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407
조심스럽게 호수 밖으로 나왔다.
사위가 여전히 어둡다.
하늘을 보니 시각은 대략 인시 정(새벽 4시) 남짓이었다.
관산영과 나는 동시에 기운을 일으켜서 의복을 말리기 시작했다.
의복을 말리는 중에도 관산영이 혹시 나를 기습하지 않을지 신경 쓰게 된다. 아마도 그녀를 의심하는 마음이 수그러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설령 수그러든다고 해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수도 있다.
의복을 말린 후에는 곧장 짐을 챙겨서 북쪽의 호구현을 향해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관산영의 경공술 경지도 상당하다 보니 우리의 이동 속도는 매우 빨랐다.
관산영의 은신처가 있는 성자현은 포양호의 북서쪽인데 비룡장은 포양호의 동쪽에 있다.
최단 경로는 포양호의 북쪽에 있는 호구현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 비룡장으로 향하는 경로다.
호구현은 장강과 연결되는 포양호의 입구인데, 호수의 동서 간 폭이 가장 좁은 지역이다. 호구현은 강서, 호북, 안휘의 경계가 맞닿다 보니 유동 인구도 많아, 어두운 시각에도 배들이 호수의 동서를 오가며 승객을 실어 나른다.
우리의 속도라면 넉넉잡아도 반 시진(1시간)이면 호구현 건너편의 나루터에 도착할 테니, 그때쯤에는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강을 건널 수 있을 것이다.
호구현 건너편의 나루터에 도착했다.
묘시 초(새벽 5시) 즈음이다 보니 오래 기다리지 않았는데도 배에 오를 수 있었다.
금세 강을 건너서 호구현의 나루터에서 내린 후, 호수변을 따라 매우 빠른 속도로 달렸다. 그곳부터는 잘 아는 길이기에 최대한 인적이 드문 경로를 활용했다.
한참 달리다 보니 날이 완전히 밝았고, 그쯤에서 우리는 인근의 숲속으로 들어섰다. 휴식을 취하기 위함이었다.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앉자 관산영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사실 그녀의 호흡이 많이 거칠어져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 호흡을 고른 관산영이 전음을 보내왔다.
[가명, 생각해봤어. 이교영. 어때?]
[무난한 것 같구려.]
가명이란 본디 무난한 게 최고다.
[뒤에 ‘영’은 내 이름에서 가져온 거야. 한 글자 정도는 같아야 가명에 적응하기도 더 수월할 것 같아서.]
잘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줬다.
관산영이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 처음에 어떻게 만났는지, 그런 것들도 대충 짜 둬야 하지 않을까? 서로를 부르는 호칭 같은 것도 정리해둬야 할 것 같고.]
[연주상단 중경지점에서 했던 것처럼 사업 동료라고 합시다.]
[어떤 분야의 사업 동료라고 할까?]
[대충 투자 사업이라고 합시다.]
우리는 둘 다 재산이 많으니 투자 사업이라고 하면 둘러대기에도 편리할 것이다. 그쪽 분야 최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잘 참고하고 있다는 식으로 얘기하면 될 테고.
[응, 알았어. 그럼 처음에는 어떻게 만났다고 할까?]
[투자처의 지인을 통해 알게 됐다고 합시다. 귀하의 거주지는 중경 쪽이라고 하시오. 내가 이번에 중경에서 일행들에게서 이탈할 때 꼭 들러야 할 데가 있다는 이유를 댔거든. 귀하와 급하게 만날 일이 있었다고 하면 될 것 같소.]
[아, 그랬구나. 알았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한 관산영이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호칭은 어떻게 할까? 사람들이 보통 당신한테 송 공자라고 하나?]
[그렇소. 그래도 귀하는 이미 나한테 하대하는 게 익숙해져 있고, 나도 그편이 익숙하오. 한데 귀하가 내게 송 공자라는 호칭을 쓰면서 하대하는 건 좀 어색할 것 같고…….]
생각해보기 위해 말끝을 늘이자 관산영이 대꾸했다.
[그럼……, 동생이라고 할까? 소, 송 동생이라고. 그러면 이대로 그냥 하대해도 될 테고…….]
어쩌면 그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상황을 짜고 들어갈 때는 자연스러운 게 최고니까.
관산영은 내 눈치를 살피는 중이다. 아마도 본인이 말실수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곧 그녀가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아, 아무래도 동생은 좀……, 그렇지? 다시 생각해보니 별로인 것 같아.]
[나쁘지 않은 것 같소. 귀하의 제안대로 합시다.]
내가 대꾸하자 관산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가 승낙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듯하다.
[그, 그래도 괜찮겠어?]
[귀하가 사업상 남창에 자주 들러서 친분을 쌓을 기회도 많았다고 합시다. 그러다 보니 서로 편하게 대하게 됐다는 식으로.]
나는 비룡장에서 살면서 딱히 약속이 없어도 종종 외출하곤 했었다. 이런 상황이 생기면 둘러댈 수 있게끔 평소에도 관리했던 것이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그러면 당신은 나를 뭐라고 부를 거야?]
[이 누님이라고 하겠소.]
[아니, 이 누나로 해.]
[그 호칭은 지나치게 가까운 느낌을 주니 역시 누님이…….]
[누나.]
일부러 누님이라는 호칭으로 밀어봤는데, 역시나 누나라는 호칭을 고집하고 있다. 그래서 웃음이 나왔다.
웃고 있는 내 귓전으로 다시금 관산영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누나.]
아주, 필사적이군.
웃으며 대꾸해줬다.
[알았소, 알았소.]
그제야 관산영도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 지었다.
이후에도 우리는 조금 더 쉬면서 세부 사항들을 조율한 뒤 다시 출발했다.
그때부터는 적당한 속도로 이동했다.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한 시진 반 후면 장원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멀리 우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웠던 이들과 재회할 걸 생각하니 절로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우리 일행이 광서에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장원을 떠났던 때가 구월 초나흗날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십일월 열아흐렛날이다.
두 달 반 만에 집으로 돌아온 셈이다.
따지고 보면 엄청나게 긴 기간은 아니었지만, 그간의 일정이 전투의 연속이었다 보니 매우 길었던 느낌이다.
관산영을 이끌고 한적한 밭두렁 길을 따라 이동하며 송풍장으로 향했다. 마을 길로 가다 보면 마을 사람들과 인사하다가 시간이 다 갈 것이다.
송풍장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문 쪽에 뭔가가 우뚝 솟아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니 감시탑이었다.
내가 장원을 비운 사이에 세운 모양인데, 일반 건물로 치면 사 층에서 오 층 높이쯤 되어 보인다.
강호의 상황이 어수선한 만큼, 송풍장에서도 경계를 강화하기 위해 세운 모양이다.
관산영과 함께 정문으로 다가갔다.
정문 앞에 다섯 명의 인원이 서 있는 게 보인다.
무인들이다. 정문을 지키고 있는 모양새인 걸 보니 경비 무인들인 듯하다.
원래 우리 장원에는 경비 무인들이 없었다. 아마도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송천광이 따로 경비 무인들을 고용한 게 아닐까 싶다.
살펴보니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한 명, 삼십 대 사내 두 명, 이십 대 사내 두 명이었다.
느껴지기로 사십 대 사내는 일류의 중반쯤, 삼십 대 사내들은 일류의 초반과 초중반쯤이다. 이십 대 사내들은 아직 이류 수준으로 보였다. 그래도 일류에 많이 근접한 이류들이다.
저 정도 수준의 무인들이라도 막상 고용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고용 비용도 평소보다 더 많이 들었을 것이다. 물론 송천광에게 그 정도 비용은 전혀 부담이 안 되겠지만.
무인들과의 간격이 열 걸음 정도로 줄었을 때쯤, 그들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멈춰주십시오.”
그 말을 한 건 사십 대 사내다. 말을 마친 그가 이십 대 사내 한 명을 대동하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이윽고 우리 앞에 다다른 사십 대 사내가 물었다.
“두 분께서는 어떤 용무로 방문하셨습니까?”
사십 대 사내의 어조와 태도가 정중해서 마음에 들었다.
참고로 나와 관산영은 죽립을 눌러쓴 상태다.
“아, 저는…….”
대꾸하던 나는 순간적으로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감시탑 위쪽에서 누군가가 갑자기 훌쩍 뛰어내린 탓이다.
그가 하강하는 중에 이미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촉홍결이다.
착!
촉홍결이 정문 앞에 착지하자 그쪽에 있던 무인들이 움찔하며 반응했다.
“어, 어르신……?”
하지만 촉홍결은 그들에게 신경 쓰지 않은 채 곧장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촉홍결이 우리 앞에 있는 사십 대 무인을 향해 말했다.
“그냥 안으로 모시면 되네.”
그러자 사십 대 무인이 촉홍결에게 대꾸했다.
“하오나 어르신. 장주님께서 방문객들의 신원을 확실하게 확인한 후에 안으로 모시라고 지시하신지라…….”
“자네의 앞에 있는 이도 이곳의 장주일세. 비룡장의 주인이란 말일세.”
“예에에에?”
사십 대 무인이 놀란 어조로 되물으며 내 쪽으로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 그럼, 공자께서 바로 차, 창천비룡 송유겸 소협…….”
“하하, 안녕하십니까. 수고 많으십니다.”
내가 죽립을 벗으며 대꾸하자 사십 대 무인이 서둘러 옆으로 비켜서더니 상체를 숙이며 말했다.
“모모, 몰라뵈었습니다. 송구합니다, 송구합니다.”
그는 두 번이나 상체를 숙이며 사과했다.
이에 즉시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헛, 이러지 마십시오. 처음 만나는데 모르시는 게 당연하지요. 가뜩이나 제가 죽립을 눌러쓰고 있기도 했고요.”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주님.”
“아하하, 장주라고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어쨌거나 지금은 제가 얼른 들어가서 어른들께 인사부터 드려야 하니, 저와 여러분 사이의 정식 인사와 호칭 정리는 이후에 하도록 하지요.”
“예, 알겠습니다. 어서 들어가 보십시오. 그리고……, 창천비룡 소협을 이렇듯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리 말씀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뵙지요.”
그렇게 말하며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 후 그들을 지나쳐 촉홍결에게로 향했다.
“촉 어르신……!”
내가 촉홍결을 부르며 다가가자 그가 반가움 가득한 미소를 보이며 대꾸했다.
“헐헐헐, 이게 누구냐, 이게 누구야! 어서 오거라!”
“하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노부야 뭐 가만히 집만 지키고 있었으니 편하게 지냈지. 늘 너희의 안위가 걱정이었다.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다들 무사하다고 해서 그나마 안도하긴 했다만, 그래도 귀주 수복전이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마음이 안 놓이더구나. 모든 전투가 마무리된 후에도 다들 무사하다고 들으니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네 덕이겠지.”
“제 덕이긴요. 다 같이 열심히 한 덕분이지요.”
“헐헐헐. 그래도 최악의 상황을 막은 건 대부분 너였겠지. 노부도 이미 너를 겪어봤는데 그걸 모르겠느냐? 안 봐도 훤하지. 그러니 이렇듯 온 강호가 너를 칭송하는 것일 테고.”
“아하하, 민망합니다.”
내가 짧게 대꾸하자 촉홍결이 말했다.
“잠시 걷자꾸나.”
말을 마친 촉홍결이 송풍장의 본채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관산영에게 따라오라고 눈짓한 후 얼른 촉홍결의 옆으로 붙었다.
경비 무인들에게서 어느 정도 멀어진 후에 물었다.
“경비 무인들은 아버지가 고용하셨겠지요?”
“그렇다. 너희가 떠나자마자 바로 고용하더구나.”
남궁세가의 창궁검대 두 조가 장원을 지켜주고 있기는 하나, 그들은 소속과 신분을 감춘 채로 머무르고 있다. 그렇기에 송천광이 경계 임무를 수행할 무인들을 따로 고용했을 것이다.
촉홍결이 말을 이었다.
“감시탑은 우리 노인네들이 세우자고 제안했다.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 고수들이 높은 곳에서 감시하다가 위험이 감지되면 즉각 호각을 불기로 했지. 노부, 원 형님, 정 장주, 윤 교관, 이 교관이 두 시진씩 번갈아 가면서 근무를 섰고.”
촉홍결, 원을태, 정우립, 윤단영, 이세옥이 번갈아 가며 감시탑 근무를 섰다는 얘기다. 윤단영과 이세옥에게는 아기들이 있지만, 장원에는 근무 시간 동안 아기를 봐줄 사람이 많다.
“감시탑이 경관상 썩 좋지는 않으나, 이 어수선한 강호의 상황이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활용하는 게 낫겠지. 상황이 마무리되면 그때 가서 철거하고.”
목조 감시탑이니 철거하려면 금방 철거할 수 있을 것이다.
촉홍결에게 말했다.
“어르신들과 교관님들께서 고생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겨우 그 정도로 고생은 무슨. 헐헐헐.”
너털웃음을 지은 촉홍결이 걸음을 멈추더니 내게 물었다.
“한데 다른 이들은 어쩌고 너만 먼저 온 게냐?”
예상했던 대로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 저는 중경에서 개인적인 볼일이 좀 있어서 따로 움직였었습니다.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빨리 마무리되는 바람에 곧바로 장원으로 온 겁니다.”
“볼일이라……. 보아하니 이분 소저와 관련된 일이었던 모양이구나?”
촉홍결이 내게 그렇게 물으며 관산영을 바라보았다.
“예.”
“그래서, 이분 소저는 뉘신고?”
“제 사업 동료입니다. 당분간 장원에 머물 겁니다.”
“사업 동료라……?”
촉홍결이 고개를 갸웃하며 그렇게 말했을 때쯤, 관산영이 촉홍결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노선배님. 저는 중경에서 온 이교영이라 합니다.”
“노부는 촉 아무개요. 반갑소, 헐헐헐. 한데…….”
잠시 말을 줄였던 촉홍결이 미소 띤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사업하시는 분치고 무공 경지가 대단하시구려. 채 서른이 안 되어 보이는데도.”
주름 가득한 얼굴로 웃고는 있지만, 촉홍결의 눈동자는 날카롭게 빛나고 있는 상태다.
관산영이 움찔했다.
그녀는 아마도 촉홍결의 눈이 자신의 내면을 모두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을 것이다.
촉홍결이 웃는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게다가 백도인도 아니시고.”
관산영의 눈동자가 커졌다.
장원에 오자마자 자신의 무공 관련 사실들이 이렇듯 금세 파악당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공력을 쓴 것도 아닌데.
관산영이 놀란 표정을 지은 채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기에, 그녀를 향해 빙그레 웃어주기만 했다.
눈앞의 노인이 일반적인 노고수가 아니라 신룡대 출신의 노고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더 놀랄 것이다. 뭐, 오래지 않아 알게 되기는 하겠지만.
촉홍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유겸이가 그런 것도 모르는 채로 소저를 데려왔을 리는 없겠지. 다 생각이 있을 테니 노부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겠소. 그러니 머무시는 동안 잘 지내 보십시다.”
“예. 노선배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헐헐헐.”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촉홍결이 다시금 신형을 돌리더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도 그와 나란히 걸으며 말했다.
“전투 시에 눈여겨봤는데 휘명이가 정말 잘 싸우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헐헐헐, 깜짝 놀라기는 무슨.”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감탄했습니다. 촉 어르신께서 휘명이를 얼마나 공들여 키워냈는지 잘 알 것 같았습니다.”
“헐헐헐헐헐!”
손자에 대한 칭찬을 들으니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모양이다.
웃으며 걷던 촉홍결이 말했다.
“그 녀석이 익힌 무공이야 노부의 무공이지만, 철이 들 무렵부터 그 녀석에게 영향을 끼친 이들은 이곳의 공자, 소저들이었지. 그중에서도 유겸이 네가 끼친 영향이 가장 컸을 테고. 그러니 앞으로도 네가 그 녀석을 잘 이끌어주거라.”
“응당 그래야지요.”
내가 대꾸하자 촉홍결이 만족스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촉홍결이 그쯤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말했다.
“듣고 싶은 얘기가 많다. 너도 복귀했고, 다른 인원들도 오늘 중으로 도착한다는 것 같으니, 이따가 다 같이 술 한잔하면서 들어야겠구나.”
“예.”
“그래. 그럼 노부는 감시탑 근무를 마저 하러 가겠다. 너는 가서 다른 어른들에게 인사드리거라.”
“알겠습니다, 어르신. 인사를 마치고 나면 감시탑 근무는 제가 교대…….”
그러자 촉홍결이 내 말을 끊으며 말했다.
“헐헐, 일없느니라. 그냥 푹 쉬거라. 어차피 모두가 복귀하면 우리 노인네들과 애 엄마들의 감시탑 근무도 끝날 것 아니냐. 그런데 뭘 굳이 교대까지.”
내가 대답 대신 미소를 보이자 촉홍결이 나와 관산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관산영이 촉홍결을 향해 얼른 예를 취했다.
관산영과 함께 송풍장의 본채를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을 때쯤 그녀의 전음이 들려왔다.
[저 어르신은 대체 누구셔? 어떻게 내 무공에 대해 저렇게 단번에 파악하실 수가 있어?]
이에 씩 웃으며 대꾸해줬다.
[뭐,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오.]
[그냥 지금 알려주면 안 돼? 너무 궁금하단 말이야.]
그 말에 대꾸하지 않은 채 걸음만 옮겼다.
멀리 본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채 앞 정원에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진양옥과 송유림이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내가 서둘러 다가가자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진양옥과 송유림의 목소리가 차례로 들려왔다.
“어머나! 이게 누구야?”
“오라버니다! 오라버니다! 오라버니이이!”
송유림이 나를 향해 아장아장 달려오기 시작했고, 나도 짐을 내려놓으며 송유림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그간, 이 작고 예쁜 아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림아!”
우리는 금세 가까워졌고, 나는 송유림을 양손으로 번쩍 들어서 품에 안았다.
“웃쌰.”
“오라버니이, 헤헤헤. 오라버니이.”
“우리 림아, 밥 잘 먹고 있었어?”
“응, 잘 머거써.”
“아이구, 잘했네에?”
“오라버니 보고 시퍼써.”
“오라버니도 우리 림아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어.”
“언니는? 언니는?”
“언니는 이따가 올 거야.”
“언니도 얼른 보구 싶다아.”
“오라버니랑 같이 조금만 더 기다리자?”
“응!”
송유림을 안고 얘기를 주고받다 보니 영혼이 치유되는 것 같다.
그즈음 내 바로 뒤쪽에서 관산영의 기척이 느껴졌기에 그녀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녀는 송유림을 바라보는 중인데, 눈동자가 떨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그러시오?”
“나……, 이,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아이는 처음 봐서…….”
경이로운 무언가를 접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이에 송유림에게 말했다.
“림아, 인사할까? 교영이 이모야.”
그러자마자 관산영의 전음이 들려왔다.
[이, 이모……?]
[서른 살 가까이 차이 나는데 언니라는 호칭은 좀 그렇잖소. 이모가 싫으시면 아줌마라는 호칭밖에 안 남는데…….]
[아냐, 아냐! 이모 할게!]
전음으로 대꾸한 관산영이 곧바로 활짝 미소 지으며 송유림에게 인사했다.
“우와! 네가 림아구나? 안녕? 이모야.”
“이모……?”
“응. 이모. 교영이 이모. 림아는 원래 이름이 뭐야?”
“유림. 송유림.”
“아하, 그래서 림아구나. 아이고오, 이름도 예뻐라.”
이에 송유림에게 물었다.
“림아, 이모한테도 안겨 볼래?”
그러자 관산영이 깜짝 놀라며 내게 되물었다.
“그, 그래도 돼? 아직은 내가 낯설 텐데……. 내가 안았을 때 혹시 울거나 하면…….”
그때 송유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관산영이 놀란 표정을 지었고, 나는 그녀에게 송유림을 넘겼다.
관산영이 송유림을 받더니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세상에, 세상에!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울 수가……!”
송유림을 안은 관산영은 감격에 겨워서 주체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