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이변 (5)
“사령부도 이 일을 절대 가볍게 생각하지 않아. 일단,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야 한다고.”
직접 온 로이드가 부하들을 다그치면서 탄식했다.
지난 밤, 카셀이 부하들을 잃고 가까스로 생존해 도주했을 때 솔직히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갑자기 통신이 끊기더니,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기괴한 괴물이 날뛰며 아군을 해쳤다는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카셀의 몸에 달려있던 카메라가 그 모든 것을 녹화한 것이다. 검은 갑각을 마치 전신갑옷처럼 두른, 가느다랗고 키 큰 괴물.
지금까지 기록된 그 어떤 감염체도 그렇게 생기지는 않았다.
“너무 걱정 말게. 고작 하나 아닌가. 구닥다리긴 해도 군용 장비들이야. 문제 없다고.”
“평범한 괴물이 아니다. 마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놈이었다. 일반적인 포탄이나 총탄으로는 거의 타격할 수 없어.”
“알지. 그래서 에테르 탄을 장전할 수 있는 놈들로만 가져왔다고.”
부하들을 다수 잃은 만큼 당연히 어두울 수밖에 없으니, 로이드는 카셀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테르는 그들이 활용하는 에너지의 한 종류. 카셀은 그것이 마력과 흡사한 힘이며 마력과 상호작용하는 것도 가능하단 것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라온에게 타격을 입히던 무기들은 모두 에테르를 활용한 폭탄. 그 화력을 집중한다면 상대가 가진 마력 방어막을 깨부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조사를 시작하지. 일단 육안으로 보이는 건 전혀 없군.”
로이드는 장비들을 가동할 것을 명령했다. 탐사 드론과는 달리 폭약과 기관총을 장착한 전투용 무인기들이 일제히 수직으로 이륙하더니, 오염지를 향해 날아갔다.
무장한 무인 차량 역시 마찬가지로 땅을 달리며 오전에도 짙은 먹구름 밑에서 어둑히 존재하는 죽은 땅을 향해 달렸다.
“내가 이 사실을 사령부에 보고했더니, 변이체에 대한 가능성을 이야기하더군. 지금까지는 관측되지 않았지만 분명 가능성이 있다면서.”
“그럴 리가. 놈들은 이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놈들이다. 그래서 이 경계선을 넘지 못하는 것이고.”
“그렇긴 하지만, 세상 일은 모르는 거니까.”
로이드는 멀어지는 무인기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감염체들이 한 단계 더 진화한다는 변이체에 대한 언급에 카셀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그놈은…… 감염체 같지도 않았다. 이성 없는 짐승에 불과한 놈들이 그런 검술을 쓸 수 있을 리가 없어.’
그의 머릿속에는 지난밤에 싸웠던 라온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다. 마구잡이로 폭주할 뿐인 감염체에게선 느낄 수 없는 절제된 행동과 기세.
너무 절제되어 있어서 오히려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카셀은 이런 비슷한 느낌을, 어린 시절 카르투스의 인간들이 가져온 무인기들을 보며 느꼈었다.
“변이체가 아니라면 딱히 가능성이 없어. 대체 저 끔찍한 지옥 한복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겠나.”
“설령, 정말로 변이체라도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야.”
“그래도 한시름 놓을 수는 있겠지. 어쨌든 근본적으로는 놈들이 이곳에 뿌리를 뻗을 수 없을 테니까.”
심각한 카셀과는 달리 로이드는 상대가 감염체의 일부라면 걱정 없다고 생각했다.
경계선은 단순히 물리적인 경계선이 아니다. 생존한 세계수와 그들이 가진 기술력의 협력으로 펼친 눈에 보이지 않는 일종의 장막. 타락 세계수의 뿌리는 이 장막을 넘을 수 없었다.
“시간 좀 걸릴 테니 쉬자고. 대낮이잖나.”
로이드는 술을 꺼내더니 카셀에게 내밀었다. 설령 적들이 아군을 적대한다 해도 지금은 감염체들이 활동할 수 없는 대낮이니 문제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소, 소장님! 무인기들이 격추당하고 있습니다!”
“무, 뭐!?”
하지만 그 여유로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급히 들려오는 외침에 화들짝 놀란 로이드는 술을 흘리더니 황급히 뛰어갔다.
* * *
[건방진 행위를.]
경계선을 넘어, 아군의 영역을 향해 곧장 직행하는 적 무인기들. 루시는 그것을 보고 분노했다. 자신이 하는 정탐이 당연하고 필수적인 것인지 아니까, 상대의 정탐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진정하고 격추하자. 저들이 뭘 할 수 있겠어. 우리가 매번 이렇게 정찰기들을 떨어트려도, 다시 무인기를 보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야.”
그는 피식 웃으며 루시가 원하는 대로 무인기들을 격추하도록 지시했다.
당연히 루시는 그 명령대로, 무인기들을 향해 격추를 시도했다. 그것도 아군의 정체를 최대한 보여 주지 않기 위해, 초장거리 저격으로.
[격추에 성공했습니다.]
루시가 직접 시전한 마법이 여러 단계로 중첩되더니 한 줄기 광선포가 되어 쏘아졌다. 그런 것이 여러 개.
하늘을 가로지르던 무인기들은 쏘아진 일격들에 동시에 격추당해 지상으로 추락했다.
“이게 대체 뭐지?”
덕분에 무인기가 관측하던 것은 저 멀리 떨어진 지상에서 쏘아진 한 줄기 광선포가 자신들을 관통하기 직전에 찍은 것이 전부였다.
이런 경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들이 당황하여 허둥거렸고, 그나마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카셀뿐이었다.
“절대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 그렇지만 이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오염지를 공격하는 건 사령부도 본사도 절대 허락하지 않아.”
“그러면 그대로 방치해 두는 수밖에. 그렇게 되면 훗날 저곳에서 어떤 괴물들이 이곳으로 쏟아져 나올 것이고. 지금 감염체들이 왜 이리 조용한지 아직도 모르나? 어떤 방식으로든 힘을 비축하고 있는 거야. 한 번에 터져 나올 힘을.”
카셀이 냉소했지만 그 말에 반박할 수는 없었다. 창현이 예상한 대로 그들은 사정상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었다.
루시가 명분을 만들어 주지 않는 이상 먼저 나서서 행동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쨌든 알기는 해야 한다는 것 아닌가.”
그 사실에 로이드의 눈이 흔들리더니,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입을 앙다물었다.
“방법이 있나?”
“확실하지 않지. 성공 확률도 낮고, 투자한 값에 비해 얻을 것도 적다. 하지만 시도해 볼 만해.”
로이드는 미사일을 준비시켰다. 그리고 그 미사일에 실시간으로 영상을 전송할 수 있는 카메라를 달았다.
“무인기가 격추당했다면, 무인기보다 더 작고 빠른 것을 쏴서 보내면 그만이지.”
상부에 깨질 것을 각오하고 히죽 웃은 로이드는 그 미사일을 발사시켰다.
미사일은 날아가는 와중에도 영상을 전송했고, 얼마 못 가 폭발하여 산산조각 날 것이다. 그 찰나의 순간 얻을 수 있는 것이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전부였다.
“면상 정도는 볼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들은 엄청난 속도로 지나가는 화면을 집중해서 노려보며 혹시라도 뭔가 볼 수 있을지 온 신경을 집중했다.
“저건!”
그리고 머지않아 미사일은 단숨에 요격당했다. 뭐에 당했는지는 보이지도 않았다. 인간의 인지 능력을 한참 벗어난 속도였으니까.
“영상 다시 돌려! 배속 조절하고!”
하지만 전송되던 영상은 그대로 컴퓨터에 남는다. 로이드는 미사일에는 신경을 끄고 이렇게 획득한 영상을 돌려보며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설마, 이게 전부?”
그리고 그 과정을 거쳐 가까스로 단 한 장의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영상의 일부를 가공하여 그나마 선명하게 나온 그 사진은 미사일이 격추당하기 직전에 찍힌 것.
미사일을 격추하기 위해 쏘아진 수십 줄기의 광선포와, 지상에서 그 광선포를 쏘아 내는 거대한 세력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알던 감염체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이들이었다.
거대한 평야를 전부 점령하고 있는 검은 무언가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퍼져 있고, 그 내부 사이사이에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괴물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이건…….”
“나를 공격한 놈과 비슷한 놈들이군. 이게 변이체라고?”
놀라서 말을 잃은 로이드의 모습에 피식 웃은 카셀이 확대한 사진 속 괴물을 가리켰다. 광선포를 쏠 수 있는 무기를 들고 격추를 시도하는 마왕군의 오크·베타의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설득할 수 있겠지? 이미 놈들은 거대해. 어떤 결론이 나오든 하루라도 빨리 처리해야 한다.”
“시도해 보겠네. 증거가 필요하지만, 자네의 목격담에 지금 확보한 이것이라면 충분할지도 몰라.”
이제 로이드는 카셀의 말에 핑계를 댈 수 없었다. 새로운 감염체들로 추정되는 괴물 집단의 등장. 거대한 오염지를 파먹고 있던 검은 둥지의 정체는 바로 이 괴물들의 둥지였다.
감염체들의 약점이었던 태양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대놓고 맞으며 서 있는 그들. 미쳐 날뛰는 짐승 같았던 감염체들과는 다른 차가움을 가지고 있는 괴물들.
[그들이 저런 질 낮은 미사일을 아무런 의도 없이 쏘아 보냈을 리는 없으니 아군의 정체가 노출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괴물들을 통솔하는 거대한 하이브마인드는 이미 현지 세력의 의도를 눈치챘다.
“네 생각은 어떤데?”
그 보고를 받은 창현은 루시에게 생각을 물었다. 처음이야 데이터가 적어 판단이 느렸지만, 지금은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했고 루시도 판단이 가능해진 탓이다.
[선공을 펼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모종의 이유가 있어 이 오염지 내부를 공격하지 못하니, 경계선 근처의 감염체들을 완충지대 삼아 병력을 파견해 습격한다면 기습의 이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습니다.]
루시는 늘 그렇듯 계산을 통해 가장 효율적인 답을 내놓았다. 지금 나온 계산 결과는 바로 최선의 수비를 위해 먼저 공격하겠다는 것.
그 답이 대부분 적을 공격하고 잡아먹는 것이지만 루시는 오히려 그런 것을 더 원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공격할 거지? 감염체들과 싸울 때처럼 하지는 않을 거 같은데.”
[기동성이 좋은 다수 비행종으로 구성된 병력을 파견하여 강습하는 식으로 공격하겠습니다. 그들의 장비와 시설, 병력을 파괴하고 아군의 노출을 최소화시킬 계획입니다.]
이미 그 초월적인 연산력으로 자세한 전술이나 가설, 사후 처리까지 전부 고려해 두었다.
그는 그것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좋아. 그렇다면 공격해.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는 거야. 널 믿지만, 더 신중히 생각하는 게 좋아.”
[저는 계산식대로 움직입니다.]
루시는 병력을 준비시켰다. 지금 당장 끌 모을 수 있는, 크고 작은 비행종으로 구성된 수천 단위의 병력이었다.
이번에도 라온을 지휘관으로 삼은 루시는 그에게 병력을 이끌고 ‘지금 당장’ 저들을 공격하라 명령했다.
“지, 지금 당장 말인가?”
[그들은 뛰어난 통신 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미 아군의 소식이 전해지는 건 막을 수 없으나, 그들의 ‘판단’보다 빠른 것은 가능합니다.]
루시는 자신과 근본이 같은 기계 장치는 믿어도 인간은 믿지 않았다. 그들의 판단이 느릴 수밖에 없다 확신한 루시는 적들을 지금 당장 습격해 당황한 이들을 상대로 기선을 제압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