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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323화 (323/416)

내 안에 마교있다 323

“반장님! 교관님! 비상입니다!”

누군가가 낮게 외치는 소리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누운 상태에서 하늘을 보니 사시 정(오전 10시)쯤이었다.

지휘관급 인사들의 회의는 진시 정(오전 8시)까지 이어지다가 끝났다. 그러고 나서야 잠들었으니 지금은 잠든 후로 겨우 한 시진밖에 안 지난 시점이다.

상체를 일으키자 특전반원 한 명이 제갈수광과 남궁묵의 침낭 근처에 서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휘부라서 두 사람의 침낭이 나란히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지?”

상체를 일으킨 남궁묵이 눈을 비비며 묻자 특전반원이 대꾸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북쪽의 산길을 따라 다수의 적들이 동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확인되었습니다. 일단 제가 확인한 적의 수는 수십 명인데, 경공을 펼치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으니 수는 점점 늘어날 겁니다. 다른 조원이 계속 관찰 중입니다.”

우리의 전방은 서쪽이니 동쪽이 후방이다.

그리고 후방에서는 광서 수복전을 수행할 무림맹의 주 전력이 뒤따라오고 있다.

“동쪽이라면…….”

남궁묵이 눈매를 좁히며 그렇게 말하자 제갈수광이 대꾸했다.

“적의 척후조에게 우리 주 전력의 위치가 노출됐던 모양이군.”

그러자 남궁묵이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적들도 육매령 경계선에 이상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아챘으니까, 그곳에서부터 흔적을 조사했다면 우리 주 전력이 지나온 경로를 쉽게 추적할 수 있었겠지요. 그렇다 해도 예상보다 훨씬 빨리 파악하긴 했군요.”

“육매령의 인접 지역들에도 또 다른 경계 기지나 척후 기지 등이 존재했을 테고, 그곳들도 전서망으로 연결되어 있었을 거야. 그런 곳들에 지시를 내리면 빠르게 파악할 수 있지.”

제갈수광이 대꾸하자 남궁묵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특전반원에게 물었다.

“우리를 노리는 것 같지는 않고?”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남궁묵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묘청상과 육화현이 차례로 침낭에서 몸을 일으킬 때쯤, 이번에는 남쪽에서 모용리가 빠르게 다가왔다.

“교관님, 반장님, 남쪽 계곡으로 난 길을 따라 다수의 적이 이동하는 모습이 포착되었습니다. 방향은 동쪽입니다. 선 공자가 남아서 적의 규모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선 공자’란 선의림이다.

“적들이 그냥 동쪽으로 이동하기만 해? 우리를 노리는 느낌은 없었어?”

남궁묵이 묻자 모용리가 대꾸했다.

“확신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우리를 노리는 듯한 느낌은 못 받았습니다.”

둘 다 같은 대답을 하는 것으로 보아 이 위치가 발각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기본적으로 특무강습대와 특전반은 총원이 사십 명도 안 된다. 그렇다 보니 이렇듯 은신처를 교묘한 위치에 잡고 확실하게 잠복하면 발각되기가 쉽지 않다.

애초에 적의 첩보조가 이 근처까지 왔었다면 우리의 경계조가 당연히 알아챘을 것이다.

제갈수광이 남궁묵에게 말했다.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 할 것 같군. 내가 남쪽으로 가지.”

“그럼 제가 북쪽으로 가겠습니다.”

남궁묵이 그렇게 대꾸하더니 묘청상과 육화현에게 지시했다.

“전부 깨우고 전투 준비시켜.”

“예.”

그러는 사이 제갈수광이 모용리와 함께 남쪽으로 걷기 시작했고, 나도 얼른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남쪽 경계 지점에서 확인해 보니 적들이 계속해서 산길을 따라 이동하는 중이었다.

한동안 차분히 살펴봤는데, 아까 보고받았던 대로 적들이 우리 쪽을 의식하는 느낌은 없었다.

은신처로 돌아와서 전투 준비를 마치고 대기했다.

그렇게 약 한 식경이 지났을 때쯤, 모용리가 다시 와서 제갈수광과 남궁묵에게 보고했다.

“더는 이동하는 적도들이 없는 듯합니다. 선 공자가 헤아린 바에 따르면 지금까지 지나간 적도들은 오백 명 남짓이라고 합니다.”

잠시 후에는 아까의 그 특전반원도 왔다. 처음에 적들의 이동을 보고했던 특전반원이다.

“적도들이 모두 지나간 듯합니다. 오백오십 명 정도로 파악되었습니다.”

그러자 남궁묵이 제갈수광에게 말했다.

“천 명이면 우리 주 전력의 수와 비등하군요. 아마도 우리 주 전력이 합산지부에 도착하기 전에 전력 수를 확실하게 줄여둘 목적인 듯합니다. 어차피 놈들은 전력이 많으니, 이 시점에 무림맹의 전력을 어느 정도 줄여놓기만 해도 자신들이 더 유리해진다는 판단이겠지요.”

“우리의 주 전력은 그야말로 긁어모은 전력이니 더 이상의 증원은 없다고 봐야 해. 즉, 피해를 많이 입으면 광서 수복전 자체가 어려워지는 거지. 결국 우리가 최대한 열심히 싸울 수밖에.”

제갈수광의 말에 남궁묵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은밀히 뒤따라간 후, 전투가 시작되면 적진의 측면과 후방을 교란하는 식으로 싸우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소수의 인원은 후방에 처져서 혹시 모를 적 증원 전력의 여부를 감시해야 할 듯합니다. 위험할 수 있으니 특전반에서 절정고수 네 명을 차출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아까 세웠던 도강 작전은 쓸모가 없게 되었다.

우리는 은밀하게 적도들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약 한 시진 반쯤 지났을 무렵, 적들이 서서히 이동을 멈추기 시작했다.

아마도 저들의 전방에 우리의 주 전력이 진을 치고 있을 것이다.

지금이 미시 정(오후 2시) 무렵이니 우리의 주 전력은 아직 잠들어 있을 시간이다. 원래는 우리도 잠들어 있을 시간이다.

적들의 낌새를 확인한 제갈수광이 나를 향해 턱짓했다.

작전을 수행하라는 의미다.

이에 나는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 후 정찰조원들과 함께 서둘러 이동했다.

정찰조가 이동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 주 전력에게 적도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함이다.

특무강습대와 특전반이 정찰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터라 주 전력 쪽에서는 정찰조를 최소한으로만 운용했었다.

따라서 우리의 주 전력은 저 적도들의 존재를 모른 채로 여전히 취침 중일 수 있다.

취침 중에 공격을 받으면 우왕좌왕하다가 큰 피해를 볼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주 전력의 측면 쪽으로 이동하여 호각을 불어 알리려는 것이다.

참고로 특무강습대와 특전반의 위치에서 호각을 울리면 그 소리가 주 전력이 있는 곳까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강습대와 특전반의 존재가 일찍 드러나게 된다.

존재가 드러나면 적진을 교란하는 작전도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멀리 돌아 적진의 측면 쪽에 다다랐다.

내가 심산화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호각을 꺼내더니 힘껏 불었다.

삐이이이익! 삑! 삑! 삐이익!

심산화는 호각을 불며 매우 즐거워했다.

으이그, 저거, 아직도 애 같아서는.

참고로 저건 비상 상황임을 알리는 신호다.

나는 같은 신호를 세 차례 더 반복하도록 지시한 후 무림맹 측의 주 전력이 있는 방향으로 계속 달렸다.

이윽고 고요하기만 했던 주 전력의 진지 방향에서 호각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소리가 매우 멀다.

강습대와 특전반의 위치에서 호각을 불었다면 호각 소리가 닿지 않았을 거리다.

어쨌거나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우리 주 전력이 자고 있다가 횡액을 당하지는 않게 되었으니까.

우리는 산비탈을 따라 달렸다.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다 보니 적진이 동요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를 발견한 적들이 손가락으로 우리를 가리키며 부산을 떠는 모습도 보인다.

조원들을 이끌고 선두에서 경공을 펼치던 나는 그 시점부터 일부러 속도를 살짝 늦췄다.

그리고 잠시 후, 적들이 우리 주 전력의 숙영지 쪽으로 서둘러 진격하는 모습이 보였다.

보아하니 진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모습이다.

그런데도 공격을 개시한 이유는 무림맹의 전력이 전열을 제대로 갖추기 전에 먼저 공격하기 위함일 것이다.

적이지만 적절한 판단이긴 하다.

우리의 주 전력은 대부분 방금 기상했을 테니, 아직 몸도 풀리지 않은 상태에 판단력도 온전치 않을 게 빤하기 때문이다.

일부 적들은 우리를 추격해오기 시작했다.

우리의 경공 속도가 느린 것을 보고 추격할 만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낚인 것이다.

얼핏 보니 스물다섯 명쯤 되는 듯하다.

수는 그리 많지 않은데 다들 경공이 날래다.

몇 명은 절정고수 같고 나머지도 최소한 일류고수 이상으로 보인다.

우리를 확실하게 처리하라는 의미로 보낸 듯하다.

하긴, 적들로서는 우리를 찢어 죽이고 싶을 것이다. 우리가 작전을 망쳐놓은 탓이다.

나는 적들이 추격 의지를 불태울 수 있게끔 속도를 조금씩 늦췄다. 그렇다 보니 적의 선봉이 금세 십 장 거리까지 간격을 좁혀왔다.

그때쯤 나는 정찰조를 이끌고 미리 봐뒀던 숲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섰다.

적들의 눈에는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숲속으로 도주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숲으로 들어선 후에도 속도를 점점 늦췄다.

그러자 적의 선봉이 더욱 빠르게 간격을 좁혀왔다.

적의 선봉은 절정고수 다섯 명이다.

적 선봉과의 간격이 삼 장까지 좁혀진 순간 조원들에게 낮게 외쳤다.

“투진!”

내가 외치자마자 달리던 조원들이 신속히 뒤돌아서며 전투 대형을 갖췄다.

전열은 왼쪽부터 우문직, 단목강, 남궁설, 단목홍신이고, 후열은 임려현, 심산화, 선우린 그리고 나다.

우리를 추격해오는 적 절정고수들은 세 명이 앞서 있고 나머지 두 명이 약간 뒤처져 있는 상태다.

앞선 세 명의 절정고수가 우리 전열에 달라붙었다.

전열의 중앙에 있는 단목강과 남궁설이 자연스럽게 한 명씩을 맡았는데, 나머지 한 명의 절정고수가 노리는 방향은 좌측의 우문직 쪽이었다.

그러자 단목홍신이 잽싸게 단목강과 남궁설의 뒤로 돌아 우문직을 지원하러 움직였다.

좋은 움직임이다.

그러는 동안 선우린은 깔끔한 철비정술로 단목강과 남궁설을 지원했고, 임려현은 안정적으로 우문직을 엄호했다.

절정고수 세 명 중에서 한 명이 내 이목을 끌었다.

전방의 중앙에서 단목강이 상대하고 있는 자다.

친숙한 마공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다.

천마신교의 마공을 익힌 것이다.

경지는 절정의 초중반쯤인 듯하다.

속해 있는 조직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 정도면 일반 무력 조직에서는 조장이나 부조장급, 정예 무력 조직에서는 선임 조원급이다.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내가 아는 인물은 아니다.

가만히 지켜보니 공격이 강맹하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동작이 다소 큰 편이었다.

저 정도면 단목강이 여유롭게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다.

우문직, 단목홍신이 상대하고 있는 절정고수와 남궁설이 상대하고 있는 절정고수는 혈교 쪽의 마공을 익혔다. 저 둘은 절정의 초반쯤인 듯하다.

잠시 후, 약간 뒤처져서 따라오던 나머지 두 명의 절정고수도 합류했다.

놈들은 사파의 기운을 풍기고 있다.

두 놈 중에서 한 놈은 전열의 우측에 있는 남궁설 쪽으로 달려들었고, 다른 한 놈은 전열의 좌측에 있는 우문직과 단목홍신 쪽으로 향했다.

임려현이 곧장 검을 뽑아 들더니 좌측으로 합류한 사파의 절정고수에게로 향했다.

일류고수인 우문직과 단목홍신은 절정고수 한 명을 상대하기도 벅차니, 나머지 한 명을 임려현 본인이 맡으려는 것이다.

나는 간간이 철비정을 던지며 남궁설을 엄호했다.

내가 임려현처럼 바로 나서지 않은 이유는 적들을 좀 더 살피기 위함이다.

그렇다 보니 내 앞에서 남궁설이 두 명의 절정고수를 막는 중인데, 별로 어려워하는 기색은 아니다.

그녀의 경지와 실력이 적들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고, 내가 철비정으로 적들을 적절히 견제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살펴보니 나중에 합류한 사파의 절정고수들은 움직임이 다소 느린 편이었다. 저래서 늦게 합류한 모양이다.

그렇다 보니 임려현은 좌측에 있는 사파의 절정고수를 매우 가뿐하게 상대하는 중이었다.

곧 임려현의 검이 경쾌하게 나아가는가 싶더니 사파 절정고수의 복부를 찔렀다.

탱!

검극이 적의 피부를 뚫지 못한 채로 막혔다.

“잉?”

임려현이 살짝 놀란 반응을 보이더니 곧바로 낮게 외쳤다.

“귀갑강시공……! 주의!”

혈교의 대규모 거점을 타격하던 당시에 임려현도 귀갑강시공을 겪어봤었다. 그래서 바로 알아본 것이다.

보아하니 늦게 도착한 사파의 절정고수 두 놈 모두 귀갑강시공을 익힌 듯하다.

무공의 특성상, 귀갑강시공을 익히면 전체적인 움직임이 약간씩 느려진다. 당연히 경공도 비슷한 경지의 무인들보다 느려진다. 저 두 놈이 늦게 도착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귀갑강시공을 펼칠 때는 움직임이 더 느려진다.

그래서 저 사파 절정고수 두 놈의 움직임이 다른 절정고수들에 비해 티 나게 느린 것이다.

확인하기 위해 남궁설을 공격하고 있는 사파의 절정고수에게 철비정을 날렸다. 천섬무를 담아서 놈의 복부 한복판을 노렸다.

팅!

역시나 철비정이 가볍게 튕겨 나왔다.

곧장 임려현에게 전음을 보냈다.

[귀갑강시공을 익힌 놈은 우문 공자와 단목홍신 공자에게 맡기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 기회에 경험을 쌓게 해주자는 뜻이군요.]

역시나 임려현은 내 뜻을 금세 알아챘다.

[예.]

우문직과 단목홍신도 혈교의 대규모 거점 타격 작전에 참여하긴 했었지만, 귀갑강시공을 익힌 자들을 제대로 상대해보지는 못했다고 했다.

앞으로는 많이 상대하게 될 테니 이 기회에 경험을 쌓아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나도 슬슬 움직일 생각으로 조용히 섬혼검을 뽑아 들었다.

비룡검이 아닌 섬혼검을 뽑은 이유는 실전을 통해 손에 더 익게 만들기 위함이다. 검의 성능을 확인할 의도이기도 하다.

잠시 선우린의 뒤쪽으로 이동했다가 자세를 극도로 낮추고는 천섬무를 상 단계로 끌어 올렸다.

그 후, 남궁설의 측면을 공격하고 있는 사파의 절정고수를 스치듯 빙글 돌아 혈교의 절정고수에게 향했다.

두 절정고수는 내 움직임을 인식하지 못했다.

마침 혈교의 절정고수가 남궁설을 향해 검을 찔러 넣는 중이었기에, 나도 그의 허벅다리를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챙!

남궁설과 혈교 절정고수의 검이 맞부딪친 순간.

푹!

섬혼검이 놈의 허벅다리 옆쪽을 깊숙이 찔렀다.

“크윽!”

혈교의 절정고수가 신음을 내뱉으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내가 왼손으로 던진 철비정이 그의 명치 아래에 다다라 있었다.

쑥!

철비정이 그대로 놈의 심장에 박혔다.

“욱!”

놈의 신형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할 때쯤, 나는 섬혼검으로 사파 절정고수의 무릎을 찔러 갔다.

놈이 내 검을 피하려 하고 있다.

귀갑강시공을 익혔는데도 내 검을 피하려 한다는 건, 놈이 나를 매우 위험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 바로 옆에 있던 동료가 순식간에 당한 것을 알기에 저러는 것이다.

그러나 귀갑강시공으로 인해 느려진 움직임으로는 지금의 내 검을 피할 수 없다.

푸욱!

결국, 검이 놈의 오른쪽 무릎을 파고들었다.

절정고수가 귀갑강시공을 펼치고 있었는데도 섬혼검이 살을 파고드는 느낌이 상당히 자연스럽다.

확실히 명검이다. 심지어 비룡검으로 찌를 때보다 더 잘 파고드는 듯한 느낌도 있다.

섬혼검이 비룡검보다 더 좋은 검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단순히 검신의 폭이 좁기 때문일 수도 있다.

둘 다일 수도 있다.

“큭!”

놈이 짧은 신음을 토해낸 순간, 남궁설의 검이 놈의 가슴을 찔렀다.

“커흑!”

사파 절정고수의 신형이 무너져 내리는 가운데, 남궁설이 자신의 검에 잠시 시선을 두는 모습이 보였다.

표정을 보니 그녀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쉽게 귀갑강시공을 뚫은 모양이다.

내가 느끼기에도 남궁설의 검에 맺힌 기운은 그다지 강맹하지 않았었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절정고수의 귀갑강시공을 뚫어낸 것이다.

역시 남궁설이다.

상황을 보니 단목강은 천마신교의 절정고수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참고로 다섯 명의 절정고수들 중에서 실력이 가장 빼어난 자가 천마신교의 절정고수다.

임려현은 혈교의 절정고수를 압도하고 있다. 저쪽은 곧 끝날 것 같다.

우문직과 단목홍신은 역시나 고전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당장 가서 도와야 할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근처에 임려현이 있으니, 혹시라도 두 사람이 위태로워지면 그녀가 알아서 도와줄 것이다.

그즈음에는 적의 일류고수들이 대거 합류하고 있었기에 곧장 남궁설에게 전음을 보냈다.

[일류고수들은 우리가 해결하자.]

남궁설이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부지런히 움직이며 일류고수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내 암기술도 암기술이지만 남궁설의 철비정술도 수준급이라, 적이 가까이에 있든 다소 멀리에 있든 빠르게 정리되어 갔다.

일류고수 중에도 귀갑강시공을 익힌 자들이 몇 명 있었지만, 당연하게도 우리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반각 후, 우리를 추격해왔던 적들이 모두 정리되었다.

일류고수들 중에 암기술을 펼치던 자들이 서너 명 있었기에, 나는 그들의 시신으로 다가가서 의복을 뒤졌다.

쓸 만한 암기들이 있으면 보충하기 위함이었다.

한데 암기들뿐만 아니라 작은 목갑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목갑을 열어서 확인해 보니 역시나 바늘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바늘 끝이 푸르스름하다.

독침이다.

아까 일류고수들은 독침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었다.

아마도 남궁설과 내가 일류고수들을 너무 빨리 처치하고 다니다 보니, 목갑을 꺼내서 독침을 쥘 새도 없었을 것이다. 독침을 제대로 쥐려면 약간의 시간이 필요한 탓이다.

“위험하잖아요. 그런 물건 가지고 다니면.”

뒤에서 임려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가 특유의 인심 좋은 미소를 지은 채로 나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참고로 임려현은 보기 드문 비침술 숙련자다.

의미를 알아들은 내가 목갑을 닫아서 그녀의 손 위에 얹어 놓자 그녀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저 미소야말로 살인 미소가 아닐까 싶다.

시신을 뒤져서 나온 목갑이 총 네 개였기에 우리는 두 갑씩 나눠 가졌다.

어느새 인근이 전투 소리로 가득해졌다.

나는 조원들과 함께 은밀히 비탈 아래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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