원들이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나는 조원들에게 행낭을 넘긴 후, 비탈을 내려가 평지로 향했다.
은밀히 이동하여 강변에 도착했다.
안력을 돋워 강 건너를 주시하며 정신을 집중하자, 강변에 있는 적 경계조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은 강폭이 넓은 지점이다 보니 강 건너까지의 거리가 멀다. 그렇다 보니 이 위치에서 확인되는 경계 지점은 두 곳뿐이다.
아직 정확하지는 않지만, 두 경계 지점에는 각각 적들이 대여섯 명씩 배치된 듯하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강줄기를 따라 상류로 이동했다.
역시나 건너편 강변을 따라 적의 경계 지점들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동하면서 보니 강폭이 넓은 곳은 백 장이 훌쩍 넘고, 좁은 곳은 오십 장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강폭이 좁은 구역을 통해 더 많은 것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경계 지점 간의 간격은 육매령의 경계선보다 가까웠고, 경계 지점 한 곳마다 배치된 적들은 여섯 명씩이었다.
이 정도면 확인하려 했던 것들은 모두 확인한 상황이라, 나는 적당한 시점에 강변에서 벗어났다.
어차피 혼자서 강줄기 전체를 조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머지않아 동이 터올 것이다.
그전에 산속으로 돌아가는 편이 낫다.
한 시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산속의 은신 지점으로 복귀했는데, 강습대와 특전반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즉시 제갈수광과 남궁묵에게 가서 지도를 펼쳐 놓고 내가 조사한 내용을 보고했다.
보고를 모두 전해 들은 제갈수광이 말했다.
“역시나 이번 경계선은 만만치 않군. 몰래 도강하기도 쉽지 않겠지만, 도강에 성공한다 해도 경계 지점 간의 간격이 좁아서 금세 발각되겠어.”
“결국 한바탕 전투가 벌어질 수밖에 없겠네요.”
남궁묵이 말을 보태자 제갈수광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낮 동안 작전을 잘 짜 보자고.”
말을 마친 제갈수광이 지휘관급 인사들을 모두 불러 모았고, 이내 작전 회의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