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 자애보육원
“길마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큰일?”
“조금 전 테라 놈들이 룰러에서 1억짜리 룰렛 돌렸답니다.”
“흥, 테라 길마 새끼 미쳤군. 돈 쓸 곳이 없어서 룰러에서 그걸 돌려. 나라면 그 돈으로 용병이라도 더 샀을 텐데…….”
길마라 불린 중년인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제 1시간 후면 테라 길드가 가진 영지가 자신의 손에 들어온다. 이날을 위해 세 달간 절치부심하며 전쟁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이제 그 달콤한 과실을 딸 차례다. 그런데 자신들의 공격에 방어 준비를 해야 할 테라 길드의 길드마스터가 미친 짓을 했다. 그러나 이후 들려온 부하의 말은 그의 미소를 단숨에 박살 내 버렸다. 너무 놀라 부하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다.
“…가 온답니다.”
“뭐?”
“룰렛이 대박 터져서 지금 룰러의 마스터가 이쪽으로 온다고요!”
“뭐? 설마?”
“예! 그 설마가 맞습니다.”
룰러의 마스터라는 소리에 혼이 날아간 듯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길마님!”
“비, 빌어먹을! 야! 빨리 길드원들 무장시켜! 난 탑기어 길드랑 이야기를……!”
길드마스터가 정신없이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지만…….
슈우우-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그것은 너무나도 빨랐다.
“어어…….”
노을 지는 하늘 위로 한 줄기 빛덩이가 그들을 향해 천천히 쏟아지고 있다.
“이런 미친!”
떨어지는 빛덩이를 확인한 길마가 낮게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그가 몸을 움직인 순간 쏟아져 내려오던 빛줄기가 분열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수십 개로 쪼개져 그와 그 주변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커어억!”
길드마스터의 옆에 있다가 폭격에 휩쓸린 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사람들은 멍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다.
잠시 후 한 남자가 폭격으로 쑥대밭이 된 현장에 내려섰다. 그는 자신이 벌인 참상을 감상하듯 주위를 삥 둘러보고는 허공에 뜬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길마 포함 10명 죽이기 미션 성공~ 500만 원 감사합니다! 아이고 멱 사장님 통 큰 도네 100만 원 감사합니다! 리액션은…….”
“후퇴!”
“모두 이탈하라!”
남자는 등을 보인 채 도망치는 수십 명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유들유들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리 마치고 하겠습니다.”
* * *
[자애 보육원]
난 천천히 언덕 너머로 사라져 가는 간판을 멍하니 바라봤다. 19살이 되면 당연히 나오게 되는 절차이기에 담담할 줄 알았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기분이 울적하다.
“누구 좀 만나고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유난히 긴 머리가 기억에 남는 엄마는 나를 보육원 앞에 버려둔 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보육원 생활. 힘들 일 슬픈 일은 엄마에게 버려졌다는 슬픔으로 썩어 문드러진 가슴을 잔인하게 후벼 팠지만, 19살이 되어 떠나는 지금은 그냥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을 것 같은 마지막 풍경으로 보육원은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정현, 무슨 생각하냐?”
“마상도를 쫓아가는 게 진정 잘하는 짓인가 고민 중이야. 원장님이 걱정하시더라.”
“내가 뭐 임마!”
핸들을 조작하는 팔뚝이 꿈틀거릴 때마다 검은 뱀 한 마리가 꿈틀거린다.
“형이 사고를 많이 치긴 했잖아. 매미산 마상도는 아직 전설이니까.”
“어쭈? 이제 머리 좀 커졌다 이거냐?”
“사실은 사실이잖아. 원장님이 진짜 진지하게 이야기했다고…….”
“왜? 내가 너 깡패 시킬까 봐? 나 손 씻었어. 임마.”
“그러니까. 오죽 신뢰가 안 가면 그러시겠어. 내가 형 업적 한번 나열해 줘? 추억 좀 살아나게? 매미산 17:1 신화부터?”
“시끄러. 임마. 그보다 이제 뭐 할 거냐?”
“뭐하긴… 일단 알바나 공장 알아봐야지.”
“김 선생님이 알아봐 주지 않으셨어?”
“공장 몇 군데 알아봐 주셨는데, 기숙사 빼고는 돈이 너무 적어서… 형이랑 살면 집 걱정은 없을 테니까 좀 더 돈 되는 곳 알아봐야지.”
“공부 더할 생각은 없고? 공부한다고 하면 내가 적극 도와줄게.”
“마음만 받을게.”
“마음은 개뿔, 임마. 공부도 다 때가 있는 거야. 나야 원래 대가리가 돌이라서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넌 지금이라도 공부하는 거 생각해 봐.”
원래 이렇게 말이 많지 않았는데 내가 걱정되긴 하나 보다. 하긴 보육원에 있을 때 유독 나를 많이 챙겨 주던 상도 형이었다. 그게 비록 예전에 헤어진 동생 때문이더라도 그 마음 씀씀이는 고마운 것이다.
약 한 시간 정도 흐른 후 허름한 빌라 앞에 도착했다. 곳곳에 작은 균열이 보이는 연두색의 5층짜리 빌라다.
“여기가 형 집이야?”
“그래. 4층인데 건물은 좀 낡았어도 위는 넓어. 올라가자.”
“응.”
난 차 트렁크에서 작은 옷가방 하나를 챙겨 들었다. 앞서려던 형이 고개를 갸웃한다.
“짐이 그거 하나였냐?”
“전부 동생들 나눠 주고 왔지.”
“너 쓸 건?”
“다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내 말에 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서 빌라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4층에 다다라 녹슨 철문을 열고 들어가니 나름 깨끗한 모습을 드러냈다. 새로 도배를 했는지 풀냄새가 코를 찌른다.
“도배했어?”
“그래. 임마. 동생 온다고 새로 했다.”
“감격입니다. 형”
“까고 있네. 방 세 갠데 부엌 옆에 있는 방은 창고방이고, 저기 안방은 내 거, 이쪽 방은 네 거다. 구경하고 있어. 난 화장실 좀 가야겠다.”
형은 화장실이 급했는지 안방 옆에 달린 화장실로 사라졌고, 난 형이 말한 방의 문을 열었다.
“와…….”
새것 냄새가 물씬 나는 책상과 싱글 침대가 놓여 있다. 언제나 남이 쓰던 것을 물려받던 것이 익숙했던 내게는 신기한 기분이다. 난 짐을 두고 거실로 나온 후 천천히 집 안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이 형은 뭘 먹고 사는 거야.”
남자 혼자 사는 집이라 그런지 부엌 살림살이는 진짜 단출하기 그지없다. 냉장고 속도 마찬가지. 앞으로 함께 살게 되면 아무래도 식사 같은 것은 자신이 담당하게 될 거 같다. 그럭저럭 부엌 구경을 끝낸 후 마지막으로 형이 창고 방이라고 말한 방의 문을 슬쩍 열었다.
“어?”
방 한쪽에는 형이 사용하던 것인지 각종 운동기구가 가득 쌓여 있었는데, 그 반대편에는 방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거대한 기계가 놓여 있었다. 둥근 타원형의 윗부분이 반 정도 덮이는 뚜껑으로 되어 있고, 내부는 뽀송뽀송한 쿠션이 들어간 기계 장치다.
“캡슐이 왜 여기 있지?”
가상현실게임이 보편화되기도 했고 보통 게임사에서 약정을 붙여 저가에 판매하기에 웬만한 집에 한 대 정도는 있다지만, 그가 알고 있는 형은 절대 가상현실게임 따위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제이텍 3세대 초기형이면 옛날 건데… 불법 개조한 건가. 있을 건 다 있는데 VR기어가 없네.”
예전 작업장 알바를 했었기에 대략적 스펙은 알아볼 수 있었다. 내가 캡슐의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을 때였다.
“너 이거 보면 좀 아냐?”
일을 마쳤는지 개운한 표정의 형이 뒤에서 불쑥 나타났다.
“깜짝이야!”
“왜 놀래?”
“형 같으면 형 얼굴 보고 안 놀라겠어요?”
“…….”
내 말에 형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반박하고 싶지만 자신의 얼굴에 가장 어울리는 직업이 형사 아니면 깡패라는 건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됐고 보면 좀 아냐고…….”
“이거 어디서 났어?”
“예전에 추심 일 할 때 뜯어 왔던 거야.”
“추심? 형 그런 거 손 씻었다고 했잖아.”
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지금은 안 해. 나도 처리하고 싶은데 이거 때문에 손해 본 게 너무 커서 울며 겨자 먹기로 아직까지 가지고 있던 거다.”
형의 말을 들어보니 추심하러 갔는데 추심 당사자가 심장마비로 며칠 전 사망을 했단다. 사인은 게임 중 심장마비, 한마디로 돌연사였다. 빚진 이유도 게임 현질하다가 끝내 제3금융권까지 손을 댄 것인데 죽은 사람의 부모는 돈 없다며 배 째라를 시전했고, 돈 될 만한 거라도 내놓으라니까 아들 잡아먹은 캡슐 뜯어 가라고 했단다. 아들이 죽었는데 거기에 돈 내놓으라고 강짜를 부릴 수 없어 진짜 캡슐을 뜯어 갔다가 추심 일을 소개해 준 큰형님한테 욕 배부르게 얻어먹은 후 그 빚의 20%를 자신이 물어주고는 캡슐을 받아왔단다.
“킁, 그럼 여기 시체가 누워 있었다는 거야?”
죽은 사람이 쓰던 것이라 그런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찝찝해진다.
“어쩌겠냐. 한두 푼이 아닌데. 그래도 중고샵 하는 녀석이 100만 원 정도 준다니까 곧 치울 거야.”
“손해 본 게 얼만데?”
“500만 원.”
“흠, 100만 원은 좀 아닌 것 같은데… 상태를 확인해 봐야겠지만 안만 괜찮으면 반 정도는 건질걸?”
“반?”
“어, 250 정도… 물론 최대한 순정으로 복구했다는 가정하에…….”
형의 눈이 커졌다. 100 정도 건질 줄 알았는데 250만 원이란다.
“네가 할 수 있어?”
“할 수 있기는 한데 젤 중요한 VR기어 파츠가 없어.”
내가 머리에 씌우는 시늉을 하자 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거 안방에 있어. 먼지 앉으면 안 된다고 해서 안방에 보관해 놨지.”
“그래? 그럼 가져와 봐.”
“잠깐만 기다려.”
잠시 후 형은 검은색의 헬멧 하나를 가지고 들어왔다. 불투명한 고글이 달려서 헬멧 안쪽에는 각종 전자부품이 보이고 정수리에는 외부장치를 전선으로 연결할 수 있는 슬롯이 붙어 있다.
“이것도 개조한 거네. 그래도 뭐 잘만 고치면… 어라?”
VR기어 이곳저곳을 돌려보던 난 귀 부분에 붙은 외부 장치 슬롯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딸칵-
잠금장치를 누르니 금빛의 USB 하나가 튀어나온다.
“계정 코어가 있네?”
“계정 코어가 뭔데?”
“리세마라 작업장에서 쓰는 건데 작업한 게스트 계정을 저장할 때 쓰는 거야.”
리세마라는 게임을 리셋하는 것을 반복하여 게임 초반에 무료 뽑기 시스템으로 좋은 것을 뽑는 것을 말한다.
“그건 비싼 거냐?”
“아니, 시중에 다 쓰이는 USB인데 비쌀 리가 있나.”
“그러냐?”
내 대답에 형이 김샜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난 형이 실망하든 말든 계정 코어를 뽑아 이곳저곳을 살폈다. 한쪽에는 마스킹 테이프가 붙어 있고 그곳에는 비번으로 짐작되는 숫자와 알파벳의 조합 숫자가 써져 있다. 난 그 계정 코어를 가지고 방으로 가서 노트북을 꺼내 USB 슬롯에 끼웠다.
“뭐하냐?”
“여기 뭐가 들었나 싶어서.”
“뭐 들었으면?”
“좋은 거 들었으면 대박이지.”
“대박?”
“응. 리세마라 잘된 캐릭터라도 들어 있으면… 수백, 수천만 원도 가능해.”
“수천?”
형의 눈이 부릅떠졌다. 수천이면 원금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형의 눈이 반쯤 돌아가자 난 한숨을 내쉬며 형의 허파에 든 바람을 단숨에 빼 버렸다.
“희망회로 돌리면 그렇다는 소리고… 아마 전주인 캐릭터 정보일 거야.”
“그, 그러냐.”
“어, 그러니까 너무 기대하진 말고… 아참 형 이거 원주인이 무슨 게임 하고 있었는지는 알고 있어?”
“물어 뭐하냐. 세이온이지.”
“역시…….”
세이온이라는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짐작은 하고 있었다. 출시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전 세계 MMORPG 부동의 1위이며, 무려 5억의 인구가 즐기고 있는 게임이었다. 게임을 이용하는 이용자가 워낙 많아 이제는 그 게임 내 경제가 현실에까지 영향을 끼쳐 뉴스에도 심심찮게 보도되는 게임이다.
“너도 세이온 하냐?”
“내가 무슨 돈이 있어서 게임을 해. 작업장 알바 그만두고는 접었는데.”
“그런 것치고는 잘 아는데?”
“작업장에서 겸사겸사 배운 거야. 기계 고장 나면 자체수리 해야 하니까. 아무튼 조용히 좀 해 봐. 안에 확인해 보게.”
“알았다.”
형을 조용히 시킨 난 노트북을 켜고 계정 코어를 확인했다. 비번을 묻는 질문에 코어 옆에 붙어 있던 패스워드를 입력하니 파일 하나가 덩그러니 나타났다.
“뭐가 들어 있긴 하네.”
“있어?”
“어. 날짜 보니까 세이온 오픈하고 한 달 정도 후네. 그런데 이거 어떤 건지 확인하려면 게임에 접속해야 하는데.”
“네가 접속해보면 되지. 문제 있어?”
“불법 개조된 거 다 뜯어내고 시스템도 살펴야 하는데 귀찮아.”
“마, 형 위해서 좀 해라.”
“절대 싫어.”
내가 고개를 도리질하자 형의 눈이 가늘어졌다.
“250만 원에 팔면 10% 줄게.”
“30%면 생각해 볼게.”
“어이…….”
양팔 이두박근이 꿈틀거린다. 이건 위험하다.
“15%”
“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