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화. 타인의 생각
어렸을 적 나에게는 남들과는 다른 조금 특별한 재능이 하나 있었다.
["아, 또 당근이네. 당근 싫은데······."]
“당근 싫어해?”
“어?”
“당근. 방금 싫다고 했잖아.”
“나 그런 말 안 했는데······.”
옆자리에 앉은 그 아이는 마치 나를 이상한 사람 보듯이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금 식사에 집중했다.
8살, 아니 9살쯤이었나.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사람의 생각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인지하게 된 것은 대략 초등학교 시절, 옆자리 아이의 생각이 머릿속에 울린 것이 시작이었다.
처음엔 영문도 모른 채 혹시 귀신이 나한테 속삭인 건 아닐까 하는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들은 대부분이 익숙한 목소리들뿐이었다.
저녁을 고민하는 엄마의 목소리, 갖고 싶은 장난감을 갈망하는 친구의 목소리 등 모두 내가 알고 있는 목소리들이었다.
그래서 그다음엔 환청이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윽고 시간이 지나고 점차 이러한 비슷한 경험들이 쌓이고 난 후에야 난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들리는 이 소리는 귀신도 환청도 아닌 앞에 있는 누군가의 생각이라고.
상대방의 생각을 듣는 방법은 간단했다.
눈앞에 있는 상대의 생각을 듣고자 집중을 하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생각이 들리게 된다.
처음에는 생각을 듣는 게 의지대로 되지 않았지만, 자라면서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조절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어쨌든 이러한 원인 모를 재능으로 인해 별다른 노력 없이도 상대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이러한 알 수 없는 능력이 갑작스레 왜 나에게 생기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내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생각해보면 단순히 다른 사람의 생각이 들리는 것뿐이니까.
물을 쏘거나 불을 뿜는, 눈에 보이는 그런 대단한 능력이 아닌 다른 이의 마음을 읽는 것이 내가 가진 능력의 전부였다.
그렇기에 난 내 능력에 대해 그렇게 크게 고민하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 이 새끼 맘에 안 들어."]
“뭐?”
“어?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상대방이 나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품고 있을 시 그 인물의 생각을 읽는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더불어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사실까지 알게 되는 일도 많았다. 누군가의 감추고 싶은 비밀 혹은 남에게 알려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실들과 같은 것들.
그럴 때마다 나는 상대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더 이상 상대방의 생각을 읽고 싶지 않아졌고, 그로 인해 생각을 읽게 되는 일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거의 다른 이의 생각을 읽고 있지 않았고 능력을 사용하고자 하는 의지 역시 생기지 않았다.
이 능력이 생기고 난 뒤 깨달은 것이 몇 가지 있다면 세상에는 생각과 말이 다른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과 생각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능력을 어느 정도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새삼 다행인 일이었다.
다만, 조절할 수 없을 때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무대에 올라섰을 때였다.
중학교 1학년 때, 홀로 교내 팝송 대회에 나간 적이 있었다. 체육관에서 열린 대회는 생각보다 많은 관객이 자리하고 있었다.
관객들이라고 해도 대부분이 같은 학교 학생들이었지만 그래도 눈앞에 있는 수많은 사람에 나는 약간의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현아.”
“네?”
“긴장 많이 했니?”
그러한 내 모습을 보신 건지 공연에 앞서 담당 선생님께서는 긴장하지 말라며 어깨를 다독여주셨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차분히 하고 와.”
“네.”
그리고 다가온 나의 순서.
무대에 오른 순간 앞에서부터 우렁찬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흘러나오는 반주에 나는 긴장되는 마음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노래를 시작했다.
When I think of you,
I used to walk down the street.
그런데 첫 소절을 시작함과 동시에 머릿속으로 수많은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오, 노래 잘한다."]
["목소리 좋네."]
["잘생겼다."]
["배고파. 이거 언제 끝나지?"]
["끝나고 피방 갈까."]
흐르고 있는 음악 이외에 너무 많은 소리가 들렸다. 반주에 집중하기 힘들 정도였다. 무수히 많은 소리들은 그렇게 서로 얽히고 얽혔다.
‘노래에 집중이 안 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중의 집중을 한 끝에 다행히 무대는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평생 쓸 집중력을 여기서 다 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무대에 서면 앞에 있는 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한두 명의 목소리가 아닌 여러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평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늘 상 조절되던 능력이 이상하게 무대에 오르면 조절이 안 됐다.
아마 긴장으로 인해 평소보다 예민해진 탓인 듯했다.
이후 몇 번 더 무대에 오른 적이 있지만, 그때도 역시나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귀에 들리는 반주보다, 내 목소리보다 크게 들리는 타인들의 목소리에 나는 결국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것을 멈추었다.
그리고 당분간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노래를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용히 혼자 연습할 뿐이었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
이후 봄이 되었고, 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밴드부?”
“어. 같이 하자.”
그런데 입학 후 얼마 안 돼서 같은 중학교 출신 친구에게 밴드부를 권유받게 되었다.
“갑자기 무슨 밴드부야?”
“1층 게시판에서 봤는데 부원 구한다고 쓰여 있더라고. 보니까 재밌어 보여서.”
“근데 그걸 왜 나보고 같이 하쟤.”
“너 노래 잘하잖아! 보니까 보컬 멤버도 구한다더라.”
“나 안 해. 하고 싶으면 혼자 해.”
“그럼 오디션만! 오디션만 같이 보자!”
이에 다시 한번 무시해줌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이를 본 동창이 또 하나의 조건을 걸어왔다.
“같이 가주면 내가 특제 소세지빵 쏜다.”
“···소세지빵?”
“응. 너도 알지? 이거 하루에 10개 밖에 안 나오는 거.”
“소세지빵만?”
“얹고 음료 추가.”
차마 거절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나는 결국 친구와 함께 오디션을 보러 갔고, 그렇게 밴드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오디션은 보컬이 아닌 건반으로 봤다.
다행히 피아노를 칠 줄 알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밴드부에서 몇 번의 무대를 서면서 알게 된 것인데, 이상하게도 피아노로 무대에 오르면 이전보다 들리는 게 덜했다.
그게 심리적 문제인 건지 아니면 나에게 오는 집중도의 문제인 건지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들리는 게 훨씬 덜 했고, 그 덕에 나는 계속해서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 * *
“우리도 길거리 버스킹 같은 거 해볼까?”
“엥? 길거리 버스킹?”
갑작스러운 이승준의 말에 놀란 부원들이 순간적으로 하던 것을 멈추었다.
“홍대 같은 곳에서. 우리도 사람 많은 곳에서 한번 하면 좋잖냐.”
“나쁘지 않은 생각 같기는 한데······.”
“난 뭐 괜찮은 거 같은데?”
그러한 제안에 다른 부원들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아 하는 반응이었다.
나 역시도 딱히 나쁘지 않았다.
결국 평소에 교내에서 하던 버스킹을 장소를 옮겨 밖에서 하자는 거였으니까.
“아, 그리고 너튜브 같은 것도 촬영하는 거지. 물론 우리만 나오도록 세팅해놓고.”
“너튜브?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긴 요즘은 개인 계정으로 이것저것 많이 올라오더라.”
“굳이 업로드용이 아니더라도 그냥 우리끼리 기념 삼아 촬영하는 것도 좋고.”
그러자 박준희가 나를 보며 말했다.
“근데 그럼 얘 때문에 난리 나는 거 아니냐?”
“아, 맞네.”
“그럴 가능성이 상당하다.”
“백프로야. 백프로.”
부원들은 뭔지 알겠다는 듯이 입가에 묘한 미소를 띠었다.
“나? 나는 왜?”
“왜긴 왜야, 거울 안 보냐?”
아, 그런 말이었군.
금방 이해했다.
“아······.”
“아, 이 새끼 지금 이해했다.”
“본인이 잘생긴 거 안다는 거지.”
“니들이 먼저 얘기 꺼냈잖아.”
“아무튼 이 자식, 분명 댓글 엄청 달릴걸.”
“이거 은근 조회 수가 꽤 나올지도 모르겠는데?”
그렇게 말하던 박준희와 이승준은 어쩐지 조금 신이나 보였다.
“그것보다 선곡은 뭐로 할 건데?”
조회 수고 뭐고 가장 중요한 건 무대의 완성도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곡이 중요했고.
“혹시 각자 하고 싶은 곡 있어?”
그때 장민준이 말했다.
“아, 나 하나 있어.”
“뭔데?”
“루트의 Always be with you."
루트.
너무나도 익숙한 그룹명에 나도 모르게 순간 침묵했다.
“Always be with you? 그게 뭔데?”
“와, 너 이 곡 모르냐? 이거 꽤 유명한데.”
“남자 아이돌 노래는 잘 안 들어서 몰라.”
“한 번 들어봐. 노래 좋음.”
“그래?”
장민준이 곧바로 폰을 꺼내 스트리밍 어플을 실행시켰다. 그러자 얼마 안 가 앞서 말한 루트의 곡이 흘러나왔다.
형이 팀을 나온 이후 어느새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3년이란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일단 형은 제대 후에 한국을 떠나 캐나다로 유학을 갔다.
형은 그동안 못했던 공부를 이제라도 해보고 싶다 하였고, 부모님은 그러한 형의 선택을 존중해주셨다.
루트는 재계약을 한 뒤 2년 동안 두 번의 그룹 활동을 했다.
그리고 재계약 기간이 끝나자 루트는 잠정적으로 해체되었다.
2년 후 한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재계약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그룹의 리더가 말하기를,
‘비록 소속사는 달라도 우리 루트는 해체가 아닌 계속해서 활동을 할 것입니다.’ 라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그때 이후로 루트가 다시 모이는 일은 없었다.
수많은 히트곡과 함께 인기를 누리는 그룹이다 보니 그런 루트의 해체는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그리고 그렇게 한 세대를 대표했던 대형 그룹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오, 도입부 좋다.”
“이 노래는 사운드 자체가 좋아.”
“루트는 나도 아는 노래 좀 있었는데.”
“워낙 유명했잖아. 지금은 뭐 해체했지만.”
곡은 어느새 후렴을 거쳐 2절 도입 부분을 향해가고 있었다. 그때까지 형의 목소리가 나온 것은 단 몇 초에 불과했다.
“야, 우세. 넌 어때?”
“뭐가?”
“노래. 버스킹 곡으로 괜찮은 거 같냐?”
장민준에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지. 이 노래 좋잖아.”
“좋아, 그럼 이 곡으로 하는 걸로.”
그 말과 동시에 장민준이 틀어놓았던 음악을 껐다. 그게 못내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걸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이의 있는 사람?”
“없음.”
“오케이.”
버스킹 곡이 정해졌다.
정해진 선곡은 루트의 Always be with you.
형의 노래로 공연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