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408화 (408/416)

내 안에 마교있다 408

어느새 다가온 진양옥과도 인사를 나누고 관산영을 소개해줬다. 이후에 그간의 사정을 얘기하려 하자 진양옥이 말했다.

“마침 네 아버지와 이 총관님, 유 총관님이 이곳에서 회의 중이셔. 그러니 아예 그분들이 계신 데서 한 번에 얘기하는 게 편하지 않겠니?”

“아, 예. 그리하겠습니다.”

“그러면 림아 데리고 먼저 들어가 있어. 나는 일하는 사람들한테 다과를 준비해달라고 하고 들어갈 테니.”

“예.”

내가 대꾸하자 진양옥이 멀어져갔다.

관산영이 송유림에게 물었다.

“림아, 안에 들어갈 때까지만 이모랑 같이 갈까?”

관산영이 여전히 송유림을 안은 상태라, 안에 들어갈 때까지는 계속 안고 가도 되겠느냐고 물은 것이다.

송유림이 대꾸했다.

“응!”

“아유, 예뻐라. 아유, 예뻐.”

관산영이 양손으로 송유림을 번쩍 들어 올린 채로 빙글빙글 돌았고, 송유림은 꺄르르 웃었다.

송풍장의 본채로 들어서서 응접실로 향했다.

송천광 등은 아마도 이 층 회의실에 있을 것이다.

잠시 응접실에 앉아 기다리고 있자니 반가운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화미다.

“도련님……!”

“하하, 잘 지냈어?”

“저야 잘 지냈죠. 도련님이 고생 많으셨겠죠. 어디 다친 데는 없으신 거죠? 그렇게 전해 듣기는 했는데.”

“응. 멀쩡해.”

내가 대꾸하자 이화미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럼 위에 가서 도련님이 오셨다고 말씀드릴게요.”

이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화미가 이 층으로 사라졌다.

진양옥이 응접실로 들어왔을 때쯤, 빠른 속도로 계단을 내려오는 여러 개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누구일지 빤하기에 의자에서 일어섰다. 관산영도 나를 따라 일어섰다.

곧 송천광, 이청오, 유영평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유, 유겸아……!”

“유겸이 왔구나!”

“오셨습니까, 공자……!”

세 사람 모두 놀람과 반가움이 공존하는 표정이었다.

그들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아버지, 이 숙부님, 유 총관님. 그간 무탈하셨지요?”

“우리야 무탈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으냐. 네가 무탈한지가 중요하지.”

송천광의 대꾸였다. 이청오와 유영평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송천광이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다친 데는 없느냐? 다들 무사하다는 얘기는 전해 들었었다만.”

“예, 저도 멀쩡하고, 누이도 멀쩡하고, 장원의 식구들도 모두 멀쩡합니다.”

“오오, 그래. 그거면 되었다. 그거면 되었어.”

송천광이 대꾸하자 이어서 이청오가 입을 열었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때때로 고되기도 했습니다만 서로 도와가면서 잘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유영평이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활약이 대단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역시 공자십니다.”

“임 선배님께서 많이 도와주신 덕분이었습니다. 임 선배님도 매우 큰 활약을 펼치셨지요. 아, 참. 임 선배님에게 별호가 생긴 건 아십니까?”

“예, 들었습니다. 영광스러운 일이기는 하나, 저는 그저 아내와 아들이 무사한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송 장주님과 비슷한 심정인 거지요.”

그 말에 송천광이 공감한다는 듯 여러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송천광이 관산영을 일별하더니 내게 물었다.

“한데 손님과 같이 왔구나? 이분은 누구시냐?”

“아, 제 사업 동료입니다.”

“사업 동료……?”

“예. 대략 두 해쯤 전에 지인을 통해 처음 알게 됐는데, 대화가 잘 통하는 편이다 보니 종종 만나서 친분을 쌓게 됐습니다.”

거기까지 대꾸한 후 관산영에게 말했다.

“제 아버지시오.”

그러자 관산영이 즉시 송천광을 향해 공손히 예를 취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송 장주님. 저는 중경에서 온 이교영이라 합니다.”

“아……, 반갑소, 유겸이 아비 되는 사람이오.”

“저야말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장주님.”

관산영의 대꾸가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이청오와 유영평을 차례로 소개했다.

“이분은 이 숙부님이시고, 오래전부터 아버지를 도와 송가장의 총관 일을 해오셨소. 옆에 계신 분은 나를 돕고 있는 유 총관님이시오.”

“아.”

짧게 대꾸하며 고개를 끄덕인 관산영이 이청오와 유영평을 향해 예를 취했다.

“이 총관님, 유 총관님, 처음 뵙겠습니다. 앞서 들으셨겠지만, 저는 이교영이라 합니다.”

“나는 이청오라 하오. 멀리에서 온 손님이시구려. 반갑소.”

“반갑습니다. 유영평이라 합니다.”

이청오와 유영평이 인사를 받자 관산영이 대꾸했다.

“저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대강의 소개가 마무리되자 송천광이 내게 말했다.

“인사는 끝난 듯하니 일단 가서 앉자.”

“예.”

응접실의 탁자로 이동했다.

내 양옆으로 유영평과 관산영이 앉았고, 송천광과 이청오와 진양옥은 우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는 사이에 계서댁이 다과를 준비해왔기에, 나는 그녀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곧 계서댁이 자리를 벗어나자 송천광이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사업 동료라니? 네가 사업을 하고 있었더냐?”

다소 염려된다는 얼굴이다. 내가 사업을 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아, 투자 사업입니다. 제게 특별한 사업 역량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서, 가진 자산의 일부를 굴려 보기로 한 겁니다.”

“일부라면 나쁘지 않지. 한데 투자도 여러 분야가 있잖으냐.”

그러자 나를 대신해서 관산영이 대꾸했다.

“주로 귀중품 분야입니다. 보석, 보물 및 기보奇寶, 골동품, 명화名畫, 고급 병장기 등을 적절한 가격에 매입하여 수요층에게 판매하고 있습니다. 장주님께서도 아시겠지만, 부자 중에는 그런 물품들을 수집하여 소장하려는 분들이 많습니다. 믿을 수 있는 지인 중에 그쪽 분야에 밝은 이들이 있어, 그들과 협업하고 있습니다.”

아까 관산영과 말을 맞췄던 내용이다.

방금 그녀가 말한 품목들은 모두 그녀의 은신처에 있는 것들이다. 역대 신투들이 많은 진귀한 물품들의 연원과 특징을 자세히 기록해둔 만큼, 그 내용을 알고 있으면 전문가 행세하기도 수월하다.

송천광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확실히 부자들로부터 늘 수요가 있는 분야로구려.”

“그렇습니다. 한데 일을 진행하다 보면 고가의 물품들 수십 점을 비슷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매입하게 되는 경우가 왕왕 생깁니다. 그런 때에는 저희 쪽도 일시적으로 자금이 부족해지곤 합니다. 그래서 믿을 만한 투자자를 알아보던 차에, 지인을 통해 이렇듯 연이 닿은 겁니다.”

“아하, 그렇구려.”

송천광이 관산영에게 대꾸하더니 나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괜찮은 투자 같구나. 그래도 투자라는 게 늘 성공할 수는 없으니 적절히 분산하는 걸 잊지 말거라. 초반에는 되도록 소액으로 경험을 쌓으면서 배우는 게 중요하다. 너는 아직 젊으니 그런 배움들이 나중에는 큰 도움이 될 게야.”

말하는 투를 보니 송천광도 투자 경험이 좀 있는 모양이다.

뭐, 저래 봬도 광풍현의 알부자니까. 이청오의 도움도 있었을 테고.

“예, 그렇지 않아도 분산하라는 조언을 들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잘했구나.”

송천광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대꾸했다.

그에게 말했다.

“아, 그리고 이(李) 누나는 한동안 우리 장원에서 지낼 겁니다.”

“그래?”

송천광이 되묻자 관산영이 대꾸했다.

“제가 그간 너무 바쁘게 일만 하고 살았던지라 휴가를 계획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송 동생의 권유로 이쪽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한동안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신세는 무슨. 잘 생각하셨소. 부디 편히 머무시오.”

송천광이 관산영에게 그렇게 대꾸하더니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호칭이 서로 누나와 동생이구나? 상당히 친한 모양이구나?”

이에 나는 준비된 답변을 했다.

“누나가 사업상의 업무로 남창에 자주 왔었는데, 그때마다 계속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던 중에 투자 건 하나가 큰 성과를 거뒀는데, 그 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같이 식사하고 술 한잔하다가 더 친해져서 서로 편한 호칭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오호.”

“이 누나한테는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아, 그래?”

“예. 이번에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저는 중경에서 사업 동료들과 상의할 사안이 있었기에 혼자 일행에게서 벗어났었습니다. 그 후의 일정이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 누나가 사전에 준비를 잘해둔 덕분에 일이 금방 마무리됐습니다. 그래서 곧장 장원으로 올 수 있었던 겁니다.”

“오호, 그랬구나.”

송천광이 내게 대꾸하더니 이어서 관산영에게 말했다.

“이 소저께서 수완이 좋은 모양이구려.”

관산영이 민망하다는 듯 미소를 보이며 대꾸했다.

“평범한 수준입니다.”

“아 참, 이 소저라고 불러도 되겠소?”

“예.”

그러자 송천광이 관산영을 보며 몇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을 보니 관산영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곧 송천광이 관산영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유겸이는 지금껏 알아서 잘해왔소. 그리고 나는 유겸이가 앞으로도 잘하리라 믿고 있소. 그러나 아무리 유겸이라도 사업을 하기에는 아직 인생 경험이 부족한 게 사실이오. 그렇다 보니 아비로서 염려하는 마음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는구려. 세상은 만만치 않고, 유명인이나 부자들의 근처에는 불순한 의도로 접근하는 이들이 많으니.”

송천광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앞으로도 사업 동료로서 우리 유겸이를 잘 이끌어주시고 돌봐주시길 부탁드리겠소.”

“당연히, 힘이 닿는 한 열심히 도울 것입니다.”

“고맙소. 이 소저만 믿겠소.”

송천광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대꾸했다.

그 후에도 우리는 한 식경 남짓 담소를 나누다가 송풍장의 본채를 나섰다.

비룡장으로 건너와서 거실에 짐을 내려놓았다. 이화미에게 짐은 그대로 두라고 지시했다.

이후에는 관산영을 데리고 나와서 장원을 안내했다.

한 식경 남짓 이곳저곳 둘러본 후, 내원 정원의 의자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며 말했다.

“아까도 봤듯 서쪽 별채 쪽이 풍광이 좋소. 그쪽에 남은 방이 몇 개 있으니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방으로 골라서 쓰시오.”

그러자 관산영이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서쪽 별채에는 명문의 후기지수들이 머물고 있다고 했잖아? 그리고 당신이랑 친한 고수들이 장원에 방문했을 때도 주로 서쪽 별채에 머문다고 했고.”

아까 내가 안내하면서 말해줬던 내용이다.

“그랬소. 그런데 왜 그러시오?”

“막상 백도인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혼자 있는다고 생각하니까 왠지 좀 두려워져서……. 운기조식도 편히 못 할 거 아냐. 가뜩이나 아까 촉 어르신에게도 금방 파악당해버리기도 했었고…….”

생각해 보니 그것도 그럴 만하다.

관산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차라리 당신이 있는 본채 쪽이 낫지 않을까? 아까 보니까 일 층에 방이 하나 비었던데……. 내가 당신 근처에 있어야 당신도 나를 관리하기가 더 쉬울 거고.”

본채 일 층에는 방이 다섯 개 있어, 그중 네 곳은 공은림, 심산화, 왕철양, 하조혁이 쓰고 있다. 방 하나가 남는데, 일전에 길초량이 그곳을 쓴 적이 있었다.

관산영에게 핀잔을 주듯 대꾸했다.

“이미 장원에서 같이 지내게 된 마당에 관리는 무슨 관리요. 그럴 거면 애초에 귀하를 장원으로 안 데리고 왔지. 이미 다 끝난 얘기를 갖고.”

“아……. 미안. 앞으로는 그런 얘기 안 할게.”

“어쨌거나 귀하의 말은 잘 알겠소. 정종의 기운이 가득 찬 곳에서 지내면 귀하로서도 매우 불편할 수밖에 없겠지. 알았소. 본채 일 층의 남는 방을 쓰시오.”

“이해해줘서 고마워.”

길초량 놈도 이전처럼 본채에서 지내고 싶어 할 텐데, 놈에게는 그냥 이 층의 방을 하나 내어주면 된다. 어차피 본채의 이 층을 쓰고 있는 건 송유하와 나뿐이니까.

길초량과 송유하는 매우 친하여, 이 층에서 같이 지낸다고 해도 서먹하거나 불편할 일이 전혀 없다. 오히려 그렇게 되면 잠룡관 시절의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잠룡관 시절에 우리 세 사람은 늘 내 방에 모였었으니까.

관산영이 말했다.

“그럼 들어갈까? 얼른 짐 풀고, 방 정리하고, 운기도 좀 하고, 제대로 좀 씻고, 옷도 갈아입고 싶어.”

새벽에 호수에서 나와서 기운을 일으켜 몸을 말리기는 했었으나, 그건 말 그대로 젖은 몸과 의복을 말린 것뿐이었다. 게다가 관산영은 경공을 펼치면서 땀을 제법 흘리기도 했었다. 그러니 제대로 씻고 싶을 것이다.

“지금쯤 식사가 준비되었을 것이오. 그러니 일단 밥부터 먹읍시다.”

아직 오시 초(낮 11시)쯤이긴 한데, 새벽부터 장시간 달려온 탓에 허기진 상태다. 그래서 아까 계서댁에게 이른 점심을 먹겠다고 말해뒀었다.

“응. 나도 배고파.”

관산영과 함께 식사를 마친 후, 나도 방에서 짐들을 정리했다.

짐 정리를 끝낸 후에는 한동안 고속으로 운기조식을 취했고, 운기를 마친 후에는 홀로 비룡장을 나서서 제갈수광의 거처로 향했다.

윤단영에게 복귀 인사도 할 겸, 오랜만에 제갈길도 볼 겸 해서 갔는데, 마침 이세옥도 아들인 장조휘와 같이 그곳에 놀러 와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그야말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두 사람 다 고수들이라 전투 상황에 관한 세부적인 질문이 많았고, 그 질문에 대꾸해주다 보니 한 시진이 금세 지나갔다.

대화하는 내내, 두 사람은 같이 싸우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아쉬워했다.

두 사람과는 저녁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제갈수광의 거처를 나섰다.

다음에 들른 곳은 정가장이었다.

정우립도 반가워하며 나를 맞이했고, 우리는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정우립도 전투 상황에 대해 여러모로 궁금해해서, 그와의 대화도 제법 오래 이어졌다.

그렇게 반 시진쯤 지났을까.

갑자기 나루터 쪽이 시끌시끌해져서 확인해 보니, 배가 이미 정박한 가운데 많은 이들이 나루터의 다리를 통해 뭍으로 나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일행이 무림맹의 배를 타고 복귀한 것이다.

이에 정우립과 함께 나루터 쪽으로 향했다.

누군가가 우리 쪽으로 빠르게 달려오고 있다.

정세건이다.

“할아버지!”

“아이고야! 우리 건아 왔구나! 우리 건아 왔어!”

조손은 금세 가까워지더니 얼싸안았다.

정우립의 눈가에 물기가 고여 있다.

조금 전까지 나한테서 전투가 얼마나 힘겨웠는지 전해 들었던 탓이다.

그런 전장에서 손자가 무사히 돌아왔으니 감격스러울 수밖에.

연로한 정우립이지만 이런 감정은 평생 처음일 테니까.

조부와의 재회를 마친 정세건이 내게 물었다.

“그런데 유겸이 형은 벌써 와 있었네요? 시일이 좀 걸릴 수도 있다고 전해 들었는데.”

“아, 볼일이 있었는데 의외로 금방 끝나서 말이야.”

“아하.”

고개를 끄덕이는 정세건에게 물었다.

“다들 문제없이 도착한 거지?”

“네. 아, 그리고 잠룡관의 교관님들과 관도들도 이곳에서 내렸어요. 송풍장에서 며칠 지내다가 잠룡관으로 복귀하게 될 것 같아요. 제갈 교관님이 맹에 얘기해서 허락받으셨어요.”

“아, 그래?”

“예. 지금껏 제대로 된 뒤풀이도 못 했으니 송풍장에서 뒤풀이하고 푹 쉬게 한 후에 잠룡관으로 복귀시키려는 의도시래요.”

우리도 관도 시절에 기동타격조의 임무를 마친 후, 단목세가에서 뒤풀이하고 푹 쉬다가 잠룡관으로 복귀했었다. 당시에 잠룡관주에게 건의해서 우리가 더 오래 쉴 수 있게 배려해준 사람도 제갈수광이었다.

“이거, 후배들을 잘 대접해서 보내야겠네.”

내가 대꾸하자 정우립이 말했다.

“허허허, 혹여 숙소가 북적거리거든 일부 인원은 이쪽으로도 보내주시오. 우리 쪽에도 객실이 많이 있으니.”

“알겠습니다.”

내가 대꾸하자 정세건은 모친에게 인사하러 간다며 정가장 쪽으로 사라졌다.

정우립과 함께 계속해서 나루터 쪽으로 걷다 보니 그쪽의 인원들이 나를 알아보고는 외쳤다.

“어? 송 공자!”

“오리버니!”

“조교님!”

“송 오라버니!”

내가 그들을 향해 한 손을 흔들어주던 순간이었다.

“끼아아아악……!”

별안간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우리 장원에서 웬 비명이란 말인가.

한데, 비명이 들려온 방향이 비룡장의 내원 쪽이었다.

순간적으로 천섬무를 일으키며 빠르게 달렸다.

비룡장의 내원에 도착했다.

문제가 발생한 곳이 어디인지는 금세 알 수 있었다. 때마침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온 탓이다.

“다! 당신 누구얏!”

관산영의 목소리다. 그녀의 방 쪽이다.

“아, 아니, 나, 나는 그게…….”

이어진 목소리의 주인공은 길초량이다.

이에 한달음에 관산영의 방문 앞으로 다가갔다.

길초량은 문밖에 서 있고 관산영은 방 안에 있는데, 관산영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지 않을 수 없었다.

관산영이 알몸인 상태에서 천 한 장으로 본인의 몸 앞쪽을 가리고 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한데 천이 그리 크지 않다 보니 중요한 부분만 겨우 가려졌을 뿐, 그 외의 나신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상황이다.

관산영은 매우 당황한 기색이었는데, 머리카락이 젖어 있는 것으로 보아 목욕 직후인 듯했다.

이에 나는 빠르게 문고리를 잡아당겨서 문을 닫았다. 그러면서 길초량에게 물었다.

“길 형, 이게 대체 무슨 일이오?”

“아, 아니, 나는 그게…….”

길초량이 입만 벙끗거리며 제대로 대꾸하지 못하기에 그를 다그쳤다.

“무슨 일인지 빨리 말해 보시란 말이오!”

“아니, 나는 그저……, 방에 짐만 던져놓고 곧장 이 층으로 가서 조금이라도 더 빨리 송 형을 보려고 한 것뿐인데……. 그래서 문을 확 열었더니 이렇게…….”

“허……!”

이제야 어찌 된 영문인지 대강 알 것 같다.

길초량이 저번에 썼던 방의 문을 아무 생각 없이 열어젖혔다가 이렇게 된 모양이다.

한데 놈의 상태가 이상하다.

놈은 현재 동공이 매우 심하게 흔들리는 중이며,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상태다.

반쯤 얼이 빠져있다.

이 자식 이거,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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