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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149화 (149/169)

제149화

15장 스타의 삶(11)

“…예. 오랜만이네요, 셀리나 칸데바. 근데 여긴 어쩐 일이죠? 당신도 EX급 던전에 들어가는 겁니까?”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셀리나의 인사를 받았다.

세계 유명 헌터들이 다 모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디바인 실드의 수장까지 올 줄은 몰랐다.

그런데.

“아뇨, 제가 직접 참여하진 않습니다. 저는 EX급 던전 레이드에 참여하는 디바인 실드 단원들을 확인하고, 지원하기 위해 왔을 뿐이에요. 이번 EX급 던전 레이드엔 디바인 실드 단원 대부분이 참여하거든요.”

“의외네요. 그렇게 많은 디바인 실드가 참여한다니.”

“의외라니요. 세계 최초로 EX급 던전이 등장했는데, 인류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참여해야죠. 그것이 디바인 실드의 설립 취지니까요.”

셀리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답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었다.

디바인 실드는 국가 단위로 해결하기 어려운 던전이나 헌터 관련 사건들을 해결하는 국제 조직이니, EX급 던전이 나타난 사우디아라비아에 오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한국에 SSS급 던전이 나타났을 땐, 디바인 실드의 설립 취지를 잠시 잊으셨나 봅니다.”

나는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이 원론적으로 틀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디바인 실드는 강남의 SSS급 던전 당시 오지 지원하지 않았던 것일까?

최대천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강철만과 지소영 등 국내 주력 SS급 헌터들의 부재에 따른 지원을 요청했으나, 디바인 실드 측은 한국의 SSS급 던전 레이드는 자신들과 무관한 일이라며 지원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녀가 말하는 설립 취지와 달리, 디바인 실드는 사실상 루미나스 같은 헌터 범죄 단체만을 상대하는 조직이라고 스스로 밝힌 거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EX급 던전이 발생했으니 디바인 실드로서 도와주는 게 당연하다니?

한국의 SSS급 던전 출몰 때와는 다른 태도에 나는 셀리나를 가증스럽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는데,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 듯했다.

강철만에게 인사를 하러 왔던 다른 나라의 SS급 헌터들이 셀리나를 두둔하고 나선 것이다.

“하하, 한상우 헌터님.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한국의 SSS급 던전 같은 경우에는, 시간이 지금보다도 훨씬 촉박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그리고 SSS급 던전은 전례가 있어 클리어하지 않는 것으로 세계가 암묵적인 합의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EX급 던전은 SSS급 이상의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어서, 위험성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전 인류를 위해서 모인 특별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섭섭하신 건 이해합니다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는 합니다.”

“…….”

그들도 디바인 실드 소속인지, 대외적으로 신분을 감추고 있는 셀리나 칸데바에게 먼저 다가와 적극적으로 변호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웃기지도 않군요.”

“뭐, 뭐라고요!?”

“EX급 던전이 예외 상황인 것처럼, 한국의 SSS급 던전 또한 특별한 예외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SSS급 던전은 다른 나라에도 있으니 안 가도 되고, EX급 던전은 가야 한다? 속이 뻔히 보이는 소리를 하실 거면 그냥 지나가시죠.”

“……!”

각국의 헌터들이 EX급 던전 레이드에 참여하는 이유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지급하는 막대한 금액과 정치적 관계 때문이라는 것은 어린아이도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마침 내 말이 사실이라는 듯.

“오오, 저기 봐! 중국의 SSS급 헌터 리 샤오펑이야!”

“라인업 장난 아니군. 사우디아라비아가 위기에 처하니 미국과 중국이 동시에 힘을 보태는 걸 다 보네.”

연회장 입구로 중국의 SSS급 헌터 리 샤오펑이 모습을 드러내자 근처에 있던 헌터들도 정치적 이유를 언급했다.

대헌터시대 이후에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채굴하는 막대한 원유는 인류의 주요한 자원이었다. 그리고 그 자원을 두고 언제나 힘 싸움을 하던 미국과 중국마저 사우디와의 관계를 위해 힘을 합치고 있으니, 결국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이유라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이렇듯 지금의 EX급 던전 레이드는 외적인 이유가 산재해 있다는 걸 모르는 이가 없는데, 이런 식으로 교묘하게 물타기를 해 디바인 실드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하다니.

“여러분, 괜찮습니다. 오해를 할 수도 있지요. 그래도 한국의 SSS급 던전은 한상우 헌터님께서 잘 해결해주셨으니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EX급 던전에서도 많은 활약을 해주시겠죠.”

다른 SS급 헌터들이 교묘하게 디바인 실드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물타기를 했지만, 셀리나는 부정하진 않고 은근히 그들의 주장에 편승했다.

나는 그런 셀리나 칸데바를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때.

“오셨습니까, 셀리나 님.”

“아아, 칼 제이스. 컨디션은 좀 어때요?”

“좋습니다. 조금 전에 신성력을 모두 채워주신 덕분에 날아갈 것 같습니다.”

SSS급 헌터인 칼 제이스도 디바인 실드 소속이었던 것일까.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것을 감지했는지, 미국의 SSS급 헌터 칼 제이스도 다가와 셀리나의 옆에 섰다.

땡길거야와 비슷한, 거대한 체구에 금발과 벽안을 가진 그는 아름드리나무처럼 늠름하게 서더니 무서운 느낌을 주려는 듯,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그러자.

-교묘한 말장난으로 주군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족속들이로군요.

-심기를 심히 거스르는 것 같은데 전부 죽일까요, 마스터?

-저런 기본도 안 된 쓰레기 같은 놈들이 감히 기만을…. 말씀하시면 공허충의 먹이로 만들겠습니다, 로드.

-저는 다시는 허튼소리 못하도록 입을 붙여버리는 포션을 던지겠습니당, 사장님!

내 심경을 느낀 듯 뒤에 서 있던 캐릭터들이 분개하며 전언을 보내왔다.

주변에 수많은 SS급 헌터들이 있지만, 명령만 내린다면 곧바로 전투를 개시할 기세였다.

험악한 말이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았으나, 조금씩 흉흉해지고 있는 분위기.

“하하! 저랑 같이 잠깐 산책 좀 다녀오지 않으시겠습니까, 한상우 헌터님?”

살벌한 공기를 감지한 강철만이 슬쩍 내 옆으로 다가와 자리를 벗어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물러나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고.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 정면으로 맞붙게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꺾이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물론, EX급 던전 레이드를 앞두고 다수의 헌터들과 주먹다짐을 하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건 내가 직접 해결하겠다.’

캐릭터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더 이상, 눈앞의 이들이 보여준 말장난 같은 짓을 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말 대신 기세로 무언의 경고를 보내는 것이었다.

나는 셀리나와 그 옆에 선 칼 제이스를 노려봤다.

그리고.

[압도]

군주의 기세를 방출해 주변에 압박감을 퍼트렸다.

쿠웅-! 화아아아악-!!

반응은 곧장 나타났다.

“……!”

“허업…!”

근처에 있던 SS급 헌터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숨을 멈추었다.

[압도]의 기세를 느끼고 일순간 몸이 굳어버린 것이다.

셀리나와 칼 제이스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만큼 [압도]가 주는 압박감은 강력했는데, 근처에 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거리가 떨어진 곳에 서 있던 헌터들에게도 영향을 준 듯했다.

[압도]를 사용한 순간, 중국의 SSS급 헌터 리 샤오펑도 멀리서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본 것이다.

그러나 놀라는 것도 잠시.

전 세계에서 모인 유수의 헌터들답게 다들 [압도]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각자의 마나를 운용, 몸 주변으로 발산해 [압도]의 압박감을 어떻게든 상쇄하려 한 것이다.

가장 먼저 [압도]에서 벗어난 건 SSS급 헌터 칼 제이스였다.

저벅-

그는 미간을 찌푸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압도]를 이겨냈다는 걸 증명하듯 한 발짝 걸음을 내디뎠다.

동시에 허리춤의 검 위로 올라가는 손.

칼 제이스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빛을 보아하니 [압도]를 거두지 않으면 베겠다는 기세였다.

그러나.

‘건방지군.’

나는 오히려 방출하는 [압도]의 농도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EX급 레이드라는 큰일을 앞두고, 다른 헌터들에게 악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절반의 힘만 방출했는데, 배려해주는 것도 모르고 반항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상대가 이렇게 나온다면 더 이상 봐줄 필요는 없었다.

“……!!”

“으윽!!”

더욱 거세진 압박의 수위.

주변에선 [압도]의 기세에 눌려 한쪽 무릎을 꿇거나 신음을 삼키는 이들도 생겨났다.

물론, 칼 제이스도 지지는 않았다.

그 역시 마나를 방출해 [압도]에서 벗어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무언의 기운이 맞부딪치며 자아내는 살벌한 공기.

여기서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응집된 갈등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칼 제이스도, 나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압도]의 힘을 완전히 개방하려고 마음을 먹었고, 칼 제이스 또한 칼자루를 쥔 순간.

“허허허! 사우디아라비아의 평화를 위해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헌터 여러분.”

스피커에서 차분한 음악이 흘러나오더니 왕궁 입구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왕이 신하들을 대동한 채 연회장으로 들어온 것이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반전됐다.

셀리나는 오른손을 들어 칼 제이스를 제지했고, 여기서 싸워봤자 이득이 될 게 없다고 판단했는지 칼 제이스도 허리춤의 검집에서 손을 떼며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극한으로 치닫던 대치 상황에서 디바인 실드 측이 먼저 발을 뺀 것이다.

나도 그제야 [압도]를 거두었다.

이 정도면 강남에 SSS급 던전이 나타났던 당시, 한국을 무시했던 것에 대한 불쾌함을 충분히 전달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제가 한국의 SSS급 던전 출몰에 너무 무신경했던 것 같군요. SS급 헌터분들의 임무 투입으로 전력에 손실도 가져다 준 것 같고요.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불찰이었습니다.”

내 생각이 맞았는지, 셀리나는 더 이상 궤변을 펼치지 않았다.

그저.

“다만 EX급 던전 레이드라는 중요한 일이 있으니 그 문제는 일이 해결되고 나서 추후 논의하는 게 어떨까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빠져나갈 뿐이었다.

사우디 국왕이 연회장으로 들어와 헌터들과 일일이 인사하며 다가오고 있으니 당장 급한 불을 끄자는 생각으로 보였다.

솔직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형식적으로나마 사과를 했으니 여기서 더 이상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여기서 더 이를 드러내봤자 얻을 수 있는 것도 없었고.

“좋을 대로 하시죠.”

나는 셀리나에게 차갑게 대꾸한 다음,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사우디 국왕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허허허! 여기 대단한 분들이 다 모여 있었군요. 반갑습니다. 한상우 헌터님 맞으시죠? SSS급 던전을 클리어한 주역…!”

“예, 반갑습니다, 사우디의 국왕이시여.”

사우디 국왕은 함박웃음을 짓더니 나를 시작으로 칼 제이스, 강철만, 가브리엘 등 유명 헌터들과 악수를 했다.

그런데 사우디 국왕과의 악수를 끝내고 고개를 돌린 순간, 뭔가 특이한 게 눈에 들어왔다.

[압도]와 불편한 공기 속에서도 미소를 머금은 표정을 유지하던 셀리나가 사람들의 시선이 국왕한테 이동하자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으으윽-

아주 잠깐이지만 그녀의 등 뒤에 있던 그림자가 칼 제이스보다 더 커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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