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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47화 (147/200)

147화 이변 (7)

“본사에 보고하긴 했지만, 당연히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잘 알잖나. 우리가 그렇게 여유롭지는 못해.”

“지금 그런 말로 넘길 때가 아닙니다, 사령관님. 감염체들이 오염지 안에서 진화했다니까요!?”

“그게 아니라,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병력, 물자. 그런 것들이 재촉하고 쥐어짠다고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지던가?”

화면 너머의 상대방은 로이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어찌 보면 현실적인 그 말에 로이드도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상부 역시 지원을 주기 싫은 게 아니라,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탄약이나 화기 등은 되는대로 물자를 지원하겠네. 본사에도 알리고.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않는 게 좋아. 유용한 광산들이 꽤 있다지만, 돈 귀신인 본사가 이런 변방 구석탱이의 행성에 필요 이상으로 돈을 쓸 리가 없어.”

“일단 알겠습니다.”

혀를 찬 로이드는 통신을 끊었다. 그나마 약간의 지원이라도 이끌어 내서 다행이라 해야 할지. 함선을 동원하여 오염지 내부를 폭격할 만한 군사적 지원은 받지 못했지만, 어쨌든 버틸 수 있다면 지금 당장은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소장님?”

“제대로 된 지원은 불가능하다는 답변이다. 그럴만 하긴 해. 본사가 굳이 거금을 들여서 여길 정리해 줄 이유가 없어.”

통신을 종료한 직후, 로이드는 부하 직원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푸념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그래도 지원이 완전히 없는 건 아니니 놈들을 막아 내는 데 그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부하 직원은 애써 그를 안심시켜 주었다.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었다. 짧은 충돌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무기가 검은 갑각의 괴물들, 마왕군에게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입증했다.

아무리 강하다 해도, 결국 하나의 생명체인 이상 화기의 화력을 뼈와 살로 이루어진 육신으로 감당하기는 힘든 노릇.

중간중간 섞여 있는 특이한 개체가 마력, 그들은 에테르라 부르는 특별한 힘을 다루는 것이 유일한 변수였지만 다크엘프들의 도움에 에테르 병기를 사용하면 그마저도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자네 말이 틀리지 않지만, 나는 왜 그런 괴물들을 바로 옆에 두고 살아야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고.”

탄식한 로이드는 방을 나왔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도시는 비상령이 내려졌음에도 아직까진 평화롭다. 한적하기 짝이 없는 시골 도시. 심지어 주민들의 대다수는 이종족인 다크엘프들이다.

하지만 로이드는 이미 이런 풍경이 익숙했고 지키고 싶었다. 처음 발령받았을 때 자신을 좌천했다고 분노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야 여차하면 얼마든지 손 털고 나가면 그만이지만, 저들은?’

그는 어두운 얼굴로 도시의 주민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처음으로 이 땅에 도착했을 때. 대륙 서쪽의 변방으로 도주했던 다크엘프들은 계속해서 조금씩 영역을 넓혀 오는 타락 세계수의 힘과 날뛰는 감염체들의 공격에 죽어 가는 중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함께 힘을 합쳐 여기까지 이룬 이상, 오직 돈만 보고 움직이는 카르투스 본사와는 달리 그들은 이곳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래. 싸우면 된다. 별거 없을 거야. 감염체들, 그놈들은 그저 짐승에 불과해.’

그는 애써 자신의 마음을 다스렸다. 마왕군을 감염체의 일종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그는 함선 지원 등이 없더라도 충분히 싸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쨌든 감염체들은 결국 이성 없이 달려들기만 하는 짐승 혹은 괴물 집단이었으니까.

자신들의 우월한 지성을 이용하면 설령 태양 빛을 극복한 감염체들이라 해도 문제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

하지만 그런 로이드의 생각은 결국 데이터의 부족에서 오는 단편적이고 편협한 시각일 뿐이었다.

마왕군을 지배하고 지휘하는 존재가 세계수에 기생하던 거대 애벌레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등한 존재임을 알 수 없던 그는, 석양이 지는 저 먼 하늘에서부터 이곳을 향해 날아오는 거대한 집단을 보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순간적으로 사고가 정지할 정도로 압도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광경이었다.

“소, 소, 소장님! 하늘에, 정체불명의 검은 전함들이!”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멍하니 눈을 비비는 그에게 허겁지겁 달려 온 직원이 확대한 영상을 보여 주었다.

* * *

“저도 싸울 수 있어요!”

“카를, 네 배움이 빠른 건 맞지만 아직 어리다.”

로이드가 지원을 해 달라며 사령부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그때.

비상령이 내려진 도시에서는 주민들이 그에 맞춰 대응하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카셀은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어린 인간 소년을 보고 피식 웃었다.

“네겐 시간이 많아. 오늘은 그냥 다른 이들과 함께 대피해라.”

카셀은 소년이 들고 있는 검을 흘끔거리고는, 다른 민간인들이 대피하고 있는 대피소를 가리켰다.

소년의 이름은 카를. 카르투스 사 직원의 아이지만, 해당 직원이 사고로 사망하며 한순간에 고아가 된 아이.

그런 인간 아이를 카셀은 재능을 알아보고 내면에 잠든 마력을 일깨워 주며 스승이 되어 주었다. 분명 뛰어난 재능을 가지긴 했지만, 아직 미숙한 것도 사실이다.

“어서 가라.”

“…….”

그가 엄하게 말하니 결국 카를은 몸을 돌려 대피소로 향해야 했다. 카를 입장에서는 자신과 알고 지내던 다크엘프 경비대를 해친 괴물들에게 복수하고 싶었지만, 그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럴 수가. 하늘! 하늘이다!”

그리고 그 순간. 도시 안에 있던 그들 역시 이변을 눈치채고 저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게 무슨 미친.’

눈이 커진 카셀은 그대로 굳었다. 이곳으로 빠르게 접근하며 그 고도를 내리기 시작한 거대한 무언가는 길게 뻗은 몸을 가진, 카르투스 사의 인간들이 타고 온 함선과 엇비슷한 생김새를 가졌다.

“으, 으아아악!!”

그러나 그것들은 함선이 아니었다. 단단한 갑각과 스멀거리는 거대한 촉수를 흩날리는 하나의 생물체였다.

유독 거대한 1기의 생물체와 중간 크기의 생물체 5기로 이루어진 이 ‘함대’는 자신들을 향한 포격을 받아내며 동시에 자신들도 지상을 향한 포격을 시작했다.

“다, 단장님!”

“어서 피해라! 빨리!”

허공을 가로지르는 도시 수비용 에테르 광선포가 적들의 몸에 틀어박히고, 적들은 그것을 거대한 마력 방어막으로 막아 내는 모습을 보고 사색이 된 카셀은, 카를을 향해 소리쳤다.

적들의 포격이 떨어진 도시 여기저기서 폭발음과 비명이 들리고, 건물이 무너지거나 불에 타기 시작했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함선이라고? 그럴 리가 없어. 어서 격추해!”

본부 건물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로이드가 직원들을 닦달했다.

분명 그 크기는 진짜 함선에 비하면 작다. 가장 큰 아일랜드·알파가 1km가 안 되는 수준이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로이드를 비롯한 이들에게는 그저 함선을 닮은 괴물이 등장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커다란 충격이었다.

“이럴 수가.”

다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상식을 벗어난 저 정체불명의 외계 함대는, 그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함대를 운용하고 전투를 수행했으니까.

“이 괴물 놈들이.”

도시 안에서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던 카셀은, 그 거대한 주둥이를 쩍 열어젖힌 아일랜드·알파에서 쏘아진 것들이 도시에 쇄도하는 모습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쐐기처럼 쏘아져 건물이나 땅에 박힌, 경질화한 얇은 막 안에 깃든 것은 검은 갑각을 두른 괴물들.

마침 그의 앞에 떨어진 것은 오크·베타.

자신을 보자마자, 납작한 투구 속에서 안광을 번득이며 달려드는 오크·베타의 모습에 그는 급한 대로 총을 뽑아 겨누고 쐈다.

* * *

[적들이 대응합니다. 예상 승률 66%.]

한순간에 도시 하나가 초토화되었다. 루시가 즐겨 하던 소규모 강습과 난전에 처음 당하는 이들은 언제나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다크엘프들이 인간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니, 상상하지도 못했다. 감염체라는 적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인가?”

마지막으로 아일랜드·알파에 남은 라온은 사출된 다수 병력이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루시의 예상대로 그들은 설마 마왕군이 이런 식으로 공격을 감행할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방심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가진 잠재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인간 포로가 필요합니다. 되도록 높은 권한을 가진 관계자급으로.]

“그 정도인가?”

라온은 이 압도적인 광경을 만들어 낸 루시의 진중하고 신중한 태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우주에 진출하고 타 행성에 개척지를 만들 정도의 기술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한평생을 대수림의 엘프로 살아온 그는 짐작도 못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알았다. 인간 포로라. 저기 멀리 보이는 높은 건물이 이곳의 영주가 사는 곳 같은데.”

라온이 손으로 저 앞에 보이는 관리 본부 건물을 가리켰다. 로이드를 비롯한 이들이 있는 곳이었다.

[혹시 모를 지원이 있기 전에 출격하여 그들을 잡아 오십시오.]

루시는 라온에게 그들을 잡아 올 것을 명령했다.

강심으로 만드는 추진력에 더해 하늘을 가르며 활공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거대한 날개로 진화한 나노·날개를 등에 부착한 그가, 몸을 하늘에 띄우고 가로질렀다.

[최대한 큰 피해를.]

루시는 그 사이에 다른 곳에 집중했다. 가령 뛰어난 전투력을 가진 다크엘프 전사들을 죽이고, 도시 내부 방어 시설을 모조리 파괴한다거나.

루시도 모든 이들을 학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가장 효율적인 행동을 택한 것이다.

[다크엘프 경비단장, 카셀 발견.]

포로들을 통해 정보를 듣고 비행종들을 동원한 직전의 충돌에서도 잡지 못했던 카셀을 발견한 것도 그때였다.

반드시 카셀을 잡고 싶었던 루시는 이번 전투에서 특수종인 라온 다음으로 높은 출력을 가진 개체를 출동시켰다.

하늘을 빠르게 가로지른 하피·감마가, 단숨에 카셀을 향해 돌진하여 그를 향해 발톱을 휘둘렀다.

[더 많은 데이터를.]

루시는 기겁한 카셀이, 푸른 마력이 넘실거리는 검을 휘둘러 이 일격을 막아 낸 모습을 보고서 연격을 몰아쳤다.

엘프들에 대한 데이터는 풍족하지만 그런 엘프들을 외부로 내쫓은 다크엘프들에 대한 정보는 적었으니까. 혹시라도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 수단이 있을까 싶은 루시는 그 본능대로 모든 데이터를 털어먹을 생각이었다.

[손에 꼽는 전사라지만, 조금 뛰어난 엘프 전사 정도의 수준으로 보입니다.]

날개를 교차하여 그의 검을 막아 내고, 강력한 돌려차기로 그의 몸을 할퀴어 피를 뿌리게 만든 루시는 이미 엘프들과 싸운 이후이기 때문에 바닥에 쓰러진 카셀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차라리 강력한 에너지를 응축해 쏘아내는 인간들의 포격이 더 경계될 정도였다.

[인간?]

그런데 하피·감마가 그의 목숨을 앗아 가려는 순간.

그들의 뒤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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