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388
잠에서 깨어났다.
누운 채로 정신을 차린 후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단목강은 푹 잠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나보다 훨씬 격렬한 전투를 치렀을 테니 휴식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부상도 적지 않고.
참고로 단목강은 본인의 염려와 달리 코를 골지 않았다. 덕분에 나도 더 편하게 잘 수 있었다.
스륵 몸을 일으켜 조용히 막사를 벗어났다.
밖으로 나와서 하늘을 확인했다.
신시 초(오후 3시) 무렵인 듯하다.
우리 쪽 인원들이 쉬고 있는 제이 연무장은 고요한 상태다.
다들 여전히 잠들어 있는 것이다.
지난밤, 일정 수준 이상의 고수들은 모두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대강 들어보니 거의 한계에 다다랐던 고수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내 전투는 상대적으로 한가한 편이었다.
대규모의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는데도 내가 체력적으로 그다지 지치지 않고 내공 또한 바닥에 이르지 않은 적이 이전에 또 있었나 싶다.
경지가 상승한 덕분이라 하겠다.
과거 같았으면 비슷한 전투였어도 어제처럼 무난하게 해결하지 못했을 테니까.
체력과 내공이 거의 바닥에 이르렀을 게 분명하니까.
이곳 북쪽 언덕 지대는 귀양지부의 경내에서 고도가 가장 높다. 참고로 제이 연무장의 위치는 북쪽 언덕 지대의 중턱쯤이다.
언덕의 외곽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로 천천히 걸으며 언덕의 고지대로 향했다.
산책로를 따라 큼지막한 조경수들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조경수들의 사이에는 작은 조경수들과 화단이 조성되어 있었다.
원래는 조경이 더 잘 갖춰져 있었을 텐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다소 훼손된 상태다. 적들이 머물며 훼손한 모양인데, 조경은 주요 시설이 아닌 만큼 많이 훼손하지는 않았다.
언덕의 상단으로 올라와 보니 휴식을 위한 공간이 조성되어 있었다. 산책로보다 조경이 더 잘 갖춰져 있었으며 곳곳에 석재탁자와 의자 등이 배치되어 있었다.
언덕의 상단도 고요하여, 나는 이곳저곳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휴식 공간의 구석에 이르렀을 때쯤 하나의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인기척이 느껴진 쪽으로 다가가 보니 능우희가 석재의자에 앉아 있었다.
금세 능우희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도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알고 이쪽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능우희가 일어서더니 나를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일찍 일어났네?”
내가 미소를 띤 채로 묻자 능우희가 고개를 들더니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예. 선배님도 일찍 일어나셨네요.”
능우희는 표정 변화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음성에서도 고저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송유하와 비슷하다.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에 물었다.
“잠시 앉아도 될까?”
마침 잘 만난 참이다. 능우희의 사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
능우희가 대꾸했고, 나는 그녀의 맞은편 의자에 가서 앉았다.
잠시 능우희를 바라보다가 전음을 보냈다.
[어제 조원들과 함께 전투를 펼칠 때, 어마어마한 한기를 발산했었다지?]
[예.]
능우희가 짧게 대꾸했다.
참고로 그 사실을 아는 건 십 조원들뿐이다. 그리고 나는 조원들에게 그 사실에 대해 함구하라고 지시해둔 상태다.
[빙백공인가?]
[예.]
[북해빙궁?]
설산파와 빙마궁은 명맥이 끊겼다고 알려져 있다 보니 나는 능우희의 사문을 북해빙궁으로 추정했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은 것이다.
그러자 능우희가 잠시 말없이 내 시선을 응시하다가 대꾸했다.
[예.]
호오, 이렇게까지 쉽게 인정할 줄은 몰랐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에 말했다.
[그 나이에 그 정도 경지면 빙궁에서 중요한 신분일 텐데, 멀리 중원에까지 나와 있네? 북해빙궁에 대해서는 아는 게 많지 않아서 그러는데, 능 후배처럼 빙궁의 후기지수가 신분을 감춘 채로 잠룡관에 입관하는 경우가 왕왕 있나?]
능우희가 이번에도 잠시 말없이 내 시선을 응시하다가 대꾸했다.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이번에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에 물었다.
[전에 없었던 일인데도 능 후배는 왜 중원에까지 와서 잠룡관에 입관한 걸까? 북해빙궁의 제자를 만난 게 신기해서 더 궁금해지네?]
능우희가 곧장 대꾸하지 않은 채 슬며시 시선을 틀었다.
대답을 회피하는 게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모양새다.
조용히 기다리자 능우희가 전음을 보내왔다.
[제가 중원에 대한 호기심이 너무 크다 보니 중원 경험도 할 겸…….]
고얀 것이 대답을 회피하고 있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북해와의 거리를 고려하면 그나마 서부지맹이나 북부지맹 쪽이 더 가깝지. 두 지맹 모두 강호를 대표하는 문파와 세가가 많이 소속되어 있어서 중원 경험을 해보기에도 좋고. 그런데 거리도 먼 데다가 남궁세가 말고는 별 볼 일도 없는 동부지맹에까지 와서 중원 경험을 하고 있다고?]
능우희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살짝 흔들렸다.
그녀에게 다시 전음을 보냈다.
[뭐, 능 후배에게도 사정이 있겠지. 그걸 굳이 내게 밝힐 필요는 없는 거고. 단순히 내 개인적인 궁금증 때문에 물어본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진심으로 한 말이다. 능우희가 굳이 본인의 사정을 내게 얘기해줄 의무는 없는 거니까.
어쨌거나 이러면 더는 나눌 얘기가 없어졌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잠시나마 얘기 나눠서 즐거웠어.”
능우희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인사는 하지 않고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뭔가 할 얘기가 있는 기색인데, 말을 할지 말지 망설이고 있는 기색이다.
그 분위기를 확인하자마자 뜸 들이지 않고 곧장 돌아섰다.
지금이 아니면 얘기할 기회가 좀처럼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위기감을 심어줘야 한다.
돌아서서 일곱 걸음쯤 옮겼을 때였다.
[어머니께서 송풍장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 하셨습니다.]
고얀 것이 결국 입을 여는군.
뒷짐을 진 채로 뒤돌아서서 물었다.
[어머니? 설마…….]
[예. 제 어머니께서 북해빙궁주십니다.]
북해빙궁주의 제자겠거니 했는데 딸이었을 줄이야.
잠시 능우희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궁금한 게 많은데 두 번째로 궁금한 걸 먼저 묻지. 빙궁주께서 왜 송풍장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 하시는 거지?]
능우희는 내 질문에 바로 대꾸하지 못했다.
이에 그녀에게 다시 전음을 보냈다.
[그럼 첫 번째로 궁금했던 걸 묻지. 혹시 지난 몇 년 사이에 북해빙궁에 문제가 생겼나? 가령 빙궁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어려움을 겪었다거나.]
능우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어떻게 그걸…….]
[그렇게까지 놀랄 건 아니야. 선두 조가 맞닥뜨린 적들 중에 새외의 고수들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들었거든. 그 얘기를 들은 후에, 그전부터 내가 알고 있던 정보들까지 더해서 추측해본 것뿐이야.]
능우희는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이다.
그녀에게 말했다.
[혹시 빙궁주께서 송풍장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 하시는 것도 그 일과 연관된 문젠가?]
[……예.]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에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다시 앉아도 될까?]
능우희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다시 다가가서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기다리자 능우희가 내게 물었다.
[잠시 설명을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내가 대꾸하자 능우희가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전음을 보내왔다.
[이삼 년 전쯤, 대규모의 적들이 빙궁을 기습하여 포위 공격을 가했습니다. 혈교와 천마신교의 마인들이었습니다. 혈교의 마인들이 주력이었고, 천마신교의 마인들은 소수였습니다. 천마신교 측의 마인들은 최정예 조직 소속인 듯했는데, 그들이 혈교의 마인들을 지휘했습니다.]
대규모의 전력으로 포위 공격하는 건 상대를 가장 빠르게 섬멸시키는 방법이기도 하고, 상대에게서 가장 빠르게 항복을 받아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상대의 피해가 급속도로 증가할 수밖에 없고, 사기도 빠르게 저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빠르게 항복을 받아낸 후, 빙궁의 전력을 흡수하려는 작전이었을 것이다. 다른 새외 세력들에게도 비슷한 작전을 썼을 것이고.
어쨌거나 내가 추측했던 대로, 위지광 놈이 지난 몇 년간 새외 무림 세력들을 정복하고 다녔음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다.
능우희가 전음을 이었다.
[빙궁의 식구들은 격렬하게 맞서 싸웠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중과부적이었고, 수준급 고수들의 수도 적측이 훨씬 많았습니다. 전세가 기울며 식구들의 희생이 급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하자, 어머니께서 빠르게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빙궁의 식구들을 궁의 지하로 도망치게 하여 적들을 유인했고, 식구들이 비밀통로로 진입하자마자 어머니께서 기관 장치를 발동해서 궁을 무너트렸습니다.]
[유감이야.]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비밀통로로 빠져나왔다고 해도 천마신교의 추적망을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았을 듯한데.]
[지하 비밀통로는 인근에 있는 넓은 호수의 물속으로 이어지고, 호수 안의 수많은 바위틈에 숨겨져 있는 수중 동굴로 이어집니다. 게다가 호수의 물이 매우 차가워서, 한기에 단련된 무인이 아니라면 웬만한 고수라도 물속에서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천마신교에서 아무리 빨리 저희의 행적을 추적했어도, 그 시점에 저희는 이미 빙궁의 은신처에 들렀다가 더 멀리 도주한 후였을 겁니다.]
빙궁주의 빠른 판단이 주효했다고 하겠다.
빙궁의 주인으로서 본거지를 버리는 결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결단력이 남다른 인물인 듯하다. 그 판단과 결단이 아니었다면 북해빙궁도 이미 위지광 놈의 손아귀에 떨어졌을 것이다.
능우희의 전음이 들려왔다.
[빙궁의 식구들은 신속하게 남하한 뒤 중원에 있는 몇 군데의 은신처로 흩어졌습니다. 그 후부터는 천마신교와 혈교의 정보망에 걸리지 않게끔 조용히 지내는 중입니다.]
[무림맹에 도움은 청했나?]
[청하지 않았습니다. 빙궁은 백도의 연맹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편입니다.]
[아, 그래?]
내가 되묻자 능우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전음을 보내왔다.
[과거에 정사대전이 발발했을 당시, 빙궁은 백도의 지원 요청에 응하여 적과 싸웠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전쟁에서 백도 명문 출신의 무인들은 앞에 나서려 하지 않았기에, 아군을 믿고 용맹하게 앞으로 나서서 싸웠던 빙궁 측의 희생만 컸습니다. 빙궁의 어른들한테서 들었던 얘기를 전해드리는 겁니다.]
이건 몰랐던 사실이다.
[그런데 정사대전에서 승리한 후, 백도 측에서는 빙궁이 올린 수많은 전과를 최소한으로만 인정했습니다. 심지어 그 보잘것없는 보상조차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더 적게 지급했습니다. 명문들도 전쟁으로 인해 지출이 너무 컸다며 양해를 부탁했다는데, 빙궁의 입장에서는 이미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해버렸지요.]
[그랬겠네.]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해줬다.
나라도 불신하게 됐을 것 같다.
[어쨌거나 천마신교가 건재한 한, 빙궁의 식구들은 북해로 다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만약 천마신교와의 전쟁이 벌어진다면 빙궁은 무조건 싸워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야 북해를 되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능우희가 전음을 이었다.
[언젠가 천마신교와 싸우게 될 때, 이번에는 믿을 수 있는 동료들하고만 힘을 합하고 싶은 겁니다. 그게 바로 어머니와 빙궁 식구들의 뜻입니다.]
[이번에는 과거와 같은 취급을 당하고 싶지 않다는 거로군.]
[……그렇습니다.]
능우희는 그 대꾸를 끝으로 한동안 침묵했다.
잠시 후에 능우희에게 물었다.
[결국 빙궁주께서는 우리 송풍장이 빙궁의 동료로서 적합한지를 알아보고 계시는 건가?]
[그러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능 후배도 동부지맹 잠룡관에 입관한 거고?]
[우선, 제가 잠룡관에서 생활하는 동안 빙궁의 다른 식구들이 동부지맹과 남창 그리고 포양호 인근에서 송풍장에 대한 정보를 꾸준히 수집하고 있었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빙궁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없었으니 오해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농담조로 대꾸해줬다.
[그 송유겸이라는 놈에 관한 소문이 거품인지 아닌지, 송유겸이라는 놈이 신뢰할 만한 놈인지 순 사기꾼 같은 놈인지, 그런 부분들에 대한 자체 조사가 당연히 필요했겠지.]
[푸훕……!]
순간적으로 웃음을 참지 못한 능우희가 재빨리 손으로 본인의 입을 틀어막았다.
표정이 워낙 없어서 웃을 줄 아는 애인지 의심스러웠는데, 이제는 그 의심을 거둬도 되겠다.
[소, 송구합니다.]
[아냐. 내가 농담해서 웃은 건데 왜 미안해하고 있어.]
능우희가 짧게 미소를 보이더니 전음을 보내왔다.
[참고로 주된 정보 수집 대상은 두 분이었습니다. 다른 한 분은 제갈 교관님이십니다. 두 분의 명성은 북해에까지 들려올 정도라서……. 그래서 며칠 전에 처음 뵀을 때 많이 신기했습니다. 그토록 유명한 분들을 두 눈으로 직접 뵈었으니…….]
후……, 우리 이름이 북해에까지 퍼졌다고?
속으로 한숨을 삼킬 때쯤 능우희의 전음이 다시 들려왔다.
[저는 성수곡주님과 어머니의 권유로 잠룡관에 입관했습니다. 민 소저가 잠룡관에 적응하는 모습을 멀리에서 지켜보며 보고해 달라는 곡주님의 부탁이 있으셨고, 제가 따른 겁니다. 아, 민 소저에게서 저와 곡주님의 관계에 대해 대강 들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성수곡주의 신원 보증과 추천이 있었을 테니 능우희가 잠룡관에 입관하는 과정도 일사천리였을 것이다. 성수곡주는 매우 존중받는 강호 명숙이니까.
능우희에게 대꾸했다.
[민 소저의 얘기로는 본인도 능 후배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더라고. 그저 능 후배가 성수곡주님의 지인이라는 정도만 안다고.]
[예. 민 소저가 아는 건 그 정도일 겁니다. 그리고 실제 성수곡주님의 지인은 제가 아니라 제 어머니십니다.]
[그랬군.]
내가 대꾸하자 능우희가 전음을 보내왔다.
[이왕 잠룡관에 입관한 김에 송풍장 소속의 잠룡관도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주의 깊게 살펴보라는 어머니의 지시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도 송풍장에 대한 좋은 정보가 될 수 있지.]
[예. ‘임금을 알려거든 먼저 그 신하를 보고, 그 사람을 알려거든 먼저 그 친구를 보고, 그 아비를 알려거든 먼저 그 자식을 보라.’ 어머니께서 항상 인용하시는 말씀입니다.]
[왕량 선생의 말씀이군.]
[예.]
고개를 끄덕여준 후에 편안한 어조로 물었다.
[그래서, 능 후배가 살펴본 우리 애들은 어땠어?]
[누구보다 열심히 수련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송풍장 출신의 소저, 공자들끼리 서로 잘 챙기며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다른 관도들을 배척하지는 않았습니다. 평범하게 친분을 쌓으려는 관도들에게는 친절했고,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하는 관도들에게만 단호했습니다. 다들 언행도 어른스러웠습니다.]
우리 애들에 대해 좋게 평가해주니 기분 좋다.
얘기를 나눠보니 능우희야말로 열일곱 살치고 매우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제가 드리려던 말씀은 다 드렸습니다.]
몇 차례 고개를 끄덕여줬다.
북해빙궁에서 우리에게 뭔가를 요구한 것도 아니고, 힘을 합해서 같이 싸우자고 제안하는 것뿐이니 나쁠 게 없다.
천마신교와의 전쟁이 가까워지고 있는 마당이니 오히려 환영하는 마음이다.
능우희에게 물었다.
[빙궁의 다른 식구들이 지금껏 탐문 조사로 알아낸 정보보다, 며칠 전부터 능 후배가 우리와 함께하며 봐 온 정보가 훨씬 더 값지겠네?]
[그럴 것 같습니다.]
[전투를 봐서 알 텐데, 우리는 조직력을 매우 중시해. 그래서 평소에도 조직력을 강화하기 위한 훈련을 많이 하고.]
[실로 대단한 조직력이었습니다. 전투 중에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말인데, 빙궁주께 전해드리겠어? 만약 우리와 연합하겠다면 결정을 빨리 내려달라고. 그래야 서로 어울려서 조직력 훈련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할 수 있을 테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천마신교와의 전쟁까지 시간이 많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야.]
능우희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내가 마지막에 남긴 말 때문이다.
그녀가 대꾸했다.
[그리 전하겠습니다.]
[결정이 내려지면 아마도 빙궁주께서 직접 송풍장에 방문하시겠지?]
[예. 빙궁으로서는 중차대한 사안이니.]
[그때 능 후배도 같이 오나?]
[선배님과 제가 이렇듯 아는 사이가 된 만큼, 어머님께서는 아마도 저를 동행시키실 겁니다. 그래야 처음 대면하는 자리가 자연스러울 테니까요.]
고개를 끄덕여준 후에 말했다.
[주의사항을 딱 하나만 말해주자면, 나는 얼굴을 모르는 이들과는 친우가 되지도 않고 동료가 되지도 않아. 그러니 그때는 능 후배도 내게 면구 안의 얼굴을 보여줘야 할 거야.]
능우희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어, 어떻게…….]
어떻게 면구를 알아챘느냐는 뜻.
이에 미소를 보이며 대꾸했다.
[내가 좀 눈이 좋거든.]
말을 마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능우희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여전히 놀람이 가시지 않은 표정이다.
“그럼 강서로 다시 복귀할 때까지 잘 지내보자고.”
“예…….”
그녀를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뭐, 나중에는 저 아이의 용모도 확인할 수 있겠군.
그렇게 서너 걸음을 옮겼을 때쯤, 뒤에서 능우희의 전음이 들려왔다.
[면구 안의 용모라면 지금이라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선배님 앞에서는 정체를 감춰야 할 이유가 사라졌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