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화. 뜻밖의 만남
주말 아침, 밴드부 연습을 위해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서려는데 그 모습을 보신 엄마가 순간 놀란 얼굴로 나를 부르셨다.
“아침 일찍부터 어디 가니?”
“학교요.”
“학교? 오늘 학교에 간다고?”
“네. 연습이 있거든요.”
길거리 버스킹이 결정된 이후 점심시간, 방과 후 등 틈틈이 시간이 있을 때마다 함께 모여 연습을 하기로 했다.
주말 연습은 꽤 고되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촉박한지라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완성된 무대를 만들기가 어려웠다.
“연습이라면 밴드부?”
“네. 곧 버스킹이 있거든요.”
“버스킹? 길에서 노래하는 그거 말이니?”
“네. 그거요.”
“그거라면 엄마도 오다가다 몇 번 봤어. 요즘은 학생들은 다 노래들을 잘하더라.”
길거리 버스킹이라고 해도 요즘은 실력 없는 사람은 보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우리도 더더욱 연습에 매진해야 하고. 이참에 연습 시간을 더 늘리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우리 아들은 건반 맡았다고 했지?”
“네. 맞아요.”
“그럼 노래는? 노래도 하니?”
“음, 조금이지만 할 것 같아요.”
“마음 같아선 엄마도 보러 가고 싶네.”
평소 부모님은 내가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특히 엄마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래서 처음 밴드부에 들어가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도 부모님은 긴 고민 없이 흔쾌히 그렇게 하라며 허락해주셨다.
물론 그 뒤로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붙었지만.
“시간도 많은데 어떻게 한번 보러 갈까?”
“부끄러워서 안 돼요.”
“뭐가 부끄러워?”
“아무튼 그런 게 있어요.”
공연하는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드리기 아직은 좀 그랬다.
“엄마.”
“응?”
“카페는 다시 하실 생각 없어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엄마께서는 동네에서 작은 카페를 하나 하셨었다.
동네에 작은 카페를 하나 내서 단골 장사를 하는 것이 엄마의 오랜 소원 중 하나셨다. 이후 소원대로 카페를 여신 엄마는 즐겁게 그리고 소박하게 운영을 해오셨다.
하지만 몇 년 후 카페는 문을 닫게 되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대표적인 이유를 하나 말하자면 형을 찾아오는 팬들 그리고 기자들 때문이었다.
형이 그룹을 그만두고 연예계를 떠난 이후 엄마의 가게에는 그 전보다 더 많은 팬과 기자들이 찾아왔다.
물론 카페 주소 같은 건 공개한 적도 없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다들 찾아왔다.
대부분이 형의 안부가 궁금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당연히 형과 관련된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반복되면서 엄마는 결국 카페를 닫으시기로 마음먹으셨고 이윽고 영업을 종료했다.
“카페는 무슨 카페. 예전에 오래 했잖아.”
“그래도요. 다시 하고 싶진 않아요?”
“글쎄. 지금은 생각이 별로 안 드네. 안 늦었어? 얼른 가야지.”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셨다.
["카페는 무슨······."]
그때 갑작스럽게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엄마의 목소리였다.
어딘지 모르게 자포자기한 것 같은 목소리. 들으려고 한 것도 아닌데 우연히 들어버리고 말았다.
가끔씩 이럴 때가 있었다. 들으려고 한 것도 아닌데도 우연히 다른 이의 생각이 들릴 때가.
‘들리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왜 하필 이때 들어버리고 만 건지.
자포자기한 듯한 엄마의 그 목소리는 꽤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 * *
버스킹 장소는 홍대로 결정됐다.
위치상 가장 가깝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홍대 어디서 버스킹을 할지는 아직까지 정해진 게 없었다.
“홍대는 버스킹 존이 따로 있으니까 어디서 할지는 직접 보고 결정하는 게 어때?”
“오, 그거 좋다.”
“사전에 예약도 해야 하니까 빠른 시일 내로 돌아보자.”
괜찮은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부원들과 후보군에 있는 장소들을 하나씩 돌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가까운 주말에 만나 공연 장소 후보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아, 좀 아슬아슬하겠는데.’
약속 시간은 토요일 오후 1시.
하지만 생각보다 버스가 밀린 탓에 약속한 시각보다 약 5분에서 10분 정도 늦을 것 같았다.
이에 곧바로 톡을 열어 단톡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우세현
: 미안한데 나 좀 늦을 것 같은데
장민준
: 얼마나?
우세현
: 아마 10분 정도
박준희
: ㄱㅊㄱㅊ 근데 나도 좀 늦을 듯
장민준
: 이 새끼들이 하나 같이 늦네
넌 얼마나 남았는데?
박준희
: 얼마 안 늦어 도착하면 연락하겠음
장민준
: 근데 이승준 이 새끼는 왜 아까부터 답이없어?
그 뒤로 톡 알림음은 계속됐다. 하지만 때마침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했기에 나는 메시지 확인을 뒤로 한 채로 버스에서 내렸다.
이후 정류장에서부터 약속 장소를 향해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거리 곳곳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골목을 통해 가는 게 나으려나.
바로 옆으로 인적 드문 골목이 보였다.
머릿속으로 대충 길을 그려보니 골목을 통한다면 약속 장소까지 훨씬 더 빠르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들어선 골목은 사람 하나 없이 고요했다. 여기서 조금 더 가다가 모퉁이를 돌고 나면 곧 다시 큰 길이 나온다.
그리고 그대로 쭉 가다보면 약속 장소인 화음 공원에 도착. 어쩌면 예상보다 빨리 도착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골목을 걸으며 폰을 꺼내 조금 전 확인하지 못했던 메시지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장민준
: 야 어디냐고
박준희
: 나 진짜 거의 다 왔음
장민준
: 왔는데 왜 아무도 없어
박준희
: 이승준도 없음?
장민준
: ㅇㅇ 없어
이승준
: 나 가고 있음
이승준 이거, 진짜 오고 있는 거 맞아?
이후 고개를 들어 모퉁이를 돌려는 그때, 모퉁이 저편에서부터 누군가 나왔고 순간 놀란 나는 몸을 멈칫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편에 있던 이와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쿵!
“뭐야!”
“아, 죄송합니다.”
“이런 씨, 눈 똑바로 뜨고 다녀!”
남자가 낮게 윽박지르며 말했다.
이후 남자는 조용히 주변 눈치를 살피는 듯싶더니 이내 몸을 돌려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아, 그 새끼가 쫓아오기 전에 얼른 튀어야 하는데······."]
그 새끼?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는 게 남자의 생각을 읽어버렸다.
물론 읽고 싶어서 읽은 게 아니었다. 멋대로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온 터라 어쩔 수가 없었다.
요즘 들어 왜 이렇게 조절이 안 되지.
["이제 이 몸으로는 얼마 못 버티는데. 한두 명 더 어떻게 잡아야 하나."]
섬뜩한 남자의 목소리가 또다시 머릿속에 울렸다. 이 몸이라니. 영문 모를 소리였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남자와 한 번 더 눈이 마주쳤다.
“······.”
“······.”
순간 공기의 흐름이 멈췄다.
이어서 남자는 나를 잠시 응시하는 듯하더니 곧 아무렇지 않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 급한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어쩐지 기분이 영 꺼림직했다.
뭔가 찜찜한 이 느낌.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감 하나만 믿고서 무언가를 행동하기에는 그 행동에 대한 근거가 너무 없었다.
더불어서 이제 정말 시간도 얼마 없었다. 나도 내 갈 길이나 가야지.
그런데 그때.
조금 전 남자가 나왔던 모퉁이에서부터 또 다른 남자 한 명이 튀어나왔다.
남자는 순간 앞에 있던 나를 놀란 얼굴로 보더니 이내 사과했다.
“아, 미안해요.”
그렇게 말하던 남자는 무언가를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 새끼, 도대체 어디로 튄 거야?"]
음. 뭔가 앞이랑 연결되는 것 같은데.
더불어 남자는 경찰 제복을 입고 있었다.
["일 치기 전에 빨리 잡아야 하는데."]
“혹시 검은 모자에 검은색 추리닝을 입은 남자를 찾으시는 건가요?”
“어? 맞아요.”
“그 남자라면 방금 여길 지나 저기 보이는 편의점 쪽으로 갔어요.”
그러자 곧 남자의 표정이 밝아졌다.
“고마워요! 아, 근데 내가 그 남자를 찾는 걸 어떻게······.”
“빨리 가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 맞아. 어쨌든 정말 고마워요!”
이후 남자는 빠르게 사라졌다.
막상 남자를 도와주고 나니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찜찜한 마음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관여하고 말았다.
모르겠다. 그래도 경찰인 것 같으니까 괜찮겠지.
그렇게 나는 다시금 약속 장소를 향해 바쁜 걸음을 옮겼다.
* * *
버스킹 장소는 일사천리로 결정됐다.
몇 군데 둘러본 결과 만장일치로 작은 분수가 있는 공원 가에서 하기로 했다.
다른 곳에 비해 한적한 편이기는 하지만 공간도 넓고 나름 유동 인구도 괜찮게 있는 편이어서 첫 버스킹 장소로 나쁘지 않았다.
“근데 막상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좀 떨린다.”
“야, 벌써부터 그럼 어떡하냐. 본무대에서는 어떡하려고.”
“이승준 은근 쫄보라니까.”
장소도 정해졌으니 앞으로 남은 건 구청에 버스킹 허가 신청을 받은 뒤 있는 힘을 다해 연습을 하는 것뿐이었다.
앞으로 14일 밖에 안 남았으니······.
빡세게 연습해야겠는걸.
“어떻게, 다들 밥은 먹을 거야?”
버스킹 장소도 물색하고 중간에 노래방도 한번 들리고 나니 눈 깜짝할 새에 저녁 시간이었다.
“시간도 늦었는데 먹고 들어가자. 근처에 괜찮은 피자집 있어.”
“오케이. 고고.”
이후 부원들과 저녁까지 먹은 뒤 또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다. 다행히 가는 길은 그다지 막히지 않았다.
이후 집 근처 정류장에 내려 홀로 걸었다. 이제 초가을에 접어들어서 그런지 밤공기가 조금 차가웠다.
그렇게 길을 걷고 있는데 순간 눈앞으로 낯익은 얼굴의 남자가 보였다.
“안녕, 학생.”
낮의 만났던 그 경찰이었다.
스치는 기억에 일단 고개 숙여 인사를 전했다.
“나 누군지 기억하지?”
“네. 뭐, 대충요.”
“다행이네. 혹여 처음부터 설명해야 할까봐 걱정했거든. 그렇다면 대화가 한결 편하겠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때 이후로 불과 몇 시간밖에 안 지났으니까.
“무슨 일이시죠?”
“별 건 아니고 감사를 표하려고.”
“감사요?”
“그래. 오늘 학생의 한마디가 내 일에 아주 큰 도움이 됐거든.”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도움이라니. 결국 아까 그 남자를 찾은 건가.
“아까 그 일 말씀이신가요?”
“맞아. 학생의 도움으로···그러니까 우세현 군의 도움으로 인해 문제를 해결했지.”
스치는 듯 지나가는 내 이름에 나도 모르게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름. 알려드린 적 없는데요.”
“아, 이름? 그런 거야 알기 쉽지. 그보다 난 이 일에 대해 세현 군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거든.”
“아뇨, 굳이 안 그래도······.”
“아니, 아니. 거절하기 전에 일단 들어봐. 감사 인사를 조금 특별하게 할 생각이니까.”
특별하게?
“혹시 원하는 소원 같은 거 있어?”
“소원이요?”
“응. 소원. 아무거나 말해봐.”
갑자기 웬 소원?
뜬금없이 나타나서는 소원을 들어줄 테니 말해보라니. 신종 사이비 수법이 아닌가 잠시 의심이 들었다.
“사이비 같은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지금 자기가 하는 말이 사이비 같다는 건 알기는 아는 모양이었다.
그 뒤로도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자 남자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알겠어. 그럼 귀찮지만 하나하나 설명을 해줘야겠네.”
이어서 남자가 이전보다 조금 진지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세현 군.”
“네.”
“혹시 사자(使者)의 존재를 믿어?”
진짜 사이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