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2화 (2/169)

제2화

1장 내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2)

이게… 가능한 건가?

갑자기 등장해 몬스터를 두 동강 낸 사나이.

처음엔 헌터인가 했다.

그러나 190cm에 달하는 키와 중세식 철갑옷, 그리고 잘생긴 외모에 황금빛의 머리칼을 휘날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내 본캐, 땡길거야였다.

소개 역시 그러했고 말이다.

당최 믿기 힘든 현상이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크워어어어어!!”

선두로 나서던 바위 곰은 처치했지만, 아직 던전에서 나온 몬스터 십여 마리가 남아 있었다.

게다가 보스 몬스터 또한 멀쩡했다.

주변의 바위 곰보다 2배는 더 큰 몸집에, 키만 해도 5m는 넘을 듯했다.

싸울까? 도망쳐야 하나?

쉽게 판단 내릴 수 없었다.

E급 던전에서 나온 몬스터 전부를 내가 처치할 순 없지만 방금 바위 곰을 죽인, 눈앞의 기사는 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름대로 견적을 내보던 그때.

“주군에 대한 몬스터의 적대가 뚜렷하군요. 처치하고 오겠습니다.”

갑자기 땡길거야가 말문을 열더니 그대로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향해 돌진했다.

“자, 잠깐…!”

저렇게 몬스터가 많은데 혼자 뛰어들다니!

나는 서둘러 녀석을 만류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쿠웅-! 촤악-! 서걱-!

땡길거야가 땅을 박차고 나가며 검을 휘두르자 몬스터 예닐곱 마리가 자석에 끌리기라도 하듯 앞으로 끌려왔다.

땡길거야라는 닉네임의 원천이자 수호 기사의 주력 스킬인 [끌어오기]였다.

그렇게 땡길거야는 몬스터들을 앞으로 끌어당기더니.

단 일격.

검을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놈들을 정리했다.

그저 검이 목이나 복부를 베며 지나갔을 뿐인데 육중한 바위 곰들이 피를 흩뿌리며 허물어진 것이다.

그것은 보스 몬스터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크롸아아아!!”

거대 잿빛 바위 곰이 부하들의 죽음에 분개한 듯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지만.

후우우웅- 서걱-!

가볍게 발톱을 회피하고, 검을 휘두르는 땡길거야의 반격에 맥없이 당해버렸다.

저게… 말이 되는 건가?

눈앞에서 벌어진 꿈만 같은 광경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인터넷에서 수많은 헌터 동영상을 봤지만, E급 던전 몬스터를 저렇게 간단하게 처치하는 건 본 적이 없다.

아니, ‘간단하게’가 무엇인가.

내가 키우던 캐릭터가 한 방에,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몬스터 십여 마리를 정리해 버렸다.

갑작스러운 던전 브레이크만큼이나 현실성 없는 상황에 나는 할 말도 잃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나 이건 꿈이 아니었다.

전투를 마친 땡길거야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주군.”

“주군? 나 말하는 거야?”

“그렇습니다.”

나를 주군이라 부르는 사내.

내 앞에 서 있는 이는 어떻게 봐도 땡길거야였다.

외모부터 장착한 아이템까지 내가 커스터마이징한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소환 캐릭터 1>

[캐릭터 명 - 땡길거야]

[레벨 - 999]

[직업 - 수호 기사]

<스탯>

[힘 : 880] [민첩 : 810] [지력 : 710] [체력 : 920] [마력 : 780]

<스킬>

[끌어오기] [삼중갑옷] […….]

허공에 뜬 반투명한 글자도 사내가 땡길거야라는 걸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캐릭터 정보를 확인한 순간.

“미쳤다….”

나는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등급이 높은 SSS급 헌터의 레벨이 750을 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땡길거야는 하이어의 레벨과 똑같은 999였다.

만약 이 스탯이 현실의 헌터처럼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라면?

내가 키운 캐릭터가 세계 최고 헌터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뜻이었다.

나로선 믿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는데, 땡길거야는 지금 이 상황을 굉장히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주군, 더 처치할 적이 있습니까?”

“…아니, 보스 몬스터가 죽으면 던전 브레이크는 끝나. 그보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예, 주군.”

“너, 내가 게임 ‘하이어’에서 키운 ‘땡길거야’가 맞아?”

던전브레이크의 해결을 확인한 나는 먼저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상할 정도로 침착하게 머리가 돌아갔다.

“저는 주군께서 부여하신 이름으로 활동하며, 계약에 따라 주군을 보좌하고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부여한 이름과 계약.

바로 생각나는 것은 게임의 캐릭터 생성이었다.

내가 닉네임을 입력하고 캐릭터를 생성했으니, 이름을 부여하고 계약을 했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몬스터를 사냥하며 보여준 모습과 상태창의 정보, 지금의 대답으로 추측건대 내 눈앞에 있는 금발의 기사는 ‘땡길거야’가 맞으리라.

나는 좀 더 확실하게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주워 와 게임에 접속하려 했으나.

<오류 발생. 대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서버와 연결할 수 없습니다.>

꺼진 게임을 다시 실행하려고 하자 오류 메시지만이 반복됐다.

몇 년간 하이어를 하면서도 처음 겪는 현상이었다.

이 점이 오히려 내가 각성하면서 생긴 능력으로 게임 속 ‘땡길거야’를 소환했다는 가설에 힘을 실어줬다.

“아마 제가 주군 곁으로 왔기에, 다른 세계의 접근이 차단되는 것일 겁니다. 안식처의 계약은 무한하나 계약한 화신체는 독립된 존재이니까요.”

“그렇군. 이해했어. 안식처는 하이어, 화신체는 캐릭터…. 즉, 너 같은 존재를 의미하는 거겠지? 네가 안식처에서 여기로 왔으니 접속이 안 되는 거고.”

“정확합니다, 주군.”

용어는 생소했지만, 개념의 이해는 어렵지 않았다.

간단히 말해 정말로 내가 키운 게임 캐릭터가 밖으로 나온 것이다.

나의 각성 이후 ‘땡길거야’만 나온 것과 이런 스킬은 유례가 없다는 걸 생각하면 이건 내 고유한 능력일 가능성이 높다.

“화신체를 소환하는 건 나만 쓸 수 있는 능력인가?”

“그렇습니다. 화신체의 소환은 하이어에 통달한 단 한 명의 군주만이 가능합니다. 이전에도, 이후로도 오직 주군만이 가능하신 일입니다.”

“내가 다른 화신체를 소환하는 일은?”

“주군께서 계약하신 화신체라면….”

하지만 이후의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화아아악-!

눈앞에 있던 땡길거야가 돌연 연기를 흩날리며 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서둘러 주변을 돌아봤다.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마나 - 0 / 300]

[마나가 부족합니다.]

[캐릭터 소환이 해제됩니다.]

“마나가 부족한 거였네.”

마나는 헌터가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자원이다.

일반적으로 소환수를 소환하면 소환하는 순간과 유지하는 동안 마나가 소비되는데, 땡길거야는 강력한 캐릭터이니만큼 소모되는 마나의 양도 큰 듯했다.

‘그러고 보니 상태창도 확인 안 하고 있었어.’

게임 캐릭터의 현신에 정신이 팔려 헌터의 기본인 상태창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태창 오픈.”

나는 보초를 서며 헌터들의 행동을 봐두었던 걸 따라 했다. 하지만 금세 취소할 수밖에 없었으니.

우우우웅-!!

핸드폰 알람을 울리며 10분 뒤에 교대 인원이 온다는 것을 알려온 탓이었다.

‘일단 이건… 비밀로 하는 게 좋겠지.’

던전 브레이크와 각성, 둘 다 밝혀져서 보초인 나에게 좋을 건 없었다.

나는 파헤쳐진 땅을 정리하고, 5분 이 지나 몬스터의 사체가 먼지로 변해 사라지는 걸 확인한 뒤, 다른 보초와 교대하고 서울로 향했다.

* * *

“슬슬 확인해 볼까.”

승객이 두 명밖에 없는 버스의 맨 뒷자리.

드디어 기다리고 고대하던 상태창을 열어볼 여유가 생겼다.

나는 주변을 슬쩍 둘러본 후, 헌터들이 자주 말하는 단어를 속삭였다.

“상태창 오픈.”

[상태창]

[이름 - 한상우]

[레벨 - 3]

[고유 특성 - 하이어의 군주]

<스탯>

[힘 : 8] [민첩 : 7] [지력 : 7] [체력 : 8] [마력 : 2]

<스킬>

[유일 스킬 - Lv 1. 캐릭터 소환]

<특성창 열기>

<장비>

‘음? 왜 레벨이 3이지?’

게임 정보창처럼 정렬된 글자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처음 각성하면 레벨 1부터 시작한다고 들었는데 지금 내 레벨은 3이었던 것이다.

순간, 숫자가 잘못된 것인가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캐릭터 : 땡길거야가 잿빛 바위 곰(E)을 처치했습니다.]

[군주의 특성, 독존이 발동합니다.]

[경험치 10배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

[캐릭터 : 땡길거야가 거대 잿빛 바위 곰(E)을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10배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모든 스탯 +1을 획득합니다.]

시야 왼쪽 하단의 메시지 창에 여러 정보가 올라와 있었다.

전투에 정신이 팔려 미처 발견하지 못했는데 땡길거야가 처치한 몬스터의 경험치를 내가 먹은 것이었다.

게임 속 드루이드나 네크로멘서의 경우를 생각해 보니, 크게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때, 뭔가 특이한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특성, 독존? 그러고 보니 특성이 있었지.’

특성.

사용해야 하는 스킬과는 다르게 헌터가 자동으로 지니고 있는 능력으로, 게임으로 치면 패시브 스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반투명한 글자 중 특성을 클릭해봤다.

곧, 여러 정보가 나열됐다.

[고유 특성 : 하이어의 군주]

[고유 특성을 획득해 여러 효과를 얻습니다.]

[특성 1 : 지휘 - 소환된 캐릭터를 명령으로 조종할 수 있습니다.]

[특성 2 : 평정 - 어떤 상황에서도 차분함을 잃지 않습니다.]

[특성 3 : 독존 - 군주는 남 밑에 들어갈 수 없는 지고한 존재입니다.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이와 파티를 맺을 경우 획득 경험치가 99% 감소합니다. 반대로 혼자서 몬스터를 처치할 경우에는 획득 경험치가 1,000% 상승합니다.]

‘다 좋은 능력뿐이잖아?’

군주의 특성 세 가지 모두 훌륭했다.

지휘는 소환한 캐릭터에게 명령할 수 있는 능력이고, 평정은 몬스터를 마주하더라도 두려움에 떨지 않게 되는 특징이 있었다.

‘어쩐지 조금 이상하다 했어.’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고, 게임에서 키우던 캐릭터가 눈앞에 소환됐는데 크게 당황스럽지 않았었다.

스스로도 처음 겪는 일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하게 대처해서 담력이 커진 건가 싶었는데 모두 군주의 특성인 평정 덕분이었다.

마지막으로 독존.

‘이건 솔플하면 대박 나겠는데?’

내 레벨을 단숨에 1에서 3으로 만들어준, 한마디로 사기적인 특성이었다.

혼자서 몬스터를 처치하면 10배의 경험치를 얻다니.

경험치 이벤트로 해도 혜자를 넘어 너무 과하다고 욕먹을 수준이었다.

헌터의 세계에서는 게임처럼 레벨 1이라고 해서 한두 마리 잡는 걸로 레벨이 금방 오르진 않는다.

경험치가 수치로 뜨지도 않고, 레벨업 필요 경험치에도 개인차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십여 마리밖에 잡지 않았는데 레벨 3이 됐다는 건 그야말로 엄청난 특혜였다.

물론, 특전만 주는 건 아니었다.

나보다 레벨이 높은 이와 파티를 맺으면 획득 경험치가 99% 감소한다.

던전은 한 명의 헌터로는 클리어할 수 없는 게 대부분이라, 파티를 짠다는 걸 감안하면 쓸모없는 특성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혼자서 던전을 클리어하는 일이 나한텐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유일 스킬 : Lv 1. 캐릭터 소환 - 하이어에서 육성한 캐릭터를 소환합니다.]

하이어의 군주가 되며 획득한 스킬, [캐릭터 소환]이 있으니까.

조금 전, 땡길거야가 보여준 그 파괴력이라면 혼자서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하이어의 캐릭터를 소환합니다. 스킬 레벨에 따라 소환 캐릭터의 개수와 보관 캐릭터의 개수가 증가합니다. 사용 시, 기본 마나 2가 소모됩니다. 유지 마력은 소환한 캐릭터의 레벨에 따라 달라집니다.]

[현재 소환 캐릭터 : (0/1)]

[보유 캐릭터 : 1]

[선출 가능 횟수 : 0]

스킬 구성과 추가 설명을 봤을 때 스킬 레벨을 올리면 다른 캐릭터 또한 소환할 수 있는 듯했다.

나는 상태창과 스킬 확인을 끝내고, 하이어를 켜 캐릭터 선택창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캐릭터 선택>

<…….>

만렙을 달성한 다섯 명의 캐릭터와 세 명의 서브 캐릭터들이 나를 반겼다.

각 직업에서 랭킹 1, 2위를 다투는 내 노력의 결정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낱 게임일 뿐이었지만 이젠 아니다.

게임 캐릭터의 레벨이 현실에서도 그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레벨이 높은 헌터는 미국의 칼 제이스와 중국의 리 샤오펑이다.

둘 다 F급부터 SSS급으로 분류된 헌터 등급 체계에서 최고 등급인 SSS급을 인증받았으며 정확한 레벨은 알 수 없지만 700 초반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땡길거야는? 레벨 999.

하이어에서 만렙으로 세계 최고 헌터의 레벨보다 훨씬 더 높다.

아직 좀 더 검증을 거쳐야 하지만 단순 레벨만 놓고 보면 세계 최고 헌터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땡길거야뿐만 아니라 나머지 캐릭터도 모두 소환할 수 있게 된다면?

아직 잡은 사람이 없다고 하는 SSS급 보스 몬스터도 혼자 처치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어디 몬스터뿐이랴.

나는 하이어를 넘어 전 세계를 주름잡는 최강 헌터라는 말도 부족한, 세계 최고의 헌터 군단의 군주가 될 것이다.

‘좋아, 한번 해보자.’

서울로 향하는 버스 안, 나는 게임 화면에 뜬 캐릭터들을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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