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제자 영입
『자, 그러면! 지금부터 오늘의 제7시합을 개시하겠습니다!
청 게이트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선발전 제1회전에서 작년도 칠성검무제 출장자였던 C랭크 기사 키리하라 시즈야 선수를 상대로 설마설마하던 승리를 거둔 1학년 F랭크──'워스트원(낙제 기사)' 쿠로가네 잇키 선수입니다! 지금까지 8전 8승 무패. 그것도 키리하라 선수와의 제1회전 이후 모든 시합을 찰과상 하나 입지 않고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나는 새도 떨어뜨릴 기세인 '워스트원'을 '사냥꾼' 이래의 강적이 가로막아 섰습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적 게이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하군 학원 학생회 임원 중 한 사람이자 칠성검무제 대표 유력 후보! 2학년 C랭크──'러너즈 하이(속도 중독)' 토마루 렌렌 선수! 전적은 쿠로가네 선수와 마찬가지로 8전 8승 무패! 그렇지만 그렇지이만 작년 연말에 발표된 토마루 선수의 교내 서열은 3위! 즉, 토마루 선수는 이 학원에서 세 번째로 강한 학생 기사인 것입니다! 토마루 선수가 순위대로 강한 힘을 보여주느냐, 그렇지 않으면 오늘도 또다시 '워스트원'이 '무술'은 '이능'을 이길 수 없다는 우리들의 상식을 유린하느냐! 해설을 맡으신 야나기다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길어서 졸았어.』
『감사합니다! 자, 주목할 만한 일전이 지금…… 시작되었습니다아!』
시합 개시를 알리는 부저가 울리고, 그 소리에 호응해 관객석에서 열광이 소용돌이쳤다.
그 열광의 소용돌이 끝에는 링에 선 두 사람의 기사.
일본도 형태의 '디바이스(고유 영장)'를 들고 선 흑발의 소년 쿠로가네 잇키.
그리고 너클 더스터 형태의 디바이스를 장비한 블루머 차림의 소녀 토마루 렌렌이었다.
렌렌은 시합이 시작되었는데도 그 자리에서 노는 것처럼 스텝을 밟으면서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띠고 잇키에게 말을 걸었다.
"쿠로가네. '사냥꾼'과의 시합은 잘 보았어! 제법 좋은 시합이었어!"
토마루의 웃음은 햇볕에 그을린 갈색 피부와 마찬가지로 매우 건강하고 발랄한 표정이었다.
그녀의 웃는 얼굴을 향해 잇키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대꾸했다.
"그거 고맙군요. 제3위인 토마루 양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기쁩니다."
"경어는 됐어, 경어는. 우리들, 동갑이잖아. 그렇지만 신기하네. 그만큼 싸울 수 있는데 어째서 유급 따위를 한 거야?"
"……아하하, 그건 뭐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서."
"흐응. 뭐,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유감이야. 쿠로가네처럼 강한 사람이 같은 학년이었다면 즐거웠을텐데 말이야아."
"굳이 말하자면 제4위인 사이조가 있잖아."
"그 녀석은 안 돼, 안 돼. 무식한 힘만으로는 나를 건드릴 수조차 없으니까. 평범한 선풍기야. ……뭐, 그렇지만 그 얘기를 꺼내면 쿠로가네도 마찬가지인가. '사냥꾼' 정도의 적에게 고전해서야 나를 이길 수 없어."
그 말을 마치고 토마루는 발랄했던 웃음을 사나운 웃음으로 바꾸더니,
"보여주지. 제3위의 싸움을──!"
순간 잇키의 시야에서 홀연히 그 모습을 감추었다.
'에어리어 인비저블(사냥꾼의 숲)' 같은 스텔스 능력인가.
아니, 그렇지 않았다.
소리가 들렸다.
링을 박차는 소리.
터무니없는 속도로 무언가가 바람을 휘젓는 소리.
눈을 돌리면 희미한 잔상을 시야에 담을 수 있었다.
그랬다.
토마루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사라진 것처럼 보일 정도로 빠르게 이동했던 것이었다.
그 기술이야말로 토마루 렌렌의 노블 아츠(벌도절기).
『'마하 그리드'입니다아! 토마루 선수가 갑자기 승부를 걸어왔습니다아아아아!』
그 이능의 정체는 '속도의 누적'.
토마루는 자신의 몸에 걸리는 '감속'이라는 개념을 무시하고 '정지'하지 않는 한 가속을 누적할 수 있었다.
"사전조사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카메라로 보는 것과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전혀 다르지?"
"그러네. 전혀 따라잡을 수 없어. ……시합 중에 말을 걸어온 이유는 스텝으로 처음 속도를 벌기 위해서였나?"
"정답이야. 이 능력의 약점은 처음 속도니까 말이야. 그래서 스텝을 밟음으로써 처음 속도를 시속 500킬로미터 정도까지 벌었어. 그렇지만 500킬로미터는 겨우 시작일 뿐. 내 '마하 그리드'의 진가는 음속을 뛰어넘고 나서부터야!"
그 말대로 링을, 그리고 링을 둘러싼 벽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토마루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법칙을 그 위에 새로 덧칠하는 이능의 '이치'로 무시하며 제한 없이 계속 속도를 올렸다.
800, 900, 1000, 1100, ──1200킬로미터!
토마루의 속도는 마침내 음속을 넘어 초음속의 영역에 도달했다.
그 움직임은 이미 인간의 동체시력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알겠어? 내 능력은 '사냥꾼'처럼 사라지는 것뿐만이 아니야! 사라지는 데다가 붙잡을 수도 없어! 그저 사라지기만 하는 힘에 쩔쩔매던 쿠로가네로서는 나를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그럼 혹시 토마루 양을 붙잡을 수 있다면 패배를 인정 하겠어?"
"하핫……! 뭐, 그럴 수 있다면 말이지! 그렇지만 할 수 없어! 할 수 있을 리가 없어! 유감이지만 쿠로가네의 칠성검무제는 여기까지야! 자, 간다, 초음속의 일격……!!"
잇키의 초인적인 동체시력을 가지고도 이미 잔상조차 따라갈 수 없게 되었을 때──토마루가 승패를 결정짓기 위해 주먹에 힘을 실었다.
잇키의 배후를 차지하고서 펼친 공격은 올리고 또 올린 최고 속도를 타격의 힘으로 전환하는 일격……!
"'블랙 버드'──!!"
토마루는 소닉붐을 일으키면서 잇키의 등 뒤를 향해서 파고들더니 초음속의 주먹을 꽂아 넣었다.
그 속도는 실로 마하 2를 넘었다.
이미 눈으로 따라잡기도 불가능한 속도 영역에서 들어온 타격은 그야말로 필중필살.
당연히 막기는커녕 피할 수도, 반응할 수도 없다.
토마루는 자신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저 사람 바보네."
절구 모양의 관객석 한편.
그곳에 선 자그마한 몸집의 은발 소녀가 깔보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비스크 돌을 연상시키는 가련한 용모를 지닌 소녀의 이름은 쿠로가네 시즈쿠.
쿠로가네 잇키의 여동생이자, 상대를 물에 빠뜨린다는 독특한 싸움 방식 때문에 '로렐라이(심해의 마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한 B랭크 기사였다.
"오라버니가 그 남자에게 고전했던 원인은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같은 이유가 아닌데."
중얼거린 목소리는 당연히 시즈쿠의 눈 아래 링에 있는 토마루에게는 전해지지 않았다.
전해지지 않았지만 그 의미를 토마루는 금세 이해했다.
'어?!'
토마루는 자신의 시야에 있을 수 없는 감각을 느꼈다.
시선.
실처럼 가느다랗게 뻗은 찰나 속에서 토마루는 자신에게 시선이 꽂히는 감각을 느꼈다.
그것은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초음속의 자신을 두 눈동자에 담은 잇키의 시선!
'거, 거짓말?! 반응했어?!'
다음 순간, 토마루가 반복해서 내지른 초음속의 주먹 끝에서 잇키의 모습이 사라졌다.
초음속의 주먹은 허공을 가르고 두 사람의 몸이 교차했다.
그 엇갈리는 순간 잇키는 토마루가 걸친 윈드 브레이커의 목덜미를 붙들고, 그녀가 올린 초음속의 추진력을 이용해서 그 자리에서 팽이처럼 몸을 한 바퀴 돌리더니──.
그 기세 그대로 토마루의 몸을 석판의 지면에 내던졌다.
"커, 헉."
그리고 등을 때리는 충격에 숨이 막힌 토마루에게 검은 칼끝을 들이밀며,
"내 승리구나."
"…………."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자신이 어째서 붙잡혔는지.
쓰러진 토마루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자신 패배했다는 사실만은 깨달았다.
토마루의 '마하 그리드'는 한 번 멈추면 누적 속도가 리셋된다.
항상 계속해서 움직여야만 하는 기술이었다.
지금부터 다시 한 번, 속도를 다시 쌓아올릴 수는 없었다.
그런 행동을 눈앞에 선 사무라이는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토마루는 작게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잇키의 항복 권고를 받아들였다.
『겨, 결판이 났습니다아아아! 싱겁게 결판나 버렸습니다아아아! 학원 서열 3위인 '러너즈 하이'를 손쉽게 쓰러뜨리고서 쿠로가네 잇키 선수는 연달아 9연승! 슬슬 사상 처음으로 F랭크 이하의 선수 중에서 칠성검무제 대표 발탁이 현실미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이봐, 진짜냐!"
"그 토마루 양이 건드리지도 못하다니……."
"대체 뭐야, 저 F랭크! 어째서 저런 괴물이 유급 따위를 한 거지?!"
"머, 멋지다……."
"과연 잇키구나. 전혀 위태롭지 않은 시합이었어."
실황중계나 관객의 환성 속에서 시즈쿠 옆에 선 빼어난 외모에 키가 큰 남자, 아리스인 나기가 링에서 떠나가는 잇키에게 박수를 보냈다.
"결국 '일도수라'를 쓰지조차 않았고."
"당연한 결과야, 아리스. 오라버니가 '사냥꾼'에게 고전 했던 이유는 보인다든가 보이지 않는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완전 스텔스에 더해서 활이라는 장거리 무기 때문에 간격을 제한당한 탓이었어. 아무리 빨라도, 보이지 않아도 오라버니의…… 초일류의 검객의 사정권에 흙 묻은 발로 들어서서 무사할 턱이 없어."
잇키 정도의 클래스가 되면 이미 크로스 레인지는 검의 결계였다.
들어서는 존재가 있으면 보이든 안 보이든 빠르든 느리든, 잘 갈고 닦인 검객의 육감은 반드시 그 거동을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었다.
그 수읽기를 잘못한 것이 토마루의 패인이었다.
"수고했어, 잇키."
링에서 돌아오는 잇키의 앞쪽, 청 게이트에서 선명한 붉은 머리카락의 소녀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잇키를 치하했다.
"오른손이 살짝 탈골 기미인 정도고, 지칠 만큼 싸우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스텔라도 힘내."
"힘낼 정도의 상대도 아니야."
평상시처럼 자신감이 흘러넘치는 목소리로 답하고는 잇키와 엇갈려서 소녀가 링에 입장했다.
『자, 흥분이 가시지 않은 사이, 이어서 오늘의 제8시합 개시입니다! 타오르는 불꽃같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링에 나타난 사람은 하군 학원에서 유일한 A랭크 기사!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 선수입니다아아아! 룸메이트인 '워스트원'과 마찬가지로 버밀리온 선수도 여기까지 8전 8승 무패! 게다가 모든 승리가 상대 선수의 기권패! 상처를 입기는커녕 제대로 시합조차 하지 않고 위압만으로 내리 이긴 경이로운 슈퍼 루키(초신성)입니다! 그러나 그렇지마아아안, 오늘 상대는 콧김을 뿜는 버펄로오오오오!!!!』
적 게이트에서 토마루와 엇갈려 나타난 사람은 옷자락이 길게 늘어진 교복을 입은 까까머리의 거한.
『학원 서열 제4위 '디스트로이어(성 파괴자)'의 별명을 가진 우리 학교 학생회 임원 중 한 명, C랭크 기사 사이조 이카즈치 선수입니다아아! 긴 교복을 나부끼며 유유히 버밀리온 선수의 앞에 섰습니다! 그 모습에 지금까지 버밀리온 선수와 대치했던 선수들처럼 긴장이나 주눅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쓰러뜨려야 할 적을 날카로운 안광으로 째려봅니다! 사전에 이루어진 하군 학원 벽신문부의 취재에서 '일본 남자에게 도주는 없다'고 단언한 대로, 사이조 선수는 버밀리온 선수와 싸울 의욕 만만! 드디어 우리들도 '홍련의 황녀'가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지금 양쪽 선수가 디바이스를 구현하고 시합 개시를 알리는 부저가 울렸습니아아아아아아!!!!』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아이이이쿠! 시합이 개시되자마자 사이조 선수가 자신의 디바이스인 '참마도'를 머리 위에서 휘두릅니다! 거대질량이 바람을 가르는 굉음이 실황중계석까지 전해질 것만 같은 박력입니다아아아아!』
"묻겠다. 그대는 내 능력을 알고 있는가?"
머리 위에서 참마도를 회전시키면서 사이조는 스텔라에게 물었다.
"몰라. 나는 잇키와는 다르게 사전에 대전 상대에 대해서 조사하지는 않는걸."
"훗. 과연 고명한 A랭크. C랭크 정도는 안중에도 없나."
"그다지 방심하는 건 아니야. 결국 이 싸움도, 그리고 칠성검무제도, 전부 우리들이 강한 '마도 기사'가 되기 위한 훈련 같은 거잖아. 테러리스트인 블레이저와 상대했을 때 적의 능력을 알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어. 그러니까 상대가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든지 맞서 싸울 수 있어야 해."
"그 감각을 키우기 위해 사전조사를 하지 않는다라. 음,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군. 1학년치고는 정말 존귀한 뜻이다. 그렇지만──이번만은 그 고결함이 발목을 잡겠군!"
붕! 하고 바람을 가르며 사이조는 머리 위에서 회전시키던 참마도를 스텔라를 향해 겨누었다.
스텔라의 금빛 대검 '레바레인(비룡의 죄검)'을 능가하는 거대함과 거칠음을 가진 검신에서는 마력의 기운이 번졌다.
그 칼에는 이미 상식을 뛰어넘은 이치가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내의 능력은 '참격중량의 누적가산'!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무거워진다! 한계중량은 어림잡아 10톤! 내 능력을 모르고 한계까지 충전시키게 내버려둔 그대의 실수다!"
울부짖듯이 고하더니 사이조는 참마도를 스텔라에게 내리쳤다.
"'크레센트 액스'────!!"
참격중량의 누적.
사이조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지금 휘둘러 내리는 공격은 일격으로 땅을 가를 정도의 초중량이 깃든 베기 공격이었다.
그러나──.
"그렇지만 아무리 당신의 베기 공격이 무겁더라도 맞지 않으면 그만일 뿐이지."
그랬다.
사이조가 제3위인 토마루 렌렌보다 뒤떨어지는 이유가 그 점이었다.
'크레센트 액스'는 분명 단 일격의 공격력만 따지면 최강 클래스의 능력.
그러나 속도는 참마도라는 무기의 성질상 결코 빠르지 않았다.
토마루 같은 스피드 파이터 에게는 실로 다루기 쉬운 적.
그리고 스텔라 또한 토마루 정도는 아니라 해도 충분한 속도를 지닌 기사였다.
이 정도의 베기 공격.
눈 감고도 피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기꺼이 받아주지!"
"뭐, 라고오오?!"
절거덩! 하고 내려친'크레센트 액스'를 스텔라의 '레바테인'이 막아내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받아내었을 뿐만 아니라, 스텔라는 사이조의 참마도를 힘으로 밀어 올렸다.
"바, 바보 같은?!"
자신이 힘으로 졌다.
그 사실에 사이조는 눈을 크게 뜨며 경악했다.
그랬다.
사이조는 몰랐다.
스텔라가 딱 한 번 이 학원에서 싸웠던 쿠로가네 잇키와의 모의전 때 그 자리에 없었기에.
학생이 촬영해서 동영상 사이트에 올린, 흔들림이 들어간 흐릿한 화상으로만 그 싸움을 보았기에 몰랐다.
──스텔라가 단칼에 대지를 흔들 정도로 무거운 공격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기억해두도록 해, 선배."
참마도가 위로 밀리자 무방비하게 뻗어진 사이조의 상체에 스텔라는 손을 뻗어 교복의 한쪽 옷깃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입술에 잔혹한 미소를 옅게 띠우며,
"힘도, 이능도, 잔재주도, 전부 정면에서 굴복시킨다. 그것이 가능하기에 나는 최고 랭크인 거야."
순간 사이조의 한쪽 옷깃을 쥔 손에서 폭염이 터져 나왔다.
옷깃이 찢어지더니 사이조의 몸이 10미터 정도 공중으로 떠오른 다음 링 위에 떨어졌다.
그을음투성이가 된 사이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터진 폭발에 사이조의 의식은 산산이 부서졌다.
"시합 종료! 승자 스텔라 버밀리온!"
곧바로 그 사실을 확인한 심판의 판정이 들어와 이 싸움의 승자를 확정했다.
『또, 또다시 압도오오오오오!! 사이조 선수, 용맹하고 과감하게 '홍련의 황녀'에게 싸움을 걸었지만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세계 레벨! 이것이 최고 랭크! 강합니다, 너무 강합니다! 올해 1학년은 너무도 강합니다!! 그녀라면, 그녀들이라면! 오랫동안 칠성의 영광에서 멀어졌던 하군 학원에 칠성검왕의 영광스러운 관을 가져다 줄지도 모릅니다!』
흥분하는 아나운서와 관객의 환성을 한 몸에 받으며 스텔라는 유유히 링을 떠나갔다.
칠성검무제 대표 선발전이 시작되고 나서 약 1개월.
계절은 신록이 무성한 초여름에 접어든 무렵.
'워스트원' 쿠로가네 잇키.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
'로렐라이' 쿠로가네 시즈쿠.
성난 파도처럼 9연승을 거듭한 1학년 학생 세 사람의 용명은 전교에 널리 알려졌다.
◆
"축하드려요, 오라버니♡"
잇키가 시합이 벌어졌던 제5훈련장 출구에서 나오자 허리에 가벼운 충격이 전해졌다.
시선을 내리깔자 비췻빛 눈동자 가득히 자신의 모습을 담은 시즈쿠가 있었다.
그 뒤에는 아리스인도 서 있었다.
"고마워, 시즈쿠. 그렇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안겨드는 건 그만둬. 부끄럽잖아."
"예. 부끄러워하시는 오라버니도 무척 귀여우세요."
"아리스. 어쩐지 요즘 들어 시즈쿠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데, 역시 4년간의 의사소통 부족이 원인일까."
"후후, 계기는 그거 같아."
"아아아아! 시즈쿠, 또 잇키에게 매달린 거야!"
갑자기 시즈쿠가 달라붙어 장난을 치는 통에 곤란해 하던 잇키의 등 뒤에서 화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그것은 잇키의 뒤를 이어 훈련장에서 나온 스텔라의 목소리였다.
그 모습을 보더니 시즈쿠는 잇키에게 향하던 천사 같은 웃음을 벌레 씹은 듯이 찡그린 표정으로 바꾸었다.
"뭐예요, 소란스럽게. 알 만한 나이면서 어린아이처럼 아무 데서나 소리치지 마세요."
"시즈쿠가 잇키에게 이상한 짓을 하니까 그렇잖아!"
"이상한 짓? 모르겠네요. 저는 보시는 대로 사이좋게 지낼 뿐이에요. 그렇죠, 오라버니. 우리들, 사이좋은 남매 맞죠?"
"으, 응. 그렇지만 이 거리는 너무 좀 가까워서 부끄러우니까 떨어져주었으면 해."
"봐요. 오라버니도 '응'이라고 말씀하시잖아요."
엄청난 왜곡을 당했다.
"그 다음에 말이 이어졌잖아! 어째서 유리한 부분만 발췌하는 거야!"
"글쎄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요. 대충 생각해보세요, 스텔라 양. 저는 분명 오라버니께 매달렸지만, 그다지 힘을 실은 건 아니에요. 그렇다기보다 저 정도가 전력으로 매달려도 오라버니라면 간단하게 힘으로 떼어낼 수 있을 거예요. 그래요, 정말로 오라버니께서 싫으셨다면 그렇게 하셨을 거예요. ……그렇지만 오라버니는 이렇게 오빠를 따르는 여동생을 힘으로 떨쳐내시지 않으시겠죠?"
'그렇죠?' 하고 묻는 여동생의 비췻빛 눈동자는 글썽글썽 물기에 젖어 버려진 강아지 같았다.
……이렇게 귀여운 존재를 난폭하게 떨쳐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으, 응……, 그런 짓 안, 해."
'잇키이이이이이이!'
'저런 눈으로 쳐다보면 무리라고! 나는 잘못 없어!'
"아시겠어요? 이건 서로 사랑하는 남매의, 합의상의 스킨십이에요. 그러니까 관계없는 스텔라 양은 참견하지 마세요."
"과, 관계있는걸!"
"헤에. 그럼 어떤 관계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그, 그건…………."
"어차피 또 오라버니의 하인이니까, 라는 말을 꺼내시겠죠. 그렇지만 오라버니의 하인이라면 주인의 여동생인 제 행동에 미주알고주알 참견하는 건 도리에 어긋나죠. 당신네 나라 사람들도 어디까지나 당신의 부모님을 섬기는 거지 당신을 섬기는 건 아니지만 예의를 다 갖추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버밀리온의 황족은 자신에게 유리한 해석만을 하며 한 입으로 두 말 하나요?"
일러
"아니, 윽, 우우…………."
시즈쿠의 맹렬한 공격에 무언가를 말하려 하면서도 말문이 막히는 스텔라.
무슨 말이 하고 싶은가.
잇키는 그 내용을 알았다.
그랬다.
두 사람의 관계는 1개월 전 그날 밤부터 바뀌었던 것이었다.
단순한 룸메이트에서 둘도 없는 연인으로.
그러나 스텔라는 작은 나라라고는 해도 일국의 공주.
그런 이야기를 쉽사리 공표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 사실은 잇키도 물론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일은 잠시 동안 두 사람만의 비밀로 하자고 서로 확인했다.
자신의 연인에게 설령 여동생이라고는 해도, 명백히 남매 관계를 뛰어넘은 마음을 품은 여자가 매달리는 모습을 보고 태연하게 있을 수 있는 여성은 일단 없다.
스텔라도 물론 그런 상황은 싫었다.
그렇지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래서 분한 기색으로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스텔라의 모습을 시즈쿠는 조금 시시한 듯이 흘낏 보고는,
"겁쟁이."
"어? 시즈쿠?"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가요, 오라버니."
"우우."
시즈쿠에게 끌려가는 잇키의 모습을 스텔라는 원망어린 시선으로 배웅했다.
"우우우우!"
어쩐지 눈꼬리에 살짝 눈물이 맺혀서 조금 귀여웠다.
"크르르르르!"
'으르렁대는 소리?!'
"저, 저기 말이야, 시즈쿠. 역시 이 나이에 여동생과 팔짱을 끼면서 교내를 걷는 건 부끄러워."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서 잇키는 온화하게 시즈쿠를 떼어내려고 시도했다.
시즈쿠는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곧바로 팔을 풀었다.
"……알겠어요. ……오라버니에게 미움 받기는 싫으니까요."
"내가 시즈쿠를 미워하다니 말도 안 돼."
그 부분은 똑 부러지게 부정해두었다.
이렇게 오빠를 생각해주는 여동생을 미워하게 될 리가 없었다.
그야말로 무슨 일이 있어도 말이다.
단언하는 말에 시즈쿠는 조금 쑥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그렇지만 오라버니──."
그렇게 한 번 말을 끊더니 잇키 말고는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시즈쿠는 중얼거렸다.
"너무 지나치게 다정하면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요."
아무래도 이 뛰어난 여동생에게는 이래저래 들통이 난 기분이 들었다.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라.'
분명 그 말 그대로였다.
잇키와 스텔라가 연인이 된 지 1개월.
두 사람의 관계는 전혀 진전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후퇴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연인이라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관계가 되고 나서 잇키는 필요 이상으로 스텔라에게 신경을 쓰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좀 더 가까운 관계가 되고 싶었다.
좀 더 스텔라를 만지고 싶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다는 욕구는 있었다.
그러나 언제 말을 꺼내야 좋을지 몰랐다.
이런 말은 어떤 상황에서 꺼내면 좋을까.
둘이서 서로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마련해서 마주 보며 진지하게 이야기해야 할까.
그렇지 않으면 아무렇지도 않은 대화 속에서 말해버려도 괜찮을까.
'모르겠어.'
이성과 교제해본 경험이 없는 잇키로서는 그 타이밍을 잡는 방법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그리고 암울하게도 이성과의 교제 경험이 없기로는 스텔라도 마찬가지였다.
말하자면 두 사람은 망망대해를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상황.
당연하게도 조난이었다.
'……시즈쿠의 말대로 남자 쪽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가야 하나.'
그렇지만 그것이 원인이 되어 스텔라가 싫어하게 되면 어쩌나 ……무서웠다.
그래서 도저히 강하게 나갈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잇키는 요 1개월간 한 번도 스텔라의 몸을 만지지 않았다.
'…………휴우. 키스 정도는, 슬슬 하고 싶은데.'
어쩐지 사귀기 전보다 멀게 느껴지는 거리감이 매우 쓸쓸했다.
◆
"아, 이봐, 저기 봐."
"'홍련의 황녀'야. '로렐라이'와 '워스트원'도 있어."
"역시 분위기 있구나아…… 저 세 사람."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여자 두 사람은 어쨌거나 '워스트원' 따위, 조금 운이 좋았을 뿐인 F랭크잖아."
"뭐야 너,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그보다 들었어? 버밀리온과 쿠로가네 오빠 쪽, 오늘 시합에서 학원 서열 3위와 4위인 학생회 임원을 상대로 낙승이었대."
"진짜? 그럼 이제 위에는 제2위인 '샤를라하 프라우(진홍의 숙녀)'와 제1위인 학생회장뿐이잖아!"
"뭐 우리 하군은 그 두 사람이 월등히 강하지만, 여기까지 왔으면 어지간히 뽑기 운이 나쁘지 않는 한 녀석들이 대표에 들어가는 건 확실하겠지. 여동생인 '로렐라이' 쪽도 지금까지 연달아 9연승이고 말이야."
"올해 1학년은 정말로 선수층이 두꺼워. '로렐라이' 옆에 있는 저 키 큰 1학년. 저 녀석도 굉장하지?"
"잠깐, 저 녀석이라고 부르지 마! 나기 님께는 '블랙 소니아(검은 가시)'라는 머어어엇진 별명이 있다고!"
"맞아, 맞아! 우리들의 나기 님을 저 녀석이라고 부르다니 말도 안 돼!"
"어, 으응…… 어쩐지 미안."
"1학년만으로도 이만큼 유망한 탄환이 갖춰졌어. ……어쩌면 올해야말로 우리가 이길지도 몰라."
제5훈련장에서 본교사까지 이어지는 석재 바닥이 깔린 길을 걷고 있노라니 여러 방향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대표 선발전도 이미 시작되고 나서 1개월.
유력 선수는 좁혀졌다.
그중에서도 계속해서 무패를 유지하는 네 사람이 주목 받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었다.
특히 많은 주목을 모은 사람은 잇키였다.
'사냥꾼'의 시합을 시작으로 한 '워스트원'의 성난 파도 같이 빠른 진격은 하군 학원의 학생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어떻게 평가해도 F랭크밖에 될 수 없는 열등생 앞에 이능으로 뛰어날 터인 기사들이 차례차례 쓰러져갔다.
맨 처음에는 그 광경이 학생들에게 있어서 너무나 비현실적이기에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그 승리가 아홉 번이나 이어지면서 더 이상 그들도 눈앞의 현실을 부정할 말이 없었다.
이미 잇키가 1개월 전에 불렸던 것처럼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일부 비꼬인 사람 정도뿐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대부분의 기사가 이 이단의 열등생이 지닌 강한 힘에 얼떨떨해 하면서도 인정했고, 오히려 그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주목했다.
그 모습을 보고 스텔라가 기쁜 기색으로 콧노래를 불렀다.
"흐흥. 다른 둔한 녀석들도 과연 이제 잇키가 강하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네."
"당연하죠. 제 오라버니는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남성이니까요. 오히려 너무 늦었어요. 그렇지만 요 1개월 사이 여러모로 바뀌었네요. 점심시간에 하는 강의에도 지금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고. "
"확실히 3학년 선배가 왔을 때는 깜짝 놀랐어."
시즈쿠가 말히는 점심시간 강의란 잇키가 클래스메이트의 간청을 받아 시작한 무예 교실이었다.
그 강의에서 잇키는 검술은 물론이고 단검술이나 창술, 끝으로는 궁술까지 무예 전반을 봐주었다.
온갖 적의 움직임을 '간파'하기 위해 무예 전반에 통달한 잇키이기에 가능한 수업이었다.
'다만 잇키 자신이 검술 이외는 전문 분야가 아니라고 선을 긋는 점과, 학생들의 스킬이 '기술'을 가르칠 수준에 이르지 않은 점도 합쳐져서 어디까지나 각종 무예 유파 전반에 공통되는 기초적인 내용만을 가르치고는 있지만.'
그 수업에 나오는 학생도 처음에는 클래스메이트 몇 명이었지만, 잇키가 활약한 이래 하군의 학생들 사이에서 무예의 가치를 다시 보는 풍조가 싹터서 지금은 클래스는 물론이거니와 학년의 벽을 뛰어넘어서 학생이 모이게 되었다.
이 호응도 1개월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커다란 변화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렇지만 요 근래 가장 큰 변화라고 하면…… 역시 그걸까."
그 변화가 일어난 지 벌써 일주일이 되었다.
솔직히 내버려두면 해결되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지만 그 이변은 아직 끝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슬슬 계속해서 무시하기도 무리가 있으리라.
"오라버니, 그거라니 뭐예요?"
"응. 실은 나, 어쩐지 스토킹을 당하는 거 같아."
""뭐어어어어?!?!""
잇키의 고백에 스텔라와 시즈쿠 두 사람이 얼빠진 목소리를 내며 놀랐다.
"스, 스스, 스토킹이라니 그거지?! 하루 종일 그 사람 뒤를 따라다니거나, 멋대로 집에 들어오거나, 편지에 면도기를 넣어 보내거나 하는 그 스토킹이지?!"
"스텔라 양. 면도날이에요. 면도기 상태로 넣어서 어쩌려고요."
"몸단장에 신경을 쓰라는 걸까. 친절한 스토커네."
"시시시시시끄러워! 분해하는 걸 깜빡 잊어버렸을 뿐이겠지! 그보다 지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그러네요. 오라버니,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나요?"
"맨 처음 시선을 깨달았던 때는 일주일 전쯤일까. 그 후로 줄곧 등에 같은 시선이 달라붙는 감각을 느껴. 그 반응을 보니 아리스는 눈치챈 모양이구나."
"응. 그렇지만 잇키도 눈치를 챘으면서 무시하는 것 같아서 건들지 않는 방향인가 싶은 생각에 입을 다물고 있었어."
"나도 처음엔 내버려두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시선이 떨어지는 기색이 없어서 말이야."
"뭔가 원한을 살 만한 일을 한 기억은?"
"으음. 기억이 없어."
아리스인이 묻기에 기억을 뒤져보았지만 딱히 짚이는 데가 없었다.
게다가 시선 그 자체도 그런 살기 어린 감각이 아니라서 원한의 선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 혹시, 잇키를 좋아한다, 든가?"
"아아, 그럴듯하네 그거. 스토커는 원한보다는 호의가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느낌이 들고."
"오라버니는 지금 주목받는 기사. 특히 여성들로부터 인기가 높다고 들었어요. 멀리서 응원하는 사이 눈이 마주 쳤다든가 해서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고 착각하거나, 오라버니가 팬으로서 건 말에 대꾸해준 걸 착각하거나 등등……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 같네요."
"잇키는 여자아이를 다루는 방법이 서투니까아."
"그러네. 악수를 청하면 네네 하며 응해버리고. 요구대로 따른다는 느낌인걸."
찌릿, 질책하는 시선을 스텔라에게 받으며 잇키는 쓰게 웃었다.
세 사람 말대로 잇키는 부드러운 언행과 용모 덕분에 여성에게 그럭저럭 인기가 있었다.
최근에는 일부러 시합을 응원하러 오는 학생도 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잇키는 그 여성 팬들을 다루는 방법이 그다지 능숙하지 않았다.
시즈쿠처럼 자신의 용모에 이끌려 무리를 짓는 팬을 용서 없이 쫓아버릴 정도의 단호함도 없거니와, 아리스인처럼 빈틈없이 팬 서비스를 하면서도 일선을 긋는 테크닉도 없었다.
자신을 응원해주는 팬들의 체면을 저버릴 수도 없어서 말을 걸면 멈추어 서서 상대를 해주고, 악수를 바라면 응해주고 말았다.
여성 팬들을 끝없이 상대해주는 사이 수업에 늦을 뻔했던 적도 적지 않았다.
그런 잇키의 행동이 상대를 착각하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스텔라 일행은 그렇게 짐작했다.
그러나…… 잇키는 그렇지도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어째서냐 하면 등에 와 닿는 시선에서는 '살기'는 물론이고 '호의'를 포함해서 어떠한 온도 있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카메라로 촬영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아이돌을 대하는 기분으로 들떠 있는 거라면 모를까, 주제도 모르고 제 오라버니께 손을 대려고 든다면 두고 볼 수는 없어요. 이건 이제 고문이로군요."
"깃털 빗자루 같은 걸 꺼내 들고 어쩔 셈이야, 시즈쿠."
"뻔하지요. 붙잡아서 간지럼 태우기 형이에요."
"……너답지 않게 귀여운 형벌이네."
"간지럽히는 부분은 안구지만 말이에요."
"""무섭네."""
"……뭐, 이거저거 예상을 해봤자 답 같은 건 몰라. 어쩔 셈인지는 본인에게 직접 듣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잇키는 발길을 돌려 자신들이 지나온 석재 바닥이 깔린 길을 되돌아보았다.
"잇키, 혹시 지금도……?"
"응. 아침 조깅 때부터 계속 그래."
일주일 전부터 잇키의 등에 줄곧 달라붙어 있던 관찰하는 듯한 시선.
그 시선은 ……석재 바닥 길 끝에 있는 덤불 속에서 느껴졌다.
잇키는 한 번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나서,
"저기, 거기에 숨어 있는 사람. 줄곧 나를 따라다니는 모양인데 무슨 용건이야?"
의식해서 조금 큰 목소리로 덤불 속에 있는 추적자에게 말을 던졌다.
그러자,
"하와와아우!!?!"
'펄떡!' 하고 덤불에서 추적자가 튕겨 나오듯이 튀어나왔다.
적의는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도 역시 다른 사람을 쫓아다니는 행동은 예사롭지 않다.
과연 덤불을 쑤시면 어떤 뱀이 튀어나올까 생각하며 잇키는 자세를 잡았지만, 추적자의 정체는──놀랍게도 청초한 흑발의 성실해 보이는 미소녀였다.
그 양손에는 이파리가 달린 나뭇가지를 쥐고 있었다.
썰렁했다.
"아, 아우아우! 아니, 이건 오해야! 나, 나는, 우우우, 우와아아!!!!"
자신의 추적이 들키지 않았다고 여겼으리라.
갑자기 위치를 알아맞히자 여학생은 매우 당황하며 동요했다.
곧바로 발길을 돌려서 잇키 일행으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덤불 뒤쪽에는 작은 연못이 있어서──.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흑?!"
허둥대던 여학생은 연못을 에워싼 돌에 발이 걸려 머리부터 첨벙 처박혔다.
그 순간 '쿵' 하고 생리적 혐오감을 일으키는 위험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말을 할 수 없게 된 여학생이 잇키 일행에게 등을 보인 채로 둥실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떠오른 채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잠, 괘, 괜찮아……라니 보기에 명백히 괜찮지 않겠구나, 알았어! 아리스, 잠깐 이 사람 옮기는 것 좀 도와줘!"
"어머나, 큰일이네."
잇키와 아리스인이 달려가는 사이,
"저, 저렇게 예쁜 사람이…… 잇키의 스토커?!"
"이거 이 깃털 빗자루를 사용할 타이밍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것 같네요."
여자 두 사람은 이 만남에 여자의 감이 울리는 경종을 들었다.
◆
그곳은 좁고 어스름한 독방이었다.
불빛은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전기스탠드 하나.
그리고 독방에는 의자에 앉혀진 소녀와, 그녀를 둘러싸듯이 네 명의 다부진 중년 남성이 서 있었다.
남자들은 모두 미간에 주름이 새겨진 험상궂은 표정으로 윽박을 지르며 소녀를 몰아세웠다.
『정직하게 말해! 네 녀석은 피해자 쿠로가네 잇키 씨를 스토킹했어! 그렇지?!』
일러
『현행범 체포라고! 설마 하지 않았다고 발뺌하지는 않겠지?!』
추궁하는 목소리.
얼굴에 비쳐진 너무나 눈부신 전기스탠드의 빛.
그 모든 상황에 기가 죽으면서도 소녀는 필사적으로 말을 자아냈다.
『아, 아니야! 그건 스토킹을 한 게 아니라…….』
『변명하지 마아아아!』
『힉.』
『네가 일주일 동안 그를 따라다녔다는 사실은 이미 명백해!』
『그런데도 아직 시치미를 뗄 셈이냐, 네 이노오오옴!』
『에잇, 어쨌거나 고문이다! 고문을 해라!』
『그, 그만 둬어어어어어어!』
"────헉?!"
소녀는 그 부분에서 악몽의 세계로부터 눈을 떴다.
시야에는 청결한 느낌이 드는 하얀 천장.
콧구멍을 간질이는 약품의 냄새를 통해 이곳이 의무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자신은 의무실 침대에 누워 있던 모양이었다.
그 사실에 소녀는 안도했다.
다행이다.
아까 전 일은 그저 꿈──.
"양초 고문. 채찍질. 손톱 뽑기. 밧줄 매달기. 무거운 돌 얹기……."
고개를 빙글 돌리자 귓가에서 웅얼웅얼 저주를 중얼거리는 은발의 소녀가 있었다.
"화형. 물고문. 못 박기. 거리 공개 연행. 삼각 목마. ──아, 깨어나셨나요."
"지금 웅얼웅얼 중얼거린 말은……."
"글쎄요, 악몽이라도 꾸신 거 아닌가요. 오라버니, 아까 전 그분이 눈을 뜨셨어요."
은발의 소녀──시즈쿠가 침대를 구분 짓는 칸막이 커튼 바깥쪽을 향해 고했다.
그 목소리에 이끌려 잇키와 스텔라 그리고 아리스인이 커튼 안으로 들어왔다.
"어머. 이제 눈을 떴구나. 커다란 혹이 생겨서 걱정했는데, 과연 시즈쿠의 치유술은 대단하네."
"시합에서 입은 상처가 아니면 캡슐(재생조)은 쓸 수 없으니까 말이지. 시즈쿠가 있어주어서 다행이야. 그럼, 좀 어때? 아직 아픈 곳은 있어?"
나타난 얼굴들을 보고 소녀는 상황을 완전히 파악했다.
자신은 그 연못에서 머리를 부딪쳐서 기절했고, 그들이 의무실까지 옮겨와 치료를 해주었던 것이라고.
"아, 아니, 그건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 치료해줘서 고마워."
소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잇키 일행에게 꾸벅 인사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꽤 예의바른 스토커였다.
그렇지만 어째서인지 시선만은 맞추려 들지 않으며 눈동자는 먼 방향을 향했다.
"뭐, 다친 것에 관해서는 내가 놀라게 해버린 탓도 있으니 말이야. 큰일이 안 생겨서 다행이야. 그렇지만…… 어째서 눈을 피하는 거야?"
"시, 신경 쓰지 마. 무, 무척 개인적인 이유니까."
대답하는 소녀의 목소리에는 초조함의 빛이 어렸다.
아까 전부터 눈길뿐만 아니라 몸도 꼼지락꼼지락 거북한 기색을 보이며 흔들어서 어수선했다.
역시 무언가 켕기는 이유로 자신을 따라다녀서 얼굴을 마주 보기 괴로운 것일까.
뭐, 그 부분은 차차 물어보면 되리라.
일단은,
"몸이 아무렇지도 않다면 이것저것 묻고 싶은 일이 있는데. ……어쨌거나, 이름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나, 나는 아야츠지 아야세. 학년은 3학년이야."
'선배인가. 조금 의외인걸.'
만나자마자 그런 얼빠진 행동을 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으면 무언가 쭈뼛쭈뼛 어수선하기 때문일까.
연상이라는 느낌이 없었다.
그러나 연상이라고 하니 역시 반말을 할 수는 없었다.
잇키는 말투틀 존댓말로 고치고서, 어쨌거나 지금 가장 신경 쓰이는 점을 물었다.
"그럼 아야츠지 선배. 아까 드렸던 질문을 다시 반복하겠는데 선배는 어째서 제 뒤를──, 아니…… 저기 선배."
"뭐, 뭐야?"
"이제 시선만이 아니라 얼굴 전체로 외면하시는데…… 정말 왜 그러세요?"
아야세는 어느샌가 시선뿐만이 아니라 얼굴째 뒤쪽 벽을 향해 있었다.
목이 한계까지 돌아갔다는 사실을 목덜미의 팽팽함으로 알았다.
"시, 신경 쓰지 마. 아무 일도 아니니까."
"아니, 신경 쓰인다니까요?! 눈앞의 사람이 이렇게 시선을 피하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라고요?! 뭡니까, 거기 벽에 뭔가 있습니까?"
아야세의 지나치게 수상한 거동에 견디지 못하고 딴죽을 걸자 아야세는…….
"그, 그렇지만……, 부끄러워……서."
모기만 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을 했다.
"……네?"
"모, 모르는 남자와 눈과 눈을 맞추며 대화하다니……부끄러워."
그 말을 듣고 바라보니 아야세의 얼굴은 귀까지 불이 날 정도로 새빨개져 있었다.
"쿠로가네는, 어떻게 그렇게 막 만난 이성의 눈을 보며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어……어떻게, 라고 물어보셔도 이야기 할 때 상대방의 얼굴을 보는 것은 보통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보, 보통…… 그렇구나. 굉장해……. 나에게는 무리야. 실례라는 걸 알고 있어도, 그렇게 바라보면 부끄러워서 앞을 볼수 없어……."
이런 일로 감탄 받을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확실히 아야세의 시선은 몇 번이나 살피듯이 힐끔힐끔 잇키를 향했지만 잇키와 시선이 맞으면 곧바로 눈동자를 피해버렸다.
본인도 잇키의 얼굴을 보려고 노력하 고 있지만 부끄러움이 앞서서 그럴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 행동은 연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아야세는 몹시 수줍음을 타는 선배인 모양이었다.
'……곤란하네. 될 수 있으면 얼굴을 보며 말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거짓말을 해도 간파하기 어려웠다.
잇키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노라니,
"그럼, 여자인 우리들이라면 괜찮겠지."
아야세가 피한 시선 끝에 스텔라와 시즈쿠가 떡 버티고 서서 의아한 표정으로 아야세를 힐문했다.
"들어보도록 할까. 선배는 어째서 잇키를 따라다닌 거야? 무슨 목적으로?"
"그건…… 그게."
"여자가 남자를 따라다니는 행위도, 남자가 여자를 따라다니는 행위도 이유 따위는 당연히 하나예요. 오라버니를 음란한 욕망에 타오르는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게 뻔해요."
"그런 거야?!"
"그, 그건 아니야! 정말이야!"
역시 아야세가 자신을 따라다닌 이유는 '원한'도 '연애'도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도대체 어째서 자신 같은 유급생을…….
'……응?'
그때 잇키는 스텔라와 시즈쿠 두 사람에게 변명을 하면서 파닥파닥 흔드는 아야세의 손바닥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몇 천 몇 만 번 죽도를 휘두른 끝에 새겨졌을 굳은살이었다.
그 손을 보고 잇키의 뇌리에 하나의 번뜩임이 스쳤다.
'……이 굳은살…………게다가 '아야츠지'라니 설마.'
"저기, 아야츠지 선배. 혹시 선배는 '아야츠지 카이토' 씨와 관련이 있나요?"
그렇게 묻자 아야세는 놀라서 눈을 크게 뜨며 잇키 쪽으로 얼굴을 향했다.
"부, 분명 아야츠지 카이토는 우리 아빠인데…… 어, 어떻게 알았어?"
"선배의 손에 있는 굳은살이에요. 그건 검술가의 손이죠. 게다가 나와 스텔라의 조깅에 따라올 수 있다니, 상당히 몸을 단련해야 가능해요. ……그리고 선배의 성이 '아야츠지'여서 혹시나 어쩌면…… 하고 생각해서요. 그렇지만 설마 따님이 있는 데다가, 그것도 같은 학교 선배라니 깜짝 놀랐어요."
흥분한 듯 들뜬 잇키의 목소리에 스텔라는 무얼 그리 기뻐하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리스인에게 물었다.
"저기 아리스, 아야츠지 카이토가 누구야?"
"글쎄? 나는 몰라."
"'라스트 사무라이(마지막 사무라이)'라고 불리던 비블레이저 검사예요."
아리스인 대신 시즈쿠가 스텔라의 의문에 답했다.
"블레이저는 무예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 많으니까 아리스가 몰라도 무리는 아니에요. 그렇지만 검술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 중 '아야츠지 카이토'의 이름을 모르는 자는 없어요. 그 정도로 달인이에요."
'천룡어전시합', '동서통일전', '무사시배', '십단전'──.
일찍이 검의 세계에서 유명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고, 그 영광을 한껏 누린 희대의 천재 검사.
전성기에는 비능력자이면서도 수많은 능력 범죄 진압에 힘쓴 기록도 있었다.
"보통 마력으로 보호받는 블레이저를 상대로는 권총의 탄알조차 가벼운 타박상 정도의 상처만 줄 뿐이에요. 그렇지만 아야츠지 카이토의 칼은 그런 핸디캡을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해요. 아마도 이 세상에서 블레이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가장 애석하게 여겨진 사람이겠죠. ……그렇다고는 해도 비블레이저이면서도 너무 강했다는 점 때문에 '마도 기사'들의 노여움을 사서, 그 용명을 기사의 세계에서 떨치는 일은 없었던 모양이지만요."
"그렇지만 시즈쿠는 알고 있구나."
"쿠로가네가는 대다수의 '마도 기사'와는 다르게 무예의 유용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으니까요."
가장 사랑하는 오빠를 쫓아낸 쿠로가네가에 환멸을 느낀 시즈쿠는 제법 오래 전부터 쿠로가네가가 행하는 무예 수업을 받지 않았지만, 그래도 '라스트 사무라이'의 용명은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시즈쿠 이상 외곬으로 검의 길을 걸어온 잇키가 그 위대한 선진의 이름을 모를 리가 없었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곧잘 카이토 씨의 시합 영상을 보고 검술 공부를 했어요. 중학교 시절, 도장에 직접 시합을 신청하러 간 적도 있습니다."
"어? 그렇구나……."
"거절당했지만요. 그런 드잡이 시합은 안 한다고요. 그렇지만 기쁘네요. 그 카이토 씨의 따님과 만나다니. 요즘 카이토 씨는 건강하세요? 최근 그다지 이름이 들리지 않아서 어떻게 지내시나 하고 생각했는데요."
흥분에 들뜬 목소리로 물어보는 잇키.
그러나 그 질문에 아야세는 표정을 흐렸다.
"……실은, 시합 중 사고로…… 지금은 입원해 계셔."
"어…………! ……죄, 죄송합니다. 이상한 소리를 물어봐서."
"그, 그런, 전혀 신경 안 써. ……쿠로가네 같은 굉장한 사람이 아빠를 그렇게 존경하다니 오히려 기쁘고, 게다가 이 이야기는 내가 쿠로가네를 쫓아다닌 이유와도 관계가 있으니까."
"그건 어찌된 일입니까?"
"……스승인 아빠가 입원하고 나서 나는 줄곧 혼자서 '아야츠지 일도류'의 수행을 쌓았지만, 아무리 노력해봐도 최근 슬럼프에 빠져서……."
아무리 궁리해도 스승인 카이토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해서 고뇌했다.
"그런 때 쿠로가네의 소문을 들었어.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검기를 사용하는 1학년이 있다고. 그래서 쿠로가네에게 상담할 수 있다면 혹시나 무언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렇게 말하더니 그 부분에서 아야세의 목소리는 다시 점점 작아지며 잇키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그, 그렇지만 나, 남자와는 아빠를 제외하면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있던 문하생 정도 하고만 이야기해 보아서…… 그, 어떻게 이야기를 걸어야 좋을지 모르겠어서……."
"혹시 일주일 동안 줄곧 뒤에서 뭐라 말을 걸지 고민했던 겁니까?"
까닥.
아야세는 눈을 내리깐 채 끄덕였다.
"부끄럽지만……."
'……우와, 뭐라고 해야 하나, 소극적인 사람이구나.'
마치 책상 서랍 속에서 모르는 사이에 곰팡이가 피는 쿠페빵 같았다.
잇키 이외의 세 사람도 뜻밖의 스토킹 이유에 할 말을 잃었다.
그런 와중에 아야세는 다시 잇키에게 고개를 숙였다.
"……저, 정말 미안해! 줄곧 뒤를 따라다니다니. 기분 나쁜 여자라고 생각해도 별수 없겠지. 그렇지만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쿠로가네에게 접근하지 않겠다고 맹세할게! 그러니까, 그……경찰에 신고하는 건 봐주지 않을, 래?"
"아니, 그다지 경찰 소동으로 끌고 가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만."
오히려 잇키는 오늘날 보기 드문 검객 동료에게 흥미가 샘솟았다.
그것도 아야세는 '라스트 사무라이'라고까지 불렸던 검객의 애제자.
도대체 어떤 검을 쓸지 매우 흥미가 있었다.
"저기, 아야츠지 선배. 선배만 괜찮다면 앞으로 저와 함께 수행하시겠어요?"
"……뭐?"
"같은 검객 사이이고 하니 혹시 서로에게 무언가 조언을 해줄 점이 있을지도 몰라요. 게다가 저도 '라스트 사무라이'의 유파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요. 영상이면 앵글이 한정되어서 그다지 정보를 얻을 수 없으니까요."
"괜찮아?!"
순간 아야세는 꽃처럼 활짝 웃는 표정을 짓더니 침대에서 뛰어내려와 잇키의 손을 꽉! 양손으로 감싸듯이 움켜쥐었다.
"고마워! 굉장히 기뻐!!"
아까 전까지 그를 피하던 맑은 눈동자가 똑바로 잇키를 비추었다.
그렇지만 곧바로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나 깨달았는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손을 놓더니 3미터 정도 거리를 두었다.
"앗, 미, 미안!! 갑자기 손을 잡다니, 겨, 경박한 짓을……!"
"하하, 손을 잡은 거 정도로 그렇게 야단을 떨 필요는…………."
세상에는 재회한 순간 입술을 빼앗은 여동생이나, 수영복 차림으로 욕실에 난입하는 황녀님도 있는데.
"그럼 오늘부터 함께 할까요? 이미 시합은 끝나서 오늘은 다음 예정으로 저녁식사 때까지 트레이닝을 하려고 생각했는데요."
"응, 부탁해. ……그리고 나를 이름으로 불러줘. 나는 배우는 쪽이니까 선생님이 경어를 쓰면 근질근질해."
"그런, 저 역시 선생님이라고 부르실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 아까 쿠로가네는 나를 배려해서 서로 조언을 해줄 점이 있을지도, 라고 말해주었지만 내가 쿠로가네에게 조언할 수 있는 점이 무엇 하나 없다는 사실쯤은 미숙한 나라도 알아."
자신의 서툰 배려가 들켰다는 사실에 잇키는 쓴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아야세의 말대로 잇키가 아야세에게서 배울 점은 있겠지만, 아야세의 조언을 필요로 하는 일은 일단 없었다.
보기만 해도 대부분의 기술은 훔칠 수 있었다.
이 이상의 겸손함은 반대로 비아냥이 될 뿐이리라.
그렇게 판단하고 잇키는 아야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알았어. 그럼 말투는 편하게 할게. 그렇지만 이름으로 부르는 건 봐줘. 선배를 이름으로 부르기는 나도 거북하니까."
"응. 지도 편달 잘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해서 스토커인 아야츠지 아야세는 쿠로가네 잇키의 제자가 되었다.
◆
방과 후 쿠로가네 잇키는 교사 뒤편에 있는 숲 광장에서 검술을 단련했다.
이곳은 높게 우뚝 솟은 나무들로 그늘이 드리워졌고 또한 콘크리트도 적어서 매우 시원했다.
습하고 더운 일본의 여름 초입에 몸을 움직이기에는 딱 좋은 장소였다.
잇키의 단련은 일단 몸풀기부터 시작해서 '음철'을 이용한 휘두르기로.
이윽고 형태를 더듬고는 마지막으로는 머랏속으로 적을 임의 상정해서 가상대련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옆에서는 스텔라가 잇키와 마찬가지로 '레바테인'으로 검술 단련을 했고, 조금 떨어진 벤치 에서는 시즈쿠와 아리스인이 원형 그대로의 마력을 특수한 점토에 주입시켜 손을 쓰지 않고 형태를 다듬는 마력 제어 단련을 행했다.
이럴 때 네 사람 사이에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평소 잇키에게 달라붙어 토닥거리는 시즈쿠와 스텔라도 이 시간은 진지하게 자신의 수행에 몰두했다.
그 모습이 이 네 명이 함께 행하는 단련의 평상시 광경이었다.
그러나 3일 전부터 그 광경에 또 한 명, 새로운 인물이 더해졌다.
물론 그 사람은 아야츠지 아야세였다.
"훗, 하앗!"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와 함께 아야세의 디바이스, 불타 오르는 듯이 선명한 붉은빛 검신을 지닌 일본도 '히즈메'가 아름다운 호를 그렸다.
검을 휘두를 때 짓는 아야세의 표정은, 이전 의무실에서 잇키를 앞에 두었을 때 보였던 쭈뼛쭈뼛하고 미덥지 않던 태도와는 영 딴판이었다.
입술을 악물고 눈초리를 올리며 매우 늠름한 표정으로 앞에 선 잇키를 응시했다.
과연 검사인 만큼 남성에 대한 거부감을 검을 쥐었을 때까지 끌고 오는 일은 없는 모양이었다.
지금 아야세는 잇키의 제안으로 잇키를 상대로 호각 연습을 하고 있었다.
실력이 더 위인 잇키가 아야세와 같은 수준의 역량을 가진 상대방을 상정해서, 그 상태에 맞추어 때리기 직전 멈추며 서로 기술을 내는 연습이었다.
이 연습을 하는 중에 잇키는 아야세가 쌓은 검사로서의 실력을 가늠했다.
역시 '라스트 사무라이' 아야츠지 카이토의 딸인 만큼 잇키의 눈으로 보아도 아야세는 기초가 탄탄했다.
잇키와 스텔라의 조깅에 따라올 정도였다.
어지간히 꾸준히 달렸을 것이리라.
아야세의 체간은 검사로서 완성되어서 어떠한 자세나 태세에서도 그 검 놀림이 흐트러지는 일은 없었다.
어제 보았던 연무도 뛰어난 솜씨였다.
몸을 옮기는 발놀림도, 호를 그리는 붉은색의 검 놀림도 모두 막힘없이 흘러 끊어지는 일이 없었다.
몇 천 번이나 같은 자세를 더듬어 몸에 익혔으리라.
그렇다고 해서 형식 그대로의 검만을 쓸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이 호각 연습 중에서 잇키는 아야세가 쓰는 검 형식에 의표를 찌르는 짓궂은 공격을 몇 번이나 반복했지만, 그 모두 아야세는 적절한 방어를 취함은 물론이거니와 신속하게 반격을 행해왔다.
결코 틀을 잊지 않고, 그렇지만 틀에 박히지 않고──.
실전 검술로써 아야세의 검술은 대단히 수준이 높았다.
우직한 노력가인 아야세의 일면이 엿보였다.
그리고 동시에──아야세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이유 역시 잇키는 간파했다.
"아야츠지 선배. 잠시 멈춰봐."
"응?"
잇키가 내려친 칼날을 미끄러뜨려 받아넘기며, 엇갈릴 때 몸통을 후려쳐온 '히즈메'가 딱 멈추었다.
"왜 그래, 쿠로가네. 난 아직 그, 지치지 않았어."
갑작스러운 중단에 아야세가 얼떨떨한 시선을 보내 왔다.
아직 시선이 차분하지는 않지만, 첫날처럼 목을 통째로 뒤로 돌리는 일은 사라졌다.
역시 3일이나 함께 단련했으니 다소 익숙해졌으리라.
"보아하니 아야츠지 일도류는 '카운터(방어 후 선공)'를 취하러가는 수비 검술이구나."
"어, 으, 응. 그렇지만 조금 대련해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거야?"
"나에게는 사부가 없어서 보고 훔칠 뿐이었으니까 말이지. 그래서 말인데. 대강 훑어보니 아야츠지 선배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이유를 대충 알겠어."
"저, 정말?!"
"응. 아야츠지 선배가 제자리걸음을 한다고 느끼는 이유는 카이토 씨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 맞지?"
아야세는 끄덕끄덕, 흥분한 표정으로 주억거렸다.
"맞아. 어떻게 해봐도 아빠처럼 날카로운 움직임이 나오지가 않아. 아빠의 움직임은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을 텐데."
"그 점이 문제야."
"어?"
"카이토 씨를 흉내 낸다. 그 점이 제자리걸음하는 이유야."
"……그 말은 나에게 이 검술을 가르쳐준 아빠가 잘못되었다, 그런 뜻이야?"
불현듯 잇키는 아야세의 눈동자에 어떤 감정이 불타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분노였다.
자신의 스승이 잘못된 원흉이라는 말을 듣자 분개하고 있었다.
'어지간히 카이토 씨를 신뢰하는구나.'
그 정도까지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부모가 있다는 사실이 조금 부러웠다.
그런 작은 질투를 느끼면서 잇키는 아야세의 험악한 말에 대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야. 카이토 씨는 매우 뛰어난 검사야. 나도 그 점은 의심하지 않아."
"……그럼, 어째서 아빠의 검을 흉내 내면 안 되는 거야?"
간단한 일이었다.
"아야츠지 선배와 카이토 씨는 성별이 달라."
"성별……? 그런 게 관계있어?"
"크게 있어. 성별이 다르다는 사실은 골격이 다르다는 거야. 골격이 다르면 근육이 붙는 방식도 당연히 변해. 남성의 잠재력을 완벽하게 끌어내는 움직임이 여성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움직임과 동일하다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원형의 완성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성별에 의한 적합도 차이는 여실히 드러나."
"……아."
잇키의 친절한 설명에 아야세의 눈동자에서 분노의 불꽃은 사라지고 이해의 빛이 깃들었다.
그랬다, 잇키는 그녀의 스승을 업신여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뛰어나기에 문제였다.
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검술이라는 것 자체가 애당초 남자를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기에.
"일단 현재 아야츠지 선배의 움직임을 어떻게 교정하면 좋을지 내 머릿속에 생각은 있어. 그렇지만 아야츠지 선배가 카이토 씨와 완전히 같은 검을 쓰는 것에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억지로 교정하려고 생각 하지는 않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 멘탈도 소중한 요소니까 말이야. 고집이 있다면 고집하는 편이 좋아. 무엇보다 이건 교정하면 일단 두 번 다시 원래대로는 돌아갈 수 없으니까."
현재 아야세는 남성용으로 조정된 검술을 억지로 우겨 넣어 쓰는 상태였다.
당연히 몸의 각 부위에는 무리가 생기고 모든 힘과 속도를 마모시켰다.
잇키의 교정을 받으면 문제는 전부 사라져서 매끄럽게 흘러가도록 바뀌리라.
그렇지만 한편으로 한번 그 감각을 익혀버리면, 아야세 정도로 단련을 쌓은 검객의 경우 두 번 다시 원래의 갑갑한 검기로 돌아갈 수 없다.
반드시 그때 느낀 감각을 따라가버린다.
그래서 잇키는 자신의 지도를 받을지 말지 다시 한 번 아야세에게 물었다.
"…………."
아야세는 결코 적지 않은 시간, 생각에 잠기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는 강한 갈등이 역력히 떠올랐다.
그러나 이윽고 뜻을 정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더니,
"가르쳐줘!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강해져야만 해!"
똑바로 잇키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도움을 청했다.
갈등은 확실히 존재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아야세는 강해지기를 바란 것이었다.
그렇다면 잇키 쪽에서 아낄 노력은 아무것도 없었다.
"알았어. 맡겨줘."
믿음직한 웃음을 띠우며 잇키는 아야세의 팔을 만졌다.
"후와아아?! 쿠, 쿠로가네?!"
갑자기 맨살을 만지자 얼굴이 새빨개져서 작게 비명을 지르는 아야세.
그러나 한편으로 잇키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당연했다.
지금부터 잇키는 아야세의 검술에 손을 보는 것이다.
어설픈 잡념을 품고 실수라도 하면 그 결과는 되돌릴 수 없다.
가르치는 쪽에 실수는 허용되지 않는다.
잇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잇키에게 쑥스러워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지금부터 아야세 선배의 자세를 올바른 형태로 바꿀 거야. 부끄럽겠지만 참아줘."
"으, 응…… 참을, 게."
얼굴에 증기가 뿜어져나올 정도로 빨개지면서도 아야세는 입술을 깨물었다.
호각 연습에서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던 잇키가 이마에 땀을 띠우며 무서울 정도로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매만졌다.
그 표정에서 잇키가 얼마만큼 자신을 위해 진지하게 임하는지 눈치채지 못할 아야세는 아니었다.
부끄럽다니 그런 어리광을 부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야세는 부끄러움을 억누르며 잇키에게 몸을 맡겼다.
"움직이는 위치는 정말로 조금, 밀리미터 단위야. 그 변화를 느끼고 위치를 기억할 수 있게끔 집중해."
"알았어………… 응."
잇키가 유리 세공을 다루는 것 같은 섬세한 손놀림으로 아야세의 자세를 조정했다.
어깨를 조금 내리게 하고 겨드랑이를 조이게 했다.
다음으로 치마에서 뻗은 건강한 넓적다리, 그 허벅다리를 만져 폭을 약간 벌렸다.
"후, 아, 햐, 우웃……."
"여성이 남성에 비해서 현격히 뛰어난 부분은 관절의 유연함이야. 특히 엉덩관절에는 큰 차이가 있어. 여성은 임신하기 위해서 골반이 벌어지는데, 그만큼 엉덩관절이 바깥쪽으로 뻗어나와 있어. 즉, 남자의 것보다도 훨씬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이 넓어서 가로 움직임에 강해. 이것은 여성에게만 있는 무기야. 엉덩관절로 전신의 움직임을 만들 수 있으면 아야세 선배의 모든 동작이 한 템포 더 빨라질 거야."
강의하면서 잇키는 스스로 자신의 근육의 흐름을 의식하도록 힘줄 위로 손가락을 스치며 넓적다리에서 무릎 뒤쪽까지 쓰다듬었다.
이성이 넓적다리를 쓰다듬는다는 수치심에 아야세의 무릎이 움찔움찔 떨렸다.
어쩐지 조금 나쁜 짓을 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잇키는 결코 집중력을 끊지 않고 미세한 조정을 이어가며──.
"응, 자세는 대충 이런 느낌이면 돼."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작업을 마치고서 아야세의 표정을 살피자,
일러
……아야세는 잘 익은 낙지 같은 낯빛이었다.
"내가 해놓고 말하긴 그렇지만 ……괜찮아?"
"괜차나……."
그것도 반쯤 울먹임이었다.
"저기…… 미안, 역시 그만두는 편이 좋았을까."
"아, 아니! 그렇지 않아! 애당초 내가 부탁한 일이니까, 쿠로가네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마!"
아야세는 눈물을 쓱쓱 닦더니 웃는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쿠로가네의 손, 크고 딱딱하고 다정해서…… 아빠 같아서 싫지 않았어."
"하하, 설마 이 못생긴 손이 그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어."
잇키의 손은 어린 시절부터 검술을 해온 탓에 완전히 피부가 두꺼워져 있었다.
손의 피부가 질질 벗겨져도, 물집이 터져도 쉬지 않고 해온 탓이었다.
그래서 빈말이라도 예쁜 손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잇키의 자학에 아야세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지 않아. ……나는 그런 손,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해. 똑바로 무언가에 몰두하는 남자는 좋아해."
"어."
기습적으로 날아온 말에 잇키가 할 말을 잃었다.
"아……."
그런 잇키의 반응을 보고 아야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툭 흘려버렸는지 이해하고서 다급하게 부산을 떨었다.
"지금 한 말은 그, 경박한 의미가 아니야! 결코! 그저 인간적으로 호감을 품는다는 뜻일 뿐이라고."
"으, 응, 알아. 알았으니까 그렇게 허둥대지 마. 자세가 무너지니까."
허둥지둥하는 아야세를 달래며 잇키는 자세를 고쳤다.
그만큼 긴장했던 작업인데 허사가 되면 잇키로서도 안타깝다.
"응……, 그렇지만 쿠로가네…… 이거 조금 불편한 느낌이 들어."
"몸에 밴 자세의 버릇은 한 번 교정한 정도로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말이야. 반복해서 익숙해지는 거야. 일단 어쨌거나 실감해봐."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잇키는 '음철'을 손에 들고 아야세의 앞에 섰다.
"지금부터 아까와 마찬가지로 내려치기를 할 거야. 그 팔꿈치의 각도, 무릎의 각도, 엉덩관절로 움직임을 만들 것. 이상 세 가지를 의식해서 아까처럼 카운터를 넣어봐."
"아, 알았어."
'히즈메'를 꽈악 쥐고 겨누는 아야세의 표정에 긴장이 서렸다.
아야세의 집중력이 올라갔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잇키는 아까 전과 완전히 같은 속도, 완전히 같은 각도로 한 번 내리 휘둘렀다.
순간──.
"────으윽?!"
아야세는 아까 전과 마찬가지로 잇키의 내려치기를 비스듬히 겨눈 칼로 미끄러뜨려 흘리더니, 엇갈릴 때에 몸통을 후려치는 카운터를 펼쳤다.
그러나 동작으로 보자면 같았으나…… 그 일련의 속도는 눈에 보일 정도로 향상되었다.
그 사실에 누구보다도 아야세 스스로 말문이 막혔다.
지금 펼쳤던 자기 자신의 움직임을 믿을 수 없는 것인지, 얼떨떨하게 '히즈메'를 쥔 자신의 양손과 잇키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후우. 아무래도 정답이었던 모양이야.'
자신의 교정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잇키는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야세는 지금까지 상반신──팔의 힘만으로 내려치기를 받아내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었다.
남자만큼의 근력이 있다면 그래도 다음 동작으로 부드럽게 연결될 수 있겠지만, 여성의 근육 양으로는 아무리 해보아도 팔의 힘만으로는 부족해 온몸으로 버티는 형태가 된다.
결과적으로 몸은 굳어지고, 다음 카운터까지 가는 동작이 늦어진다.
그래서 잇키는 자세를 교정함으로써 충격을 하반신으로 받게끔 했다.
여성 특유의 유연한 관절과 안쪽 허벅지 구조는 충격을 흡수하기에 최적이었다.
웬만한 충격이라면 다리의 힘만으로 없앨 수 있다.
당연하게 쓸데없이 힘을 줄 필요가 없는 만큼, 신체는 경직되지 않았고 다음 동작으로 이어지는 움직임도 매끄러워 진다.
이것이 이 날카로움을 낳게 된 원리였다.
"굉, 장해……, 굉장해, 굉장해! 굉장하다고, 쿠로가네!!"
조금 지나자 자신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는지 아야세가 빛나는 웃음을 띠며 잇키의 손을 꽉 붙잡고 붕붕 흔들어 댔다.
"내가 2년 동안 줄곧 고민해왔던 문제를 이렇게나 손쉽게 해결하다니! 정말 쿠로가네는 그거구나! 검술 박사야!"
"나도 내 가르침이 틀리지 않아서 안심했어."
'그 칭호는 미묘하게 기쁘지 않지만.'
점심시간에 강의를 들으러오는 시즈쿠를 비롯한 학생들은 아야세처럼 구체적인 지도를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그래서 잇키로서도 이렇게 세세하게 누군가에게 검을 가르쳐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팔짝팔짝 어린아이처럼 뛰어다니며 "해냈다, 해냈어!"라며 온몸으로 기뻐하는 아야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긴장했지만 역시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왕!
솔직히 시합 때보다도 긴장했고 단련 때보다도 열 배는 지쳤지만 보람도 실감할 수 있었다.
부왕!
의외로 이런 직종에 취직하는 것도 괜찮을지 모르──.
부왕 부왕 부왕!!
"……저기, 스텔라."
"무슨 일이야, 검술 박사."
"아까 전부터 굉장한 풍압이 이쪽으로 날아 들어오는데요."
잇키는 갑작스럽게 옆쪽에서 얼굴을 직격하기 시작한 풍압의 발생원을 향해 돌아섰다.
그곳에는 굉장히 불쾌한 표정으로 '레바테인'을 휘두르는 스텔라가 있었다.
"그것참 죄송스럽군요. 검 수련을 빙자해 여자아이의 넓적다리를 만지는 변태를 보고 있자니 괜스레 속이 뒤집혀서 칼 놀림이 흐트러졌는지도 모르겠네. 모처럼 내 검도 교정해주시 겠 어 요 ?"
"으, 예, 예."
다짜고짜 밀어붙이는 스텔라의 박력에 눌려 잇키는 끄덕끄덕 주억거렸다.
'……그다지 스텔라의 검에는 참견하고 싶지 않은데.'
어쨌든 스텔라의 검술은 힘으로 베어 넘기는 '강자의 검'.
기술로 앞지르는 잇키의 '약자의 검'과는 근본적으로 방향성이 달랐다.
자신 따위가 참견해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 상황에서 끄덕여두지 않으면 언짢음이 길게 이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러나 겉날리지 않고 잇키는 스텔라의 스윙에 눈을 고정시켰다.
'……어라?'
얼핏 거칠게 보였던 스텔라의 휘두르기였지만, 자세히 관찰해보니 발가락 끝부터 무릎, 허리까지 깨끗하게 연동해서 일절 힘의 낭비가 존재하지 않는 자세로 휘두르고 있었다.
아마도 스텔라 자신은 적당히 휘두를 셈이었겠지만, 스텔라의 초인적인 운동신경이 온갖 움직임에 대해 무의식 중에 관절과 근육의 움직임을 어저스트(최적화)해서, 가장 적합하고 군더더기 없는 폼을 만들어 올리고 있는 것이었다.
최고 랭크 평가는 겉멋이 아니었다.
이렇게 완성된 예술품에 트집을 잡을 만큼 잇키는 거만해질 수 없었다.
"과연 스텔라야. 나 따위는 지적할 게 없어."
"어째서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우왓! 어째서 칭찬했는데 화를 내는 거야?!"
"어째서야, 이 바보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검에 관해서는 조마경 같은 잇키의 안력도 여자의 마음에는 전혀 쓸모없는 모양이었다.
뭐, 그 안력을 쓰는 머리가 순수하게 배틀만을 위한 뇌이기에 무리도 아닌 이야기였지만.
◆
"뭐야, 그 선배만 편애하고!"
실컷 잇키를 쫓아다니고 나서, 스텔라는 광장에 설치된 휴게소 벤치에 앉았다.
뽈똑 볼을 부풀린 스텔라에게 다른 벤치에서 마력 제어 훈련을 하던 시즈쿠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고했다.
"당신의 두꺼어어어어어어운 다리 따위 만지기 싫은 게 아닐까요."
"그그, 그렇게 늘여서 말할 정도로 두껍지 않아! 조금 포동포동한 것뿐이야! 어쩔 수 없잖아, 단련하고 있으니까!"
너무나도 뜻밖의 평가에 스텔라는 목소리를 높여 항의해보았지만, 시즈쿠는 시치미를 떼고 점토로 잇키와 쏙 빼닮은 피규어를 만들었다.
쏙 빼닮았다고 할까 정말로 판박이였다.
멋졌다.
하나 가지고 싶었다.
"어머 이런, 그렇게 신경 곤두세우지 마. 스텔라는 아야츠지 선배와 다르게 레벨이 높으니까, 잇키에게도 지도할 게 없는 거야."
"으윽."
아리스인의 조언은 정곡을 찔렀고, 스텔라도 근본적인 부분에서는 그 사실을 납득도 했다.
실제로 자신은 잇키의 지도가 전혀 필요 없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것, 이것은 이것.
눈앞에서 연인이 다른 이성의 살을 더듬더듬 만져대면 그다지 좋은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나는 속이 좁은 걸까.'
혹시 자신이 다른 남성의 가슴통이나 두 팔을 더듬더듬 만지작거려도 잇키는 이런 기분이 들지 않는 것일까.
'이런 어, 어째서 불성실한 일을 생각하는 거야! 그런 건 절대 안 돼! 그런 건, 더듬더듬이라니! 잇키 이외에는 절대 해주지 않을 거야! 더듬더듬은 잇키에게만이야!'
그런 광경을 상상하기만 해도 역겨웠다.
스텔라는 닭살이 돋는 사악한 망상을 생각에서 걷어차내며 시즈쿠에게 물었다.
"있잖아…… 시즈쿠는 괜찮아?"
"괜찮냐니, 뭐가 말이에요?"
"그러니까 ……잇키가 다른 여자아이와 더듬더듬거리는 거."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아야츠지 선배는 오라버니께 검을 배우고 있을 뿐이잖아요? 어디의 암퇘지와 다르게 오라버니께 딱히 추파를 던지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물어 뜯으러 갈 까닭이 있나요? 광견도 아니고."
시즈쿠는 흥미 없다는 듯이 그렇게 대답하면서, 점토로 만든 잇키의 피규어를 가방에서 꺼내든 타○야 아크릴 염료로 도색하기 시작했다.
그 손놀림은 장인의 기술이었지만 이미 훈련과는 관계가 없었다.
"나는 실컷 물어뜯는 주제에, 무슨 입으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이 입으로요."
'이이' 하고 시즈쿠는 자신의 입을 양손 검지로 잡아당겼다.
정말 짜증나는 얼굴이었다.
"스텔라 양. 당신은 뭔가 착각하고 있군요."
"무슨 소리야?"
"당신은 제가 오라버니를 독점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그건 지독하게 뜻밖인 착각이에요. 제 사랑은 그렇게 이기적이고 값싸지 않아요. 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오라버니가 행복해지시는 일. 오라버니께서 행복해지신다면, 그 상대가 딱히 제가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그 사람이 오라버니께 행복을 안겨준다면, 오라버니를 배신하지 않고 슬프게 만들지 않는다면 저는 기꺼이 축복해 줄 생각이에요."
시즈쿠의 이 고백은 스텔라에게는 제법 의외인 말이었다.
스텔라는 시즈쿠가 잇키를 여자로서 사랑할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애당초 저 이외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지만 말이죠."
시즈쿠는 스텔라에게 도발하듯이 피식 웃음을 보내더니, 그런 다음 시선을 광장에서 다시 호각 연습을 행하는 잇키와 아야세에게 옮겼다.
"아야츠지 선배가 오고 나서 오라버니는 즐거워 보여요. 저나 다른 학생들은 구체적인 기술 레슨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않고, 스텔라 양은 오라버니가 검을 가르칠 정도로 약하지 않으니까 어딘가 부족했을지도 몰라요. 그런 가르침귀신 오라버니도 귀여워서 멋져요. 뭐, 그러니까 아야츠지 선배에게는 감사하고 있어요."
"……시즈쿠는 제법 어른이구나. 쪼그마한 주제에."
"당신이 이것저것 큰 주제에 너무 어린 거 아니에요? 그리고 다리 두꺼워요."
"두껍지 않아!! 네가 너무 가는 거야!!"
──잇키가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좋다.
분명히 잇키의 행복은 스텔라에게도 기쁜 일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스텔라는 생각하고 마는 것이었다.
잇키를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은 자신이고 싶다고.
……그렇지만 현실은 좀처럼 잘 굴러가지 않았다.
연인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잇키가 곁에 있기만 해도 긴장해버려서 연인다운 일 따위는 조금도 하지 못했다.
특히 두 사람만 있는 밤에는 심했다.
잇키와 시선이 마주치기만 해도 등골이 저려서 얼굴도 볼 수 없었다.
잇키도 그런 자신을 배려하는지 결코 사적인 공간을 넘어오려고 하지 않았다.
스텔라로서는 그런 안타까운 시간도 싫지는 않았다.
어쩐지 낯간지럽고 부끄럽지만, 함께 있기만 해도 가슴이 따스하기에.
그렇지만…… 이제 슬슬 연인으로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다는 욕구는 있었다.
게다가 참도록 강요하는 여자는 미움을 받는다고 들었다.
『우리들, 요 1개월 동안 전혀 연인다운 일은 하지 않았지? 그럼 이제 이전의 관계로 돌아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그런 거, 절대로 싫어.'
그런 상황은 상상하기만 해도 무서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현실에서 일어나면 일단 견딜 수 없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는 여자가 말을 꺼내도 괜찮을까.
경박하다고 여기며 싫어하지는 않을까.
어떻게 생각을 굴려보아도 나쁜 상상으로 움직였다.
도저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리고 한층 더 나쁘게도, 설령 잇키 쪽에서 말을 꺼내준다고 해도 솔직하게 응할 자신도 없었다.
자신의 삐뚤어진 심사는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이해하는 부분이었다.
분명 황녀가 이러쿵저러쿵 어쩌고저쩌고 하며 변명을 찾아 도망칠 것이 뻔했다.
"하아…………."
상대방의 칼싸움에 뛰어들기는 그렇게나 간단한데, ──어째서 좋아하는 사람의 품에 뛰어들기는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세간의 커플이나 아버님과 어머님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다들 용기가 흘러 넘친다.
그렇게 소용없는 일을 생각하면서 스텔라는 멍하니 노을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하늘을 바라보고는,
'하아………… 키스, 하고 싶다…….'
요 1개월 동안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쉬었다.
벽신문은 생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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