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389화 (389/416)

내 안에 마교있다 389

오호, 얘 좀 보게?

뭐, 어차피 언젠가는 확인해야 할 용모이니 그게 지금이어도 딱히 상관은 없다.

돌아서서 능우희를 응시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녀가 신형을 돌리더니 걸음을 옮겨 정원수의 뒤쪽으로 향했다. 면구를 떼어낼 때의 모습이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니 숨어서 떼어내려는 것이다.

나는 가만히 서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곧 보게 될 능우희의 용모가 아름다울 수도 있고, 평범할 수도 있고, 추할 수도 있다. 아름다울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지만 만약 추한 용모일 경우, 한순간이라도 표정 관리를 잘못하면 그녀에게 상처가 될 것이다.

이윽고 능우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애초에 체형부터 중원인과 달랐고 눈동자 색 또한 다소 옅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중원인이 아닐 것으로 추측했었는데, 역시나 내 추측이 맞았다.

하지만 이 순간에 중요한 건 내 추측이 맞았고 틀렸고의 여부가 아니다.

내 눈이 빠르게 커지고 있는 탓이다.

방심하면 너무 놀란 모습을 보이게 될까 봐 서둘러 마음을 진정시켰다.

미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하긴 했었는데,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미모다.

보통의 중원인과 다르게 눈은 살짝 들어갔고 콧날은 오뚝하다. 흰 피부에 쌍꺼풀과 긴 눈썹이 매력적이다.

전체적으로는 청아하고 시원한 느낌의 미녀다.

이국적인 용모라서 적응이 안 된다거나 하는 느낌은 전혀 없다.

그냥 아름답다.

저 정도면 지나치게 아름다운 수준이다.

흑풍대원일 당시, 우리 조의 선배들이 다양한 지역의 미인들에 대해 토론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중원 내 각 지역의 미인들로 범위가 한정됐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중원을 넘어 새외의 먼 곳으로까지 범위가 확대됐었다.

「자고로 미인은 파사의 미인이 최고라고 들었습니다.」

「훗! 네가 뭘 모르는구나. 나도 파사 쪽 미인들의 미모가 대단하다고 듣기는 했는데, 더 대단한 미인들은 금발벽안의 미인들이라더라. 서역의 저 먼 곳에 산다는.」

「금발벽안보다는 오히려 머리가 갈색이거나 흑발인 색목인 중에 엄청난 미인들이 많다고 하던데? 북해 쪽으로 멀리 가거나 북해의 서쪽으로 멀리 가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들었어.]

선배들이라고 해서 직접 봤을 리는 없는데도 다들 열띤 토론을 이어갔었다.

당시에 나는 선배들의 얘기를 조용히 듣고만 있었는데, 지금 능우희를 보니 북해 쪽 미인들에 대해 얘기했던 그 선배의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알 것 같다.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 잠시 더 바라보다가 전음을 보냈다.

[생김새를 잊어버릴 일은 없겠네.]

능우희가 미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더 아름답다.

환하게 웃을 때 미모가 더 돋보이는 여인이 있고, 희미하게 미소 지을 때 미모가 더 돋보이는 여인이 있다. 능우희는 후자일 것이다.

그녀의 전음이 들려왔다.

[본래 머리카락과 눈썹은 다소 밝은 갈색입니다. 이건 염색한 겁니다.]

머리카락 색이 밝은 갈색이면 중원에서는 어딜 가든 주목받을 것이다.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그녀에게 전음을 보냈다.

[앞으로도 중원에 있는 동안에는 면구 꼭 착용하고 다녀. 수고스럽겠지만 염색도 꾸준히 하고. 그러지 않으면 마주치는 모든 사내의 헤벌쭉한 시선과 음흉한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될 테니까.]

능우희의 대꾸가 들려왔다.

[제 안전이 보장되기 전까지는 당연히 정체도 감추고 모습도 감출 수밖에 없겠지요.]

[안전이 보장되면 감추지 않겠다는 의미로도 들리는군.]

[예.]

주저 없는 대꾸.

하긴, 저 꽃다운 나이에 저 예쁜 용모를 뽐내고 싶지 않은 여인이 어디 있겠는가.

[그 용모를 다 드러내고 다니면 남자들의 반응이 볼만하겠군.]

능우희가 대답 대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 후 육성으로 말했다.

“그래. 오늘 얘기 나눠서 즐거웠고, 아까도 말했듯 강서로 복귀할 때까지 잘 지내보자고.”

“알겠습니다.”

“그 외에도 할 얘기가 있거든 언제든 편하게 다가오고.”

“그리하겠습니다.”

이에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돌아서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언덕의 상단을 넓게 돌아서 반대편의 산책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대로 야영지를 향해 길을 내려가는데, 멀리에 있는 나무 아래의 바위에 걸터앉아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남궁묵과 백리탄이다.

마침 남궁묵도 내 쪽을 바라보더니 한 손을 흔드는 중이다.

백리탄도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에 두 사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까 새벽에 처음 만났을 때는 여러모로 정신이 없어서 백리탄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그래도 백리탄은 무림맹 무상의 장남이고 백리세가의 소가주인 만큼, 기회가 있을 때 교류해둘 필요가 있다.

천마신교와의 전쟁을 앞둔 상황이니까.

백리탄 같은 이들과도 언제 같이 싸우게 될지 모르니까.

두 사람의 앞으로 다가가자 남궁묵이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

“역시 유겸이, 일찍 일어났네?”

“아무래도 저는 어제 덜 지쳤잖습니까. 형님이야말로 어제 많이 힘드셨을 텐데 일찍 일어나셨네요.”

“응, 그냥 눈 떠진 김에 일어났지. 아, 그나저나 유겸이는 탄이와 초면이지?”

“예. 새벽에 멀리서 뵙기는 했는데, 워낙 정신없는 상황이었던지라 못 알아뵈었습니다. 나중에야 누가 얘기해줘서 백리세가의 소가주님이신 걸 알게 됐고요.”

적당히 둘러댄 후, 백리탄에게 공손히 포권하며 말했다.

“강서의 송유겸이 백리세가의 소가주님께 인사드립니다.”

그러자 백리탄이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백리탄이라고 해. 만나서 정말 반가워, 송 후배.”

“저야말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니 역시나 부친인 백리결과 많이 닮았다.

평균 이상의 키에 날렵한 체구고, 적당히 각진 얼굴이며 눈매가 강렬하다. 사내다운 느낌을 풍기는 준수한 용모다.

백리탄이 말했다.

“그나저나 소문으로 많이 듣긴 했는데 직접 보니까 송 후배, 진짜 미남이구나?”

“아하하, 과찬이십니다. 소가주님이야말로 미남이십니다.”

백리탄이 미소를 보였다.

그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새벽의 일에 대해서도 감사드립니다. 그 순간에 백리세가와 사천당가와 형산파의 선배님들께서 와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이렇듯 멀쩡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거야 뭐, 내가 도왔나? 숙부가 도와주신 거지.”

“백리세가에서 도와주신 것이니 응당 소가주께도 감사드려야지요.”

“하하, 한 것도 없이 감사 인사를 들으니 민망하네.”

이에 내가 미소를 지어 보이자 남궁묵이 말했다.

“탄이랑은 어렸을 때부터 알긴 했는데, 통합 잠룡대전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친해진 사이야. 그 후로는 형, 동생 하며 지내고 있지.”

“아하.”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하자 이번에는 백리탄이 말했다.

“내가 삼 년 차였을 때는 하필 십육 강에서 묵 형을 만나고, 사 년 차였을 때는 팔 강에서 묵 형을 만났지 뭐야. 그 두 대회에서 모두 묵 형이 우승했었거든. 대진운도 참.”

백리탄이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남궁묵이 웃으며 내게 말했다.

“하하, 나하고 탄이는 나이도 두 살 차이고, 잠룡관 연차도 두 해 차이거든.”

남궁묵은 나와 열 살 차이이니 현재 서른세 살이다. 그러니 백리탄은 서른한 살이다.

남궁묵이 말을 이었다.

“탄이는 삼 년 차 때부터 사 강 안에 들 수 있는 실력자로 통했고, 사 년 차 때는 내 결승전 상대로까지 꼽혔었어. 그런데 두 대회에서 모두, 하필 나와 일찍 마주친 거지. 그러다가 내가 잠룡관을 졸업한 다음 해부터는 보란 듯 연속 우승을 차지한 거야. 그것도 압도적인 실력으로.”

“아하, 그런 일들이 있었군요.”

내가 맞장구쳐주자 백리탄이 말했다.

“뭐, 지금은 다 추억이지. 그 일로 묵 형과 친해졌으니 그걸로 된 거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백리탄이 다시 말했다.

“아, 그리고 나한테는 소가주 대신 그냥 선배라고 부르면 돼. 형이라고 불러도 상관없는데, 아직은 어색할 테니까.”

“그럼 형님이라고 하겠습니다. 어차피 묵 형님에게도 그렇게 부르고 있고, 두 분의 친분도 깊은 듯하니까요. 형님도 편하게 대해주십시오.”

그러자 백리탄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남궁묵에게 농담조로 말했다.

“싹싹하네요? 어린 나이에 대단한 유명 인사가 된 청년 고수라서 실제로 만나면 싸가지가 없을 줄 알았는데.”

남궁묵이 웃으며 대꾸했다.

“그런 거 선입견이야. 애초에 싸가지가 없었으면 나하고 우리 형이 유겸이를 아끼겠어? 그리고 싸가지를 논할 필요도 없어. 유겸이가 누군가에게 실수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고, 그랬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없거든. 심지어 아랫사람들한테도.”

“와아……!”

백리탄이 놀랐다는 반응을 보이더니 남궁묵에게 물었다.

“저 나이에, 저 대단한 무공 실력에, 언행 관리까지 그 정도로 잘한다면 재미있는 성격은 아니겠네요? 혹시 애늙은이 같거나 그래요?”

“애늙은이 같은 면은 제법 있지. 그렇다고 해서 재미없는 성격은 아니야.”

“호오.”

백리탄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잠시 나를 바라보던 백리탄이 말했다.

“편하게 대하라고 했으니 나도 묵 형처럼 그냥 이름으로 부를게.”

“예.”

“광서 수복전하고 귀주 수복전에서 활약이 어마어마했다지? 안 그래도 높았던 명성이 지금은 완전히 하늘을 찌르던데?”

“……어쩌다 보니 다른 분들보다 제가 조금 더 주목받은 탓에 활약상이 지나치게 고평가된 것뿐입니다.”

내가 말을 마치자 남궁묵이 백리탄에게 말했다.

“유겸이의 말버릇 같은 거야. 칭찬을 들으면 저런 식의 대꾸가 나와. 본인이 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적이 없지.”

“아하.”

백리탄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게 말했다.

“유겸이는 알면 알수록 대단한 사람인 것 같네.”

“아닙니다. 대단하기는요.”

“대단하지. 일단 그 나이에 그런 경지에 오른 것부터가.”

“아하하…….”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본인한테 직접 들어나 보자. 아니 대체 어떻게 하면 그 나이에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거야?”

이에 잠시 주저하는 척하다가 대꾸했다.

“기연이 여러 차례 있었고, 거기에 행운까지 겹친 결과입니다.”

“아무리 기연이 많아도 무학에 대한 이해도가 없으면 절정의 중반부터는 경지 상승이 극도로 더뎌지잖아. 그래서 그 시점부터의 구간을 깨달음의 영역이라고 하는 거고.”

잠시 말을 멈췄던 백리탄이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은 나도 절정의 일정 구간에서 경지가 몇 년간 답보 상태거든. 그래서 깨달음의 영역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중이고. 그런데 넌 대체 어떻게 그렇게 빨리 넘은 거야?”

“음……, 저도 그냥 순간순간 열심히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거라서 명쾌한 답변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그저, 다량의 무학 서적을 탐독한 게 많은 도움이 됐고, 뛰어난 친우들과 오랜 기간 같이 숙식하며 수련한 것도 매우 큰 도움이 됐습니다.”

백리탄을 향해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같이 지내는 친우들이 모두 내로라하는 명문의 후예들이다 보니, 친우들의 무공을 접할 때마다 제가 이해하고 있는 무학 지식을 대입해 보기가 좋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꾸준히 연구하며 지냈던 게 무학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 듯합니다.”

한 차례 호흡을 조절한 후 말을 이었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이었던 건 실전 경험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어쩌다 보니 저는 잠룡관도 시절부터 실전을 겪을 일이 많았고, 그 와중에 생사의 고비를 수도 없이 넘나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깨달은 바가 많았고, 이후에 실전 상황을 복기하고 또 복기하며 깨달은 바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내가 말을 마치자 묵묵히 듣고 있던 백리탄이 고개를 갸웃하며 혼잣말하듯 말했다.

“무학 서적이라면 나도 적잖이 읽었는데, 이해력의 차이인가……?”

그러자 남궁묵이 백리찬에게 대꾸했다.

“독서량이라면 유겸이가 훨씬 많을걸? 그런데 독서량만 많은 게 아니라 읽는 속도도 빠르다고 하더라고. 그렇다 보니 같은 시간을 투자해도 독서량이 크게 차이 난다고 들었어.”

참고로 나는 닥치는 대로 송풍장에 무학 서적을 채워 놓은 상태다. 그리고 평소에도 혼자 있을 때는 늘 책 읽는 척을 했다. 그게 다 이런 상황에서 핑곗거리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백리탄의 눈이 살짝 커졌다.

남궁묵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마 이해력의 차이도 상당할 거야. 천재 소리를 너보다 많이 듣고 살아온 우리 형이 언젠가 그러더라고. 만약 자기가 이삼십 년에 한 번 나올 만한 천재라면 유겸이는 오백 년에 한 번 나올 만한 천재고, 만약 자기가 오십 년에 한 번 나올 만한 천재라면 유겸이는 고금을 통틀어 손꼽히는 천재일 거라고.”

보아하니 남궁묵이 거짓말을 하거나 과장하는 것 같지는 않다. 굳이 그럴 만한 사안도 아니다.

그래서 다소 놀랍다.

남궁찬이 나에 대해 저렇게까지 평가했다니.

“저, 정말로 찬 형님이 그런 말씀까지 하셨습니까?”

되묻는 백리탄도 매우 놀란 표정이다.

백리탄 또한 천재 소리를 엄청나게 들으며 성장해 온 사람이다. 그러니 저런 반응일 수밖에 없다.

“응. 못 믿겠으면 형한테 가서 직접 물어봐.”

“아니, 못 믿는다는 말은 아니고요. 놀라워서요.”

백리탄이 대꾸하자 남궁묵이 미소를 보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형은 이제 유겸이와 자기를 비교하려는 생각 자체를 완전히 버렸대. 대신 자기보다 약간 더 뛰어난 다른 천재를 경쟁 상대로 삼겠다고 하더라고.”

그 말에 백리탄이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찬 형님이 말씀하신 다른 천재가 혹시 설아 얘깁니까?”

그 말에 오히려 놀란 건 남궁묵이다.

물론 나도 놀랐다.

“어?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

“경계 근무를 마치고 왔더니 세가의 무인이 그러더군요. 일반 무인들 사이에서 ‘동천오룡’이라는 말이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고. 아마도 점심때 이곳에 도착한 귀주 수복전단의 지인들한테서 들은 모양이에요.”

“……동천오룡? 동천쌍룡이 아니고?”

남궁묵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자 백리탄이 대꾸했다.

“쌍룡에서 세 명이 더 추가돼서 오룡인 거죠. 그 오룡 중에 설아가 최연소로 포함되어 있다 보니 방금 그 얘기에서 설아가 떠오른 거고요.”

이에 나는 곧장 백리탄에게 물었다.

“나머지 두 명은 혹시 묵 형님과 단목 소가주입니까?”

백리탄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맞아. 정확해.”

“허……!”

남궁묵이 그런 반응을 보이자 백리탄이 남궁묵에게 말했다.

“남궁세가에는 큰 경사죠. 동천오룡 중 세 명이 남궁세가의 세 남매이니.”

“그러게. 세가의 식구들이 기뻐할 것 같네.”

남궁묵과 단목강과 남궁설은 이번 광서 수복전과 귀주 수복전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세인들로부터 충분히 칭송을 들을 만한 활약이었다. 별호가 붙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남궁묵을 축하해주기 전에, 먼저 백리탄에게 물었다.

“나머지 삼룡에게도 각각 별호가 붙었겠군요?”

“어. 단목 후배는 풍룡이래. 아무래도 단목세가가 검풍세가라고도 불리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

그래서 단목세가의 최정예 조직도 검풍대다.

단목강은 평소 부드러운 바람 같은 느낌인데, 실전에서는 태풍 같은 느낌으로 변한다. 풍룡이라는 별호가 충분히 어울리는 사람이다.

“아하.”

내가 대꾸하자 백리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설아는 교룡巧龍이라고 했고…….”

원래의 의미로 쓰이는 교룡蛟龍에는 ‘교룡 교’ 자를 쓰는데, 남궁설의 별호에 붙은 ‘교’는 ‘공교할 교’ 자다. 재치 있고 교묘하다는 의미이며, 아름답다는 의미도 있다. 남궁설에게 매우 잘 어울리는 별호가 아닐 수 없다.

참고로 ‘용’이라는 별호는 주로 남성에게 붙는데, 여인에게도 가끔 쓰인다. 대신 그만큼 빼어나다는 게 증명되어야 한다.

남궁설이 이번 원정에서 얼마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지 알 만한 대목이다.

나를 보고 얘기하던 백리탄이 이번에는 남궁묵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묵 형은 운룡이래요.”

“운룡…….”

남궁묵이 본인의 별호를 되뇌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흡족해하는 기색이다.

즉시 그에게 말했다.

“형님과 잘 어울리는 느낌입니다.”

“응. 나도 마음에 들어.”

남궁묵에게 말했다.

“어쨌거나 축하드립니다, 형님. 형님에게 별호가 생긴 것도, 남궁세가의 남매들 모두에게 별호가 생긴 것도.”

그러자 백리탄도 남궁묵을 축하해줬다.

“축하해요, 묵 형.”

남궁묵이 환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하하, 두 사람 다 고마워.”

꼭 멋진 별호가 아니더라도, 나쁘지 않은 별호만 붙어도 기분 좋아하는 게 강호인이다. 고로 남궁묵의 저러한 반응은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나는 내 별호가 생겼을 때도 민망해했었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별호를 들을 때마다 민망해했었다. 나 말고도 그런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는데, 그게 바로 제갈수광이다.

우리 둘은 상당히 특이한 경우라 하겠다.

백리탄이 하늘을 바라보며 숨을 작고 길게 내쉬었다.

이윽고 고개를 내린 그가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 묵 형하고 설아하고 단목 소가주에게 별호가 생겼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부럽기도 하고, 저 또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가 다시금 되더군요. 그런데…….”

백리탄이 말을 줄이자 남궁묵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진지한 얘기를 하는 분위기이니 진지하게 들어주려는 것이다.

“유겸이를 만나고, 찬 형님이 유겸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는지에 관한 얘기까지 듣고 나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시금 각오를 다지는 걸 넘어, 변화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변화? 어떤 식의……?”

남궁묵이 차분한 어조로 묻자 백리탄이 대꾸했다.

“다소 염치없지만, 지금으로서는 천재의 곁으로 가서 그 힘을 좀 빌리는 게 최선이 아닐까 싶어요. 그러지 않으면 이대로 저만 계속 뒤처질 테니까.”

“그 말은 혹시…….”

“예. 지금으로서는 송풍장으로 가는 게 최선일 것 같네요. 유겸이만 허락한다면.”

이, 이보쇼, 이렇게 갑자기 그런 결정을 내리신단 말이오?

백리탄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물었다.

“남는 방 있어?”

“예? 예, 물론 있습니다.”

“어떻게, 괜찮겠어?”

“괘, 괜찮다마다요. 환영이지요.”

거절할 이유도 없지만, 거절하기 어려운 존재이기도 하다.

그는 명문인 백리세가의 소가주이자 현 무림맹 무상의 장남이니까.

듣고 있던 남궁묵이 백리탄에게 물었다.

“이런 시국에 세가를 비워도 괜찮은 거야?”

“숙부들이 계시고, 특히 다섯째 숙부가 계시니까요.”

그가 말한 다섯째 숙부는 백리창이다. 백리창은 말이 필요 없는 고수다.

남궁묵이 말했다.

“그럼 무상께서도 허락하실지가 관건이겠네.”

“아버지가 반대하실 일은 없을 거예요. 간혹 말씀하실 때 보면 유겸이에 대해 신기해하고 기특해하셨으니까. 게다가 제 경지가 오랫동안 벽에 막혀 있는 부분에 대해 누구보다 안타까워하신 분도 바로 아버지세요. 그러니 오히려 이 결정을 환영하실 거라고 봐요.”

“잘됐네. 그렇게 되면 나하고도 더 자주 볼 수 있을 테니.”

“좋네요. 형하고 술 마실 기회도 많아지고.”

“그러게.”

남궁묵이 그렇게 대꾸하더니 내게 말했다.

“술 많이 준비해놔야겠네? 탄이도 주당이거든. 제갈 형님만큼은 아니어도 우리 형만큼은 될걸?”

당연히 내공으로 취기를 몰아내지 않는 조건에서의 주량이다.

“아하하, 그, 그렇습니까. 이거, 부지런히 쟁여놔야겠군요.”

후, 장원에 고수의 수가 늘어나는 만큼 술꾼의 수도 늘어만 가는구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