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1화 (1/169)

제1화

1장 내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1)

최고가 되고 싶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것에 한해서는 최고가 되고 싶었다.

실제로 학창 시절에는 손에 잡히는 게임이라면 FPS, AOS, 리듬, 슈팅 가릴 것 없이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공부?

공부는 좋아한 적이 없어서 모르겠고.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더 잘하고 싶어 하는 향상심과 노력.

이것이 내가 최고가 되는 원동력이었고,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물론이고 선생님까지 나의 노력 하나만큼은 인정했다.

날 보면서 다들 하던 말이, ‘뭘 하든 될 놈이다’이기도 했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그렇지 못하지만.

10년 전, ‘그 사건’ 이후 많은 게 바뀌었으니까.

쾅- 쾅- 콰과과광-!

내 핸드폰에서 강렬한 효과음이 울렸다.

“한상우 군, 그거 재미있는가?”

바위에 앉아 폰 게임을 하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창을 든 아저씨가 그렇게 물어왔다.

나이 60대, 통칭 강 영감님.

최근 나와 같이 근무를 서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영감님의 질문에 볼을 멋쩍게 긁으며 대답했다.

“오래 해서 그런지 재미는 잘 모르겠네요. 원래 게임이 그냥 하는 거죠, 뭐.”

라고는 했지만 사실 푹 빠져 있었다.

“그런가? 쉬는 시간마다 하길래 그렇게 재밌나 싶었는데 말일세. 우리 아들도 어제 보니까, 누워서 그거 하고 있더라고.”

“인기 있는 편이기는 하죠. 지금 마켓 다운로드 수, 매출 전부 1위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구만. 게임 이름이 하이어…였나?”

“오오, 잘 아시네요? 맞아요, 하이어.”

“TV에서 광고를 엄청 하던데. 역시 그거 맞구만.”

MMORPG 게임, 하이어(Higher).

대헌터시대 이후 출시된 게임으로, 게임 시장 점유율이 60% 가까이 된다고 하던가.

높은 수치지만 국민 게임으로 칭할 정도는 아니다.

많은 사람이 하긴 하지만 옛날만큼 대다수가 게임을 즐기지는 않는다.

이유는… 10년 전, 내가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을 때.

평화롭던 세계 곳곳에서 갑자기 던전이 생기고, 몬스터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런던, 도쿄, 베이징, 뉴욕을 비롯한 주요 도시가 파괴되고 인류의 30%가 희생된 대참사.

현대 화기도 통하지 않는 괴물에 인류는 종말을 목전에 뒀지만, 위기를 극복할 희망이 등장했다.

헌터.

각성을 통해 인간의 신체 능력을 초월하고, 마력으로 스킬을 사용하는 이들이 몬스터들을 퇴치하고 던전을 하나하나 공략해 나간 것이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재건되고 빠르게 평화를 되찾았다.

물리 법칙을 초월한 헌터들의 능력과 던전 공략 부산물들은 헌터시대 이전보다도 문명을 끌어올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 과정에서 헌터들의 싸움 이상의 자극을 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게임은 몰락의 길을 걸을 거라는 분석도 있었으나.

게임만이 주는 재미가 있었기에, 이 ‘하이어’를 시작으로 MMORPG 위주의 온라인 게임들이 다시 부흥하기 시작했다.

특히 하이어는 다양한 종족과 화려한 스킬, 진짜 살아 있는 것 같은 NPC, 수많은 히든 퀘스트, 끝없이 경쟁을 부추기는 PVP 요소 등.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매우 많았다.

게다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히든피스가 7할 가까이 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파고들 요소가 넘쳐났다.

물론 그에 못지않게 과금 유도도 심해서 욕을 엄청 먹기도 하지만.

지금 이론상 종결 스펙을 맞추려면 확률상 현질을 수십억은 해야 한다던가?

“그런데 자네, 이 게임에서 1위라고 하지 않았나? 아들 말로는 게임이 쉽지 않다던데.”

“쉽지 않기는 하죠. 사실 시작이 어려운 건 아닌데, 고수가 되는 게 어렵거든요. 그게 또 매력이죠.”

자동 사냥 시스템, 즉 오토가 완성도 있게 구현된 하이어는 편하게 즐기기는 좋으나, 본격적으로 파고들면 이야기가 다르다.

PVP를 할 땐 최대 다섯 캐릭터를 동시에 조작해야 하는데, 이때는 오토로 한계가 있어서 수동으로 조작해야 한다.

또한 다섯 캐릭터에 맞는 아이템을 장비하고 스킬을 익혀야 하는데, 한 개 정도야 어떻게든 구할 수 있지만 모든 캐릭터의 장비를 모으려고 하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뽑기의 확률도 상당히 짠 편이고.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었네? 게임에 돈도 꽤 많이 써야 하는 것 같던데…. 이거 사실 집에 금괴 쌓여 있고, 경비는 취미로 하는 거 아니야?”

강 영감님은 웃으면서 농담을 하셨지만.

뜨끔.

순간, 정곡을 찔렸다.

사실 이곳, 경기도 외곽에 나타난 신생 던전의 보초 알바를 하는 이유도 하이어에서 1위를 유지할 정도의 현질을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던전 보초 알바는 건장한 성인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데, 수당이 센 편이니까. 뽑기 운이 좋은 덕분에 과금 효율이 괜찮은 것도 있고.

“하하, 그런 거 아닙니다.”

“그래? 나중에 잘되면, 나도 한몫 챙겨줘야 하는 거 알지?”

“물론이죠. 제일 먼저 강 영감님께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최근 근무를 자주 같이 들어와서 그런가, 강 영감님과는 제법 마음이 잘 맞았다.

“슬슬 이 일도 그만둬야 하는데….”

“그 말, 매일 두 번씩 하는 거 아시죠?”

“그래? 세 번 아니었나?”

강 영감님은 짓궂게 웃으며 말했지만, 눈에는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

던전 보초는 수당의 대부분이 위험수당일 정도로 위험한 직업이다.

여러모로 안전장치가 있다고는 하지만, 비각성자 보초의 경우 갑작스러운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도 하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직업을 구하는 건 또 어려웠다.

나도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학창 시절에 공부와는 벽을 쌓았고, 게임으로 먹고살 만한 직업인 프로게이머나 게임 스트리머는 인기가 없어 대헌터시대 이후 사라진 것과 다름없었다.

물론, 근성과 노력을 다른 분야에서 발휘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게임만큼 흥미가 생기지 않아서 그런가 큰 성과가 나오질 않았다.

대헌터시대만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난 잠시 병원 좀 다녀오겠네.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하게나.”

“넵. 다녀오세요, 영감님.”

강 영감님이 후다닥 짐을 챙겨 퇴근하셨다.

아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간다고 하셨던가.

원래 보초는 무조건 2인 1조지만, 업체에서 인력 충원을 해주지 않아 두 명이 있다 치고 나 혼자서 남아 있는 것이다.

‘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기겠어.’

F급에서 SSS급까지의 던전 중 최하위라고 할 수 있는 E급.

던전이 한 달 동안 클리어되지 않으면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해 몬스터가 튀어나온다.

지금 보초를 서는 던전은 E급인 만큼 난이도가 낮아 도전하는 사람이 많고, 최근 클리어한 날짜가 불과 일주일 전이다.

기록상 위험도는 제로에 가까웠고, 보초가 할 일은 사실상 출입 관리나 다름없어 이런 식으로 속칭, 가라를 치는 거다.

하지만….

고오오-.

던전 내부의 미세한 진동음을 들으니 등골이 절로 오싹해졌다.

‘괜히 혼자 있겠다고 했나.’

잠깐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일도 없거니와 만에 하나 그렇게 된다 해도 각성자도 아닌 강 영감님이 도움이 될 리 없기 때문이다.

“게임이나 하자.”

나는 근무 중에는 되도록 일에 집중하는 편이었지만, 괜히 무서운 느낌을 날려버리기 위해 잠깐 하이어에 접속했다.

그런데 기분 좋게 게임을 시작한 그때, 랭킹이 바뀐 게 시야에 잡혔다.

<수호 기사 랭킹>

-1위 헌터맨

-2위 땡길거야

…….

잠깐 한눈판 사이, 랭킹 1위였던 내 캐릭터 땡길거야가 2위로 내려간 것이다.

“뭐, 뭐야 이게!? 갑자기 이렇게 치고 올라왔다고?”

나는 재빠르게 헌터맨의 캐릭터 정보를 눌렀다.

헌터맨과는 늘 랭킹 경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캐릭터를 키우고, 어떤 아이템을 끼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바뀐 아이템을 본 순간,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 이거 종결템이잖아…!”

기본 뽑기를 통해 쌓인 마일리지를 모아서 상급 뽑기를 돌리고, 거기에서 나온 재료로 시도하는 최상급 뽑기.

그중에서도 극악의 확률을 뚫어야만 나오는 종결템이 헌터맨의 캐릭터창에 도배가 되어 있었다.

헌터맨뿐만 아니라 다른 PVP용 캐릭터 다섯 명 모두.

“말도 안 돼. 어느새 이렇게….”

이 정도 규모라면, 커뮤니티에서 말이 안 나왔을 리가 없다.

역시나 자주 찾는 하이어 정보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헌터맨에 대한 게시글로 가득했다.

그 중,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현찰 박치기로 종결템 맞춥니다.>

게시글에 들어가 보니, 아직 방송 중인 영상 하나가 있었다.

-얼마 들었냐고 계속 물어보시는데, 백억 넘고 나서는 안 셌어요.

-이백억은 안 넘는 것 같은데.

-그냥 짜증 나서요. 확률로 장난치는 것 같길래 어디까지 가나 보려고.

-하하, 그렇죠. 주작인가 했는데 결국 나오긴 했으니까 주작은 아니네요.

훤칠한 인상의 남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구인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얼굴을 본 순간, 그가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으니까.

SS급 헌터, 강철만.

나이는 30살로 나와 동갑.

대헌터시대가 시작된 초창기에 각성한, 한국에 여덟 명 있는 SS급 헌터 중 하나였다.

유독 개성적인 SS급 헌터 중, 상대적으로 성격이 유쾌한 편이라 여러 미디어에도 노출되는 말 그대로 스타 헌터.

설마 헌터맨이 강철만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그가 강철만이라는 사실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기댓값의 몇 배인 백억 이상을 태워놓고도 태연하다는 점이었다.

-뭐, 그런 편이죠. 헌터 일을 하면 돈이 부족하진 않으니까.

-딱히 공개할 필요가 없으니까 안 했죠. 이번엔 기왕 크게 돌리는 거라 방송한 거고.

-어디까지나 취미예요, 취미.

-이왕 했으면 1위는 찍어야 하지 않겠어요?

어느 순간 혜성처럼 나타나서 빠르게 치고 올라오더니, 역시 현질이었다.

그것도 엄청난 규모의 현질.

-그럼 세팅도 끝났으니 슬슬 방송 종료하겠습니다.

-사실 게임 같은 거 한다고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열 올리지 마시고, 현생에 충실하세요.

-노력하면서 열심히 살다 보면, 돈 같은 건 다 따라오는 법이거든요. 그럼 전 이만 가봅니다.

강철만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방송을 종료했다.

역시 SS급 헌터면 게임에 이백억 정도는 가볍게 쓸 수 있구나.

던전 보초로 이백억을 벌려면 대체 몇 시간…. 아니, 몇십 년을 일해야 할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강철만 헌터가 말한 현생이, 나에게는 곧 게임이다.

그렇기에 현질을 뛰어넘는 노력으로 따라잡고 말 것이다!

근성과 노력, 그 두 가지가 내 최대의 무기니까.

“1등, 반드시 되찾고 만다!”

처음엔 조금 막막하긴 했지만,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애초에 바닥에서 시작해 1위를 찍었던 것 아닌가?

‘순위 하나 올리는 거야, 해볼 만하지.’

PVP는 컨트롤이 중요하기도 하고.

그리고 다시 캐릭터로 노가다를 돌려놓으려던 그 순간.

콰아아아앙-!!

갑자기 굉음이 터져 나왔다.

“……?”

처음엔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한적한 숲에 큰 소리가 들릴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아주 잠깐, 게임의 효과음인 줄 알았지만 내 캐릭터는 광산에서 열심히 곡괭이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크롸아아!!”

“캬아아아악!!”

웬 시커먼 신형들이 괴성과 함께 균열을 뚫고 밖으로 나왔다는 것을.

미처 상상조차 못한 최악의 상황, 던전 브레이크였다.

시기상 지금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리가 없는데?

‘이, 일단 신고부터…!’

다행히 포탈에서 나온 몬스터는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십여 마리 정도.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몸이 굳은 것도 잠시, 나는 서둘러 헌터청에 신고하려 했다.

하지만.

콰앙-!!

“으, 으악!!”

갑자기 발 앞에 떨어진 바위에 그만 핸드폰을 놓치고 말았다.

균열에서 나온 몬스터가 나를 발견하고 공격을 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흐워어어어!!”

바위 공격에 이어서 포탈을 통과한 몬스터 한 마리가 손톱을 날카롭게 세워 내게 달려들었다.

E급 몬스터, 잿빛 바위 곰.

2m에 달하는 몸집에 전신이 돌로 된 괴물이 앞발을 휘둘렀다.

슈우우우웅!

사람 손바닥만 한 발톱이 공기를 가르며 파열음을 냈다.

“미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절체절명의 위기.

나는 본능적으로 굴러 손톱을 피한 후, 바닥에 놓아뒀던 검과 방패를 들었다.

샤아아아악!

그리고 연이어 날아드는 다른 한쪽 앞발을 몸을 비틀어 피한 뒤, 바위 곰의 옆구리를 검으로 쳤다.

‘이게 되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환상적인 몸놀림이었지만.

“그르르…?”

곰은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나름 인생 역대급 명장면을 뽑아내며 반격을 먹였지만, 내 공격은 녀석에게 어떤 데미지도 주지 못한 것이다.

반대로 녀석의 공격은 너무나도 강력했다.

콰직-!! 퍽-!

“크헉…!”

살짝 앞발을 휘둘렀을 뿐인데, 막은 방패가 박살 나고 몸이 붕 떠 10m 가까이 날아갔다.

몇 바퀴나 구른 것일까.

시야가 빙글거리는 가운데, 저 멀리 널브러진 핸드폰이 눈에 들어왔다.

‘젠장, 헌터맨을 제치려면 광석 캐고 던전 돌아야 하는데….’

죽기 일보 직전이건만 이상하게도 먼저 생각나는 건 게임이었다.

게임에서 최고가 되려면 돈만이 아니라, 시간도 쏟아붓고 노력도 해야 한다.

누군가는 쓸데없이 게임에 목숨 건다고 비웃기도 하지만 그건 쓸모없는 낭비가 아니다.

내가 사는 방법이고, 목적이었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나는 입 안에 고인 피를 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부서진 방패와 낡은 검을 집어 들었다.

보초 투입 전, 회사에서 지급한 최하급 아이템.

가격도 저렴하고 능력치도 없어 헌터들의 장비인 아이템으로 분류되지도 않는다고 하지만, 이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사실 이걸 쓴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건 아니다.

눈앞의 괴물들은 E급 던전에서 나온 데다 수도 한두 마리가 아닌데, 나는 각성조차 하지 않은 일반인이니까.

그러나 죽을 땐 죽더라도 발악은 해봐야 했다.

“뒤져, 이 개…. 아니 곰 새끼야!!”

“크워어어어어!!”

나는 바위 곰에게 달려들며 낡은 검을 휘둘렀다.

바위 곰은 나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요격하려는 것처럼 자세를 잡았다.

격돌하는 두 개의 그림자.

쐐애애애애액!

바위 곰도 분노했는지, 휘두르는 발톱이 더욱 맹렬해졌다.

답은 정해져 있는 듯했다.

아마 바위 곰과 맞부딪히는 순간 낡은 검은 부서지고, 내 몸은 산산이 조각나겠지.

그런데 담담한 죽음에 강렬하게 접근하고 있던 그때.

번쩍-!!

기적이 일어났다.

쩌억-! 파아아아악-!

내가 검을 휘두른 순간, 웬 섬광이 번쩍이더니 바위 곰을 그대로 두 동강 낸 것이다.

놀라운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철컥-!

쓰러진 바위 곰 뒤로 웬 철갑을 입은 기사가 휘황찬란한 검과 방패를 들고 서 있었다.

“말도 안 돼….”

어안이 벙벙한 상황 속, 나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진상은 곧 드러났다.

아무것도 없던 허공으로 반투명한 글자들이 떠오른 것이다.

[각성 조건 확인]

[자격이 부여됩니다.]

[각성 : ‘하이어의 군주’ 특성을 획득합니다.]

[치명적 위기 감지]

[유일 스킬 : 캐릭터 소환이 자동으로 사용됩니다.]

[캐릭터 소환 : 땡길거야]

각성.

그러고 보니 들은 적이 있다.

헌터 중 많은 이들은 목숨이 위태로웠던 순간에 각성했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건 평범한 각성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게 일어난 각성은 조금 특별한 듯했다.

메시지와 함께 내 앞에 나타난 신원미상의 기사.

녀석의 정체는 다름 아닌.

“제 이름은 땡길거야. 황혼을 지키는 수호 기사입니다. 당신이십니까, 제가 모셔야 할 군주가.”

내가 키운 캐릭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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