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116화 (116/169)

제116화

13장 기지개(4)

“음? 충성도 업적?”

갑작스러운 메시지의 등장에 한상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충성도 업적이라니.

현재 진행하고 있는 군주의 업적과는 또 다른 종류의 업적인 듯했다.

한상우는 연속해서 떠오르는 추가 설명들을 바라봤다.

[캐릭터 소환을 24시간 유지하세요.]

[소환 캐릭터 수는 제한이 없으나 교대하여 수행할 수는 없으며 소환시간이 합산되지 않습니다.]

[중간에 캐릭터 소환을 해제할 시, 해당 캐릭터가 수행하던 업적 달성도는 0%로 초기화됩니다.]

‘음, 한 마디로 캐릭터 한 명의 소환을 24시간 동안 유지하라는 뜻이네. 소환 시간은 캐릭터 별로 공유되지 않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퀘스트였기에 조금 복잡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소환 시간에 관련된 업적은 게이머로서 익숙했다.

그렇게 한상우가 새로 부여받은 히든 업적을 분석하는 모습에.

“군주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고민이 있어 보입니다, 로드.”

매직킹과 제장이가 물어왔다.

한상우는 잠시 고민을 이어가다가 조용히 물어봤다.

“너희, 소환된 상태… 그러니까, 이 세계에서 24시간을 있으면 어떨 것 같아?”

“군주님과 함께라면 얼마든지 좋아요!”

“저희는 로드의 주변 상황과 감정을 어느 정도 직감적으로 공유할 수 있습니다. 자세하게 알진 못하지만요. 아마 지금은, 저희 중 하나와 오랜 시간 같이 있어야 하는 무언가의 이유가 있으신가 보군요.”

예전부터 짐작은 했던 것이지만, 캐릭터들은 기본적으로 한상우의 주변 상황이나 생각, 감정 등을 어느 정도 공유받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덕분에 긴박한 상황에서도 빠르게 대응이 가능했던 거고.

게다가 매직킹은 특유의 통찰력으로 한상우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모습이었다.

깊게 고민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맞아, 정확해. 그럼 누구의 소환을 유지하는 게 좋을까?”

“지금은 저희 둘뿐이니, 암살자님과 수호 기사님도 부르면 좋을 것 같아요!”

“좋아, 그럼 얘기가 빠르겠네. 다들 잠시 나와 볼래?”

[캐릭터 소환 : 땡길거야]

[캐릭터 소환 : 다크어둠]

[비전투 모드가 활성화됩니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스터.”

한상우는 내친김에 땡길거야와 다크어둠까지 소환했다.

24시간 동안 소환을 유지하면서도 위험한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만큼, 마나 소비를 최소화해 적절한 한 명만을 소환할 필요가 있었다.

“넷 중에 24시간 동안 소환된 상태로 나랑 있을 사람 있어?”

“저요, 저요! 제가 할게요, 군주님!”

“선발주자로 다재다능한 제가 제격이 아닐까요, 로드?”

“제국을 수호하는 기사는 휴식 없이 24시간 경계 근무도 가능합니다, 주군.”

“제가 깡통 기사보단 나을 겁니다, 마스터.”

생각보다 경쟁이 치열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자신을 어필하며 24시간 소환을 자처한 것이다.

고마운 일이긴 했으나 모두가 찬성하는 모습을 보자니 묘하게 어색했다.

한상우가 볼을 긁적이며 물었다.

“다들 나서주니 고맙긴 한데… 내 눈치 봐서 마음에 없는 소리 하는 건 아니지?”

“아니에요, 군주님!”

“저는 오직 진실만 말합니다, 로드.”

한상우는 상사의 말에 무조건 좋다고 하는 부하 직원들처럼, 혹시 캐릭터들도 그런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말하면 어쩔 수가 없었다.

제장이와 매직킹은 곧바로 부인했고.

“깡통 기사는 귀족이라 입에 발린 허례허식뿐이지만 저는 다릅니다, 마스터.”

“사기와 기만이 판치는 뒷골목의 암살자가 거짓을 운운하다니. 모순되기 짝이 없군.”

“입으로는 정의와 평화를 외치지만 약자를 멸시하는 기사들에 비하면 양반이지.”

다크어둠과 땡길거야는 캐릭터 소환 유지에 선발되기 위해 서로를 깎아내렸다.

물론, 좋은 효과는 나지 않았다.

“수호 기사와 암살자는 매번 다투기만 하니 속 편하게 저를 쓰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로드?”

“저는 말 잘 들어요, 군주님!”

“하긴, 땡길거야와 다크어둠이 유난히 앙숙이긴 하지.”

둘이 싸우는 틈을 타 제장이와 매직킹이 파고들었다.

한상우도 그 의견에 동의하는 듯 한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간 너무 싸운 것 같군, 제국의 수호 기사여.”

“동의한다. 잠시 체통을 잊었던 것 같군.”

땡길거야와 다크어둠이 잠시 멈칫하더니 빠르게 태도를 바꾸었다.

드디어 화해하는 것일까.

한상우는 그런 기대를 가지고 두 사람을 쳐다봤는데.

“하지만 기사 전체를 모욕하는 발언은 선을 넘은 것이었다, 암살자여. 이번엔 특별히 봐줄 테니 다음부턴 조심하도록.”

“…머리까지 깡통이라 그런가? 역시 네놈은 유연성이라고는 조금도 없군.”

“깡통? 모처럼 자비를 베풀어 줬더니, 제대로 한판 해보자는 건가?”

휴전은 10초도 안 되어 깨지고 말았다.

한상우는 답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그냥 내가 정하는 게 낫겠네. 땡길거야, 앞으로 24시간 동안 소환 유지다. 괜찮지?”

“예. 240시간도 무리 없습니다, 주군.”

땡길거야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화산검도 업그레이드를 했겠다, S급 던전을 돌아 다음 퀘스트 완료를 위한 레벨업을 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공수 밸런스가 출중해 단독으로 쓸 수 있는 땡길거야의 소환을 유지하는 게 좋았다.

다행히 생각보다 반발도 크지 않았다.

“마스터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따르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제가 깡통 기사보다 훌륭하다는 걸 꼭 증명하겠습니다.”

“그래. 기회는 공평하게 있을 테니까 다들 너무 서운해하진 마.”

“예, 군주님!”

“저의 마음은 우주와 같아 서운함을 느끼진 않습니다, 로드.”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소환을 유지할 캐릭터를 선정이 끝났다.

한상우는 땡길거야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캐릭터의 소환을 해제했다.

그런데 던전 입찰을 위해 휴대폰을 꺼내려던 그때.

-똑똑똑

“한상우 헌터님, 안에 계세요?”

갑자기 누군가 찾아왔다.

익숙한 목소리에 한상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출입구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이은하 헌터님?”

“안녕하세요, 한상우 헌터님! 오랜만에 뵙네요. 아이템 드리러 왔어요.”

“예? 아이템이요?”

문 앞에는 이은하가 커다란 가방을 든 채 서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찾아와서 아이템이라니 무슨 얘기일까.

머리를 굴려도 나오지 않는 답에 한상우는 멀뚱멀뚱 서 있기만 했다.

그러자 이은하가 서둘러 설명을 덧붙였다.

“아,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해요. 연락이 안 돼서, 혹시나 하고 사무실로 찾아왔어요. 신대훈 과장님이 휴대폰으로 메시지도 보냈는데 혹시 못 보셨나요?”

“잠시만요.”

이은하의 말에 한상우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확인해봤다.

그런데.

휴대폰이 박살 나 있었다.

아침까지 분명 멀쩡하게 사용했는데 아무래도 유칼 길드 일당을 교육할 때 파손된 듯했다.

“어…. 고장이 나서 확인을 못 했네요.”

“그러셨군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으실까요?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네, 괜찮습니다. 안에서 얘기하시죠.”

한상우는 길드 사무실로 이은하를 안내했다.

비록 지금 사무실 안엔 땡길거야가 소환된 상태지만.

“친구분도 계셨네요. 힘들 때마다 항상 도와주셔서 감사드려요.”

이은하와는 여러 번 마주쳤기에 보여줘도 큰 무리가 없었다.

꾸벅.

땡길거야도 이은하를 보며 묵례를 했다.

한상우는 이은하를 데리고 회의실로 들어간 뒤, 자리에 앉으며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이템을 준다고 하셨는데, 어떤 거죠?”

“그냥 보여드리는 게 빠를 것 같네요.”

이은하는 들고 온 가방에서 웬 커다란 보자기를 꺼내더니 책상 위에 올려놨다.

한상우는 이은하가 건네는 보자기를 풀어 안에 든 물건을 확인했다.

그녀가 가져온 것은.

[분쇄의 건틀릿]

[등급 : 신화]

[효과 : 공격력 +420]

[스킬 : Lv 3. 공간 왜곡]

[스킬 : Lv 3. 공간 파동]

[공간 지배력 – 0%]

[공간 지배력은 건틀릿을 착용한 후, 스킬 사용을 시도하면 1회에 0.01%씩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매일 1%씩 자동 감소합니다.]

[지배자의 존엄 – 공간 지배자의 자존심이 깃든 건틀릿입니다. 손에서 공간이 창출되기에 다른 무기를 쥐거나 사용할 경우, 스킬 사용이 제한됩니다.]

[지배자의 분쇄 – 희소 등급 이하의 아이템은 10회 타격 이내로 파괴합니다.]

마강진의 건틀릿이었다.

한상우가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이건….”

“맞아요. 마강진의 건틀릿이에요. 원래 헌터 사후, 유품은 가족이나 소속 길드에 우선권이 있어요. 하지만 마강진은 블랙리스트 헌터이기에 소속 길드나 가족은 확인 자체가 안 되죠. 그래서 한상우 헌터님처럼 민간 헌터가 처치한 경우, 두 보상 중 하나를 선택하실 수 있어요.”

“두 가지 보상요?”

“하나는 해당 아이템을 받으시는 거고, 또 하나는 해당 아이템의 등급 평균가로 책정한 보상금을 받으시는 거예요.”

“그랬군요. 전투 중 소멸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요.”

“죄송합니다. 원래 더 일찍 가져다 드렸어야 하는데, 사건이 워낙 컸다 보니 뒷수습을 하는 데에 시간이 걸려서….”

“아니요,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사실 좀 이상한 부분도 있긴 해요. 루미나스 헌터들은 죽으면 아이템도 함께 소멸되는데, 이상하게 이 건틀릿은 소멸하지 않았거든요.”

이은하가 가지고 온 것은 마강진의 건틀릿이었다.

이은하는 죄송하다고 했지만, 오히려 생각하지 못하던 부분이라 뜻밖의 이득을 본 기분이었다.

이은하의 말대로, 지금까지 싸웠던 루미나스 헌터들은 어째서인지 사망 후 장비를 남기지 않았다. 그나마 남긴 것은 열쇠 조각과 펜던트 정도뿐.

그래서 당연히 마강진의 건틀릿도 소멸되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한상우가 건틀릿을 살펴보는 사이, 이은하의 설명이 이어졌다.

“물론 아이템을 택하시든, 보상금을 택하시든 전적으로 한상우 헌터님의 자유예요. 보상금을 택하시면 건틀릿은 헌터청에서 보관할 예정이구요.”

“상세하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답변드리겠습니다. 이건 제가 갖겠습니다.”

한상우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바로 결정했다.

사용할 구석이 있다면 사용하면 되고, 필요가 없거나 돈이 필요하면 그때 팔면 그만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럼 한상우 헌터님께서 수령하시는 걸로 할게요.”

“네. 부탁드립니다.”

건틀릿을 착용해볼 것도 없었다.

설명을 봤을 때, 건틀릿을 다루기도 어려워 보일뿐더러, 지금 한상우의 주력인 검과 방패의 사용도 제한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검술의 경험과 전투 스타일이 있고, 아직 성장할 여지가 남아 있는데 아이템을 활용하기 위해 무리해서 격투를 익히는 건 오히려 비효율적이었다.

아무리 신화 등급이라고 해도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이 있으니까.

한상우는 훗날을 기약, 건틀릿을 보자기에 싸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이은하 헌터님. 선물이라도 받은 기분이네요”

“아니에요! 감사는 제가 드려야죠. 한상우 헌터님이 안 계셨더라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피해가 벌어졌을 테니까요.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어요.”

오가는 덕담 속, 이은하는 활짝 웃더니 품에서 웬 카드를 하나 꺼내 한상우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뭐죠?”

“아파트 키예요. 헌터청의 SS급 헌터들에게 제공되는 혜택이죠.”

카드에 적힌 주소를 확인해 보니, 강남 소재의 고층 신축 아파트였다.

대헌터시대 이후 얻은 신기술이 적용된, 보안과 안전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초고가의 아파트.

“감사합니다. 마침 좀 더 넓은 집이 필요했는데 잘됐네요.”

사무실 안의 분위기는 점점 화기애애졌다. 하지만 이러한 공기도 오래가진 못했으니.

우우우웅-

“아…. 아쉽지만 먼저 일어나 봐야 할 것 같아요. 출동 요청이 들어왔네요.”

갑자기 이은하의 휴대폰이 울리면서 일이 생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많이 바쁘시군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 같네요. 어쨌든 반가웠어요. 다음에 또 봬요, 한상우 헌터님.”

“저도 반가웠습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이은하 헌터님.”

한상우는 이은하를 배웅한 뒤, 마강진의 건틀릿을 인벤토리에 넣고 나갈 준비를 했다.

‘나도 슬슬 일하러 가볼까.’

여러 선물을 받고 나니 다른 사람들에게 좀 더 도움이 될 수 있게 강해져야겠다는 기분이 든 탓이었다.

“땡길거야, 준비됐지?”

“예, 주군.”

한상우는 사무실 구석, 제장이의 간이 대장간에서 검을 닦고 있던 땡길거야를 불렀다.

그리고.

특별 S급 헌터의 혜택인 던전 우선 입찰권을 활용해 S급 No. 515 던전을 입찰받은 뒤.

“가자, 던전으로.”

다음 레벨업을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