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96화 (196/200)

196화 끝없는 진화 (6)

[막대한 양의 마력 반응. 하늘 위입니다!]

“응?”

어딘가 급해 보이는 이지연과의 통화 이후. 나로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녀의 사무실에 남아 일이나 하고 있던 참이었다.

내려놓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휴대폰이 거세게 진동하더니 다급한 루시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나와 함께하고 있는 나노·오메가를 통해 이 근방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에너지를 감지하고 급히 경고하는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하늘 위가 뭐?”

루시가 거짓을 말할 리는 없으니 나는 서둘러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 이변을 루시만 감지한 게 아닌 모양이다.

이미 주변 사람들 모두 크게 동요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그들 모두 일제히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든 상태였다.

“아니, 왜?”

마찬가지로 하늘을 본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검은 먹구름이 몰려들며 뿌려 대는 기운은 루시같이 민감한 마력 감지 기관이 없어도 느낄 수 있었다.

[대응을 계산 중이지만 시간이 걸립니다.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별거 아닐 확률은 없나.”

탄식한 나는 어쩌지 못하고 하늘만 바라보았다. 시기가 좋지 않았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우주 함대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데이터를 얻은 루시가 그것을 기반으로 더 성장해서, 지구에 올 수 있는데.

하지만 이변은 마치 이런 때를 기다렸다는 듯 계산했다는 듯 직전의 그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났다.

“시간, 얼마나 더 필요해? 행성 단위로 세력을 움직이는 거대한 적들과 적대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잖아.”

루시가 앞뒤 안 가리고 만나는 세력들마다 적대하며 포식을 시도한 것은 분명 주어진 숙명이거나, 상대가 먼저 적대하거나, 필연적으로 공존할 수 없어서 그런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결국 효율이었다.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는 외교, 협상, 교류……. 그 모든 것이 포식과 흡수 능력을 가지고 있는 루시에겐 전쟁을 통한 탐식에 비하면 비효율적이었다.

[데이터 부족에 따라 계산이 정확하지 않아 예상치보다 더 오래 걸릴 수도, 더 적게 걸릴 수도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해당 사건이 끝나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차원문을 만드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런.”

절망한 나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강대한 에너지가 모여들던 하늘이, 그 에너지를 일순간 내뿜어 버린 것이다.

하늘이 노했는데 일개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순간적으로는 자동차까지 들썩이게 만드는 거대한 돌풍에 황급히 실내로 몸을 던진 나는, 모조리 깨져 나가는 유리창에 다치지 않게 몸을 낮추는 게 전부였다.

전혀 다치지 않았지만 아마 루시가 나노·오메가를 움직여 일부분 막아 주었을 것이다.

[강력한 에너지 폭풍이 일종의 장막을 구성했습니다. 전파를 비롯한 대다수의 파장이 방해받고 있으니 우리는 이 마력의 감옥 안에 고립되었습니다.]

“게이트지? 그렇지?”

끙 소리를 내며 주변을 살핀 나는 다친 사람들이 있나 살폈다. 다친 사림은 있어 보이지만 적어도 즉사한 사람은 없어 보였다.

[게이트가 아닙니다. 지구에 열리는 게이트와 던전은 차원문의 일종으로 매우 정교한 코드로 짜여 있어 아직 차원문 개발이 끝나지 않은 지금의 저는 해석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지금 아카데미 상공에 열린 공간의 균열은 정식으로 짜인 코드가 아닌, 말 그대로 균열. 버그입니다.]

“뭐?”

[무언가가 안에서 뚫고 나왔습니다.]

루시는 섬뜩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다만 나는 그 말을 의심할 겨를도 없었다. 다급한 고함과 비명이 곧 사방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침략종.’

루시의 말대로 놈들이 공간의 벽을 부수고 침략해 들어왔다. 그 행위가 기존과는 전혀 다름을 나조차도 단숨에 알아 볼 정도였다.

* * *

“비, 비상! 비상!”

“돌발 게이트인가? 이게 뭐지?!”

당연히 현장은 아비규환이 되었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패닉에 빠졌다. 하늘에 뚫린 거대한 구멍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괴물들은 그동안 게이트나 던전에서 보았던 적들을 모두 모아놓은 종합 선물 세트처럼 득시글거렸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마치 일정한 난이도를 밟아 가듯 점진적으로 증가하던 게이트나 던전과는 달리 난이도 따위 없다는 듯 마치 루시가 전력으로 적을 상대하는 것처럼 파괴적이라는 것.

“말도 안 돼.”

일단 다른 사람들과 함께 대피하려던 나는 하늘에 보이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루시가 만드는 함선형 병사들과 맞먹는 거대 괴수들이 이미 그 모습을 드러내고 마구잡이로 지상을 포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름 커다란 건물도 그 안에 있던 사람들 째로 으깨고 증발시키는 강력한 화력.

그러나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으니 던전 하나에서 최종 지휘 개체로 나오는 상급종들도 무더기로 출몰해 닥치는 대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공격해 댔다.

최소한의 자비도 동정도 없는 차갑고 기계 같은 살육.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은은한 증오심을 느낄 수 있었다.

“상급종이 편대를 이루어 다니는 건 상상도 못해 봤다고.”

[정해진 절차를 무시하고 끌고 나온 병력들입니다. 잘만 하면 침략종들의 본거지에 대해 알아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평화로운 도시가 단숨에 무너진 잔해들과 사람의 시체, 불타는 건물 등으로 지옥도로 바뀌었다. 내가 절대 보고 싶지 않아서 노력했던 그 풍경이 지금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루시는 이것을 기회 삼아 그동안 알아낼 수 없었던 적들에 대해 역으로 알아 볼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여기 오고 싶다고?”

[전부 전송시켜 버리기엔 너무 많습니다. 제 계산대로라면 지금 취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루시는 자신이 마왕군을 이끌고 이곳에 와서 적과 맞서겠다고 말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초유의 사태에 그나마 남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 루시와 마왕군이 지구에 강림하는 모습을 공개하게 되겠지만,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미친 재난 사태에 그런 걸 따지고 있을 틈이 없다.

“좋아. 와.”

사실 내 허락 같은 건 필요 없지만 루시는 내게 허락을 구했고, 서둘러 인적 없이 반쯤 반파된 건물 안으로 대피한 나는 그것을 허락했다.

동시에 내가 느낄 수 있을 만큼 내 휴대폰에서 거대한 에너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루시가 자신의 진정한 힘을 이 세상에 드러내려 하는 것이다.

“이런.”

그런 와중에 침략종 중 하나인 두턱아귀가 나를 발견하고 추격해 왔다. 사람보다 더 큰 몸집을 가진 괴물의 날카로운 발톱이 내 몸을 덮치려던 그때.

“전송 성공.”

놈은 반으로 갈라졌다. 놈을 반으로 갈라 버린 것은 내 주변에서 순식간에 등장한 한 명의 여자아이.

앞으로 튀어나감과 동시에 단번에 적을 처치한 루시는 언제나 같은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놈들이 더 많이 튀어나와 제대로 된 진형을 잡기 전에 몰아내겠습니다.”

“어? 어어.”

나를 돌아보는 루시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게 보이려는 때, 루시가 이끌고 온 마왕군이 그 거대한 군세의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에서 쏟아지며 지상을 덮으려는 침략종들에 맞서, 지상에서 튀어나와 하늘로 치솟는 마왕군의 함선체와 비행종들이 상위종들과 함께 적을 향해 발진했다.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아군의 힘을.”

2시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지구에 자신의 전력을 처음으로 투사하게 된 루시는 내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함께 전장으로 가서 자신이 싸우는 모습을 보여 주겠다는 뜻이었다. 계산을 우선시 하는 평소의 루시라면 하지 않을 행동 같긴 하지만, 어째 지금은 계산보다도 우선되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좋아.”

마음이 떨렸지만 거부하지 않았다. 자신의 성장을 내 눈앞에서 증명하려는 그 마음을 굳이 짓밟고 싶지 않았으니까.

루시와 함께라면 별 문제 없을 거란 생각도 함께였다. 실제로 지금까지 루시는 침략종들을 상대로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계속해서 넘어오고 있는 데다, 이미 넘어 온 적들의 숫자는 적어도 3만 기 이상. 그 이유를 알기 힘들지만 만약 이것이 던전이나 게이트처럼 지속적으로 열린다면 아직 수준이 낮은 지구는 방어하기 힘들 겁니다.”

전신을 나노·오메가로 감싸 최소한의 전투력을 확보한 나는, 루시와 함께 함선체 하나에 올라타 하늘로 향했다.

이미 검보라빛 장막에 뒤덮인 이 일대는 마왕군과 침략종들의 전쟁터가 되어버린 지 오래. 지상은 불바다 그 자체다.

“혹시 몰라서 하는 말이지만, 사람들을 해치진 말아 줘. 이미 해 봐서 알지? 대륙에서 굳이 생존자들을 해치지 않았을 때 말이야. 다른 세상에선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라 불리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우리가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만 알려도 훨씬 낫겠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루시에게 사람들은 먼저 공격하지 말아 달라 말했다. 루시 역시 더 먹음직스럽고 짜증나는 적이 눈앞에 있는데 굳이 영양가 덜한 인간들을 공격하진 않을 것이라 답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저기, 저곳입니다. 저곳에 놈들의 본대가 있습니다.”

사방에서 포격이 날아들고 전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고고히 하늘로 치솟는 루시와 마왕군은 마침내 하늘에 떠 있는 적들의 본체를 발견했다.

“거대한 함선체인가?”

그것은 거대한 면적을 가진 일종의 땅, 혹은 해파리처럼 보이는 부유체였다. 둥지처럼 보이는 것을 머리 위에 얹고 있는 저 거대한 공중 요새가 이 침략의 중추라는 소리다.

“신종 함선체입니다. 대체 어떻게 한계를 넘어서 저 거대한 몸을 유지하는 것인지 추측할 수 없습니다. 저것을 얻는다면 계산 결과 새로운 힘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루시는 그 와중에 저 공중 요새를 탐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은 만들 수 없는 신병기를 침략종들이 먼저 꺼내 든 것이다.

그 덕을 여태껏 제대로 봐 왔으니 루시가 욕심을 내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몰랐다.

“이건.”

“왜, 왜 그래?”

그러나 루시의 계산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긴 것이 그때였다. 태연하던 표정이 삽시간에 굳더니, 무언가 빠르게 연산하는 것이 육체의 표정으로 드러날 정도였다.

“적들의 전력이 급상승합니다. 마치, 마치 고의로 아군을 이곳까지 유인한 것처럼.”

“뭐?”

다만 이어지는 루시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그 말을 듣고 놀란 내가 본능적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과연 치열하게 싸우던 아군의 비행종들이나 상위종들은 어느새 모습을 감추었고 주변에는 적들뿐이었다.

“지금까지 보여 주지 않은 모습으로 인한 변수였지만, 극복 가능한 수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답을 도출한 루시는 자신의 무기인 롱기누스를 들었다. 그것에 응집하는 거대한 에너지는 순간적으로는 체급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힘을 내기에, 결전 병기라는 이름으로 불러 왔다.

“돌파 완료.”

루시는 그 일격으로 함정을 파둔 적들을 일격에 소멸시키고 단번에 길을 뚫었다.

마왕군이 어느새 적들의 요새 근처까지 다다르니, 루시를 앞세운 반격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수월하게 적의 숨통을 끊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