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2화 (2/154)

2. 신화급 스킬?

“이것도 뜯고…….”

캡슐 옆에 앉은 난 캡슐에 붙은 기기들을 하나하나 분해했다.

“그거 뭐냐?”

한쪽에 뜯어 놓은 사각형의 박스를 형이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이거, 리세마라 할 때 필요한 거야. 일종의 매크로.”

“매크로? 팔면 돈 좀 되냐?”

“뭐, 일단 그렇기는 한데 문제는 이게 불법이라는 거지.”

“불법?”

“응. 비인가 장비.”

“이런 건 어디서 파냐?”

“캡슐샵 중에 불법으로 이런 거 건드는 곳이 있는데 중고로 파는 건 생각도 하지 마.”

“왜?”

“비인가 장비 걸리면 영업정지에 벌금도 엄청나서 절대로 아는 척도 안 할걸. 애초에 불법이라 A/S도 안 되고.”

“그렇군.”

“아무튼 이것도 떼고…….”

노트북과 캡슐을 연결하여 제이텍사 홈페이지에서 최신 펌웨어를 다운받아 캡슐 업그레이드까지 끝마친 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현아, 끝났어?”

“어. 일단 겉은 끝났고, 나머지는 속에 들어가 봐야 하는데 화장실 다녀와서 해야지.”

캡슐을 이용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가장 큰 재앙 중 하나가 바로 캡슐 안에 볼일을 보는 것이었다. 물론 게임 시스템이 사용자의 상태를 파악하여 미리 경고해 주지만 게임에서 바로 빠져나올 수 없는 경우도 있는 터라 하드 유저들은 집에서 성인용 기저귀를 차고 게임을 한다.

잠시 후 준비를 마친 난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죽은 사람이 썼던 시트라 꺼림칙하기는 하지만 15프로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캡슐에 몸을 뉘였다.

“일단 접속해서 별 이상 없으면 계정코어 바로 확인할 거야. 계정코어 자체가 불법이라 전에 VR 설치기사 하면서 쓰던 프로그램 쓸 거니까 노트북 절대 건드리면 안 돼. 까딱하면 게스트 계정 나한테 연결돼 버려.”

“그, 그래.”

노트북에 손가락을 가져가던 형이 찔끔한 표정으로 손을 거뒀다.

“절대 안 돼.”

“알았다니까. 형 못 믿니?”

“형이 건드릴 것을 믿으니까 이렇게 약속 받는 거지.”

“알았어. 짜식이……. 절대 안 건드릴게.”

형에게 확답을 받은 난 VR기어의 외부 장치 슬롯에 계정 코어를 끼워 넣은 뒤 그것을 머리에 뒤집어쓰고는 누웠다.

“그럼 들어간다.”

VR기어 옆에 버튼을 누르자 시야가 암전되었다.

검은 화면에 제이텍사의 로고가 나타났다 사라지고 그는 하얀색의 벽으로 된 방 안에 서 있었다. 이곳이 바로 캡슐에서 제공하는 시스템이라는 공간. 본래는 사용자의 취향대로 꾸며져 있어야 하지만 펌웨어를 최신으로 업그레이드해서인지 초기화 상태다.

“설치 프로그램 검색.”

내가 명령어를 외치자 딱딱한 시스템 음성이 들려온다.

[5건의 설치된 게임이 검색되었습니다.]

[세이온 3.13버젼]

[유우나짱의 은밀한 하루]

[AV소녀 전대]

[The Office wife Version 1.1]

[Knockout Master]

“아주 혈기왕성한 분이었구만.”

세이온을 제외하고는 전부 성인 게임이다. 개인의 취향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게임에 미쳐서 사채 빚까지 얻은 주제에 성인 게임 할 정신은 있었다니 이해가 안 된다.

“이제 고쳐 볼까.”

설치기사용 프로그램을 불러온 난 캡슐을 점검하기 시작했고 약 10여 분이 지나자 모든 작업이 끝났다. 그리고 이제 계정 코어를 확인해 볼 순서다.

“세이온 실행시켜.”

[세이온을 구동합니다.]

주위의 벽이 큐빅처럼 조각나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이윽고 검은 공간으로 변했다. 게임이 실행되고 있는 것이다.

[서버에 계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계정을 생성하시겠습니까? 계정을 생성하지 않을 경우 게스트 계정으로 3일간 게임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아니, 게스트 계정 탐색.”

[외부 장치에서 1건의 게스트 계정이 검색되었습니다. 게스트 계정을 사용자와 연동시키시겠습니까?]

시스템의 물음에 난 잠시 심호흡을 했다. 여기서 잘못 대답을 했다가는 게스트 계정은 내 것이 된다. 그리고 한번 계정이 연동되면 리세마라 된 것으로 추정되는 게스트 계정은 절대 팔 수 없다.

“연동하지 않고 게임 접속.”

[게스트 계정에 접속합니다. 앞으로 남은 잔여 이용 시간은 8시간 21분 11초입니다.]

슈욱!

[모험과 약탈의 세계 세이온에 오신 것을…….]

“스킵.”

[그대여 이제…….]

“스킵.”

화악!

눈앞이 캄캄해지고 발밑에서 뻗어 나온 별무리가 하늘로 솟구친다. 광대한 우주에 내 몸이 홀로 떠 있다. 약 30초간 우주를 감상하니 주위로 별들이 모여들었고, 점차 눈이 부실 정도로 많은 빛이 나를 감싼 후 눈앞에 텍스트 하나가 떠올랐다.

[차원을 여행하는 나그네여. 세이온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그대는…….]

“스킵.”

스킵을 외치자 번쩍하는 빛무리와 함께 하나의 캐릭터가 눈앞에 나타났다.

“남자였나 보네.”

캐릭터와 유저의 체형이나 성별이 같을수록 동기율이 높다는 말이 있어서 대부분 자신의 본래 성을 그대로 유지한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처럼 아주 심혈을 기울여 커스터마이징한 것 같은 미남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르긴 몰라도 한 시간은 투자해서 만들었을 법한 모습. 그러나 난 그런 것을 감상할 정신이 없었다. 바로 눈앞에 나타난 상태창 때문에…….

[캐릭터 상태창]

이름: 케이

레벨: 5

종족: 인간

직업: 무직

신분: 평민

능력치

근력: 20

민첩: 10

지능: 10

의지: 10

생명력: 100

마나: 100

미분배 능력치: 20

저항

화염 저항: 1

빙결 저항: 1

감전 저항: 1

맹독 저항: 1

스킬

스킬이터 [신화급] [1티어]

“시, 신화급!”

[사용자의 상태가 불안정하여 게임이 강제 종료됩니다.]

삐잇-!

시야가 화악하고 밝아진다.

“하아, 하아… 하아…….”

“야! 왜 그래?”

캡슐에서 벌떡 일어나자마자 쓰고 있던 VR기어를 내팽개친 난 연신 심호흡을 했다. 심장이 벌렁거려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형, 무, 물 좀…….”

“어어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내 말에 형은 부엌에서 생수 한 병을 가져왔고, 생수 한 병을 그대로 원샷 하고서야 마음이 진정되었다.

“대박…….”

“뭐?”

“대박이라고!”

“뭐가! 좀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라!”

“신화급 스킬 붙은 거야.”

“신화급 스킬? 그게 뭔데?”

“후우, 기다려 봐.”

난 노트북으로 아이템게이트라는 사이트에 접속했다. 이 사이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거대한 게임 아이템 거래 사이트였는데, 거래되는 것의 대부분이 세이온과 연관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검색해도 신화급 스킬을 가진 게스트 계정은 판매 물품에서 찾을 수 없다. 아니, 이건 당연한 것이다. 신화급 스킬을 계정이 이런 사이트에 있을 리가 없다. 판매 물품을 검색하던 정현의 눈에 신화급보다는 두 단계 떨어지는 희귀급 스킬의 게스트 계정을 발견했다.

-세이온 풍령장 [희귀급]- 8,000,000원 [거래 완료]

“팔백만 원… 하…….”

두 단계 떨어지는 스킬이 무려 팔백이다. 난 포탈사이트에서 가장 큰 리세마라 카페로 접속했다. 리세마라로 만든 게스트 계정을 거래하는 곳인데, 신용은 떨어지지만 가격은 확실히 알 수 있다.

-세이온 전설급 스킬 쏜즈 [전설급] 게스트 계정 판매합니다. 장난 즐 3억 시작 [거래 완료]

-세이온 스킬 드라곤즈 [신화급] 게스트 계정 판매합니다. 장난 사절 15억 이하 즐 [거래 완료]

-세이온 왕의 방패 [신화급] 판매합니다. 급매 10억부터 시작합니다. [거래 완료]

오픈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수직상승하고 있는 게임이 바로 세이온이었다. 아무리 내가 한동안 게임을 끊었다지만 친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수다를 떠니 모를 수가 없다.

개발사인 헤븐즈 게이트가 세이온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는 총 네 가지였다. 첫째는 캡슐 판매였는데, 천만 원에 가까운 세이온 전용 캡슐은 예약을 해도 서너 달은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둘째로는 세이온 내에서의 제화를 현실의 돈으로 환급하며 떼는 수수료다. 20%라는 상당히 높은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지만 중수 정도만 돼도 세이온만을 해서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다고 한다.

세 번째로는 세이온 중계권을 통한 수익으로, 전 세계로부터 걷어들이는 돈이 매년 조 단위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세이온의 가챠 시스템이 있다.

실력만 있으면 돈을 벌 수도 있는 세이온의 가챠. 특히 스킬 뽑기권은 엄청나게 극악한 확률로 그 악명이 자자했다.

스킬 뽑기권: 10만 원

물론 핵과금러들이라면 백만 원이고 천만 원이고 투자하겠지만 문제는 그 미친 확률이었다. 스킬이란 건 일반급, 고급, 희귀급, 전설급, 신화급 총 5단계로 나뉘는데, 가장 평범해 보이는 희귀급도 뽑을 확률이 0.01%다. 한 단계 올라갈수록 난이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고, 신화급 정도 되면 0.0001 프로다. 참고로 구독자 200만의 한 핵과금 컨탠츠 유튜버가 신화급 한번 뽑아 보겠다고 덤볐다가 무려 5억을 태우고 전설급에서 무릎 꿇었다고 한다.

처음 그 미친 확률과 가격을 발표했을 때 게임사가 미쳤다고 모두가 말했지만, 지금은 눈이 벌게져서 수억씩 태우는 이들이 심심찮게 나왔다. 한마디로 신화급 스킬을 지닌 이 게스트 계정은 그 가격을 측정할 수 없다는 소리다.

“형.”

“왜?”

난 고개를 돌려 형을 바라봤다. 첫 번째로 든 생각은 과연 형을 믿을 수 있을까, 라는 것이었다. 농담 삼아 15%라고 했는데, 이제는 농담이 아니게 되었다. 단돈 몇백만 원으로도 가족 사이에 칼부림이 벌어지는 요즘 15%라고 하면 못해도 1~2억에 달한다.

그러나 나에게 상도 형은 가족 이상의 존재였다. 처음에는 좀 싸웠지만 정이 들면서 동생처럼 아끼며 보살펴 줬고, 단 한 번도 그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다. 만약 형이 나를 배신한다면 이 세상에서 믿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형. 집에 청심환 있어?”

“……?”

* * *

“허어… 와, 씨발…….”

“괜찮아, 형?”

“어어, 괜찮아. 괜찮아.”

본인은 괜찮다고 하지만 옆에서 보기에는 전혀 안 괜찮아 보인다. 말을 하면서 연신 손을 떠는데 누가 보면 수전증 걸린 게 아니냐고 물어볼 지경이다. 두 손바닥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형이 다시 물었다.

“얼마짜리라고?”

“아직 옵션을 보지는 못했지만 신화급이라는 것만 따져도 일단 십억?”

“십억…….”

“옵션만 좋으면 어쩌면 그 이상도 가능할 수 있고.”

“하아…….”

잘 상상이 가지 않는 금액에 형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 아니었으면 땅을 치고 후회할 뻔했다. 십억짜리를 고작 100만 원에 치울 뻔하다니… 고맙다. 자식아.”

“됐어. 남도 아니고. 그보다 형.”

“왜?”

“이거.”

탁!

내가 던진 작은 물체를 확인한 형이 아, 뜨거 하는 표정으로 간신히 받아냈다. 그것은 무려 수억짜리 게스트 계정이 든 계정 코어였으니까.

“형 거잖아.”

“그, 그렇지.”

“일단 상태 불안정으로 튕겨서 한동안 접속할 수 없으니까 그동안 밥이나 먹자.”

1등 로또를 주워 주고서 욕심을 부릴 만도 한데, 신경 안 쓴다는 듯 밥 달라고 칭얼거린다.

“그, 그래. 짜장면 시켜 줄까?”

“밥 없어?”

“여기 중국집밖에 안 와.”

“그럼 난 짜장면… 배달 올 동안 난 좀 쉬고 있을게.”

“알았다.

* * *

정현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자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상도가 호주머니에서 계정 코어를 꺼내 들었다. 이게 10억이 넘는단다. 기뻐해야 할 상황. 그러나 상도는 한편으로 자기혐오에 가까운 기분을 느끼는 중이었다. 10억이 넘는다는 말에 그는 순간 정현이 그걸 들고 튀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했다. 그리고 얼른 그의 손에서 이것을 빼앗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그런데 조금 전 정현은 오히려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것을 자신에게 넘겼다.

“쫌생이 새끼…….”

정현은 상도에게 단순한 보육원 동생이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머리가 좀 큰 상태로 보육원에 들어왔던 그는 부모에게 버려진 충격에 세상에 대한 미움만 가득한 아이였다. 버팀목이던 동생마저 먼저 입양되어 가 버리자 상도의 삐뚤어짐은 더욱 심해졌다. 또래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좋으니 아이들을 괴롭히게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던 어느 날 보육원에 정현이 들어왔고, 상도는 다른 아이들에게 했던 것처럼 정현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인형처럼 바보같이 당하기만 하는 녀석을 매일같이 놀려 댔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중학교 일진들이 떼거지로 몰려들어 그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그가 괴롭힌 학교 아이 중 하나가 일진의 동생이었던 것. 중학생이라도 두셋 정도라면 감당하겠지만 열이 넘으니 상도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정현이 몽둥이를 들고 나타난 것은…….

“우리 형 괴롭히지 마!”

정현은 상도를 구타하는 일진들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며 용감히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상도는 정현을 친동생보다 더 아끼기 시작했고, 정현도 상도를 형처럼 따랐다.

‘우리 형!’

그때 들었던 그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 같다. 마치 그날 그 한마디에 그의 얼어붙었던 심장이 녹았던 것처럼…….

“미안하다. 동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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