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390화 (390/416)

내 안에 마교있다 390

남궁묵, 백리탄과 조금 더 대화를 나누다가 헤어져서 개울가로 향했다.

산책을 마쳤으니 적당히 세안하기 위함이었다.

백리탄이 송풍장으로 오겠다고 얘기했을 때는 깜짝 놀랐다. 그가 갑자기 그런 말을 할 줄이야.

어쨌거나 당효광에 이어 백리탄까지 합류하고, 거기에 북해빙궁과도 연합하게 되면 송풍장의 전력은 훨씬 더 강화된다.

단, 새로운 전력이 합류하면 한동안은 조직력 강화 훈련에 중점을 둬야 할 것이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개울 쪽으로 걷는데 멀리 남궁설과 선우린이 보였다.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중이다.

나를 발견한 두 여시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이미 개울가에서 씻고 온 건지, 얼굴들이 말끔하다.

약간의 장난기를 섞어서 남궁설에게 말했다.

“여어, 이게 누구신가? 동천오룡의 일인으로 등극한 동천교룡 님이 아니신가?”

남궁설은 아직 이 소식을 못 들었을 테니 놀라게 할 의도로 말한 것이다.

그러자 남궁설이 씩 웃으며 대꾸했다.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요? 창천쌍룡의 일인으로 등극한 창천비룡 님이 아니신가요?”

이에 나는 빠르게 눈매를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뭐래는 거야, 쟤가?

“방금 뭐……?”

“창천쌍룡의 창천비룡요.”

“차, 창천……?”

금시초문이다 보니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훗, 우리 송 오라버니가 정보력이 많이 뒤처지시네. 사람들이 처음에는 동천오룡이라고 하다가 이후에 쌍룡과 삼룡으로 나눴다구요. 아무리 그래도 다섯 명을 한꺼번에 묶는 건 무리가 있다는 거죠. 쌍룡 쪽의 수준이 너무 높으니까.”

남궁설이 대꾸하자 이번에는 선우린이 입을 열었다.

“찬 오라버니와 송 오라버니에게는 동쪽 하늘이 너무 좁다는 의미에서 동천 대신 창천이라는 말이 붙은 거래요. 그래서 동천오룡이 창천쌍룡과 동천삼룡으로 나뉜 거구요.”

당황스럽다.

“허……! 정말이야? 누이들이 장난치는 게 아니고?”

내가 묻자 두 여시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하고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오래 봐왔기에 안다.

곧 남궁설이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은 채로 내게 말했다.

“좁은 동쪽 하늘을 벗어나서 넓은 창공으로 나아가니 얼마나 좋으실까, 우리 비룡 님은?”

“아니, 그게…….”

놀리는 걸 빤히 아는데도 대꾸하기가 쉽지 않다. 되치기당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선우린이 말했다.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창천비룡 소협.”

내가 별호로 불리면 민망해하고, 소협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면 부담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 저러는 것이다.

후……, 역시나 이 두 여시는 만만치가 않다.

내가 졌다, 이것들아.

짧게 한숨을 내쉬며 패배를 인정해 보인 후 남궁설에게 물었다.

“그래서, 설 매는 기분이 어때? 나야 별호가 살짝 바뀐 것뿐이지만 설 매는 새로 생긴 거잖아.”

“여러모로 좋아요. 별호를 얻은 것도,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은 궤의 별호로 묶인 것도. 창천쌍룡과 동천삼룡으로 구분된다고는 해도, 어쨌거나 동부지맹 소속의 오룡이잖아요.”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여줬다.

잠시 후에 선우린이 말했다.

“이번 광서 수복전과 귀주 수복전으로 인해 송풍장의 명성도 엄청나게 높아지겠네요. 모두의 활약도 대단했고, 그중 새로 별호를 얻은 사람만 해도 벌써 네 명이나 되잖아요. 묵 오라버니를 제외한다고 해도 말이에요.”

남궁묵은 특수전투수행반의 지휘관으로, 엄밀히 송풍장 소속은 아니다.

그 와중에 의아한 점이 있어서 물었다.

“묵 형님을 제외하면 세 명 아니야? 칠절사군 대협하고 동천풍룡 소협하고 우리 동천교룡 소저하고.”

그러자 선우린이 작게 코웃음 치더니 말했다.

“훗, 우리 송 오라버니가 정보력이 많이 뒤처지시네.”

후……, 저 소리만 두 번째 듣는구나.

선우린이 바로 말을 이었다.

“임 선배님에게도 별호가 생겼다구요.”

“아……!”

그렇다. 당연히 임려현에게도 별호가 붙을 만하다. 제갈수광과 남궁묵 못지않은 활약을 펼쳤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두 사람을 능가하는 활약이었을 수도 있다.

즉시 물었다.

“그래서, 임 선배님의 별호는 뭔데?”

“의혼비절이래요.”

의혼비절義魂飛絶.

앞의 두 글자 ‘의혼’은 의로운 혼이라는 의미다.

아마도 임려현이 팔 조, 구 조, 십 조의 인원들을 살리기 위해, 희생을 각오하고 홀로 나섰던 일 때문일 것이다.

본디 전투가 끝나고 나면 각종 영웅담이 빠르게 퍼지게 마련인데, 임려현의 경우처럼 의협심이 가미된 영웅담에는 세인들이 더욱 열광하게 되어 있다.

뒤의 두 글자 ‘비절’은 검절, 도절, 무절 등과 같은 맥락으로, 해당 분야에서 절대적인 실력을 보유한 이들에게 붙는 별호다.

‘비飛’ 자는 주로 ‘날다’라는 의미로 쓰이는데, 그 외에 ‘빠르다’, ‘날리다’ 등의 의미로도 쓰인다.

내 별호에 ‘비’ 자가 붙은 이유 또한 기본적으로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고, 부가적으로는 암기 날리는 솜씨가 빼어나기 때문이다.

임려현에게도 비슷한 이유로 ‘비’ 자가 붙었을 것이다.

선우린이 말했다.

“얼른 가서 축하해드려야겠어요. 그다음에는 묵 오라버니도 축하해드려야 하고 또 단목 조장님도…….”

“조장님은 아직 주무셔. 부상이 작지 않으니 오늘은 푹 쉬게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아, 그렇겠네요. 그럼 임 선배님하고 묵 오라버니한테만 가봐야겠네.”

선우린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나중에 봐요, 창천비룡 소협.”

선우린이 생긋 웃으며 놀리듯 혀를 한 차례 내밀더니 나를 지나쳐갔다. 그러자 남궁설도 똑같이 혀를 한 차례 내밀더니 나를 지나쳐갔다.

하여튼 저것들. 으휴.

그래도 종종 저렇듯 장난을 쳐주니 만날 때마다 심심하지 않고 좋다. 저 둘이 아무리 여시 짓을 해도 내 눈에는 마냥 귀여워 보일 뿐이다.

잠시 미소 띤 채로 두 여시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둘 다 한 차례씩 나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어주고는 돌아섰다.

그나저나 창천비룡이라.

동천비룡만으로도 민망했는데 거기에서 별호가 한 단계 더 나아갈 줄이야.

부담스럽다. 그나마 남궁찬과 함께라서 덜 부담스러운 게 다행이라고 할까.

나는 딱히 내 명성을 더 높이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실전만 치르고 나면 쭉쭉 높아져 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대충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것 참.

어쨌거나 개인적인 민망함이나 부담스러움과는 별개로, 다가올 천마신교와의 일전을 생각하면 나와 송풍장 식구들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좋다. 특히 우리의 실전 실력이 높다는 사실은 더 널리 퍼질수록 좋다.

그래야 천마신교와의 일전을 치를 때 우리를 중심으로 힘이 응집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울가에 도착했을 무렵, 둔치로 올라오는 심산화, 공은림과 마주쳤다.

두 사람도 세안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인지 얼굴들이 말끔하다. 둘이 같이 돌아다니는 걸 보니 아마도 같은 막사를 쓰고 있는 모양이다.

공은림이 내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조교님, 편히 쉬셨습니까?”

심산화는 여느 때처럼 아이 같은 미소를 띤 채로 말없이 내게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어, 잘 쉬었어. 너희도 푹 쉬었어?”

“네, 어느 정도는 피로가 풀린 것 같습니다.”

공은림이 그렇게 대꾸했고, 심산화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심산화는 양손에 철비정을 하나씩 쥐고 있는 상태다. 철비정술을 배우기 시작한 후부터는 계속 저렇듯 철비정을 쥐고 다닌다고 들었다.

내 시선이 철비정에 잠시 머무르자 심산화가 신형을 우측으로 틀더니 양손을 털어냈다. 그간의 수련 성과를 보여주고 싶어서 저러는 것이다.

피빗!

철비정의 궤적을 쫓아가 보니, 약 이 장 거리에 있는 작은 나무의 기둥 가운데쯤에 철비정 두 개가 꽂혀 있었다. 나무 기둥은 보통 여인의 팔뚝 두께 정도다.

심산화가 얼마 전부터 철비정을 배우기 시작했음을 고려하면 대단한 발전 속도가 아닐 수 없다.

하긴 심산화는 이미 소비도술을 익혔고 실력도 나쁘지 않다. 그래서인지 철비정술에도 금세 감을 잡은 모양이다. 무게감이나 무게중심이 다르다고는 해도 암기를 날리는 원리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우와! 벌써 이렇게 늘었어? 대단한데?”

칭찬을 들은 심산화의 얼굴이 환해졌다.

“헤에.”

이에 나는 대견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심산화를 향해 서너 차례 고개를 끄덕여줬다.

이후에 공은림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은림이, 마침 잘 만났네? 내가 따로 부탁하고 싶은 게 있었거든.”

“아, 네. 뭐든 말씀하십시오.”

이에 나는 품속에서 조막만 한 남색 목갑을 꺼냈다.

두영산 놈이 지니고 있던, 밀봉된 목갑이다.

내가 목갑을 내밀자 공은림이 그것을 받아 들고는 구석구석 유심히 살펴보더니 말했다.

“밀봉 상태를 보니 안에 단약이 들어 있는 게 확실해 보입니다.”

“내 생각도 그래. 내가 어제 잠깐 홀로 움직이면서 적측 고수들을 상대했었는데, 그중에 옷차림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자가 있었거든. 그자를 처리한 후에 혹시 몰라서 의복과 행낭을 뒤져봤는데 그게 나온 거야.”

“아하.”

“그래서 은림이한테 성분 분석을 맡기려는 거고.”

“네! 맡겨주십시오.”

공은림이 의욕적인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녀에게 말했다.

“단,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물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어쨌거나 마교 쪽 인물의 물건인데 괜히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좋을 건 없잖아.”

공은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아, 알겠습니다.”

이어서 심산화에게도 잊지 않고 당부했다.

“산화도 쉿.”

그러자 심산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검지를 가져다 자신의 입술에 댔다.

공은림이 말했다.

“얼른 가서 분석해보고 곧 보고하겠습니다, 조교님.”

“서두를 필요 없으니까, 차분히 해.”

“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공은림과 심산화가 내게 꾸벅 인사하더니 멀어져갔다.

개울에서 적당히 씻고 제이 연무장으로 복귀했을 때쯤, 멀리에서 왕철양이 나를 발견하고는 빠르게 다가왔다.

“조교님, 편히 쉬셨습니까.”

“그래, 너도 편히 쉬었어?”

“예!”

왕철양도 이곳저곳 상처가 많다.

선두 조들이 상대적으로 더 격렬한 전투를 치렀는데, 왕철양은 이 조였다. 이 조의 조장은 남궁찬이었고, 소충광, 송유하, 민화영 등이 같은 조원이었다.

송유하한테서 들었는데, 소충광과 왕철양이 필사적으로 엄호해준 덕분에 자신과 민화영이 거의 다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안정적으로 궁술을 펼칠 수 있었다고 했다.

결국 소충광과 왕철양이 송유하와 민화영을 대신해서 더 다친 것이다.

송유하는 한마디를 더 덧붙였었다.

「그래도 엄호받으면서 보니 철양이의 실력이 얼마나 많이 발전했는지 한눈에 보이더라고요. 정말이지 장원에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어요.」

송유하의 말마따나 왕철양은 이번 원정을 통해 무공이 크게 상승했다.

나는 일찍이 왕철양의 잠재력을 알아봤었고 결국은 엄청난 괴물로 성장할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이번 원정을 통해 그 잠재력이 본격적으로 개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왕철양을 보고 있자니 기특한 마음이 든다.

왕철양이 전음으로 말했다.

[조교님께서 새벽에 맡겨두신 검 말씀입니다만…….]

두영산의 검을 말하는 것이다. 새벽에 왕철양에게 넘겨주며 조용히 살펴보라고 했었다. 왕철양은 막사를 혼자 쓰니 편하게 살펴볼 수 있었을 것이다.

[어땠어?]

[역시나 철의 재질이 최고급입니다. 그리고 섬혼검처럼 그 검도 중원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재질의 철입니다. 물론 둘이 다른 재질입니다.]

[오호.]

[한데 아무리 봐도 섬혼검보다 그 검에 쓰인 철의 재질이 더 우수한 듯합니다.]

[그래애?]

이건 몰랐다. 두영산의 검이나 조중렴의 검이나 비슷한 수준의 명검인 줄로만 알았었다.

왕철양이 설렘이 담긴 눈빛으로 말했다.

[예. 그렇다 보니 어서 가서 그 녀석을 마음껏 두드려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니 혹시 원하시는 모양새가 있으면 되도록 빨리 말씀해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미리 구상해두고 장원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작업에 착수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이에 왕철양에게 즉시 대꾸했다.

[지금의 섬혼검을 그걸로 대체하지, 뭐.]

철의 재질도 더 좋은 데다가 왕철양의 대장 실력도 더 늘었을 테니, 이번에 제작되는 검이 더 명검일 것이다. 그걸로 현재의 섬혼검을 대체하면 된다. 현재의 섬혼검을 어디에 쓸지는 천천히 생각해보면 될 일이고.

[아,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녀석의 눈빛에 의욕이 충만하다.

잠시 녀석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상처가 아물기 전까지는 이렇듯 돌아다니는 것도 자제하고, 운기조식도 최소한만 해. 무조건 쉬는 데 집중해. 알았어?”

“예, 그리하겠습니다. 지금은 양순영 소저에게 치료를 좀 받으려고 잠시 나왔던 길입니다.”

양순영 소저란 민화영이다.

고개를 끄덕여준 후에 말했다.

“정 심심하거든 그냥 누워서 지난 실전들을 복기해. 땀 흘리는 수련보다 근래 겪은 실전을 복기하고 또 복기하는 게 성취 상승에 훨씬 더 도움 될 때가 있어. 이렇듯 전투가 끝난 직후가 딱 그런 때지.”

“명심하겠습니다.”

대꾸한 왕철양이 내게 말했다.

“아, 그리고 서문 단주님에게 가보셔야 할 듯합니다. 제갈 교관님께서 조교님을 만나거든 그리 전하라 하셨습니다.”

“서문 단주님에게?”

“예. 이유에 대해서 말씀해주지는 않으셨습니다.”

귀주 수복전단의 정예들은 이미 이곳에 도착해 있는 상태다. 아까 백리탄에게 들은 내용이다.

“그래, 알았어. 바로 가볼게. 너도 가서 쉬어.”

“예.”

왕철양이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멀어져갔다.

지휘 막사로 이동했다.

죽립을 깊게 눌러썼는데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어, 그들과 짧게 인사를 나누며 지나쳐야 했다. 서문범의 호출을 받았다는 핑계를 대니 다들 금방금방 보내줬다.

지휘 막사 앞에 도착하자 그 앞을 지키고 있던 무인 세 명이 나를 가로막았다.

이에 내가 죽립을 벗자 세 사람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차, 창천비룡 소협……?”

“아하하, 예. 다름이 아니라 서문 단주님께서 호…….”

내가 호출이라는 말을 다 꺼내기도 전에 가운데에 있던 무인이 말했다.

“들어가십시오.”

용무도 제대로 들어보지 않고 통과라니.

유명해지니 이거 하나는 좋구나.

이래서 강호인들이 다들 고수를 꿈꾸는 거고, 이래서 다들 명성 타령을 하는 거겠지.

안으로 들어서자 서문범이 나를 반겼다.

“어서 오게, 송 공자.”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대꾸하자 서문범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권했다.

“일단 앉지.”

이에 서문범의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장 부단주님과 위 부단주님께서는…….”

장종담과 위태창을 말한 것이다.

“부지휘관들은 본대를 이끌고 오고 있네. 나는 정찰조의 보고를 받고는 정예들을 이끌고 빠르게 뒤쫓아온 걸세. 오면서 보니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 많아서 어찌나 염려되던지……. 이곳에 도착해서 전투 상황에 대한 보고를 모두 들은 후에야 안심할 수 있었네.”

“아, 그러셨군요.”

내가 대꾸하자 서문범이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송 공자의 별호가 그새 바뀌었더군. 혹시 들었나?”

“듣긴 했습니다…….”

“송 공자의 활약에 걸맞은 별호라고 생각되네. 잘 어울리기도 하고.”

“아하하…….”

내가 민망해하자 서문범이 말했다.

“그리고 무림맹에 보고서를 올려야 하는데, 송 공자에 관한 내용이 많이 포함될 듯하네. 활약이 워낙 눈부셨으니.”

“눈부시기는요. 실제로 오늘 새벽의 전투에서도 저는 그다지 한 일이 없었습니다.”

내 대꾸가 끝나자마자 서문범이 말했다.

“어제 송 공자가 황호병, 사엽상, 요석평 등의 거마두들을 막아주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들에 의해 학살극이 펼쳐졌을 거라고 들었네만.”

“아, 저 혼자서만 막아선 게 아닙니다. 임 선배님과 최 선배님이 도와주셔서…….”

내가 대꾸하자 서문범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로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어떻게든 본인의 활약상을 축소하려고 애를 쓰는군. 하여튼 특이한 젊은이란 말이야. 아무튼 송 공자가 아무리 그런 식으로 얘기해도 귀주 수복전의 최고 공로자는 송 공자로 기록될 걸세.”

“예에? 그렇지 않습니다. 객관적으로 따져 봐도 저보다 훨씬 치열하게 싸우며 더 큰 공로를 세운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첫 만남, 기억 안 나나? 그때 송 공자는 이미 우리 귀주 수복전단 전체를 구했네. 당시에 귀주 수복전단이 타격을 입었다면 귀주 수복전은 절대 지금과 같은 방향으로 진행되지 못했겠지.”

서문범이 바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때 송 공자는 나와 부단주들을 노리던 자객들까지 처리해줬네. 알다시피 그 당시의 상황은 무척 어수선했지. 즉, 송 공자가 아니었으면 귀주 수복전단의 지휘관인 우리 세 명은 영락없이 송장이 되었을 걸세. 자, 이제 이보다 더 큰 공로를 세운 사람이 누군지 말해주겠나? 말해주면 참고하겠네.”

하아, 대꾸할 말이 없다.

서문범이 미소 띤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미 소문이 퍼지고 퍼져서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네. 이런 상황에서 보고서를 다르게 작성하면 오히려 내가 징계받네.”

“아이고…….”

내가 민망해하며 그렇게 반응하자 서문범이 말했다.

“어쨌거나 그 얘기를 하려고 부른 건 아니었네. 실은 경계조의 인원이 부족해서 말일세. 백리세가, 사천당가, 형산파의 인원들은 이제 쉬어야 할 시간이고, 내가 이끌고 온 정예들 또한 잠도 못 자고 달려와서 이곳을 정리한 터라 다들 녹초가 되었네. 결국 이 시간부터는 강서의 증원 전력이 맡을 수밖에 없는데, 그쪽에도 부상자가 많잖나. 그나마 송 공자는 멀쩡하고.”

“아, 예. 멀쩡합니다. 맡겨주십시오.”

“이곳의 외성 위에 세워진 경계 초소는 총 열여섯 곳일세. 그중 동동북 방향에 있는 초소는 전방이 숲이라서 경계가 가장 까다롭지. 송 공자가 일단 그곳으로 가서 전임 근무자와 교대해주게. 이후에 동료 근무자를 충원해줌세.”

“저 혼자 근무해도 상관없습니다.”

“경계조는 최소 이인 일조가 규정일세. 어쩔 수 없는 상황이면 몰라도 지킬 수 있으면 지켜야지.”

“아.”

“가서 잠시만 혼자 수고해주게. 동쪽 이 번 초소일세.”

“알겠습니다.”

지휘 막사를 나서서 다시금 죽립을 눌러쓰고는 경계 초소로 향했다.

이번에도 가는 길에 여러 무인이 나를 알아봤기에 되도록 짧게 인사하고 헤어졌다. 경계 근무 핑계를 댔다.

지정해준 초소로 올라가자 귀주 수복전단의 정예 두 명이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낯익은 이들이었기에 그들과도 잠시 인사를 나누고 근무를 교대했다.

전방의 숲에 시선을 둔 채, 조용히 머릿속으로 천섬무의 묘리를 되새겼다.

근래 많은 실전을 겪다 보니 천섬무의 성취도 더 상승했다. 그렇기에 현 단계에서의 성취를 차분히 정리해보고,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미리 고민해둘 필요가 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실례하겠소.”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나도 모르는 새 천섬무 생각에 몰입해 있었던 것이다.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곧장 고개를 돌린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초소의 입구 밖에 서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묵룡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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