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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46화 (146/200)

146화 이변 (6)

분명 삼면 전쟁이다. 지금 루시는 무려 세 군데를 동시에 신경 쓰고 있었으니까.

절반을 차지하고 고의로 시간을 질질 끌면서 소모전을 벌이고 양분을 비축하고 있는 마계. 교단과 연합군의 싸움을 관망하며 엘프들로 위장해 그 균형을 유지시키려는 대륙.

그리고 다크엘프들의 영역이자 감염체들에게 집어 삼켜졌던 라비즈다.

당연히 이렇게 신경 쓸 경우의 수가 많아질수록 변수와 위험 요소는 많아진다. 전쟁을 수행하는 이에게 전선을 늘리는 행위는 치명적인 독이었다.

[계산 결과, 문제없음.]

하지만 애초에 이 모든 것은 루시의 의도였고 설계였다. 그것을 감수하고 극복할 수 있다면 그 성과는 비교할 수 없다. 심지어 그 위험도와 변수를 초월적인 연산력을 통해 실시간으로 통제하고 조율한다면 그 확률은 더더욱 올라간다.

계산 결과만 나온다면 오직 그것만을 믿고 망설임 없이 움직이는 것이 인공지능.

이런 순간에는 감정도, 컨디션도, 신앙이나 신념 따위도 없다. 오직 객관적인 데이터와 결과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 태생부터가 다른 존재들과는 차별화된 가장 강한 강점 중 하나였으며 지금의 루시는 그 ‘변수들’마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인지한 이후로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크, 큰일 났습니다! 지금 오염지 안쪽에서!”

“이런 미친! 다들 차량과 헬기에 탑승해! 몰려온다, 여기서는 못 막아!”

고배율의 카메라나 감지 장치 등으로 오염지 안쪽을 감시하고 관측하던 이들이, 기겁을 하며 로이드를 비롯한 수뇌부에 급한 보고를 올렸다.

광산구 관리소장 로이드는 물론 카셀 역시 그 보고를 받고 눈을 휘둥그레 뜨고 당황했다.

자신들이 미사일에 부착한 카메라를 통해 관측했던 괴물들이, 무수한 숫자로 무장한 채 감염체들과 싸우면서도 꿋꿋하게 이곳으로 돌진해 왔기 때문이다.

“도망치자는 거요?!”

“어쩔 수 없으니까! 우린 전력도 아닌데!”

로이드는 당연한 것 아니냐며 카셀의 말에 반박했다. 부하들을 잃고 분노한 카셀과는 달리 그는 애초에 싸움을 원하지 않았다.

“노, 놈들이 쫓아온다!”

“이런 망할!”

그러나 마왕군의 비행종들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가로질러 그들의 뒤를 잡았다.

맹렬하게 달리는 차량보다야 느리겠지만, 울창한 숲길인 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 제대로 된 속력을 낼 수 없었던 탓이다.

“쏴! 쏴 버려라!”

로이드는 통신기에 대고 소리치며 마왕군을 격추하라고 지시했다.

곧 도주하기 시작한 차량들은 물론 가까스로 이륙한 헬기에서도, 그들은 화기를 퍼부으며 자신들을 잡으려는 마왕군에 저항했다.

[마력이 실리지 않은 일반적인 탄환이지만 방어력이 약한 소형, 중형의 비행종들은 그들의 탄환을 견딜 수 없습니다.]

루시는 그들의 탄환에, 나름 단단하게 강화해 온 비행종들의 갑주와 가죽이 뚫려 버리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전투력을 가늠했다.

창현과 함께 있는 나노ㆍ오메가와 교단 세력을 통해 이와 엇비슷한 현대 화기의 위력을 알고 있던 루시는, 지금 그들이 쏘는 탄환이 지구산 무기들보다 조금 더 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 *

“우리가 막아 줘야 해. 돌려!”

“이런, 포이만.”

총탄을 뿜어내던 헬기가 기수를 돌렸다. 지상을 달리는 아군을 지원하고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서였다.

로이드는 홀로 허공에 남아 달려드는 수많은 적들을 향해 화력을 뿜어내는 헬기를 보고 이를 악물었다.

“차분히 준비했으면 우리만으로 이겼을지도 모르는 것을.”

“이미 늦었지 않나. 단단히 대비해도 늦지 않아.”

빠르게 격추되는 마왕군을 보며 혀를 찬 카셀의 말에 로이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실제로 저 기세를 보니, 진작에 준비를 갖추고 싸웠다면 이겼을 수도 있다 생각한 탓이다.

“적당히 하고 복귀해. 어차피 도시까지만 가면 아무 문제 없다고.”

“물론입니다 소장님.”

로이드의 통신에, 헬기에 탑승한 지휘관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동료들의 탈출을 돕는다는 임무도 성공한 마당에, 기관총 하나로 다수의 괴물들을 잡으며 기분을 낸 것이다.

“아.”

그러나 그것은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총탄을 퍼붓던 헬기의 사수는, 총탄을 견디지 못하고 지면으로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다른 괴물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외마디 탄식을 흘렸다.

마력을 이용해 방어막을 만든 하피ㆍ감마. 거대한 날개팔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강인한 맹금의 발과 발톱을 이용해 공격을 시도하는 상위종이 등장했다.

쏘아 내는 탄환은 순수한 물리력으로는 방어막을 뚫지 못했다.

그 모든 저항을 무시하고 코앞까지 쫓아와서, 검은 투구 사이로 붉은 안광을 번득이더니 발톱이 달린 발을 휘둘러 단숨에 헬기를 향한 참격을 쏘아 보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하피ㆍ감마의 일격을 막지 못한 커다란 헬기는 한 번에 반으로 갈라졌고, 대폭발을 일으키며 그 밑을 달리던 이들에게는 진정한 공포를 선사했다.

“아, 아니 저게 무슨…….”

“계속 달려! 마력을 쓰는 괴물이다!”

경악한 인간들과는 달리 카셀을 비롯한 다크엘프들은 단번에 하피ㆍ감마의 힘을 알아보았다.

‘역시 이변이 생긴 것이다.’

카셀은 총을 집어넣고 자신의 무기, 활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화살을 쏘아 보냈다.

굉음을 내는 총탄에 비하면 조용해도 은은한 보라색 빛을 머금은 그 화살은, 하피ㆍ감마의 방어막에 틀어박히며 금이 가게 만들었다.

[예상대로 다크엘프들이 유의미한 저항을 만듭니다. 그들이 도시에 도착하기 전 제거할 확률은 13%.]

루시는 예상보다 뛰어난 그들의 화력 대응에, 도주하는 그들을 몰살하기는 힘들 것이라 예상했다.

이대로 가면 그들은 도시에 도착한다. 실제로 지금, 다급한 그들의 무전을 들은 도시에서 지원을 위한 병력이 출발한 참이었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합니다.]

그것까지 확인한 루시는 이번에 파견한 병력 전부를 일종의 자폭 정찰병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정보라고는 포로로 잡았던 다크엘프들에게서 캐낸 것이 전부인 데다, 고문의 특성상 먼저 묻지 않으면 대답을 듣기 힘들기에 루시는 아직 정보의 결핍을 느끼고 있었다.

“소장님!”

“쏴 버려. 당장!”

실제로 지원 부대와 합류한 로이드는 창백한 얼굴로 대응 사격을 명령했고, 계속해서 크고 작은 사상자를 만들어 내며 돌진해 온 루시의 마왕군은 그대로 그들과 충돌했다.

[비행종의 낮은 방어력을 감안해 그들의 화력을 하향 조정. 그들의 화력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5배 이상의 병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

“죽여! 쏴 버려!”

“막아라. 포대를 지켜!”

단숨에 도시 앞 평원이, 대낮부터 벌어진 전투로 참혹한 전쟁터가 되었다.

하늘을 날아 온 수많은 마왕군은 거센 화력망을 뚫고 그 구성원들을 유린하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

도시를 지키려는 이들 역시 목숨을 걸고 싸웠다.

[마력을 실은 공격 역시 가능한 것으로 추정.]

강심을 가진 지휘 개체들을 이용해 화망을 뚫으려 했지만, 적들이 쏘는 포격에는 마력이 섞여 있어 아군의 힘을 크게 깎아 먹었다.

“이러다간 전멸한다. 이걸로 충분하다고?”

후방에 있던 라온이 혀를 차며 힘을 움직이자, 요동친 지면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흙벽들이 그 공격들을 일부분 차단했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시간을 끌수록 아군에게 불리합니다.]

루시는 서둘러야 함을 직감했다. 여유롭게 이어가던 타락 세계수 제거 작전도 잠시 중단하고, 거의 다 뚫어놓은 경계선 부근으로 대규모 병력을 파견할 예정이었다.

[그들의 수준을 알았으니 일단 후퇴하십시오. 뛰어난 기술력과 문명을 가진 그들이 아군의 공격에 어떻게 대응할지 예측하고 있습니다.]

루시는 아껴 두던 양분을 아낌없이 투자했다.

비행종 다수를 적들을 꾀어낼 일종의 먹이로 던져 주고 그들의 전력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된 루시는, 우발적으로 시작된 이 전쟁을 어중간하게 끝낼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이 땅에 온 이유도 다크엘프들을 밀어내고 이 땅을 독차지하기 위해서이니, 그들이 뭔지 모를 인간들과 손잡은 이상, 더 보지 않고 끝장을 보고 싶었다.

[일부 병력과 함께 후퇴하십시오. 지원군이 갈 것입니다.]

루시는 라온을 상위종들을 포함한 고급 병력 일부와 함께 후퇴시켰다.

“노, 놈들이 도주한다.”

“이겼다!”

그것이 후퇴인 줄 모르는 이들은 자신들의 승리로 판단하고 환호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마냥 기뻐할 시간이 없다. 론! 어서 본사에 이 끔찍한 사실을 알리게. 그리고 카셀, 자네가 비상령이 내려졌음을 동족들에게 좀 알려 주고.”

그러나 그들의 대장인 로이드는 승전 이후에도 여전히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사람들을 다그쳐 통제했다.

본능적으로 느낀 강렬한 공포가 그를 짓누른 탓이다.

“대비하는 건 좋지만 너무 굳어 있는 것도 별로다.”

“살면서 이렇게 놀랐던 적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우리만 관측한 게 아닐 거야. 조금만 기다리면 통신이 올 게 뻔해.”

카셀은 몸을 떠는 로이드를 보며 입을 열었지만, 그는 나아질 기미 없이 얼굴을 딱딱히 굳히고 있었다.

* * *

“그래서, 우월한 화력을 가진 상대를 어떻게 뚫으려고?”

[계산 결과가 없는 게 아닙니다.]

적들이 대비하는 모습을 보며 라온을 비롯한 소수 병력을 그 인근에 숨겨 놓은 루시는, 내게 자기 계획을 알려 주었다.

그것을 보고 감탄한 나는 새삼 거대해진 루시의 덩치에 헛웃음을 흘렸다.

[초거대 비행종을 통한 포격과 강습이 성공하기만 한다면.]

루시는 내게 준비 중이던 거대한 생명체들을 보여 주었다.

본래는 더 압도적으로 타락 세계수들을 제거하기 위해 만들고 있던 것들. 내가 이전에 표본으로 넣어준 침략종 아일랜드를 얻고 난 이후 그 데이터를 극한으로 다루어 탄생시킨 존재들이었다.

이미 그 효과와 위력은 다양한 전장에서 증명되었다.

[그들의 화력이 어느 수준인지는 확인했습니다. 이번 공격은 막기 힘들 것입니다.]

루시는 그렇게, 만들고 있던 자신의 ‘함대’를 출격시켰다.

수많은 병력을 태우고 있는 아일랜드ㆍ알파와 전투와 난전을 담당하게 된 아일랜드ㆍ감마 등등.

화면으로만 봐서 이 정도지, 거대한 부유 생물체들이 하늘을 뒤덮고 우르르 몰려가는 것은 확실히 웅장하기 짝이 없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곳을 온전히 먹어야만 대륙의 일에 더 쉽게 관여할 수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때릴 생각만 가득해진 루시는 쉬지 않고 병력을 움직였다.

지속되는 소모전에 더 이상 루시를 방해할 힘이 남지를 않은 타락 세계수와 그 잔챙이들은 굳이 건들지도 않았다.

“생각은 해 두는 게 좋아. 그들이 정말 우주에서 왔다면 그들이 탑승하고 온 ‘진짜 함선’은 따라갈 수 없잖아.”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스스로 승률을 계산해 보았다.

그런 내 마음 속에 수많은 우주 전함을 끌고 오는 적들의 모습과, 물자 부족에 허덕이며 전쟁을 수행하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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