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344
식사를 마친 후, 무림맹의 무인들에게 수소문하여 전대 비마 후필목의 시신이 안치된 곳으로 찾아갔다.
통상, 적이라도 고수거나 주요 인물이면 시신을 따로 보관해둔다. 그런 시신들은 자세히 조사해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인들이 알려준 곳은 합산지부 외원의 별채였다.
별채에는 길고 높은 담장이 둘러 있었다. 규모가 제법 커 보이는 별채였다.
무인 다섯 명이 대문 앞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수고들 많으십니다. 송유겸이라 합니다. 적측 고수들의 시신을 좀 확인해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내가 죽립을 벗으며 그렇게 인사를 건네자 경계를 서던 무인들이 반색하며 길을 터줬다.
“소, 송유겸 공자……!”
“드, 들어가 보십시오.”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 후에 안으로 들어섰다.
뒤에서 무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와! 동천비룡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다니……!”
“뭐야! 미남이라고 듣기는 했는데 저 정도였어?”
“기도만 봐서는 전혀 고수 같지 않은데, 전투 시에는 엄청나다지?”
자기들 딴에는 최대한 작게 말한다고 말하는 모양새고, 웬만한 고수들도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속삭임인데, 내 귀에는 다 들리고 있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서 보니 족히 삼사백 구는 되어 보이는 시신들이 마당에 오와 열을 맞춰 안치되어 있었다.
마당 중앙으로 난 길을 따라 건물 앞에 다다랐다. 건물 앞은 무인 세 명이 지키고 있었다.
“수고 많으십니다. 소생은 송유겸이라 합니다. 적측 고수들의 시신을 확인해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죽립을 벗으며 그렇게 인사하자 이번에도 무인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중 선임인 듯한 무인이 말했다.
“반갑습니다, 송유겸 공자. 들어가십시오. 적측 주요 인물들의 시신은 복도를 지나 오른쪽 방에 있습니다.”
이에 한 차례 목을 숙여 보인 후에 안으로 들어섰다.
무인들이 나를 대하는 모습들을 보니 앞으로는 유명세를 더 많이 치르게 될 것 같다.
지금도 유명세로 인해 귀찮은 일들이 많은데, 앞으로는 얼마나 더 귀찮아질까.
하지만 지금은 귀찮고 말고를 따질 때가 아니다.
천마신교와의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된 마당이니, 유명세를 이용해서라도 더 많은 백도인들이 내 곁에 서게 해야 한다.
건물 안은 매우 서늘했다.
각종 시설들을 보아하니 원래 검시소 및 시신 보관소로 쓰이는 건물임을 알 수 있었다.
복도를 지나 오른쪽 방의 문을 잡아당겼다.
문이 열리며 안쪽에서 냉기가 흘러나왔다.
강호에서는 보통 기관과 진법을 활용하여 시신 보관소의 냉기를 유지한다. 이곳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드러난 방 내부는 상당히 넓었다.
수십 개의 긴 탁자가 질서 정연하게 놓여 있고, 그 탁자들의 위에 흰 천으로 덮어 놓은 시신들이 올려져 있다.
방 안에는 네 사람이 있었는데, 그중 세 사람은 처음 보는 이들이었고, 한 사람은 임려현이었다.
임려현도 나를 발견하고는 전음을 보내왔다.
[송 공자.]
[선배님.]
내가 그녀 쪽으로 다가가자 그녀가 물었다.
[이곳에는 어쩐 일이에요?]
[아, 전대 비마와 같이 있었다는 고수가 누군지 궁금해서요. 무당파의 도사님들이 상대했다던.]
[아, 그 시신이라면 저쪽이에요.]
임려현이 그렇게 말하며 한쪽으로 이동했다.
나도 그녀가 이동하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전음으로 물었다.
[선배님도 누군가의 시신을 확인하러 오신 겁니까?]
[아, 나는 그냥 전체적으로 한번 확인하러 와본 거예요. 정체가 밝혀진 인물들 외에, 내가 아는 다른 얼굴들이 있는지 보려고.]
역시 신룡대의 부조장 출신답다.
잠시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임려현이 특정 탁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다가가서 보니 탁자에 붙어 있는 이름표에 <후필목>이라고 적혀 있었고, 이름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천마신교, 전대 비마’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임려현이 흰 천의 윗부분을 살짝 걷어내자 쭈글쭈글한 노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역시나 내가 아는 전대 비마, 후필목의 얼굴이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보다 훨씬 늙은 용모다.
과거에 봤던 그의 모습들이 뇌리를 스쳐 간다. 그와 사부님이 같이 있던 여러 광경이 여전히 눈에 선명하다.
한데 이제는 둘 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니.
상념에 잠겨 있는 사이 임려현의 전음이 들려왔다.
[후필목 정도면 마교 쪽의 터가 좋은 곳에 명예롭게 묻혀야 할 전대의 거마죠. 한데 이렇듯 연고도 없는 머나먼 타지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네요. 젊은 천마의 지나친 야욕이 결국,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마의 최후를 이토록 초라한 꼴로 만들어 놓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위지광 이 자식아, 나중에 아수라님 앞에 가서 무슨 벌을 더 받으려고 이 지랄이냐, 지랄은.
임려현이 후필목의 옆에 있는 탁자로 이동했다.
이름표에는 <신원 미상>이라고 적혀 있고, 그 아래에 작은 글씨로 ‘후필목과 동행한 고수’라고 적혀 있었다.
임려현이 흰 천의 윗부분을 걷어내자 노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드러난 얼굴은 역시나 내가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임려현의 전음이 들려왔다.
[아까도 잠시 확인했었는데, 내 생각에 이자는 봉칠우라는 자인 것 같아요.]
그녀의 말마따나 이 노인의 이름은 봉칠우다.
[봉칠우…….]
그 이름을 처음 접한 척하며 되뇌어주자 임려현이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천마신교의 구대호법에까지 올랐던 인물이죠.]
모른 척 대꾸해줬다.
[상당히 높은 지위 같군요.]
[맞아요.]
이후에 임려현이 구대호법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고, 나는 처음 듣는 것처럼 반응해줬다.
천마신교의 호법원은 무공 순위에 따라 수좌, 이좌, 삼좌 식으로 호법들의 서열을 매기는데, 그 서열의 구좌까지를 구대호법이라고 부른다.
봉칠우는 구대호법 출신으로 호법원의 삼좌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대외적인 활동을 한 적이 없어서, 외부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런데도 임려현은 봉칠우의 정체를 파악해낸 것이다.
대단한 정보력이 아닐 수 없다.
신룡대 시절에 알게 된 정보일 테니, 정확히는 신룡대의 정보력이 대단하다고 해야겠지만.
참고로 나는 봉칠우와도 딱히 친분이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공식 석상에서 형식적인 인사만 나누는 정도였다.
임려현이 말했다.
[귀주와 운남 쪽의 수복전단은 상당히 고전하고 있다던데, 이들과 같은 전대 마두들이 크게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이곳 광서의 경우에는 진격 과정이 전체적으로 완벽에 가까웠기에 후필목, 오태흥, 봉칠우와 같은 전대 마두들이 제대로 활개 칠 만한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던 거고요.]
[예.]
우리는 요격하러 나온 전력도 궤멸시키고, 진군을 막으며 시간을 끌기 위해 보낸 전력도 궤멸시키며 진격해왔다. 적의 머릿수를 확실하게 줄이며 진격한 것이다. 일반 전력뿐만 아니라 정예 전력까지도.
당연히 적 지휘부는 당황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전략도 수세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을 테고, 우리의 진격 속도마저 빠르다 보니 후필목, 오태흥, 봉칠우와 같은 고수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초고수들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채로 최후의 일전에 돌입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적들도 우리 쪽 초고수들에 대한 대비가 전혀 안 돼 있었던 거고요.]
초고수들이란 현송진인, 진허자, 문숙경, 단목진이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내가 대꾸하자 임려현이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우리끼리 얘기지만, 이렇게 돌아보니 우리가 정말 대단한 역할을 했던 거군요.]
이런 결과를 내기까지, 특전반원들과 특무강습대원들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는 의미다.
[예.]
내가 대꾸하자 임려현이 잔잔한 미소를 지은 채로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금 전음을 보내왔다.
[이번 광서 수복전이 진행되는 내내, 함께 작전을 수행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저야말로 그렇습니다.]
임려현과 나는 광서 수복전이 진행되는 내내 정찰조와 강습조에 속해서 항상 같이 움직이며 싸웠다. 그 얘기다.
임려현이 말했다.
[쾌감, 희열, 신뢰, 든든함. 함께 싸우면서 송 공자와 합을 맞출 때마다 그런 기분을 가득 느낄 수 있었어요. 정말 대단한 경험이었어요. 소싯적에 신룡대의 우리 조원들과도 수많은 전투를 함께했었지만, 당시에도 이 정도로 손발이 척척 맞는 동료는 없었거든요.]
[저 또한 선배님과 손발이 척척 맞을 때마다 짜릿했습니다.]
단순히 고수와 고수가 협력해서 싸운다고 해서 손발이 잘 맞는 게 아니다.
서로에 대해 잘 아는 게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상대방이 익힌 무공의 특징, 실전 역량, 전투 시의 성향과 습관 등에 대해 잘 파악이 되어 있어야 하며, 성격과 가치관까지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둘 다 시야가 넓어야 하고, 순간 판단력도 뛰어나야 한다.
그런 전제들이 갖춰진 상태에서, 서로 간에 충분한 신뢰와 배려가 뒷받침되어야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곰곰이 복기해 보니 나보다 송 공자가 훨씬 더 잘 맞춰줬다는 걸 알겠더군요.]
[아시다시피 제 무공이 쾌자결 위주라, 순간적으로 선배님에게 맞춰드리기가 좀 더 수월한 것뿐입니다.]
대충 그렇게 대꾸해주자 임려현이 포근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임려현과 함께 다른 시신들 몇 구를 둘러보고 나서 방을 나섰다.
종리표는 전력을 둘로 나누어, 반은 합산지부를 지키게 하고 나머지 반은 행낭을 회수해 오게 했다.
어제 오후 행군 길에, 모두가 전투를 앞두고 각자의 행낭을 은닉해뒀었다. 그걸 회수해 와야 막사를 설치할 수 있고, 의복도 갈아입을 수 있다.
특전반과 특무강습대의 인원들도 반은 합산지부에 남고 나머지 반은 주 전력 측의 무인들과 함께 행낭을 회수하러 가기로 했다.
되도록 빨리 다녀올수록 좋고, 이곳에 남는 동료들의 짐까지 짊어지고 와야 하는 만큼, 행낭 회수조는 고수들 위주로 구성되었다.
나와 임려현도 회수조에 속했다. 나는 출발 전에 빠르게 세 차례 운기조식을 해서 공력을 보충했다.
이후, 회수조가 합산지부를 나서서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다들 발걸음이 경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대승의 효과다.
그래도 아직은 위험할 수 있기에, 특전반과 특무강습대에서 차출된 인원들이 선봉에서 달리며 정찰을 맡았다.
단목진, 문숙경, 낙문월, 진종정도 우리와 함께했다.
광동, 무당파, 검각, 단목세가의 무인들은 행낭을 멀지 않은 곳에 은닉해 뒀기에 금방 회수해 올 수 있다고 한다.
세 시진 후, 늦은 오후 무렵, 회수조는 다들 행낭을 두 개씩 짊어진 채 합산지부에 복귀했다.
복귀해 보니 합산지부와 그 인근이 매우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남아 있던 인원들이 정리해둔 것이다.
이후에는 모두가 간이막사를 설치했다.
이인일조의 형태로 사용하는 간이막사다.
특전반과 특무강습대는 독립된 구역을 배정받아, 그곳에 간이막사를 설치했다.
광동, 무당파, 검각, 단목세가의 무인들도 각각 독립된 구역을 배정받았는데, 모두 우리의 근처였다.
“이렇듯 송 형과 둘이서 오붓하게 지내게 되었구려.”
나와 함께 이인일조가 되어 간이막사를 쓰게 된 건 황보충이다. 우리의 막사는 외곽의 구석 쪽이다.
“오붓하게는 무슨 오붓하게. 남들이 들으면 오해할 만한 표현은 자제해주시오.”
“후후후.”
“그런 괴상한 웃음도 삼가시고.”
“송 형은 그렇듯 까칠한 반응이 매력적이라니까.”
“후…….”
짧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참, 코 심하게 골면 골탕 먹일 거요.”
황보충은 자면서 코를 제법 곤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한 말이다.
그가 흠칫하며 되물었다.
“골탕?”
“가령 황보 형이 벗어 놓은 버선의 코를 갖다가 황보 형의 한쪽 코에 살며시 쑤셔 넣어준다든가.”
“컥! 그, 그건 너무 심하잖소……! 그리고 코 고는 건 자는 중에 나도 모르게 벌어지는 현상이라 내 의지로 어떻게 할 수가…….”
“그건 댁 사정이시고.”
“아니, 그러지 마시고, 조금 심하다 싶으면 툭 건드려만 주시오. 그러면 내가 어떻게든…….”
우리는 그런 말들을 주고받으며 간이막사를 설치하고 막사 주변을 정리했다.
사실 나는 잠을 적게 자도 상관없기에 황보충이 코를 곤다 해도 크게 곤란하지는 않다.
잠시 후에 황보충이 말했다.
“황금세대라고 하더구려.”
“뜬금없이 무슨 소리요?”
“우리 세대 말이오. 송 형과 우리 친우들이 중심이 되는 이 세대가 백도 역사상 최고의 황금세대라나? 이곳에 계신 선배님들께서 그 표현을 쓰기 시작하셨고, 그 표현이 지금 일반 무사님들 사이에도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는 모양이오.”
“아.”
하긴, 그런 소리를 들을 만도 하다.
내 주변의 친우들은 상당히 이른 시기에 대거 절정에 올랐다.
현재 단목강, 남궁설, 추소륵, 풍세학, 선의림, 강하령, 제갈건, 황보충, 단목홍신이 절정고수다. 나와 길초량을 제외하고, 알 만한 문파와 세가 출신만 나열해 봐도 저렇다.
이렇듯 또래 다수가 이십 대 초중반에 절정에 오른 예는 없었다.
게다가 지금도 여럿이 절정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태다.
더 중요한 점은, 다들 단순히 무공 경지만 높아진 게 아니라 빼어난 실전 역량까지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황보충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상 송 형이 만든 황금세대지.”
“풋! 무슨 그런.”
“친우들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소. 우리 세대가 이전 세대의 선배들보다 특별히 재능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친우들은 없소. 그냥 다들, 저 멀리 앞서가는 송 형의 뒤만 바라보며 쉴 새 없이 달려왔을 뿐인데 어느새 이렇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열심히들 하긴 하셨지.”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오.”
이에 잠시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래도 코 심하게 골면 골탕 먹일 거요.”
“아, 아니, 그러니까 그건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있는 게…….”
그러는 사이에 저녁 식사 배식이 시작되어, 우리는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식사 장소로 향했다.
낮 내내 준비할 시간이 많았는지, 저녁 식사는 제법 그럴듯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쳤을 때쯤에는 날이 어둑해졌다.
제대로 씻고, 의복도 싹 갈아입자 상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가볍게 운기조식이나 몇 차례 취하다가 눈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간이막사의 밖에서 하조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교님, 계십니까?”
이에 막사 입구의 천을 걷어 올리자 하조혁이 말했다.
“아, 계셨군요.”
“무슨 일이야?”
“아, 그게, 포로인 마교의 전대 권마가 식사를 거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송 조교님이 식사를 챙겨 와야만 식사를 하겠다고 했답니다. 지휘부에서 송 조교님께 말씀드리라고 하셔서.”
“으휴, 그 노인네 참……. 알았어. 지휘부에는 내가 가 본다고 전해.”
내가 짐짓 짜증을 표현하며 그렇게 말하자, 하조혁이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멀어져갔다.
오태흥이 나를 찾은 이유를 알 것 같다.
나와 둘만 있는 시간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내 소검을 관찰할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그 의도를 빤히 알면서도 남들에게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일부러 짜증을 낸 것이다.
막사 안에 있던 황보충이 말했다.
“푸히히, 어쩌다 노마두의 눈에 들어서 고생이시구려. 어떻게, 내가 같이 가 드려?”
이에 간단히 무장을 갖추며 대꾸했다.
“일없소. 같이 가 봐야 그 노인네 입에서 좋은 소리는 안 나올 거요. 황보 형이 절정에 오른 일을 가지고 아까처럼 생색만 잔뜩 낼 테고.”
“하아, 긴.”
내가 막사의 입구를 나서자 황보충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녀오시오. 왔는데 혹시 내가 코 골고 있어도 부디 신사적으로 대처해주시고.”
이에 막사를 나서며 대꾸해줬다.
“그때 기분 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