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끝없는 진화 (7)
“으, 으아…….”
아카데미에 있었던 오진혁은 눈앞의 참상에 떨림을 숨기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난데없이 발생한 재앙.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인조차 알지 못하고 일단 미쳐 날뛰는 침략자들을 피해 도망쳐야 했다.
도주하거나, 저항할 힘이라도 있다면 축복이었다. 대다수의 일반인들은 단숨에 들이닥치는 이형의 괴물들에게 벌레처럼 학살당했으니까.
일대에 있던 각성자들 중 일부는 그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싸우려고 했고 오진혁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제약을 깨부수고 쳐들어 온 괴물들은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냈던 적들과는 한 단계 위의 진정한 괴수들이었다.
‘나, 진짜 죽나?’
자신이 뿜어 낸 화염 공격을 방어막을 끌어올려 견뎌 낸 상급종, 맨티스의 모습에 뒷걸음치던 그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살려 보려던 사람은 그가 주의를 끌어 보려던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서 결국 살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제 자신이 저 강적의 표적이 되어 버렸다.
“윽!”
적이 땅을 박차고 단숨에 거리를 좁힌 그 순간, 오진혁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자신의 끝을 직감했다. 전력을 다한 공격이 적에게 통하지 않은 이상 적의 날카롭고 예리한 공격을 받아낼 힘이 없던 그는 이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안 죽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반으로 갈려 피를 뿜지도, 목이 잘려 땅을 구르지도 않았다. 전방에서 터지는 굉음과 충격파에 놀란 그가 눈을 번쩍 뜨니 자신에게 달려들던 적을 붙잡고 늘어지는 또 다른 괴물이 있었다.
“무, 뭐야!?”
그는 기겁하여 비틀거리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러나 서로 엉겨 붙어 싸우기 시작한 두 괴물은, 이제 오진혁은 관심조차 없다는 듯 전력을 끌어올려 격렬하게 맞붙었다.
‘엄청나다. 가, 각성자는 아닌 것 같은데 대체 뭐지?’
네 개의 갈고리 발을 검처럼 휘두르는, 짙은 암갈색 갑각을 두른 맨티스에게 덤벼든 적은 육중한 덩치를 가진 검은 기사.
몸에 두른 검은 갑각이 마치 중갑 같은 마왕군의 상위종 트롤·감마는 체내에 품은 강심을 폭발적으로 작동시키며 손에 쥔 커다란 대검을 풍차처럼 휘둘러 맨티스의 갈고리 발을 쳐 냈다.
오진혁은 도망갈 절호의 틈인데도 트롤·감마의 투구 속에서 빛나는 다수의 안광에 마른침을 삼키더니 압도된 그 둘의 싸움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밀린다.’
다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차갑고 기계적인 움직임과는 달리 폭주하다시피 날뛰고 있는 맨티스가 서서히 트롤·감마를 밀어내기 시작했으니까.
마력이 휘몰아치는 맨티스의 현란한 검술에 트롤·감마의 갑각이 점차 부서지고, 베여 나갔다.
오진혁은 그때서야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이대로 몸을 돌려 도망치면 그만이기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지만, 시선은 자동차를 부수고 아스팔트 바닥을 뒤집어 버리는 저 두 괴물의 싸움에 계속 고정되어 있었다.
“!!!”
그리고 싸움의 결말은 다소 허무하게 끝났다. 끝내 팔 하나를 베여 버린 트롤·감마가 무너지려는 때, 급히 달려 온 마왕군 일반종들이 지원한 것이다.
마수를 베이스로 한 그들은 자신들의 몸을 던져 맨티스를 물고 늘어졌고, 일격에 베여 죽으면서도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강자를 위해 시간을 벌었다.
결국 그 조력을 받은 트롤·감마는 맨티스의 목을 검으로 베어 버리며 승리를 거두었다.
“서, 설마 나 쫓아오나!?”
그때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오진혁은 마왕군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기겁해서 달렸다.
‘안 온다.’
하지만 마왕군은 그의 뒤를 쫓지 않았다. 마왕군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침략종을 죽이는 것 뿐. 사람들을 해치지 말라는 그의 말도 있었지만 굳이 에너지를 낭비해 가며 별 볼일 없는 이들까지 쫓지는 않았다.
“모두 이쪽으로! 이곳은 안전합니다!”
“대체 저 검은 놈들은 뭐지? 대량으로 나타나서는 침략종과 싸우기 시작했어. 어디서 저렇게 많이 나오는 거야?!”
오진혁은 곧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정도로 헉헉거리며 뛰어 곧 생존자들이 모여 있는 폭풍의 외곽 지역으로 피신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나마 생존자들이 모일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대처가 빨라서, 적들의 의지가 약해서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마치 그들을 돕기 위해 왔다는 듯 나타나 적들과 싸우기 시작한 미지의 존재 때문이었다.
오진혁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많은 이들이 빠르게 폭증하는 마왕군의 난입으로 목숨을 건졌다. 게다가 루시의 마왕군은 그들이 무방비한 상태로 있어도 그저 방치할 뿐 건들지 않았으니 그 의도는 명백하다.
이미 일부는 자신들을 구해준 마왕군을 자신들의 편이라고 믿고 있는 실정이다.
‘말도 안 돼. 저 괴물들은 분명.’
그런 와중에 마왕군을 알아보는 이도 있었다.
이름은 강선우. 이지연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손에 꼽는 고위 각성자인 그는 이지연처럼 협회에게 은밀한 제안을 받으며 기밀 정보 하나를 열람한 적이 있다.
그 자료에 나오는 것은 교단과의 전쟁으로 그들을 무차별하게 학살하는 마왕군의 모습이었다. 검은 갑각을 입은 기이한 군단의 모습은 쉽게 머리를 떠나지 않으니, 강선우는 나서서 사람들을 통제하면서도 마왕군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선우 씨, 뭔지 모르겠지만 아군 같지 않습니까? 뒷일은 맡기고 일단 여기를 탈출합시다!”
“좀 진정하십시오, 의원님. 아직 저기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저희만 탈출합니까. 정 원하신다면 출구를 뚫어 볼 테니 먼저 가시죠.”
“아, 아니. 저 밖에는 뭐가 있을지 어떻게 알고.”
이런 상황에선 그가 유일한 희망이라는 듯, 함께 아카데미를 방문했다 이 일에 휘말린 국회의원은 땀으로 반쯤 벗겨진 머리를 반질거리며 어서 이 장막을 뚫고 함께 밖으로 나가자고 그를 독촉했다.
그러나 그는 그 제안을 거부했다. 나름 책임감을 가지고 있던 그는 차마 남아 있는 사람들을 버리고 나갈 수 없었으니까. 애초에 침략종들의 침공과 함께 뿌려진 이 안개 같은 장막을 부술 수 있을지조차 확신하지 못했다.
“사람이다!”
“뭐, 뭐야. 이지연이다!”
누군가가 역으로 장막을 뚫고 내부로 들어온 게 그때였다. 온몸에 황금빛 신성력을 두르고 들어 온 이지연은 단번에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되었다.
“오! 역시 밖에서 지원이!”
국회의원은 물론 모두가 그녀의 등장이 밖에서 온 지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강선우는, 흔들리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진혁아.”
그 예상대로 이지연은 옆으로 다가오던 국회의원도 무시한 채 빼곡히 모여 있던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를 알아보고 그곳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직전에 이곳에 합류한 오진혁이었다.
“누, 누나.”
“그 사람은 어디 있어. 혹시 봤니?”
오진혁은 반갑게 그녀를 불렀지만 평소랑 다른 그녀의 모습에 금방 당황했다. 전투 현장에서도, 부상을 입어도 유지하던 평소의 차분하고 인자한 모습은 없고 얼굴은 무언가에 쫓기듯 창백하고 목소리는 덜덜 떨렸다.
그 사람이 누군지 오진혁은 단번에 알아들었다. 당장 아침에 서로 마주쳐서 대화를 나누기도 했으니.
“못 봤어요. 그러고 보니 형이 아직 건물에 있을지도.”
[아직 늦지 않았다. 저 괴물들이 보이느냐. 검은 심연의 아귀들. 혼돈의 마왕이 부리는 하수인들인 저들이 아직 제정신인걸 보니 그는 괜찮다.]
창현의 존재를 깨닫고 놀란 오진혁이 당황한 것과는 달리, 그녀의 성좌는 아직 괜찮다며 저 멀리서 침략종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마왕군을 가리켰다.
마왕군이 정상이라면 루시도 정상이라는 뜻. 그리고 그 뜻은 곧 그가 멀쩡함을 뜻했다.
“잠깐! 이지연 씨, 어딜 가십니까.”
멍하니 그곳으로 향하려는 그녀를 강선우가 붙잡았다. 사람들을 두고 떠날 수 없었지만 차마 단신으로 저 지옥으로 걸어 들어갈 수도 없었던 그의 눈에는 지금 이성을 잃은 그녀가 자살하러 가는 것처럼 보였다.
“믿어 주실지 모르겠지만, 전 세상을 구해야 해요.”
“……예?”
“시간 없어요.”
그녀는 자세히 대답해 줄 여유가 없었다. 성좌가 말해 준 내용을 다른 이들에게 그대로 말해줄 수도 없었다. 창현의 존재가 의심 받을 테니까.
“잠시만요! 당신이 당신 매니저랑 깊은 관계라는 건 알지만 저 끔찍한 곳으로 혼자 가는 건 위험합니다. 저긴 말도 안 통하는 미친 괴물들만 득실거린다고요!”
당연히 강선우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한 번 그녀를 붙잡았다. 사정을 알지 못하는 그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괴물들이요?”
그러나 이지연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성좌의 귀띔을 받아 어느 정도의 전말을 알게 된 그녀는 루시의 마왕군을 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는, 적과 함께 싸워 주는 아군으로 보았다. 그러니 그 아군을 도와야 했다. 그들이 폭주하는 적으로 변하기 전에.
만약 그렇게 되면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세상의 종말을 앞당기게 된다.
“이지연 씨!”
끝내 그녀는 모든 만류를 뿌리치고 앞으로 뛰어 들어갔다. 파괴와 살육, 혈향과 매캐한 연기가 가득한 그곳으로.
‘이건 모두를 위한 일이야.’
물론 위험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목숨이 달린 일이다.
분명 이 선택에 있어 개인적인 감정이 크게 작용하긴 했지만 이건 그녀의 사명과도 관련된 일이다.
그를 구해야만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 이렇게 이해한 그녀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이제 없었다.
“죽어!”
그녀는 땅을 부수며 달리고, 가는 길에 마왕군과 침략종이 있다면 침략종의 머리를 방패로 으깨면서 지나쳤다.
당연히 마왕군은 그녀의 존재를 인식해도 알 수 없는 시선만 보낼 뿐 그녀를 막지도, 적대하지도 않았다.
[위기다. 아무래도 놈들이 쳐 둔 함정에 걸린 모양이야.]
“안 돼!”
그렇게 도착한 곳은 침략종의 공중 요새가 존재하는, 하늘의 균열 바로 밑부분. 그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추락하는 마왕군의 잔해들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척 봐도 전세가 불리해 보이기에 이지연은 이를 악물었다. 가진 것이라곤 강인한 힘과 두 다리가 전부인 그녀는 함선체들이 싸우고 있는 저 하늘 위로 갈 방법이 전무했다.
[마지막 도움을 주마. 다른 계약자들을 늘리지 않고 오직 네게 힘을 집중한 그 결과, 부디 좋은 쪽으로 증명하길.]
그때 성좌가 다시 한 번 나섰다.
헐떡이던 그녀의 몸을 빠르게 치유하고 휘감은 밝은 빛이 날개가 되어 달린 것이다.
‘반드시.’
이를 악문 이지연은 곧 하늘로 날아올랐다.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는 무수한 잔해들을 피하고 막아내며 중력을 역행했다.
“아.”
그때 그녀를 향해 떨어지는 거대한 고기 조각. 침략종 함선체의 시체 일부였다. 그녀의 힘으로는 쳐 내기 힘든 그것을, 곁에 있던 마왕군 함선체가 촉수를 움직여 쳐 내 주었다.
마치 그녀가 가는 것을 도와주듯이.
‘원하고 있어. 내 도움을!’
그녀는 사방에 자리한 마왕군의 모습에서 불현듯 한 가지를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