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2화
12장 그릇된 믿음(6)
쿠구구구궁-!!
굉음과 함께 피어나는 흙먼지.
예배당에서 시작한 먼지구름이 마을 전체로 퍼져나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용기탱천]으로 강화한 [월광 폭발]의 위력은 그 정도로 막강했다.
SSS급 보스 몬스터뿐만 아니라 첨탑과 예배당까지 무너뜨렸다.
그야말로 쑥대밭이 된 주변.
“콜록, 콜록. 위력이 세진다고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네.”
물론, 스킬을 사용한 한상우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대부분의 스킬엔 시전자를 보호하거나 충격을 상쇄하는 효과가 깃들어 있으니까.
무사한 건 소환 캐릭터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만렙이라 이 정도 충격에는 큰 타격을 입지 않기도 했고.
[캐릭터 : 땡길거야가 동료 보호를 해제합니다.]
땡길거야가 [동료 보호]로 다른 캐릭터들을 보호해줬기 때문이다.
다만, 이를 못마땅하게 보는 이도 있었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깡통 기사. 난 이런 보호를 받을 정도로 약하지 않아.”
“착각하지 마라, 암살자. 어디까지나 잡일을 할 잡부가 다치면 안 돼서 보호한 것뿐이니까.”
“뭣이라?”
땡길거야는 다크어둠의 투정을 간단하게 받아친 뒤, 한상우에게 다가가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주군.”
“멀쩡해. 다들 다친 곳 없지?”
“예. 저도 괜찮습니다, 로드. 예배당 바깥까지 충격이 퍼지긴 했지만, 폭발할 땐 보호막을 쳐서 피해가 없도록 조치했습니다.”
“잘했어, 매직킹. 제장이는 첨탑에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잘 내려왔나?”
“네! 수호 기사님께서 신경 써주신 덕분에 저랑 아기도 무사해요, 군주님!”
한상우의 질문에 잔해 뒤편에 가려져 있던 제장이가 폴짝 뛰어 나타나며 대답했다.
첨탑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폭발이 일어나기 직전에 땡길거야가 [동료 보호]를 걸고, [끌어오기]로 땅으로 내려줘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과정도 크게 위협적이진 않았는지 아기는 울지도 않고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다친 이 하나 없이 무사히 끝난 전투.
한상우는 폐허가 된 주변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야. 쓰러진 성기사들은 의식을 잃은 건가?”
“맞습니다, 로드. 목숨을 잃은 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기절한 상태입니다. 천만다행이에요. 만약 폭발에 휩쓸려서 교주가 죽기 전에 성기사들이 먼저 목숨을 잃었다면…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을 테니까요.”
“그건 그래.”
매직킹의 말에 한상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간당간당하긴 했다.
교주를 처치하기 직전, 처치한 성기사의 수는 196명이었으니까.
그래도 천만 다행히도 한계점인 200명이 되기 직전.
[퀘스트 완료]
[교주를 처치하여 망자의 한을 풀었습니다.]
[교주를 처치하여 망자의 한을 풀어주세요(1/1)]
퀘스트가 완료되면서 페널티도 사라졌다.
그리고.
“으으, 여긴 대체….”
“아이고, 머리야. 내가 왜 이런 데 누워 있는 거지?”
“저 사람들은 누구지? 마을은 왜 쑥대밭이 된 거고?”
남은 성기사 백여 명도 제정신을 찾는 듯했다.
교주의 세뇌와 신성의 힘에 잠식당해 바뀌었던 외형도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상우와 캐릭터들을 보고도 아까처럼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도 않았다.
그 모습에 한상우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 줘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그럴 필요는 없었다.
“아가!!”
“다들 괜찮으십니까!”
지하 수용소에서 나와 근처 마을 어귀에서 전투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던 수용자들이,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폐허가 된 예배당으로 온 것이다.
수용자와 마을 사람들은 제장이가 안고 있는 아기와 정신을 차린 성기사들을 챙기더니 한상우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낯선 이방인이시여. 교주를 처치해주신 덕분에 다들 정신을 차렸어요.”
“저희의 은신이십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저희 마을이 워낙 가난하여 어떻게 보답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먼저 식사라도 하시지 않겠습니까?”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든 감사를 표하려 했지만, 한상우에겐 필요 없는 것이었다.
한상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그냥… 마음만 받도록 하죠.”
“그렇다면 혹시 존함이라도 알려줄 수 있으시겠습니까? 마을에 기록해 대대손손 기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럴 필요까진….”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용족 던전 때도 그랬지만, 식사 대접을 거절하자 마을 사람들은 이름이라도 알려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왠지 이것마저 거절하면 더 귀찮아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상우는 머쓱함에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제 이름은… 한상우입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한상우 님의 이름은 저희 마을 앞 비석에 새겨 길이길이 기억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한상우에게 꾸벅 인사한 다음, 성기사와 아기를 데리고 마을로 돌아갔다.
감사를 표하는 건 마을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아아, 드디어 잘못된 일이 바로 잡혔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낯선 이방인이시여.
마을 사람들이 돌아간 뒤로 허공에 일렁이는 영혼이 생겨나더니 한상우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누군지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클라코… 맞죠?”
영혼의 기운만으로도 정체를 알 수 있었으니까.
한상우의 말에 클라코의 영혼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제가 남긴 흔적을 보고 한을 풀어 주시다니….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군요.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네요.
클라코는 손바닥을 펼치더니 웬 하얀 기운을 한상우에게 흘려보냈다.
그러자.
[교주를 처치하여 망자의 한을 풀어주세요(1/1)]
[한 많은 망자가 감사의 의미로 보상을 수여합니다.]
[막대한 양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
[레벨이 상승합니다!]
[모든 스탯 +2를 획득합니다.]
무수히 많은 레벨업 메시지가 떠올랐다.
-살아생전 제가 모았던 경험치입니다. 비록 얼마 안 되는 양이지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그럼 이만….
“예상치 못한 선물이로군요. 감사합니다. 편히 쉬시기를….”
짧은 대화를 끝으로 클라코의 영혼은 조금씩 빛나는 가루로 흩날리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그 뒤로.
“엄청난 성장을 이룩하셨군요. 감축드리옵니다, 주군.”
“점점 강대해지시는군요, 마스터.”
캐릭터들이 박수까지 치며 축하해주었다.
확실히 그럴 만했다.
한상우가 상태창을 열자.
[상태창]
[이름 – 한상우]
[레벨 – 342]
무려 40레벨 넘게 상승한 레벨이 눈에 들어왔다.
시스템이 클리어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던 던전이었던 만큼, 돌아오는 보상 역시 컸다.
그리고 보상은 이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신성의 힘’ 던전을 클리어하여 군주의 힘이 강화되었습니다.]
[퀘스트 완료 보상이 수여됩니다.]
[캐릭터 스킬 레벨 상승 선택권을 획득했습니다.]
클라코의 한을 풀어줘서 얻은 경험치와는 별개로 던전 클리어 보상도 획득한 것이다.
한상우는 메시지를 클릭해 새로 얻은 보상을 확인해봤다.
[캐릭터 스킬 레벨 상승 선택권]
[소환 가능한 캐릭터의 스킬 중 하나를 선택하여 스킬 레벨을 한 단계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음, 이건 좀 애매하네.’
분명 좋은 보상인 건 맞았다.
캐릭터의 스킬 레벨을 올리면 캐릭터가 좀 더 강해질 텐데, 그건 자신이 전투에서 강해진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으니까.
다만 캐릭터의 스킬은 개수가 너무 많고, 또 하나만 등급을 상승시킬 수 있다 보니 어떤 걸 올려야 가장 효용이 좋을지 파악하기도 힘들었다.
‘쯧, 차라리 아이템을 강화하는 거면 좋았을 텐데. 아니, 잠깐….’
그런데 아쉬움에 혀를 차던 그때,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한상우는 곧장 보상을 사용해봤다.
[캐릭터 스킬 레벨 상승 선택권을 사용하셨습니다.]
[스킬 레벨을 상승시킬 캐릭터를 선택하세요.]
[땡길거야] [다크어둠] [제장이] [매직킹]
[캐릭터 : 제장이를 선택하셨습니다.]
[내려찍기]부터 [강철 전격]까지.
제장이를 선택하자 스킬 목록이 촤르륵 떴다.
‘선택할 스킬은 이거다!’
한상우는 그중 아이템의 등급을 상승시킬 수 있는 스킬, [격상]을 클릭했다.
아이템을 강화하는 보상을 얻진 못했지만, 아이템의 등급을 상승시키는 스킬을 업그레이드한다면 분명 아이템 강화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킬 : 격상을 선택하셨습니다.]
[격상의 스킬 레벨이 상승합니다.]
[조건 달성]
[스킬 레벨 상승에 따라 스킬 격상의 횟수가 충전됩니다.]
[스킬 : Lv 2. 격상 – 대장장이의 긍지를 발휘해 아이템의 등급을 영구적으로 한 단계 상승시킵니다. 충전형 스킬로써 충전 횟수가 존재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충전 횟수 : 1]
[충전 횟수는 재료 획득과 레벨 상승 등 특정 조건 달성 시 증가합니다.]
그리고, 한상우의 예측은 적중했다.
“엇! 군주님, 갑자기 [격상]이 강해졌어요!”
[격상]에 보상을 사용하자 스킬 레벨이 상승하면서 충전 횟수가 증가했다.
“좋아, 바로 강화해볼까? 할 수 있지, 제장아?”
“네! 맡겨만 주세요, 군주님!”
한상우는 지체하지 않고 업그레이드할 아이템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화산검.
지난번에 화산방패를 업그레이드하기도 했고, 상대하는 몬스터가 S급 이상이 되면서 일격에 죽지 않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다 보니 검의 등급을 올리는 게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멋진 선택이십니다, 로드.”
“동의합니다, 마스터.”
캐릭터들도 옆에서 한상우의 판단을 지지해 주었다.
“우리가 도와줄 건 없나, 꼬마 대장장이?”
“괜찮아요, 수호 기사님! 혼자서도 잘할 수 있어요!”
[격상]을 사용하기 전에 땡길거야가 필요한 걸 물었지만, 제장이는 손사래를 치더니 망치와 모루를 소환해냈다.
그리고 한 손에는 망치를, 다른 한 손에는 화산검을 들어 제련을 시작했다.
“시작하겠습니다!”
[캐릭터 : 제장이가 격상을 사용합니다.]
[격상 효과를 받은 아이템의 등급이 상향됩니다.]
[완성까지 남은 시간 – 18시간]
[시간 단축 재료 : 강철 골렘의 심장]
[시간 단축 재료 1개당 제작 시간이 6시간 단축됩니다.]
깡-! 깡-!!
폐허가 된 던전 안에서 울려 퍼지는 쇳소리.
“확실히 많이 줄어들었네.”
한상우는 화산검 위로 떠 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턱을 매만졌다.
전승 등급에서 영웅 등급으로.
화산방패를 업그레이드할 때와 조건은 같았지만, 스킬 레벨이 상승해서인지 남은 시간이 24시간에서 18시간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달라진 점이 하나 더 있었다. 다크어둠이 그 점을 기억하고 한상우에게 말했다.
“마스터, 시간 단축 재료의 품목도 달라진 것 같습니다.”
“우와, 암살자님 기억력 완전 좋으시네요! 맞아요, 시간 단축 재료는 강화하는 아이템마다 달라요!”
다크어둠의 말에 제장이가 제련하며 감탄했다.
다만 한상우는 시간 단축 재료 변경에 크게 기뻐하지 않는 얼굴이었는데, 매직킹은 재빠르게 눈치챘다.
“저거, 예전에 나왔던 것보다 비싸지 않을까 싶은데요. 맞습니까, 로드?”
“응, 맞아. 하누이트의 꼬리보다 강철 골렘의 심장이 더 비싸.”
“그럼 전에 길드 사무실에 방문했던 여인에게 부탁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주군. 그때 꼬마 대장장이가 받았던 것처럼요.”
한상우의 말에 땡길거야가 바로 해결책을 제시했다.
나름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한상우는 고개를 가로저은 뒤.
“매번 부탁할 순 없지. 그리고 이제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
아이템으로 가득 찬 인벤토리를 열어보며 말을 이었다.
“이제 차고 넘칠 정도로 쌓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