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66화 (66/169)

제66화

8장 높은 곳으로 한 걸음(1)

“요약하자면… 길드를 만들고 싶으신데 길드원들의 정보는 알려줄 수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예, 맞습니다.”

헌터청 본청 1층의 카페.

내 말에 신대훈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곤란하네요. 임시 특급 헌터증이야 긴급할 때 발급하는 경우도 있어서 가능했지만, 신원 미상자들을 길드원으로 한 길드 창설은 사례가 없어서요. 제 권한 밖인 데다 전산상으로 불가능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그렇군요. 역시 어렵겠네요.”

조금 전, 나는 신대훈에게 전화해 길드 창설에 관해 문의했다.

임시 특급 헌터증을 발급받았던 것처럼 길드를 창설하되 길드원들의 신원 정보를 등록하지 않으면 안 되냐고 말이다.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고 하길래 왔는데 답변은 역시나 어렵다는 것이었다.

길드를 만들기 위해선 최소 두 명의 길드원이 필요한데, 그 두 명의 신원은 정확히 확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국인인 경우엔 주민등록번호가, 외국인이라면 여권과 비자가 필요한데 게임 캐릭터들에게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하다.

사실 이 문제 때문에 헌터청의 인사과장인 신대훈에게 부탁한 것인데 그도 별다른 방법이 없는 듯했다.

그래도 함께 고민은 해줬다.

신대훈은 조금 전에 시킨 캐모마일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하나씩 짚어보죠. 길드를 창설하시려는 이유는 친구분들과 A급 이상의 던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라고 하셨죠? 친구분은 세 명이고요.”

“예, 맞습니다.”

“솔직히 A급 이상 던전에 가기엔 너무나도 부족한 인원이지만… 그래도 친구분의 실력은 특급 헌터증을 발급해 드렸을 정도로 믿고 있으니 논외로 치겠습니다. 그럼 차라리 저번에 말씀드렸다시피 헌터청에 들어오시는 건 어떠신가요? 원하시는 조건 맞춰드릴 수 있습니다. 길드 출입도 제 선에서 자유롭게 허가 가능하구요.”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조건을 아무리 맞춘다고 해도 공기관인 이상 기본적인 규율은 따라야 할 테니까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지속해서 파티 플레이를 할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요.”

“아쉽네요. 얼음 요새뿐만 아니라 부산 던전 브레이크 해결에도 도움을 주셔서 어떻게든 한상우 헌터님을 도와드리고 싶은데, 그렇다고 규정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요. 저한테 권한만 있었어도 도와드릴 수 있을 텐데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이 부분은 좀 더 고민해 봐야겠네요.”

사실 부탁하면서도 무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 하나 때문에 규정을 바꿀 순 없는 노릇이니까.

다만 임시 특급 헌터증을 발급받았던 것처럼 땡길거야와 다크어둠을 길드원으로 등록할 수 없을까 했는데, 아무래도 권한 밖인 듯했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차라리 능력을 오픈할까?’

솔직하게 말하면 헌터청도 협조를 해줄지도 모른다.

[캐릭터 소환]이라는 스킬로 하이어라는 게임의 캐릭터들을 소환할 수 있게 되었고, 군주의 특성인 [독존] 때문에 파티 플레이를 하면 손해라고.

말을 하는 것은 쉬웠지만, 또 그렇게 하기에는 걸리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던전 브레이크 때 타인 앞에서 소환하긴 했지만, 그때는 사람 목숨이 걸려서 어쩔 수 없었으며 내가 한 일임을 밝히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A급 던전에 들어가는 다른 방법도 있을뿐더러 이 사실을 헌터청에만 공개했을 때, 그 사실을 역이용해 오히려 내가 얽매일 가능성도 있었다.

‘아냐, 다른 방법이 있는데 굳이 오픈할 필요는 없지. 가지고 있는 패는 가능한 숨기는 게 좋아.’

캐릭터들을 길드원으로 두는 방법은 실패했지만, 혼자서 길드를 창설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각성은 했지만 헌터 생활은 하지 않는 사람들을 모집해서 명의만 빌리는 방법도 있다.

돈이 좀 들고, 길드원으로 남아줄 사람을 찾는 게 힘들긴 하겠지만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능력을 공개했는데도 길드 창설이 안 된다고 한다면?

괜한 짓을 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 다음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커피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때, 신대훈이 밖으로 나가려는 날 황급히 붙잡았다.

“잠시만요, 헌터님. 남은 방법이 하나 있긴 합니다.”

“어떤 거죠?”

“청장님을 만나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청장님이라면… 최대천 헌터청장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헌터청장 최대천.

나이 55세, 헌터청의 최고 권력자.

“예, 맞습니다. 청장님과 독대하게 해드릴 권한이 제게 있는 건 아니지만, 헌터님께서 제안을 하신다면 가능할 겁니다.”

대헌터시대 초창기,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한 SS급 헌터로 대통령보다 막강한 권력을 가졌다는 평가를 가진 영웅적인 인물이다.

분명 최대천이라면, 길드 하나 만들어주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애초에 헌터에 관련된 법이나 예외 규정은 그가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스케줄이 꽉 차 있지 않으신가요? 저도 급한 일이라 오래 기다릴 수 없습니다만….”

워낙 바쁘고 대단한 사람이라 과연 내게 할애할 시간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대기업 총수여도 개인적인 만남은 거절하고, 분 단위 스케줄에 한 번 약속을 잡으려면 최소 몇 개월은 기다려야 한다고 들었는데.

신대훈은 자신만만하게 확답을 내놓았다.

“많이 바쁘긴 하시죠. 하지만 헌터님께서 원하신다면 빠르게… 잘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만나 뵐 수 있으실 겁니다.”

“그게 가능한가요?”

내가 최대천을, 그것도 지금 당장 만날 수 있다고?

그 말만 들어도 절로 고개가 갸웃거려졌는데, 신대훈의 이어지는 말은 더더욱 믿기 힘들었다.

“사실 헌터청장님이 많이 궁금해하시거든요. 한상우 헌터님을.”

* * *

그런 말이 있다.

사회생활은 보고로 시작해서 보고로 끝난다.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대부분 상급자에게 보고되고, 또 그걸 정제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소모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헌터청도 하나의 직장이고, 신대훈이 일련의 일을 최대천에게 보고하지 않은 게 이상했다.

한상우 역시 어느 정도 예상하곤 있었다.

임시 특급 헌터증을 발급하는 건 특별한 일이고, 최대천의 직인 또한 찍혀 있었으니까.

다만 그럼에도 한상우의 입장에선 갑작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헌터청장이 자신을 알고 있다는 걸 처음 알기도 했거니와 이렇게 갑작스럽게 만나게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신기하네요. 이렇게 갑자기 청장님을 만나게 된다니.”

헌터청장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 한상우가 점점 높아지는 숫자를 올려다보며 나직이 소회를 내놓았다.

“아닙니다. 사실, 특급 헌터증 발급 때부터 이야기는 넌지시 나오고 있었는데…. 원치 않으실 것 같아서 제 선에서 커트하고 있었습니다.”

신대훈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특급 헌터증의 발급을 요청했을 때, 한상우는 신대훈에게 자신의 신변을 감출 것을 요청했었다.

그렇기에 신대훈의 선에서 위에서 내려오는 요구들을 막고 있었지만, 막상 이야기가 나오니 한상우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한상우는 당시엔 실제로 최대한 숨기고자 했었기에 신대훈의 조치는 틀리지 않았다.

“아닙니다. 지금 청장님을 뵙는 게 과장님 덕분이기도 하니,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군주의 특성, [평정]의 힘이랄까.

갑작스럽게 헌터청장을 만나게 됐지만 한상우는 긴장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득실을 따져 만나는 것으로 결정했을 뿐이었는데 이게 신대훈에겐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역시 보통이 아니야.’

갑작스러운 제안이 왔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한 것이다.

이건 일시적인 연기가 아니었다.

띵-! 25층입니다.

청장실이 있는 층에 도착해도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신대훈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한상우를 헌터청장실 입구로 안내했다. 그러자 데스크에 앉아 있던 비서와 경호원들이 맞이해 주었다.

“안녕하세요, 신대훈 과장님. 옆에 계신 분은 한상우 헌터님 맞으실까요?”

“예, 모시고 왔습니다.”

“확인했습니다. 청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사전에 얘기가 되어 있던 게 사실이었는지 별다른 절차 없이 곧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신대훈은 한상우를 돌아보더니 옷매무새를 점검해주며 말했다.

“한상우 헌터님껜 필요하지 않은 말일 테지만…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른 헌터들은 보통 청장님을 처음 뵈면 얼어 붙더군요.”

“과장님께선 같이 안 들어가시나요?”

“청장님께서 독대를 원하셔서요. 저는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한상우는 짧게 고개를 끄덕인 후, 비서의 안내를 받아 헌터청장실로 향했다.

똑똑-

“한상우 헌터님께서 오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하시게.”

중후하고 묵직한 목소리가 문 뒤에서 새어 나왔다.

한상우는 청장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허허. 반갑습니다, 헌터청장 최대천입니다.”

집무실에 앉아 있던 최대천이 한상우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거대한 체구와 올백으로 넘긴 하얀 머리칼에 강인한 인상.

각종 포털 사이트와 뉴스에서 자주 접한 얼굴이었지만 실물은 화면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호랑이를 실제로 마주하는 기분이랄까.

강철만과 같은 등급의 헌터이지만 좀 더 진중하고 묵직한 느낌이었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웃고 있지만, 전혀 긴장을 풀 수 없는 것이다.

과연, 첫인상을 보니 헌터들이 얼어붙을 만했다.

그러나.

“헌터 한상우입니다.”

한상우는 그러한 기백에 밀리지 않았다.

[평정]으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도 하거니와 또 다른 군주의 특성, [압도]가 무형의 압박을 상쇄해준 것이다.

최대천의 미소와 한상우의 화답으로 시작된 만남.

하지만 각자의 속내는 복잡했다.

‘B급 헌터라 했던 것 같은데… 최소 S급은 되는 것 같군.’

최대천은 압박을 버텨내는 한상우를 보며 놀랐고.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보자고 하진 않았을 텐데….’

한상우는 최대천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두 사람은 손을 놓은 뒤, 집무실에 마련된 소파로 이동해 앉았다.

아주 잠시, 집무실에 침묵이 흘렀지만 길지는 않았다.

최대천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죠. 길드원의 인적 사항을 적지 않는 조건으로 길드를 창설하고 싶으시다고요?”

“예, 맞습니다.”

과연, 어떤 질문이나 제안을 할 것인가.

한상우는 뒤이어 올 말을 예측하며 최대천의 입을 주시했다.

그런데.

“좋습니다, 승인해 드리죠.”

치열할 것으로 예상했던 대화는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신경전도 없었다.

최소한 이유라도 물어야 하거늘, 원하는 것만 확인하고는 대뜸 수락한 것이다.

“정말입니까?”

이렇게 쉽게?

한상우는 믿기 힘들다는 듯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제안이 이어졌다.

“대신… 길드원으로 등록할 친구분들을 만나볼 수 있겠습니까?”

혹시나 싶었지만 역시나였다.

한상우를 바라보는 최대천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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