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8화
15장 스타의 삶(10)
* * *
스산한 바람이 부는 동굴 안.
촤아아악-!
“키에에에엑!!”
[굶주린 마계의 타란툴라(SS)를 처치했습니다.]
[군주의 특성, 독존이 발동합니다.]
[경험치 30배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체력 +1을 획득합니다.]
화산검을 휘두르며 땅에 착지하자 메시지들이 촤르륵 떠올랐다.
그 뒤로.
“이곳에 보스 몬스터가 있었군요. 첫 번째 방을 클리어하고 왔습니다, 주군.”
“두 번째 방에 있던 몬스터도 모두 처치했습니다, 마스터. 통로가 길어서 그렇지, 제가 수호 기사보다 조금 더 빨랐습니다.”
“네 번째 방도 모두 정리하였습니다, 로드.”
“다섯 번째 방도요! 꼬마 대장장이랑 같이 해치웠습니당, 사장님!”
“그래, 다들 고생 많았다.”
캐릭터들이 각자의 성과를 보고하며 내가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별칭 복불복 거미 던전.
유상준이 잡아준 SS급 던전은 거미 몬스터를 처치해야 하는 섬멸형 던전으로, 총 다섯 개의 방 중 단 한 곳에만 보스 몬스터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보스 몬스터가 어디서 젠 되는지 알 수 없고, 보스 방끼리의 거리도 멀어 헌터들이 기피하는 던전.
그러나 내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보스 몬스터가 나오는 곳이 복불복이라면 한꺼번에 들어가서 처치해 버리면 되니까.
물론 이는 SS급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단신으로 처치할 정도의 실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지만.
나와 캐릭터들은 그것이 가능했다.
그렇게 나는 캐릭터들을 이용해 계속해서 던전을 클리어했고.
[상태창]
[이름 - 한상우]
[레벨 - 595]
레벨을 595까지 올리는 성과를 이룩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온 지도 사흘.
그동안 나는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거미 던전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EX급 던전 레이드를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헌터들이 도착하기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그때까지는 자유 시간이었기에 나는 레이드를 택했다.
EX급 던전의 난도가 SSS급 던전보다 높을 것으로 추측되기에, 진입 전 최대한 레벨을 올리는 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원정대의 대장이라는 직책과 고랭크의 헌터들이 모인 상황이다 보니, 걸림돌이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SS급 던전이요? 알겠습니다. 대외적인 부분은 저희에게 맡기세요. 정말 한순간도 쉬지를 않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강철만 헌터님.
-뭘요. 저희는 한 팀으로 왔으니, 각자 잘할 수 있는 걸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사우디의 던전을 들어가겠다고 하자, 강철만은 흔쾌히 원정대장 대리의 역할을 맡아주었다.
대장인 이상 왕세자와 인사를 나누었던 것 같은 대외적인 일들도 적지 않았는데, 그런 일들을 모두 강철만이 나서주었다.
혹시 다른 헌터들도 SS급 던전에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다행히도 다른 헌터들이 EX급 던전을 앞두고 휴식과 정비를 하며 컨디션 조절에 전념했기에 기우에 그쳤다.
그들 입장에서, 며칠 동안 SS급 던전 좀 돈다고 해서 크게 강해지는 건 아닐 테니까.
물론 나에게는 [독존]이 있었기에, 사정이 완전히 달랐다.
나는 던전 하나를 돌면 혼자서 30배의 경험치를 독식하기에 단 며칠만으로도 큰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또 그러한 과정 속에서 나만 레벨업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이어만큼은 아니지만 부캐인 캐릭터들도 경험치를 먹고 성장한다.
이번 레이드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캐들을 참여시켰는데, 특히 제장이의 성장이 도드라졌다.
[캐릭터 : 제장이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제장이의 레벨이 700이 되었습니다.]
[조건 달성]
[스킬 : 대장장이의 일격이 개방됩니다.]
[스킬 격상의 횟수가 충전됩니다.]
[스킬 : 격상 – 대장장이의 긍지를 발휘해 아이템의 등급을 영구적으로 한 단계 상승시킵니다. 충전형 스킬로써 충전 횟수가 존재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충전 횟수 : 1]
[충전 횟수는 재료 획득과 레벨 상승 등 특정 조건 달성 시 증가합니다.]
“오옷! 군주님! 저 예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 같아요! 격상 횟수도 충전됐고요!”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고 나니 제장이의 레벨이 딱 700이 되었다.
나는 제장이의 상태창을 살펴봤다.
[캐릭터 명 - 제장이]
[레벨 - 700]
[직업 - 대장장이]
<스탯>
[힘 : 680] [민첩 : 455] [지력 : 280] [체력 : 720] [마력 : 315]
<스킬>
[꼬마 대장장이의 축복] [꼬마 대장장이의 용기] [내려찍기] [올려치기] [강철 전격] [격상] [제련] [거래] [망치 던지기] [망치 회수하기] [철의 분노] [대장장이의 일격]
[충성도 – 735 / 999]
처음엔 창고용이었던 캐릭터가 어느새 늠름한 고렙으로 성장해 있었다.
이 정도 능력치면 이젠 SSS급 몬스터도 혼자서 때려잡을 수 있을 듯했다.
쪼렙에서 만렙까지 점점 성장하는 제장이를 보자니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래, 이 맛에 캐릭터 키우는 거지.’
요즘 만렙 캐릭터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서 느끼지 못했지만, 역시 게임의 재미는 성장에 있었다.
그리고 제장이의 성장은 나한테도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다 보니 재미가 더욱 배가되었다.
“대단한데? 좋아, 바로 격상을 써보자.”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나는 [격상]을 지시했고, 제장이는 간이 모루를 소환해 아이템을 업그레이드시킬 준비를 했다.
그사이.
“축하드립니다, 마스터. 꼬마 대장장이가 한층 성장했군요.”
“축하해, 꼬마 대장장이야! 저희는 전리품 수거해서 오겠습니당, 사장님! 수호 기사님, 암살자님, 마법사님! 같이 가실래용?”
“그래, 연금술사여. 끝 지점엔 함정이 있으니 암살자인 이 몸이 해제하고 수거하도록 하지.”
“잠시 연금술사와 다녀오겠습니다, 로드.”
다른 캐릭터들은 제장이의 성장을 축하하더니 바닥에 널브러진 아이템을 수거하러 갔다.
나는 멀어지는 네 캐릭터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 뒤, 제장이에게 등급을 상승시킬 아이템을 선정했다.
이번에 업그레이드시킬 아이템은 바로.
[대현자의 팔찌]
[등급 : 전승]
[효과 : 지력 +30, 마력 +60, 마법 저항 +8]
[추가 효과 1 : 마나 증가 - 착용자의 최대 마나를 25% 증가시켜 줍니다.]
[추가 효과 2 : 마법사의 지혜 – 스킬 사용에 소모되는 마나의 양을 35% 감소시켜 줍니다.]
[추가 효과 3 : 현자의 비호 – 착용자에게 가해지는 마법 스킬의 피해량을 5% 감소시킵니다.]
대현자의 팔찌였다.
사실 등급만 생각하면 현재 영웅 등급으로 신화 등급이 코앞인 화산검이나 랑데르크의 대검, 거인족장의 허리띠를 업그레이드하는 게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완료 시간도 생각해야 돼. 어떤 재료 아이템이 필요할진 모르지만 여기선 구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등급이 오를수록 [격상]의 시간도 늘어났다는 점과 EX급 던전 진입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전승 등급인 대현자의 팔찌를 업그레이드시키는 게 가장 안전했다.
EX급 던전 레이드를 하는데 사람들 앞에서 제장이의 [격상]을 광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또한 EX급 던전 공략이 얼마나 장기화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소환의 유지를 위해 마나를 늘려도 아쉬울 건 전혀 없었다.
나는 팔찌를 풀어서 제장이에게 건네주었고.
“제장아, 이걸로 부탁한다.”
“네, 군주님! 바로 격상 진행하겠습니다!”
제장이는 모루 위에 팔찌를 올린 뒤, 작은 망치를 내려치며 업그레이드를 시작했다.
깡-! 깡-!
[캐릭터 : 제장이가 격상을 사용합니다.]
[격상 효과를 받은 아이템의 등급이 상향됩니다.]
[완성까지 남은 시간 – 20시간]
[시간 단축 재료 : 지혜의 꽃]
[시간 단축 재료 1개당 제작 시간이 2시간 단축됩니다.]
묵직한 망치질과 함께 떠오른 메시지.
과연 대현자의 팔찌의 [격상] 시간은 24시간이었던 신화 등급 업그레이드보다는 낮았다.
다만.
‘음, 시간이 간당간당하겠는걸. 지혜의 꽃도 꽤 희귀한 아이템이라 사우디에서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예전에 전승 등급을 업그레이드시킬 때보다 시간이 좀 더 길어졌고, 시간 단축 재료도 구하기 힘든 것이었다.
내가 보유하고 있는 것 중에서 나왔다면 참 좋았을 텐데,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가 재료를 구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보스 방 한가운데에 생긴 탈출 포탈을 보고, 나갈 준비를 하며 물었다.
“제장아, 소환을 해제하면 격상은 어떻게 되지?”
“격상의 진행 시간이 그대로 멈춰요! 격상 진행 중인 장비도 사용할 수 없고요.”
확실히 대현자의 팔찌를 빼자 비전투 모드임에도 마나 소모 속도가 빨라졌다는 게 체감이 됐다.
만약 레이드를 진행하면 지금처럼 여유롭게 캐릭터들을 운용할 수는 없으리라.
“그래, 아쉽지만 나머지는 밖에 나가서 하자.”
“네, 군주님!”
나는 제장이의 소환을 해제하고 나머지 캐릭터들이 가져온 아이템을 수거한 뒤, 매직킹의 [매스 텔레포트]를 써서 호텔로 이동했다.
그리고.
유상준에게 전화를 걸어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한상우 헌터님!”
유상준이 오기까지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나는 복불복 거미 던전에서 획득한 아이템들을 보따리에 싼 후, 유상준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SS급 던전에서 얻은 아이템들입니다. 혹시 이걸 처분하고 그 돈으로 지혜의 꽃 10개를 구할 수 있을까요?”
“이 정도면 돈은 오히려 사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다만 지혜의 꽃은 워낙 희귀해서 구하기가 힘든데…. 한상우 헌터님께서 필요하다고 하시니, 암시장을 뒤져서라도 찾아오겠습니다!”
“무리한 부탁을 드려 죄송하지만 시간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 같습니다.”
“예!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믿을 만한 아이템 거래소를 찾아놨으니 되도록 서너 시간 안에는 해결하고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상준 헌터님.”
내가 생각해도 무리한 부탁이었지만, 유상준은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아이템을 한 아름 안아 들었다.
그리고 호텔 방을 나서다 말고 나를 돌아보며 첨언했다.
“아참, 그리고 EX급 던전 레이드에 참여할 헌터들이 모두 입국을 완료했다고 들었습니다. 두 시간 뒤에 왕궁에서 출정식과 헌터 연합 작전 수립 등이 있다고 하니, 한 번 확인하러 가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조금 전에 전달받았습니다. 바로 준비해서 갈 생각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미 연락을 받은 상태였다.
호텔 방에서 유상준을 부르고 나서 기다리던 사이, 신대훈에게서 연락을 받은 참이었다.
EX급 던전에 진입할 헌터들이 모두 입국했으니 잠시 후, 모두 왕궁으로 이동할 준비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헌터 커뮤니티를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알림] 마지막 주자인 영국 등 기타 국가의 EX급 던전 원정대도 킹 칼리드 공항에 도착>
<[속보] 잠시 후, 왕궁에서 EX급 던전 레이드 연합의 출정식 시작>
EX급 던전 레이드 연합에 참여할 헌터들이 모두 도착했으니 출정식이 열린다는 것이었다.
예정보다 조금 더 앞당겨진 시간.
갑작스럽긴 했으나 이해하지 못할 건 없었다. 애초에 EX급 던전 자체가 갑자기 나타났고, 이를 준비할 기간도 촉박했으니까.
“가자, 얘들아.”
“예, 주군.”
“뒤따르겠습니다, 마스터.”
나는 캐릭터들을 대동하고 강철만과 지소영 등 SS급 헌터들과 합류한 뒤, 승합차를 타고 왕궁으로 향했다.
출정식 장소로 가는 길.
같은 차에 탄 강철만이 나를 보고 씩 웃더니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농담을 던졌다.
“긴장되지 않으십니까, 한상우 헌터님?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헌터들이 다 모인다는데.”
“글쎄요. SSS급 헌터가 눈앞에 있어서 그런지, 그다지 대단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네요.”
“푸하핫! 역시 한상우 헌터님의 대담함은 가늠할 수가 없군요. 생각해보면 SSS급 던전도 클리어하신 분인데 제가 괜한 걱정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내 대답에 강철만이 박장대소하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강철만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SS급 헌터가 가진 위상을 생각하면, 갓 SS급이 된 헌터만 해도 그 존재감이 상당히 강력해 위축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각 나라를 대표하는 헌터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다?
긴장되지 않는 게 이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긴장을 하고 싶어도 [평정]의 효과로 마음이 자연스럽게 차분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리 강한 헌터라고 해도, 내가 소환할 수 있는 캐릭터들에 비하면 무서울 게 없었기에 긴장할 필요도 없었다.
“왕궁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잠시 뒤, 출정식이 시작될 예정이니 그전까지는 연회장에 준비된 음료와 다과를 자유롭게 즐기시면서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우디 왕궁에 도착, 널따란 정원에 들어서자 수백 명에 달하는 헌터들이 음료잔을 하나씩 들고 편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중에는.
“바, 반갑습니다! 칼 제이스 님! 같은 팀으로 레이드를 뛰게 되어 영광입니다!”
“별말씀을.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세계 1위의 헌터로 손꼽히는 미국의 SSS급 헌터, 칼 제이스도 있었지만 나는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았다.
실제로 보니 신기하긴 해도 [평정]의 효과 덕분에 함께 전투를 수행해야 하는 동료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비단 칼 제이스뿐만이 아니었다.
“오오, 강철만 헌터님! SSS급 헌터가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강철만 헌터님! 프랑스의 SS급 헌터 가브리엘입니다. 예전에 함께 프랑스에서 SS급 던전을 클리어했는데 기억하시는지요?”
한국의 SSS급 헌터 강철만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주변이 소란스러워질 정도로 각국의 유명 헌터들이 모여들었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제 그 어떤 외적인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경지에 이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세상일은 속단해서는 안 된다고 했던가.
차분하던 내 마음에 약간의 파장을 일으키는 이가 등장했으니 바로.
“반가워요, 한상우 헌터님. 오랜만에 뵙네요.”
셀리나 칸데바.
디바인 실드의 수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