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328
“탄!”
“전방!”
송유겸의 외침이 연달아 들린 순간, 선의림은 흠칫했다.
지금은 암기를 쳐내는 것만으로도 매우 버거운 상황이다.
철비정과 침이 너무 많이 날아들고 있는 탓이다.
한데 이런 순간에 탄이라니.
어쨌거나 이러면 즉시 이탈해야 한다.
정신없는 상황이라 구체의 정확한 위치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전방에서 날아온다고 하니 후방으로 피해야 할 것이다.
한데 그게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신형을 돌려서 신법을 펼쳐야 신속하게 이탈할 수 있을 텐데, 전방에서 여전히 수많은 암기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탈 속도가 약간 느리더라도, 지금처럼 암기를 쳐내면서 뒤쪽으로 신형을 뽑을 수밖에 없다.
방어 검법을 펼쳐내기 위해 진기를 가득 끌어올렸다.
지금은 매우 급박하고 위험한 상황인 만큼, 화산의 절기를 펼칠 수밖에 없다.
참고로 이전까지는 전투 중에 단 한 차례도 화산의 무공을 펼친 적이 없다.
기초 검법과 기초 경신법만 펼쳤었다.
동료들의 역량이 뛰어나고 조직력마저 좋다 보니, 굳이 본산의 무공까지 펼칠 일이 없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친우들 대부분이 전투 시에 기초 무공만 사용했다.
요령을 부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기초 무공은 동작이 간결하여, 조직적인 전투에서 동료들과 합을 맞추기에 훨씬 적합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초 무공은 무공 연원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초 검술과 기초 경신술로는 어림도 없는 상황이다.
최고의 방어 검법을 펼쳐냄과 동시에, 신형을 뒤로 뽑기에 가장 적합한 신법을 펼쳐야 한다.
준비동작을 취하면서 주변시를 통해 왼쪽에 있는 풍세학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마침 그의 검이 검법을 펼쳐내기 시작한 모양새다.
보아하니 그가 막 펼쳐내기 시작한 검법은 대라선풍검의 제이식(第二式)이다.
풍세학이 펼쳐낼 수 있는 최고의 방어 검법이다.
대라선풍검의 제이식이 펼쳐지면 검이 허공에 우아한 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며, 그 곡선은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부드럽게 이어지게 된다.
곡선의 우아한 형태로 인해 얼핏 느려 보이는데, 실상 검은 매우 쾌속하게 움직인다.
풍세학의 다리와 발은 유운신법을 준비하고 있다.
유운신법은 떠가는 구름처럼 평온한 느낌이라서 딱히 빨라 보이지 않지만, 실상은 매우 쾌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신법이다.
풍세학과는 워낙 절친한 사이라서 이렇듯 그의 무공에 대해서도 잘 아는 것이다.
* * *
풍세학은 대라선풍검의 방어식인 제이식을 넓게 구사함과 동시에, 발로는 유운신법을 펼치며 바닥을 강하게 박차는 중이었다.
적도들에게 무당의 절기를 드러내기는 싫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다. 현재의 위치에서 최대한 신속히 이탈하는 게 최우선인 상황이다.
참고로 검법을 넓게 펼친 이유는 한순간이나마 선의림의 전방도 같이 보호해주기 위함이다. 그 정도만으로도 선의림에게는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티디디디디디딩!
검이 정면의 암기들을 부지런히 쳐내는 가운데, 신형은 쾌속하게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찰나간에 뒤로 물러나게 되자 자연스레 오른쪽에 있는 선의림의 상황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도 정면을 향해 검법을 펼쳐내는가 싶더니, 곧장 신형을 뒤로 튕기는 모습이었다.
선의림의 저 검법은 구궁매화검의 방어식인 매영난무다.
검법이 품은 기세는 거대한데, 검 끝의 움직임만 보면 매화를 피우듯 아기자기하고 유려한 게 특징이다.
신법은 낙화표풍을 펼치고 있다.
낙화표풍은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규칙적이지 않은 움직임이 특징이다.
불규칙한 움직임을 보이면서도 쾌속하기에, 직접 상대해보면 공격 순간을 포착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전선에서 오륙 보쯤 이탈하니 그제야 구체가 보였다.
날아오고 있는 구체는 두 개다.
하나는 남궁묵의 우측으로, 다른 하나는 좌측으로 날아오고 있다.
조원들이 전선에서 전투 진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고 가정하면, 구체는 후열 인원들의 뒤쪽 땅바닥에 떨어졌을 것이다. 경로를 보니 그렇다.
어쨌거나 구체들이 곧 땅바닥에 부딪히며 폭발할 텐데, 자신과 선의림은 좌측 구체의 폭발 범위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최선을 다해 이탈하고는 있지만, 어떻게 해도 결국은 폭발에 휘말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남궁묵이 오른쪽 구체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다들 이탈하기 바쁜데, 유일하게 남궁묵만이 원래의 위치에 남아 있다가 우측으로 날아드는 구체를 향해 튀어 나간 것이다.
얼핏 위험해 보이나, 남궁묵이 무모한 시도를 할 리는 없다. 처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나선 것이리라.
남궁묵이 오른쪽으로 날아드는 저 구체를 처리하면, 전열의 우측에서 이탈 중인 추소륵과 배낙균은 안전해질 것이다.
이런 순간이 되니 야속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남궁묵은 왜 우측을 택한 걸까.
좌측에 있는 자신과 선의림도 똑같이 위태로운데.
가뜩이나 방금 남궁묵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우측의 구체를 향해 튀어 나갔었다.
처음부터 좌측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송유겸이 이쪽을 도와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송유겸은 남궁설과 함께 좌측면의 적도들을 처리하기 위해 튀어 나갔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탄’이라고 외쳤던 그의 목소리에서도 제법 거리감이 느껴졌었다.
결국, 현재 자신과 선의림은 누군가의 도움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어느새 구체가 땅바닥에 매우 가까워졌다.
독탄일지 벽력탄일지 모를 저 구체는 자신의 몇 보 앞에서 터질 것이다.
풍세학은 이를 악물며 호신기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전신에 호신기를 둘러, 어떻게든 폭발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옆에 있는 선의림도 진기를 잔뜩 끌어올리고 있는 게 느껴진다.
그도 아마 자신과 같은 생각일 것이다.
‘독탄이기를…….’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벽력탄은 폭발 범위가 넓으며, 터지자마자 눈 깜짝할 새에 날아드는 파편들을 사실상 피할 수가 없다.
독탄은 폭발 지점에서 일순간 독무가 강하게 퍼지기는 하나, 최초 폭발력이 미치는 범위 자체는 벽력탄보다 좁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는 저 구체가 독탄인 편이 그나마 낫다.
그 직후, 구체가 전방의 바닥에 닿으려던 찰나, 풍세학은 눈을 휘둥그레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휙 하고 나타나더니, 바닥에 닿기 직전의 구체를 한 손으로 낚아챘기 때문이다.
독탄이나 벽력탄은 일정 수준 이상의 충격이 가해지면 폭발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시커먼 그림자는 구체에 충격이 가지 않게끔, 구체를 낚아채던 순간에 손을 부드럽게 뒤로 빼며 회전하는 모습이었다.
그 와중에도 다른 손에 쥔 검으로 철비정과 독침들을 쳐내고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나타났기에 순간적으로 그림자처럼 보였지만, 이쯤 되자 그림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송 공자……!’
그가 ‘탄’이라고 외쳤을 때는 분명히 거리감이 멀었었다.
한데 언제 왔단 말인가.
송유겸이 때때로 불가사의한 속도로 움직인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지만, 이렇듯 직접 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송유겸이 회전을 유지한 채 허공으로 도약하는가 싶더니, 적진을 향해 그대로 구체를 던졌다.
그즈음에는 우측에서도 구체 하나가 적진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궁묵이 날린 구체다.
보아하니 남궁묵이 송유겸보다 약간 먼저 던진 듯하다.
하긴 애초에 구체와의 거리 자체가, 남궁묵 쪽이 송유겸보다 훨씬 가까웠었다.
남궁묵은 낮게 도약한 상태고 송유겸은 제법 높이 도약한 상태다.
남궁묵이 던진 구체는 적도들이 밀집해 있는 한가운데로 날아가는 중이고, 송유겸이 날린 구체는 적진의 후열 쪽으로 날아가는 중이다.
두 개의 구체 모두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다.
“피햇!”
적진에서 누군가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리기는 했지만, 구체들은 이미 적도들 속으로 사라진 후였다.
그 직후.
콰아아앙-! 콰과아아앙-!
적진 쪽에서 고막을 울리는 굉음이 들리더니, 자갈 같은 것들이 튀어 오르며 흙먼지가 비산했다.
그리고 넓게 퍼져가는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온갖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으악……!”
“아아악……!”
“크아악……!”
보이지는 않지만, 저 흙먼지 속은 아비규환일 것이다.
선의림이 중얼거렸다.
“벽력탄이었다니…….”
고개를 돌려 보니 선의림은 멍한 표정으로 자욱하게 피어오른 흙먼지 쪽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
송유겸이 벽력탄을 처리해주지 않았다면, 지금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게 누구였겠는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바닥에 엎드려 있던 남궁묵과 송유겸이 빠르게 신형을 일으키더니 곧장 흙먼지 안으로 진입하는 모습이 보인다.
남아 있는 적들을 확실하게 정리하려는 것이다.
다른 조원들은 무사한지 확인하기 위해 주변을 살폈는데, 그제야 가만히 서 있는 조원은 자신과 선의림뿐임을 알 수 있었다.
비슷한 처지였던 배낙균과 추소륵마저도 이미 임려현과 금분옥을 도와 우측면의 적들을 처리하는 중이었다.
왠지 창피하다.
바로 선의림에게 말했다.
“의림아, 가자.”
선의림도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고는 곧장 대꾸했다.
“네, 형님.”
선의림과 함께 좌측면의 적들에게로 향했다.
단목강과 남궁설이 거의 정리해가는 모양새긴 하지만, 가서 적들의 퇴로라도 차단해줘야 하리라.
* * *
천섬무의 기운을 담아 구체를 힘껏 던진 후,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며 좌측면의 상황을 확인했다.
원래 그쪽에 있던 적들은 열한 명이었는데, 지금 서 있는 건 네 명뿐이다.
내가 날렸던 독침이 큰 성과를 낸 것이다.
남궁설이 그곳에 남아서 남은 적도들을 상대하고 있다.
복귀하라는 내 지시를 어긴 건데, 이유는 대강 짐작이 되었다.
단목강이 그녀의 옆에서 함께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단목강은 원래 좌측면의 적들이 날리는 암기를 전담해서 쳐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그쪽의 적들 다수가 쓰러지자 곧장 남궁설 곁으로 이동한 모양이다.
알아서 척척 움직여주니 저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남아 있는 적들은 네 명뿐인데 단목강이 합류했으니, 이제 저쪽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착지함과 동시에 바닥에 엎드려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러자마자 폭음이 들렸다.
벽력탄의 폭음이었다.
곧 폭음이 가시자 옆에 엎드려 있던 남궁묵의 전음이 들려왔다.
[가자. 절정고수들부터 정리하자.]
[예.]
곧 남궁묵이 뿌연 흙먼지 속으로 먼저 진입했고 나도 그의 뒤를 따랐다.
남궁묵과 함께 적도들을 정리하고 돌아와 보니 좌우 측면에서 벌어지던 전투들도 마무리된 모습이었다.
조직력이 범상치 않았던 수십 명의 정예를 상대로 타격조가 깔끔한 승리를 거둔 것이다.
남궁묵이 걸음을 빠르게 옮기며 남궁설과 단목강 쪽으로 향하기에 나도 그의 뒤를 따랐다. 풍세학과 선의림도 그쪽에 합류해 있다.
네 사람에게 가까워지자 남궁묵이 물었다.
“다친 사람 없지?”
이에 네 사람이 동시에 대꾸했다.
“예.”
“네.”
그러자 남궁묵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수고들 많았다. 그리고…….”
잠시 말을 줄였던 남궁묵이 풍세학과 선의림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세학이랑 의림이는 오해 없길 바란다. 내가 좌측의 구체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건, 유겸이가 반드시 처리해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니까.”
“아유, 오해라니요.”
풍세학이 양손을 내저으며 그렇게 대꾸하자 선의림도 동조하며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구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남궁묵과 나는 의사소통을 전혀 안 했었다. 그냥 각자 알아서 움직였다. 그런데도 손발이 맞았다.
남궁묵이 다시 입을 열었다.
“몇 년 전에 사유 증운생을 처치하는 작전에 같이 투입됐었는데, 그때 유겸이는 이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탄을 잘 처리해줬었거든. 게다가 현재의 유겸이는 그때보다 경지도 훨씬 높고.”
“아…….”
풍세학과 선의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묵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화제를 전환했다.
“아까 보니까 둘 다 대처가 좋더라. 난처하고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을 텐데도.”
그러자 선의림이 대꾸했다.
“어쩔 수 없이 사문의 무공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로 저희의 무공 연원은 탄로 났을 겁니다. 뭐, 상관은 없습니다만.”
“아, 그거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게 적의 지휘부에 보고될 일은 없을 테니까.”
남궁묵의 말에 풍세학과 선의림이 고개를 갸웃했다.
“예……?”
“이곳에서 살아서 도주한 자들이 한 명도 없는데 너희들의 무공 연원이 어떻게 알려질 수 있겠어?”
남궁묵이 빙그레 웃으며 대꾸하자 풍세학과 선의림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풍세학이 물었다.
“그래도 몇 명쯤은 성한 몸으로 도주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벽력탄에 다 몰살당한 겁니까?”
“다 몰살당했던 건 아니야. 몸 성한 자들과 다리가 멀쩡한 자들이 열 명가량이 도주하고 있었거든. 그 도주가 성공하지 못했을 뿐이지.”
그러자 선의림이 말했다.
“와아! 열 명이나 도주하고 있었는데도 모조리 처리하신 겁니까? 역시 남궁 선배님과 송 공자……!”
감탄한 표정이다.
남궁묵이 대꾸했다.
“추격 과정에서 어려운 역할은 유겸이가 다 했어. 나는 상대적으로 가까운 적들을 맡았고, 유겸이가 멀리 도주한 적들을 맡았거든.”
그 말에 풍세학과 선의림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더 감탄한 표정이다.
부담스럽다.
남궁묵이 말했다.
“그럼 나는 저쪽에 있는 조원들에게 가볼 테니 호흡들 정리하고 있어. 곧 다시 움직여야 할 테니까.”
“예.”
남궁묵이 멀어지자 풍세학이 내게 말했다.
“우리가 이렇듯 사지 멀쩡할 수 있는 건 모두 송 공자 덕분이오. 고맙소.”
“정말 고맙소.”
선의림도 그렇게 말을 보탰다.
이에 미소를 지어 보이며 두 사람에게 대꾸했다.
“구체를 처리하겠다고 결정한 순간부터는 나도 목숨을 건 상황이라, 그야말로 이 악물고 달렸소. 어쨌든 우리 모두 무사하니 다행이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당시에 나는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펼친 상태가 아니었다.
물론 처음에는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펼쳤었다.
구체 두 개를 모두 내가 처리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남궁묵이 우측의 구체 쪽으로 나서기에 속도를 줄였던 것이다.
내공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
선의림이 말했다.
“그때 나는 폭발의 영향권 안에 있었고 크게 다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소. 그래서 이를 악물며 마음의 준비를 하던 참이었지. 한데 그 순간에 전방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불쑥 나타나는가 싶더니, 그 구체를 휙 낚아채는 게 아니겠소?”
그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림자의 움직임이 워낙 빨라서 전체적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수준이었지만, 그게 송 공자라는 사실쯤은 금세 알 수 있었소. 거짓말 같은 그 광경에 소름이 쫙 올라오더구려. 그 순간의 광경은 아마도……, 평생 내 뇌리에서 잊히지 않을 것 같소.”
옆에서 풍세학도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하핫, 민망하구려…….”
내가 대꾸하자 이번에는 풍세학이 말했다.
“사실 나는 송 공자와 함께 싸우게 되어서 내심으로 무척 기대하고 있던 참이었소. 다른 친우들로부터 송 공자의 실전 역량에 대해 워낙 많이 들었으니까.”
풍세학이 말을 이었다.
“한데 막상 전투를 치르면서 보니 후열의 남궁 소저 쪽에서는 암기 지원이 부지런히 이어진 반면, 송 공자의 암기 지원은 잊어버릴 때쯤 한 번씩 날아오더구려. 저 정도면 뒤에서 노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소. 하지만 이제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소. 앞으로는 설령 송 공자의 암기 지원이 전혀 없다 해도, 이 풍 아무개는 결코 송 공자에 대해 불경한 마음을 품지 않을 것이오.”
풍세학이 과장된 어조로 말을 마쳤다. 농담을 섞은 것이다.
즉시 그에게 대꾸했다.
“아하하, 내가 그러는 건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고자…….”
그러자 단목강이 내 말을 끊으며 풍세학과 선의림을 향해 말했다.
“원래 송 공자가 후열에서 유유자적하며 빈둥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나서서 활약하는 것을 좋아하오. 그러니 공자들이 이해하시구려.”
농담조로 나를 놀리고 있다.
그러자 남궁설도 끼어들었다.
“대애충대충, 건서엉건성 하며 노는 것 같아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꼭 한 건씩 해주긴 하거든요.”
그녀가 의도적으로 ‘대충대충’과 ‘건성건성’을 강조하자 풍세학과 선의림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때쯤 저쪽에서 남궁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적들의 시신을 수색해줘. 벽력탄이나 독탄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모든 시신을 확인한 후에 출발할 거야.”
이에 우리는 흩어져서 적들의 시신을 수색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