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353
서문범, 장종담, 위태창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피하기 시작했다. 본인들도 저 구체를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이 피하는 것이다.
위험 구역에 있는 무인들 중에서 구체의 위치를 상대적으로 빨리 파악한 이들도 신속하게 이탈하는 중이다.
그러나 늦게 파악해서 이제 막 움직이기 시작한 이들은 위험해 보인다. 몇 명은 당할 것 같다.
곧 구체가 땅바닥에 닿을 테지만, 나는 그쪽에 시선을 두지 않은 채 서문범, 장종담, 위태창이 어디로 피하는지만 확인했다. 서문범이 피한 곳은 내게서 가까운 위치고, 위태창은 약간 먼 편이며, 장종담은 가장 멀다.
그 직후, 나는 또다시 자객의 존재를 파악해낼 수 있었다.
서문범의 근처다.
이번에는 두 놈이다.
한 놈의 위치는 서문범의 좌측 삼 보 옆이다.
놈은 다른 무인들에게 치여서 밀리는 척하며 서문범 쪽으로 접근하는 중이다. 대단하다 싶은 게,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움직임과 동선이 자연스럽다.
한데 문제는 다른 한 놈의 위치다.
놈은 이미 서문범의 지척에 있다. 서문범의 우측 후방이다.
무인들이 독탄을 피하느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뒤섞인 상황에서, 은근슬쩍 서문범의 근처에 자리 잡은 모양이다.
나는 일부러 그들을 못 본 척, 서문범에게서 살짝 멀어졌다.
그 순간 폭발음이 났다.
퍼어엉!
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다. 독탄이다.
폭발이 일어난 순간, 나는 은잠술을 높은 단계로 펼침과 동시에 자세를 낮추고 서문범 쪽으로 접근했다.
위험 범위에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의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으악!”
“크아악!”
“아아아악!”
그리고 그 순간, 서문범의 좌측에서 다가오던 놈이 서문범을 향해 팔을 쭉 뻗는 모습이 보였다.
교묘하다.
다른 무인들 두 명이 겹쳐 있는 틈을 이용해, 그 사이로 검을 찌르고 있다. 그 와중에도 검극은 정확하게 서문범의 가슴팍으로 향하는 중이다. 매우 빠른 속도로.
그나저나 이런 상황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놈이 먼저 공격하지 않고 멀리에 있는 놈이 먼저 공격하다니.
상당히 치밀한 놈들이다.
서문범이 움찔했다.
그래도 절정의 후반에 가까운 고수라, 본인을 찔러오는 검의 예기만으로도 위험을 알아챈 것이다.
서문범이 깜짝 놀라는 중에도 상체를 비틀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검을 끌어당겨 자객의 검을 막아가고 있다.
자객들의 검술이 대부분 쾌검술이기는 하나, 서문범 정도의 고수라면 암습을 알아챈 이상 최소한의 대응은 해낼 것이다.
애초에 좌측의 자객이 너무 멀리에서 검을 뻗은 탓이 크다. 물론 놈도 우측 후방에 있는 동료를 믿고 그랬겠지만.
어쨌거나 저러면 나는 더 편해진다.
좌측 자객의 공격을 막아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대로 우측 후방에 있는 놈의 뒤로 다가갔다.
현재 서문범은 허리를 뒤쪽으로 젖히며 좌측 자객의 암습을 막는 중이다. 저절로 우측 후방에 있는 자객에게 더 가까워진 상황이다.
우측 후방의 자객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그도 매우 빠른 속도로 검을 뻗는 중이다.
서문범이 고수이긴 하나, 이 상황에서 우측 후방의 암습까지 알아채기는 어렵다.
챙!
서문범의 검이 좌측 자객의 검을 막아낸 순간.
캉! 푹!
나는 우측 후방에 있던 자객의 검을 위로 쳐낸 후, 그대로 검극을 돌려 놈의 심장을 찔렀다.
그때쯤 서문범의 좌측에 있던 자객이 도주하기 시작했기에, 나는 즉시 왼손에 준비해둔 쇠구슬을 튕겼다.
슉- 푹!
자객은 몇 걸음 도망치지도 못한 채 쇠구슬에 머리를 관통당했다.
서문범이 후방에서 암습했던 자객의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다.
눈동자가 크게 떨리는 중이다.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이다.
역시나 뒤에 있는 자객의 암습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모양이다.
잠시 후, 서문범이 고개를 들더니 나를 바라봤다.
눈동자에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다.
그중 놀람과 고마움은 확실히 알 것 같다.
그때쯤, 독무의 반대편에서 짧고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다.
“위험!”
“조심!”
서문범과 나는 즉시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봤다.
얼추 장종담과 위태창이 있는 방향이다.
한데 검붉은 독무가 제법 넓게 확산하여 가로막고 있는 탓에 그쪽이 보이지 않는다.
서문범이 즉시 독무의 주변을 빙글 우회하여 전선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고, 나도 그의 뒤를 쫓았다.
독무의 반대편에서 들렸던 두 개의 외침은 단목진과 문숙경의 목소리다.
두 사람의 기운이 능선 위쪽으로부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중이다.
독무를 살짝 우회하자 장종담과 위태창 쪽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둘 다 멀쩡히 서 있다.
다행이다.
두 사람의 근처에 시체 두 구가 쓰러져 있고, 그 시체들의 옆에서 단목진과 문숙경이 허리를 숙인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두 사람도 죽립을 눌러쓴 상태다.
“헉, 헉, 허억, 허억…….”
“하아, 하아, 하아, 하아…….”
저 고수들이 저렇듯 숨이 터질 정도라니.
얼마나 빨리, 얼마나 치열하게 움직였다는 걸까.
어쨌거나 두 사람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서문범과 내가 다가가는 사이에 장종담의 목소리가 들렸다.
“헛! 두, 두 분께서는……!”
단목강과 문숙경의 정체를 알아챈 모양이다.
장종담은 장씨세가주의 둘째 아우이니 단목진과 문숙경을 종종 봤을 것이다. 유명한 단목세가와 검각의 주인들인 만큼, 두 사람의 얼굴을 기억 못 할 리 없다.
단목진이 말했다.
“허억, 허억, 방금 우리가 적진을 뚫고 와서, 허억, 허억, 적의 진형이 흐트러져 있소. 헉, 헉, 일단 이 틈에 고지를 노리는 것이……. 허억, 허억.”
옆에 있던 문숙경도 말을 보탰다.
“하아, 하아, 그리고 수십 명의 정예가 좌측 전선에서부터, 하아, 하아, 능선을 따라 적의 진형을 파괴면서, 하아, 하아,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공세를……. 하아, 하아, 하아.”
그러자 다가가던 중에 그 얘기를 들은 서문범이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전원! 소리치며 진격하라! 고지를 차지한다!”
그 말이 끝나자 귀주 수복전단의 무인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적들을 맹렬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서문범이 곧바로 장종담과 위태창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두 분, 괜찮소?”
장종담이 대꾸했다.
“저희 둘 다 큰일 날 뻔했습니다. 단목세가주님과 검후님이 아니었으면 분명히 당했을 겁니다.”
위태창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다행이구려.”
서문범이 그렇게 대꾸하더니 장종담과 위태창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은 고지를 점령하는 게 우선이니, 부단주들께서는 가서 무인들을 지휘해주시오. 이 두 분과의 정식 인사는 나중에 실컷 나누게 해드리리다.”
“예.”
“자객이 노리고 있으니 두 분이 꼭 붙어 다니시오. 장 부단주가 지휘를 맡고 위 부단주는 옆에서 자객에만 집중해주시는 게 좋을 듯하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대꾸하더니 단목진과 문숙경을 향해 포권해 보이고는 경사면 위쪽으로 향했다.
이에 나는 위태창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자객이 몇 명 더 남았을 겁니다. 특히 제가 아까 말씀드린, 협봉검을 쓰는 자는 실력이 상당할 것으로 추측됩니다. 주의하십시오.]
이곳에 쓰러져 있는 시체들까지 확인했는데, 아직 협봉검을 쓰는 자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일러 준 것이다.
위태창이 살짝 고개를 돌려 대꾸했다.
[협봉검. 알겠네. 고맙네.]
서문범이 단목진과 문숙경을 향해 포권하더니 말했다.
“가주님, 검후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서문범입니다.”
이쯤 되자 단목진과 문숙경도 호흡이 어느 정도 진정된 상태다.
“오랜만이오. 서문 당주.”
“오랜만이에요, 당주.”
서문범이 서문세가에서 맡은 직책이 당주인 모양이다. 그러니 단목진과 문숙경이 익숙한 호칭으로 부르는 것일 테고. 참고로 세가의 경우, 보통 가주의 형제나 자식 중에서 실력이 뛰어난 이들이 각 당堂의 당주를 맡는다.
“제가 부족하나마 현재 귀주 수복전단을 이끄는 중입니다. 한데 이곳에서 두 분을 뵙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어떻게 두 분께서 이곳에 계십니까?”
서문범이 묻자 문숙경이 나를 일별하더니 말했다.
“송 공자가 우리 얘기를 안 한 모양이군요. 그럴 새도 없었다는 거겠죠. 단목 가주님과 나는 맹의 협조 요청에 따라 광서 수복전단을 지원한 후, 그곳의 정예들과 같이 귀주 수복전단을 지원하러 온 거예요.”
“아……!”
서문범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당연히 저런 반응일 수밖에 없다. 내가 아까 말해줬던 제갈수광과 남궁묵뿐만 아니라 단목진, 문숙경과 같은 내로라하는 고수들까지 합세한 상황이니까.
단목진이 서문범에게 말했다.
“일행이 도착하기 전까지, 나와 검후님과 송 공자는 따로 움직이며 적진을 흔들겠소. 그게 우리 지휘관의 지시라서 말이오.”
문숙경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서문범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 두 분이 지휘관이 아니신 겁니까?”
연륜, 지위, 무공 경지 등, 단목진과 문숙경은 어느 단체에서든 지휘관 역할을 맡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들이다. 그런데도 두 사람이 다른 지휘관으로부터 지시받는다고 하니, 지위가 더 높은 누군가가 있나 싶은 모양이다.
문숙경이 대꾸했다.
“제갈수광 교관님이에요.”
그 말에 서문범의 눈이 살짝 커졌다.
제갈수광이 지난 몇 년 새 상당히 유명해지기는 했으나, 강호의 기준으로는 여러 면에서 단목진, 문숙경에게 한참 못 미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지휘권이 단목진과 문숙경에게 양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놀랐을 것이다.
외부의 눈으로 볼 때는 누구나 서문범처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서문범이 말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염치 불고하고 세 분의 활약을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저는 우리 부단주들 쪽으로 가서 지휘에 집중하겠습니다.”
단목진과 문숙경이 고개를 끄덕이자 서문범이 나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오늘 송 공자에게 고맙다고 인사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지만, 인사는 전투가 끝난 후로 미룸세.”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내가 짧게 고개를 숙이며 대꾸하자 서문범이 단목진과 문숙경에게 말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예. 나중에 봬요.”
문숙경이 대꾸하자 서문범이 짧게 포권한 후 경사면 위쪽으로 향했다.
단목진이 문숙경에게 말했다.
“우리는 세 명이니 정삼각 추행진이 정석적인 형태일 것이오. 그러나 후열의 역할을 선호하는 송 공자의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역삼각 진형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판단되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송 공자에게 결정을 맡길까 하는데 검후의 생각은 어떠시오?”
단목진이 말한 역삼각 진형이란 본인과 문숙경이 전열에 서고 나 혼자 후열에 서는 형태를 뜻한다.
문숙경이 대꾸했다.
“뭐든 상관없어요. 드디어 송 공자와 함께 싸우게 된 마당이니까.”
나를 바라보는 표정에 기대감이 잔뜩 담겨 있다.
거, 부담스럽소. 나는 사실 후열에서 어슬렁거리면서 대충 묻어가는 걸 좋아할 뿐이란 말이오.
두 사람의 눈동자가 대답을 강요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역삼각이……, 편할 것 같습니다.”
내가 대꾸하자마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목진이 말했다.
“그럼 갑시다.”
단목진이 앞서서 달려 나가자 문숙경이 바로 뒤따르더니 그의 옆으로 붙었다.
두 사람의 뒷모습에서 왠지 모를 의욕이 느껴진다.
뭔가 신난 것 같기도 하다.
후……. 뭐, 괜찮겠지?
나도 즉시 두 사람의 뒤를 따랐고, 우리는 곧 전투에 돌입했다.
편하다.
전투 중에 이렇게 편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편하다.
전열의 두 사람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주변의 적들이 푹푹 쓰러지고 있다.
귀갑강시공을 펼치고 있는 자들도 다수인데, 그런 자들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풀썩풀썩 쓰러지고 있다.
단목진의 검술은 단단하다.
딱히 공력을 많이 쓰는 게 아닌데도, 검을 통해 발산되는 검세가 묵직하고 강맹하다. 그런 기운이 빠르고 예리하게 곳곳으로 발산되다 보니 주변이 초토화되고 있다.
검술을 가볍게 펼치는데도 저런 모습이다.
문숙경의 검술은 물이 흐르는 듯하다.
유연한 검로가 문숙경의 부드러운 동작과 어우러져,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호강하는 듯하다.
지금은 딱히 큰 힘을 쓸 필요가 없는 상황이지만, 저러다가도 위력을 내야 할 때는 성난 파도처럼 강력해지는 게 바로 검각의 검술이다.
엄호와 지원이 자주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다 보니 나는 딱히 할 게 없다. 그저, 좋은 각이 나올 때만 한 차례씩 철비정을 날려주는 중이다.
아주 좋다.
이렇게 대충 묻어갈 수 있다니.
대신 나는 일대의 기운을 감지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적들도 그냥 당할 수는 없다는 판단인지, 간혹 우리에게 벽력탄도 날리고 독탄도 날렸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먼저 발견한 사람이 “탄!”이라고 작게 외치며 방향만 덧붙여주면, 나머지 두 사람은 금세 궤적을 파악한 후에 딱 알맞은 정도로만 움직여서 위험 범위를 벗어났다. 그러는 중에도 우리 세 사람은 서로 다섯 걸음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암기들과 함께 독침들도 무수히 날아들었지만, 그조차도 우리에게는 애교 수준이었다.
우리는 우측 전선의 끝부분까지 갔다가 잠시 호흡만 정리한 후에 돌아섰다.
이번에도 적진을 흔들면서 복귀하는데, 귀주 수복전단의 전선이 점점 고지에 가까워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의 활약 덕분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나는 적진의 후방으로부터 전선 쪽으로 이동하는 절정고수 다수의 기운을 포착할 수 있었다.
우리가 전진하고 있는 방향이다.
우리를 막으러 온 것이다.
아직 전부 파악된 건 아닌데 최소 서른 명은 되는 듯하다.
하긴, 우리 때문에 입은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니 이대로 돌려보낼 수는 없다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