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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111화 (111/169)

제111화

12장 그릇된 믿음(5)

신성의 힘이 있다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

“하아아아앗!!”

첨탑에서 뛰어내리는 네 명의 이방인을 바라보며 교주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자만도, 오만도 아니었다.

그것은 교주가 쌓아온 인생의 지표였다.

신성의 힘.

약하고 가난하던 시절, 자신의 인생을 역전시켜준 기적의 힘.

교주는 이 힘을 이용해 슬럼가의 고아에서 광신교의 창설자로 발돋움했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천애 고아에 왜소한 체구로 태어나, 슬럼가에서 난쟁이라고 놀림받던 천민이 교주의 자리에 오르다니.

갱스터들에게 두들겨 맞아 오물이 흥건한 뒷골목에 엎어져 있던 어느 날.

-도태된 인간이여, 세상을 발아래에 두고 싶지 않나?

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난쟁이는 고개를 들어 머리맡에 서 있는 자를 올려다보았다.

누군지 알 수는 없었다.

로브의 모자를 썼는데, 얼굴 부분이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막강한 힘.

이 사내의 말을 따른다면 자신을 괴롭혔던 갱스터뿐만 아니라 기사와 마법사를 무릎 꿇리고, 나아가 제국까지 발아래에 둘 수 있다는 것을.

-내게 너의 영혼을 넘기고 매달 생명이 가득한 육체를 바쳐라. 그리하면 너에게 신성의 힘을 내려주도록 할지니.

난쟁이는 사내를 올려다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고오오오오-

-커헉!

로브 안쪽에서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더니 난쟁이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난쟁이는 자신에게 신성의 힘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사용법에 대해서 익힐 필요도 없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을 괴롭히던 갱스터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뭐야, 저 난쟁이 놈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두 발로 걸어 들어오는 거야?

-저게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갱단 본거지 앞.

담배를 물고 있던 갱스터 셋이 난쟁이를 발견하고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그러나 세 사람은 난쟁이에게 다가가지도 못했으니.

-서로 죽여라.

-뭐?

-예, 알겠습니다.

푹-! 촤악-!

난쟁이가 손바닥을 펼치며 신성의 힘을 사용하자 서로에게 단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시작된 대학살극.

난쟁이는 갱단으로 쳐들어가 갱스터들을 세뇌해 서로 죽이게 만들었다.

도시는 난장판이 되었고, 영지를 지키던 경비단까지 출동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난쟁이를 막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난쟁이의 편이 됐다.

경비단엔 검술을 연마한 기사들도 있었으나, 모두 신성의 힘에 잠식당해 세뇌되고 말았다.

영주를 따르던 경비단이 난쟁이를 따르게 된 것이다.

난쟁이는 내친김에 성으로 쳐들어가 영주를 처치하고 영지를 점령했다.

마음 같아선 영주도 세뇌하고 싶었지만, 영주가 마법 저항력이 있는 장비를 착용한 상태라 어쩔 수 없이 죽일 수밖에 없었다.

하루아침에 차지한 권력.

이대로라면 왕국뿐만 아니라 대륙 통일도 넘볼 수 있을 듯했지만, 난쟁이는 속도를 늦추고 세력을 정비했다.

남은 신성의 힘이 얼마 없었기에, 제물을 바쳐 충전해야 했기 때문이다.

난쟁이는 왕국에서 파견한 조사단에게 경비단의 기사들을 반역자로 넘기고, 인생을 빛나게 해준다는 뜻을 가져와 광신교를 창시했다.

신성의 힘을 무한정 쓸 수 없기에 적절하게 몸을 숨기고 세뇌라는 기술을 활용하려면, 권력에 의해 명령을 따르는 군대보다는 신앙과 믿음에 의해 자신을 따르는 종교의 형태가 더 적절한 탓이었다.

그렇게 난쟁이는 광신교의 교주가 되어 매달 제물을 바치고 신성의 힘을 쌓아 개발했다.

신성의 힘은 타인을 세뇌하는 것 외에도 오러처럼 신체를 강화하는 데에도 쓸 수 있었다.

광신 신성 제국.

난쟁이 교주는 세상을 발아래에 둘 꿈을 꾸며 신성의 힘을 축적하고 기사단을 육성했다.

점점 쌓여가는 신성력만큼이나, 자신을 따르는 기사단의 수도 늘어나고 그 힘도 강대해져 갔다.

그런데 출정을 얼마 앞두지 않은 순간.

갑자기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신성한 의식이 거행되던 순간, 듣도 보도 못한 이방인들이 나타나 자신을 암살하려 한 것이다.

성기사들도 맥을 못 출 정도로, 실력이 있는 놈들이었지만 지금의 그에게 있어서 큰 문제는 아니었다.

조금 아깝긴 해도 신성의 힘을 사용하면 사태는 금방 해결될 테니까.

“서로 죽여라.”

조금 전, 검에 몸이 갈라졌지만 신성의 힘으로 육체를 복구하고 강화한 교주가 첨탑에서 낙하하는 이방인들을 바라보며 명령했다.

[광신의 세뇌]

이제 놈들은 바닥에 착지하면 서로검을 휘두르다 절명할 것이다.

조금 전엔 육체를 강화하기 전이라 세뇌가 통하지 않은 듯했지만, 신성의 힘이 강해진 지금이라면 통할 게 분명했다.

그런데.

서걱-! 촤아아아악-!

[광신의 세뇌]를 사용했건만 검에 베이는 건 이방인들이 아니었다.

“크악!!”

“끄아아아악!!”

자신이 힘들게 키운 성기사들이 놈들의 검에 베여 운명을 달리했다.

“무, 무슨…!”

교주는 당혹을 금치 못했다.

지금껏 강화한 신성의 힘에 저항하는 건 본 적도 없는데, 한 명도 아니고 네 명 모두 [광신의 세뇌]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저 녀석, 안 통하는 데도 자꾸 세뇌하려고 하네. 아참 매직킹, 성기사들한테 걸린 세뇌는 해제 못 해?”

“마나와는 다른 종류의 힘이라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로드. 마치 다른 세계의 존재에게 받은 힘 같군요.”

너무나도 편안해 보이는 모습.

몇 번을 다시 사용해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더 당혹스러운 게 있었으니.

“어쩔 수 없네. 다들 성기사의 처치는 최소한으로 한다. 목표는 교주다!”

“예, 주군!”

“알겠습니다, 마스터!”

“마나가 좀 들긴 하지만 몇 명은 일단 멀리 날리겠습니다, 로드.”

이방인들은 신성의 힘으로 강화한 성기사들도 그야말로 가지고 놀고 있었다.

평소엔 아무 힘도 쓰지 못하는 풋내기지만, 지금처럼 신성의 힘을 공급받으면 왕실 기사단에 비견될 정도로 강해지는 성기사들이 검에 베이거나 마법에 잠드는 등 이방인 네 명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교주 인생에서 처음 마주하는 실력자들.

저들을 이기려면 더 많은 신성의 힘이 필요할 듯했다.

교주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영혼…. 깨끗한 영혼이 더 필요해! 성기사 전원, 목숨 걸고 이단들을 막아라!!”

“크워어어어!!”

신성의 힘에 잠식당한 성기사들이 괴성으로 명령에 응답했다.

교주는 성기사들을 방패로 삼은 뒤, 예배당 숙소로 이동했다.

그런데.

“음…?”

없었다.

예배당 숙소에 만들어놨던 지하 수용소가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휑하니 드러나 있었다.

수용소 안에 모아놨던 제물 수십 명도 온데간데없었다.

범인은 곧장 나타났다.

“뭐 찾냐, 교활한 사기꾼 자식아.”

지하 수용소를 살펴보던 교주의 등 뒤로 한상우가 다가와 화산검을 휘두른 것이다.

서걱-!

화산검 위로 생성된 오러가 교주의 어깨를 가르고 지나갔다.

“크악!!”

어, 어느 틈에…!

교주는 한쪽 팔을 부여잡으며 신성의 힘을 사용, 재빠르게 성기사들 틈으로 몸을 숨겼다.

“쯧, 쥐새끼 같은 놈이네.”

[반월 베기]와 [만월 가르기]에 이어 [월광 폭발]까지 완성하려 했지만, SSS급 보스 몬스터답게 교주의 몸놀림은 생각보다 빨랐다.

한상우는 성기사 틈으로 몸을 숨긴 교주를 바라보다가 슬쩍 메시지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처치한 성기사의 수(128/200)]

어느덧 100명이 훌쩍 넘어버린 수.

첨탑에서 내려온 뒤, 한상우는 교주에게 닿기 위해 캐릭터들과 함께 성기사들을 제압하고 처치했다.

매직킹의 [순간 이동]이나 땡길거야의 [끌어오기], 자신의 [침투] 등 타겟을 지정해 이동하거나 데려오는 스킬이 있었음에도 무언가 면역이 있는 것인지 통하지 않았다.

‘직접적인 전투력보다는, 이런 변칙성 때문에 고랭크인가?’

공격이 통한 것만 봐도, 앞서 싸웠던 SSS급 보스 몬스터였던 용족 군단장과는 비할 바가 되지 않는 전투력이었다.

하지만 공략 자체는 그에 못지않게 까다로웠으니, 교주를 발견하는 과정과 교주의 힘을 약화시키는 여러 조건들, 그리고 성기사를 처치할수록 실패에 가까워지는 작금의 상황은 전투력과 별개로 던전의 난이도를 가히 SSS급이라 매길 만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수백 명에 달하는 성기사들의 처치는 최소화하고 가능한 제압해가며 길을 터는 것이었는데, SS급 몬스터라 그런지 제압하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땡길거야는 [끌어오기]로 성기사들을 묶어 예배당 안으로 던져버렸고, 다크어둠은 적들의 발목을 그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매직킹은 [매스 텔레포트]를 써서 결계가 없는 숲속으로 성기사들을 보냈지만 그 과정에서도 의도치 않게 처치하게 되는 경우도 분명 있었다.

마지막으로 제장이도 첨탑 위에서 아기를 안은 채 [꼬마 대장장이의 용기]와 [강철 전격] 등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캐릭터들의 힘 조절에도 불구하고 개복치처럼 죽는 성기사들의 수는 점차 늘어났는데, 조만간 그 수가 한계점에 도달할 것 같았다.

남은 타개책은 하나.

한 번에 끝내는 것뿐이었다.

‘모두 집중. 이번 공격에 모든 걸 끝낸다.’

-명 받들겠습니다.

한상우는 마나 포션을 마시며 마지막 전략을 세웠다.

반면.

‘도대체 저 괴물들은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거야!’

교주는 이방인들에 대한 대처법을 전혀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최후의 보루로 남겨뒀던 지하 수용소는 탈탈 털렸고, 공들여 키운 성기사 수백 명은 추풍낙엽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머뭇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지켜줄 성기사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교주도 결단을 내렸다.

“네놈들에게 신의 징벌을 내려주마!!”

양팔을 높게 든 후, 자신이 가진 신성의 힘을 쏟아내 예배당만큼 거대한 보랏빛 구체를 만들어낸 것이다.

동시에.

한상우와 캐릭터들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지금이다!”

“예, 주군!”

한상우의 지휘 아래, 땡길거야는 [수호의 방패]를 앞세워 교주가 만들어낸 보랏빛 구체를 [방패 치기]로 날려버렸다.

“무지한 자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디스펠.”

다크어둠은 [그림자 긋기]로 교주까지 향하는 길을 일직선으로 뚫어냈고, 매직킹은 교주가 허튼짓을 하지 못하도록 [디스펠]을 사용해 일시적으로 교주의 마법을 지워버렸다.

세 명의 캐릭터가 한 번씩 돌아가며 사용한 스킬들.

그 효과는 뛰어났다.

“헉!!”

성기사 수십 명이 일시에 허물어지며 길을 열었고, 교주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처치한 성기사의 수(196/200)]

그리고 한계점이 목전에 다다른 그 순간.

[체화 해제]

[용기탱천]

[스킬 : Lv 1. 용기탱천 - 5분 동안 착용자의 스탯과 스킬 효과를 2배 증가시킵니다. 보유 마나 20% 소모. 쿨타임 24시간.]

한상우는 뻥 뚫린 길을 내달리며 용족 군단장의 갑옷의 봉인을 해제하고 [용기탱천]을 사용했다.

한상우의 옷 위로 입혀지는 검붉은 가죽 갑옷.

동시에 온몸에 힘이 넘쳐나면서 시계(視界)가 느려지고 오감이 예민하게 변했다.

짧은 시간 능력치가 폭발적으로 상승하다 보니 모든 감각이 민감해진 것이다.

느려지는 시계 속 한상우는 교주에게 쇄도한 뒤, 온 힘을 다해 화산검을 휘둘렀다.

[분화]

[반월 베기]

[만월 가르기]

[급소 찌르기]

남은 기회가 없는 만큼 한상우는 이 순간 낼 수 있는 전력을 있는 힘껏 쏟아부었다.

[제국기사단의 검술의 연계기가 완성됐습니다.]

[연계 효과 : 월광 폭발]

콰아아아아아앙-!!

“흐아아아악!!”

화산검에서 시작된 푸른 화염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성기사들과 예배당을 집어삼켰고.

[악마에게 영혼을 판 기만의 교주(SSS)를 처치했습니다.]

[군주의 특성, 독존이 발동합니다.]

[경험치 20배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모든 스탯 +3을 획득합니다.]

결국엔 첨탑까지 무너뜨리며 교주를 소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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